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을 사랑이라 할까, 상호성이라 할까
[대화 시작]
S: 오랜만에 독서모임을 하니 너무 좋다. 제가 시작할게요. 파뿌리 얘기를 지난번에 살짝 했는데, 이어령 선생님이
"'맞아. 인간은 다 구제불능으로 이기적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래도 각자 붙들 파뿌리 하나씩은 있었던 거야. 하다못해 길거리에서 라이터 하나라도 빌려줬던 거야. 싫어도 본능적으로 타인에게 건넸던 거야. 그게 인간이야. 인간의 참모습이야. 천국에 가보니 가까스로 파뿌리 붙잡고 올라온 자들이 가득한 거야. 부탁하고 도움 주고... 설사 그게 하찮은 것이라도 서로를 구제해주는 파뿌리라는 거지. 그러니까 돈 빌려달라면 푼돈이라도 주고, 누가 떨고 있으면 자기 외투라도 벗어주는 거야. 대단히 선량하지 않은 아주 보통의 인간들이. 어떤가?'"
인간의 참모습/성향이 선한가 아니면 악한가? 우리는 이 세대에 희망을 가져도 되는가?라고 적어놨네요.
Y: 악한 것 같은데, 악한 건 맞는데 선하다고 믿고 싶어. 선할 수 있다고 기대를 갖고 싶어. 그리고 아직은 갖고 있는 것 같아, 아직은. 안 그러면 남은 여정이 너무 힘들어지겠지...
생각해 보면 내가 선한 사람으로서 살고자 노력을 했던 적이 있었던 것 같아. 근데 이제 살아보니 긴 여정을 산 건 아니지만 내가 경험한 어려움들 안에서 나의 모습을 보면서 인간은 선하지 않구나를 뼈저리게 느꼈던 것 같고 나도 인간이 악하다는 전제에 해당되는구나, 나도 포함될 수밖에 없네 싶더라고.
S: 언니도 본인이 더 악하다 생각해요?
Y: 악한 것 같아. 굉장히 악한데 그게 매일 악하다기보다는 본성이 드러나는 순간이 있어. 그럴 때는 나도 놀랄 때가 있고 그게 상대방일 때도 놀랄 때가 있고... 그런 순간들이 굉장히 치명적이어서 잊히지가 않아 그 순간들이...
S: 예를 들면 언제요?
Y: 예를 들면 우리 가족의 이야기만 봐도 그 안에서 각자 구성원들의 어려움이 있지만 중요한 순간에 어쩌면 내가 제일 이기적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그런 순간은 오로지 나만 직면하게 되는 모습인데 그 순간에 보이는 내 모습이 악하다고 느낄 때가 있어. 그걸 처음 직면했을 때는 내가 이런 사람이 아닌데 내가 왜 이러고 있지? 싶었다가, 이제는 내가 이럴 수밖에 없는 인간이구나를 인정하고 우리가 너무 -
S: 연약하다 -
Y: 맞아, 내 한계가 이거구나... 그렇지만 사람 때문에 힘들고 또 사람 때문에 회복되기도 하는 걸 보면 선과 악이 공존하는 느낌이야. 악한 모습을 제일 많이 보는 것 같지만 선할 수 있다는 일련의 기대감이 나를 다시 살게 하는 거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어. 많은 악한 사람이 있지만 내 앞에 있는 선한 사람 덕분에 또 내가 살아가고 있는 거고 누군가를 만나고 싶어 하는 거고 약속을 잡고 있는 거잖아. 그러니까 희원이 너는 나에게 있어서 선한 사람의 증거일 수 있는 거지. 너는?
S: 저는 인간이 악한 거 같아요. 근데 웬만해서는 그 악함 뒤에 항상 사연이 있는 것 같아요. 어쩌면 선했을 수도 있는 사람인데 어떤 일이나 어려움이 닥쳐서 -
Y: 후천적인 것 같다는 거지, 선천적인 것이 아니라.
