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강정욱 Jun 06. 2024

더에이트쇼와 멋진 신세계 그리고 자기 착취의 악순환

[Weekly OD Insights] 드라마: 더에이트쇼 리뷰


최근 넷플릭스 <더에이트쇼>를 정주행 했다. 오징어게임과 비교하는 분들이 많은데, 몇몇 공통점과 차이점이 있다. 공통점은 돈, 밀폐된 공간 그리고 인간의 본성이라고 볼 수 있다. 세속화된 현대 사회를 약간의 과장을 섞어서 비춰주는데, 돈과 원초적 욕구 앞에서 인간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생생하게 표현된다. 더에이트쇼의 분석글은 워낙 많으니, 나는 좀 더 다른 관점으로 보고자 한다.




1984와 멋진 신세계

넷플릭스 공전의 히트작, 오징어게임을 보면서 나는 조지 오웰의 소설 <1984>를 떠올렸다. 게임 주최자들은 참가자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통제하는데, 이는 마치 빅브라더의 그것과 닮았다. 모든 게임은 철저하게 설계되어 있고, 참가자들은 생존과 돈을 위해서 목숨을 걸고 경쟁한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부자들은 자신들의 즐거움을 위해 게임을 후원하고, 참가자들에게 배팅하며 엄청난 쾌락을 경험한다. 성지훈과 같은 일부 캐릭터는 시스템에 반항하고 그래서 시즌 2를 기대하게 하지만, 대부분의 캐릭터는 시스템에 순응하고 게임 속에서 죽음을 맞이한다. 마치 1984의 주인공 윈스턴이 심리적 고문과 세뇌를 통해 끝내 체제에 순응하는 것처럼.



더에이트쇼 역시 누군가가 24시간 내내 지켜본다는 점에서 유사하다. 하지만, 큰 차이점은 바로 ‘자율권’이다. 더에이트쇼의 어떤 규칙에도 참가자들끼리 ‘게임’을 하라고 나와있지 않다. 모든 것이 시간과 돈으로 교환되는, 아주 단순한 규칙만 있을 뿐이다. 하지만, 돈을 벌기 위해 참가한 이들은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서 스스로 새로운 게임들을 제안하고, 서로를 괴롭히며 자기 착취의 함정에 빠진다. 오징어게임에선 게임을 통해 살아남는 것이 유일한 선택이지만, 더에이트쇼는 온갖 물건을 구매할 수 있고, 규칙을 정할 수 있으며, 쇼 자체를 스스로 정의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이 진정한 자유일까? ‘자율’으로 포장된 감옥에 불과할까? 동일한 상황에서 우린 진정으로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을까?


나는 디스토피아를 다룬 또 다른 작품,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를 떠올렸다. 소설 속 시민들은 태어날 때부터 계급이 정해져 있고, 그에 맞춰 역할을 수행하고 조건화된 삶을 살아간다. 더에이트쇼의 옷과 공간, 그리고 소품들은 진짜처럼 보이지만 실은 가짜인데, 멋진 신세계에서도 ‘소마‘를 먹으면 더없이 행복해지는 인공적인 쾌락 속에서 살아간다. 더에이트쇼 참가자들도 진정한 현실에 눈을 감고 시스템에 순응한다. 돈을 쓰면 당장 밖으로 나갈 수 있음에도 나가지 않는다. 가만히 있어도 늘어나는 돈에 취해, 가상의 쇼에 심취한다.

우리의 현실은 무엇과 닮았을까?'





우리의 현실, 자기 착취의 악순환

우리의 현실은 오징어게임과 더에이트쇼 중 어디에 더 가까울까? 개인적으로, 캐릭터는 오징어게임이 더 좋았다. 대부분의 평범한 사람들은 양면적인 속성을 지닌다. 상황에 따라 가끔은 이타적이면서도 또한 이기적인 성지훈의 모습이 그것과 닮았다. 반면 더에이트쇼의 캐릭터들은 비교적 평면적인 것처럼 보인다. 다소 아쉬운 감은 있으나, 계층이라는 작가의 주제의식을 전달하기에는 더 적절했다고 생각한다. 


캐릭터는 오징어게임이 더 현실적이지만, 우리의 현실 상황은 더에이트쇼에 가깝지 않을까? 사람들은 더 높은 성과와 많은 돈을 위해 자신과 서로를 압박하고 경쟁한다. 자기 착취는 일상화된다. 과거에는 분명 우리를 통제하는 권력에 의해 착취를 당하기도 했다. 그에 맞서 약자를 보호하기 위해서 근로기준법을 비롯한 다양한 법적 보호망도 생겼다. 하지만, 지금 우리들을 가두고 착취하는 것은 외부의 시스템이나 타인이 아닌 자기 자신이다. N개의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몸을 혹사하거나, 퇴근 이후에도 유튜브를 하거나 스마트 스토어를 한다. 가만히 있는 것은 죄악이다. SNS를 통해 끊임없이 남들과 비교하고, 부족한 점을 찾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한병철의 <피로사회>에서 지적했듯,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자유롭지만, 어느 때보다 불안하고 불행해졌다.



앞으론 어떻게 될까? 부익부빈익빈과 계층화는 가속화될 것으로 예측된다. 물론, 기본 소득을 비롯한 사회적인 합의도 이뤄져야 할 것이다. 모든 것을 개인의 문제로 치부할 수는 없기에. 하지만, 그럼에도 각자의 자리에서 자기 착취의 악순환에선 벗어나기 위한 노력도 필요하다. 바쁘다 바빠 현대 사회에서 ‘정신을 차리고 산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나 또한 경험한다. "정신없다"를 늘 입에 달고 살아간다. 그럴 때일수록 잠시 멈춰 물어야 한다. 지금 어디에 있고, 어디로 가고 있는지, 어디로 가고 싶은지. 그리고 삶을 더 단순하게 만들어야 한다. 운동이나 독서, 대화처럼 건강한 습관들을 늘려나가고 '바쁨과 소진의 챗바퀴'에서 벗어나 정말 중요한 것들을 습관화하는 선순환을 만들어야 한다. 나 또한 노력하지만 쉽지 않다. 하지만, 글을 쓰며 또 한 번 각오한다.  


악순환을 벗어날 때 정말 도움이 되는 것이 있는데, 바로 글쓰기다. 경험하는 자아와 이야기하는 자아를 연결하는 것이 글을 쓰는 자아가 아닐까 하는데, 우리의 경험을 붙잡고 이야기로 만들고, 재구성하는 과정에서 잠시나마 시간을 붙느는 경험을 한다. 글을 통해 생각을 정리하지 않고, 오로지 경험하는 자아로만 살아가다 보면 그야말로 급행열차를 타는 느낌이지 않을까? 그것이 두렵다. 두서 없는 글이지만 이렇게 글을 써서 공유하는 이유도 그 두려움에서 벗어나기 위함이다. 스스로와의 약속을 정리해보자. 바쁜 일상이지만 잠시나마 멈추고, 최대한 단순하게 살아가고, 자주 쓰자. 

매거진의 이전글 영웅주의에 대한 경고, 영화 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