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ly OD Insights] 생각: 측정과 공정성의 상관관계
한국 양궁이 파리 올림픽의 모든 매달을 따는 놀라운 성과를 거뒀다. 물론, 이러한 성과에 대해 폄하하는 의견도 존재한다. 이를테면 엘리트 체육으로 대표되는 한국식 시스템에 대한 비판이라든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영역에서 꾸준히 세계 정상을 유지하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1984년 로스앤젤레스부터 2024년 파리까지, 한국은 매 대회에서 메달을 획득했다. 이러한 위업을 굳이 폄하하는 것은 억지가 아닐까.
그렇다면 과연 성공 비결이 뭘까? 스포츠는 워낙 많은 변수가 작용하기 때문에, 한 두번의 성과는 우연으로 이뤄지기도 한다. 하지만 지속적인 성과는 단순한 우연이 아니라, 체계적인 선발 시스템과 과학적 훈련의 결과라고 볼 수 밖에 없다. 그 이유가 궁금하여, 양궁에 대해서 더 찾아봤고 몇 가지 요소를 추릴 수 있었다. 물론 '주몽으로부터 내려오는 한국인 DNA'가 있다거나, '어릴 적부터 젓가락질을 해서'와 같은, 공감하기 어려운 요인들은 제외했다.
첫 번째는 양궁 협회의 원칙과 시스템이다. 불공정이 판을 치는 요즘, 양궁 협회가 주목받는 이유는 바로 '공정하고 체계적인 선발 시스템'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양궁 협회는 대표 선발 과정에서 오로지 선발전 결과만을 기준으로 한다. 오죽하면 전훈영이 말한 "어떻게 해요. 뽑혔는데"가 화제가 되었을까. 처음에는 불안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런 시스템으로 지속적으로 좋은 성과를 내다보니 이제는 그 자체를 신뢰하는 단계로 접어들었다. 이제 국민들은 우리가 익히 알던, 안산과 같은 선수가 나오지 않더라도 흔들리지 않는다. 시스템을 통과했다면, 누구나 충분히 잘 할거라 믿는다.
두 번째로 많이 언급되는 요인은 '과학적 훈련 방법'이다. 현대 자동차의 스폰서십이라고 해야 할지, 기술 강국으로서 강점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한국 양궁 협회는 최신 기술과 데이터를 활용하여 선수들의 훈련을 최적화하고 있다. 선수의 자세와 슈팅 정확도를 분석하는 것 뿐만 아니라, 경기 중 스트레스 관리와 집중력 향상을 위한 심리적 훈련으로도 유명하다. 개인적으로 인상 깊었던 것은 '실제 상황'을 거의 비슷하게 연출하는 훈련이었다. 실전 경험을 반복하는 것은 과학적으로도 탁월한 훈련 방법이다.
앞선 요인들의 배경에는 현대 자동차의 꾸준한 스폰서십이 존재한다. 어쩌면 더 근본적인 요인이 아닐까. 현대 자동차는 양궁 협회를 오랜기간 후원하며 선수들이 최고의 환경에서 훈련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데, 특히 "지원하되 간섭하지 않는다"는 철학을 갖고 있다는 점이 함께 큰 화제가 되었다. 다른 스포츠 협회가 스폰서에 의해서 너무 쉽게 방향이 달라지는 것을 감안하면, 충분히 존경받아 마땅한 자세가 아닐까. '쉽게 흔들리지 않는' 리더를 만났기 때문에 '지속가능한 성과'를 창출하는 시스템을 만들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한마디로, 한국 양궁은 공정한 선발 시스템과 과학적 훈련, 꾸준한 스폰서십을 통해 꾸준하게 최고의 성과를 내고 있다. 이러한 방식을 다른 스포츠에서 그대로 적용하는 것이 가능할까? 훌륭한 스폰서십이나 과학적 훈련은 그러하다.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변화를 바꿀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공정한 선발 시스템' 만큼은 쉽게 따라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제 그 이유에 대해서 말해보고자 한다.
양궁은 비교적 '객관적 측정'이 가능한 몇 안 되는 스포츠다. 사실, 이 글을 쓴 진짜 이유도 이렇나 '측정의 어려움'을 언급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모든 것을 리더십이나 시스템으로 지적하기는 쉽지만, 그렇다고 그 현상이 바로 바뀌지 않는 것은 각 종목만의 '복잡성'을 이해하지 못해서다. 비판은 할 수 있지만, 복잡한 현상을 너무 단순하게 바라보고 비난하는 것 또한, 바람직하지 못하다.
첫 번째로, 양궁은 동료와의 협업이 거의 없는, 자신과의 싸움이다. 물론, 단체전에서 서로에게 심리적으로 버팀목이 되어주고 격려를 하긴 하지만, 패스로 이뤄진 축구나 농구를 생각해보면 비교 자체가 되지 않는다. 물론 날씨나 관객들에 의한 요인은 있겠지만, 그것은 상대도 마찬가지다. 결과를 내는데 있어서 동료에 의한 간섭이 적다는 것은 측정에 있어서 엄청나게 큰 영향을 미친다.
두 번째로, 결과 측정이 객관적이다. 과녁에 얼마나 가까운지 미세한 결과까지 알 수 있기 때문에, 결과에 대한 수용도도 매우 높다. 아무리 정확하게 하려고 해도, 태권도나 유도, 혹은 피겨 스케이팅처럼 사람의 판단이 들어갈 수 밖에 없는 종목에 비교하면 더욱 그렇다. 이렇게 협업이 적고, 측정이 편한 종목은 공정한 선발이 비교적 쉽다. 잘은 모르지만, 달리기나 수영도 아마 그럴 것이다.
업무도 마찬가지다. 비교적 협업이 적고, 일을 했을 때 바로 눈에 보이는 성과가 있는 직무, 예를 들어 세일즈는 목표를 정하는 것도 쉽고, 그 결과에 대한 보상 수용도도 높다. 하지만 협업이 많고, 측정하기 어려운, 예를 들어 한 팀에서 협력하는 프로덕트 매니저나 개발자, 디자이너 등에겐 개별 목표를 주는 것도, 그 결과를 보상에 공정하게 매칭하는 것도 모두 쉽지 않다. 공정성에 대한 이견은 존재하기 마련이고, 수용도도 떨어진다. 결과적으로 절차, 분배, 의사소통 전반에 걸쳐서 리더십이 더욱 강조된다.
결론적으로, 한국 양궁의 시스템을 다른 종목에 적용해야 한다는 의견은 절반은 맞고, 절반은 아쉽다. 한국 양궁의 지속적인 성과는 많은 영역에서 배워야 하지만, 그것은 양궁이라는 종목에 맞춰서 최적화한 것이기에 절대적일 수는 없고, 벤치마킹에서도 신중함이 필요하다. 모든 현상에는 보편성과 특수성이 존재한다. 다른 분야에서 특정 시스템이 성공할 수 있었던 근본적 이유와 차이점를 구별하고, 이를 기반으로 자신에게 맞춰 최적화해야 하지 않을까. 지금보다 개선된 시스템을 바탕으로, 한국의 모든 스포츠 종목들이 멋진 성과를 내길 기대하며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