S: 네. 선한 사람도 악한 때가 있고 악한 사람도 선한 때가 있고, 결국에는 다 연약한 거겠죠.
나는 내가 제일 악하다고 느낄 때는... 여러 상황이 있겠지만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거나 특히 화가 나서 어떤 말을 내뱉게 될 때... 이걸 말하면 상대방이 상처받을 거고 그만큼 쓰라린 말인데 그 순간 내가 주체를 안 하고 그냥 내뱉어버리면... 물론 화가 나니까 주체하기 힘들긴 한데 그래도 모두에게 이성의 끈이 있긴 있잖아요. 회사에서 아무리 화가 난다고 해서 "이 OO XX야" 그러진 않잖아요 (웃음). 근데 바깥에서는 작동시키는 그 스위치를 집에서는 그만큼 작동시키지 않는 거 같아요. 때로는 일부러 상처 주고 싶어서 참지 않을 때도 있고. 그래서 약간 내가 생각하기에도 진짜 못된 말을 던질 때 그럴 때 제일 악하다고 느끼죠.
근데 그거에 비해서 나 자신이 선하다고 생각한 순간은 생각보다 생각나는 게 없어요. 내가 도움을 주거나 했을 수는 있지만... 그냥 나이가 들수록 더 계산하게 되고, 생각하게 되고, 따지고 재는 것도 많아지고, 감정도 그렇고...
[SKIP]
S: 이건 질문은 아니었는데 되게 좋았던 문장으로 적었던 것 중에
"'한 번 밖에 못 만난다... 그건 상대가 여자든 남자든, 가슴이 저며오는 거야. 지금 이 순간은, 오늘 이 하루는 절대 돌아오지 않는다는 거지.'"
이 순간, 오늘 이 하루는 절대 돌아오지 않는다... 그저께 읽고 있던 다른 책에서 우리는 청춘이 가는 걸 되게 아쉬워하면서 오늘 하루는 빨리 가길 바란다. 빨리 퇴근해야 하고, 빨리 주말이 와야 하는데 그러면서 또 벌써 서른인 것은 아쉬워하잖아요. 그걸 보면서 작가가 꼬집은 모순에 되게 공감이 갔어요. 그걸 이겨내기 위해서는 선생님의 말대로 진짜 지금 이 순간, 오늘 이 하루는 한 번밖에 오지 않는다는 걸 기억해야 하는데, 근데 그걸 알면서도 되게 힘든 것 같아요.
아니 이번 연휴에 저희는 일주일을 쉬었잖아요. 근데 쉬고도 정말 회사가 가기 싫은 거예요 (웃음). 그리고 추석에는 연말이 있었고, 연말에는 설이 있었는데, 설이 끝나니까 없잖아요 (웃음)! 이제 기다릴 게 없어서 큰일 났네 싶다가, 근데 또 회사 다닐 때는 회사 다니는 게 싫지만 쉬면 또 쉬는 게 슬프잖아요. 제 친구 중에도 취준이 길어지는 친구가 있거든요. 그 친구가 그러더라고요. 출근하지 않아서 괴롭지 않은 건 좋지만, 이렇게 집에서 마냥 쉬면 또 내가 되게 쓸모없게 느껴져서 괴롭다고. 그 말을 들으니까 또 우리도 취준 할 때 결코 마음 편히 쉬었던 건 아닌데... 그러니까 우린 도대체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하는 건지 (웃음).
"'인생이 그렇다네. 세상을 생존하기 위해서 살면 고역이야. 의식주만을 위해서 노동하고 산다면 평생이 고된 인생이지만, 고생까지도 자기만의 무늬를 만든다고 생각하며 즐겁게 해내면 가난해도 행복한 거라네.'"
아! 생각해 보니까 독서 모임을 쉬면서 약간 리듬이 깨졌던 것 같긴 한데, 그래서 이번 주에는 퇴근하고 드라마를 한 편씩 봐야겠다 했어요. 이제까지는 안 보다가, 갑자기 12월부터 무슨 바람이 불어서 (웃음) 주말에 물어봤었거든요. 그러니까 주말을 기다리는 현상이 더 심해지는 거예요. 그래서 퇴근하고 평일에 드라마를 보면 소소한 즐거움이 있으니까 그렇게 해볼까 싶어서 했어요. 그것도 그 나름의 재미는 있다!
[SKIP]
S: 그것도 적었어요. 공감하고 계속 맥락이 이어지는데, 이어령 선생님이
"'너와 나 사이엔 엷은 벽이 있다고 내가 했던 얘기를 기억하고 있나? 그런데 그 벽이 딱 바늘구멍만큼 뚫리는 순간이 있어. 타자와 내가 하나가 되는 흔치 않은 순간이 있다네.'
'선생님은 그 바늘구멍을 사랑이라 부르는 건가요?'
'그것을 사랑이라 할까, 상호성이라 할까.'"
근데 나는 이 표현이 너무 정확한 거 같고 아름다운 거예요. 딱 바늘구멍만큼 뚫리는 순간... 언니는 생각나는 순간이 있어요? 바늘구멍만큼 타자와 내가 하나가 된 흔치 않은 순간.
Y: 지금 딱 생각나, 아버지가 소천하시고 날 찾아왔던 친구들과 장례식장에서 처음 눈을 마주친 순간. 그 안에서 내가 서 있고, 친구가 들어와서 인사를 하고 돌아섰을 때 친구의 눈과 내 눈이 마주치는 그 순간... 그냥 눈물이 그렁그렁 맺히는 거지. 그리고 나를 보고 안아주면서 토닥여주는 그 순간... 말하지 않아도 상대방이 힘들지? 친구가 아무 말을 하지 않아도 뭔가, 친구의 어쩔 줄 몰라하는 그 마음이 나한테 와닿는데 그냥 내 눈앞에 서 있는 그 모습 그대로 다 위로가 되었어. 상대방과 내가 유대하는 절정이 아닐까 싶어. 너의 존재가 나한테 참 위로가 된다, 내가 불안한 지금 너의 존재가 나에게 되게 고맙다...
그걸 잘 설명했던 이야기 중 하나가 전에 보현이가 추천해 줬던 김동률 앨범 있잖아. 그 앨범 중에 <동행>이라는 음악에 대해 설명하는 내레이션이었는데, 아마 그것도 강세형 작가가 썼을 텐데 이제 어떤 친구가 엄청 힘들고 어려운 순간에 도움을 주고 싶어서 뭐가 필요하냐, 내가 어떻게 해주면 좋겠냐고 물었을 때 그 사람이 그냥 내 옆에 가만히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되게 힘이 된다고 했대. 근데 그 당시에 김동률이 그 말을 듣고 사실 너무 서운했다는 거야. 나는 너한테 뭔가 물질적으로든지 뭐가 됐든지 무언가 해주고 싶은데 그냥 내가 가만히 있어주는 것만으로 된다는 게, 뭔가 그냥 믿음직스럽지 않다는 맥락으로 여겨졌던 거지. 근데 이제 자기가 그렇게 힘든 시간이 되어 보니 그 친구의 이야기가 너무 공감이 가더래. 그냥, 그냥 같이 있어줬던 존재가 나한테 전부였던 거지... 그러면서 쓴 노래가 <동행>이었던 건데, 이 이야기가 나한테 너무 와닿았고 원래도 좋아하는 노래였지만 그 비하인드 스토리를 듣고 나서 그 노래를 듣는데 마음이 벅차다고 해야 되나? 그렇더라고.
그런 게 사람과 사람 사이에 바늘구멍 같아. 그러니까 우리가 되게 좋은 친구야의 수준을 넘어서는... 보다 크게 연결된 바늘구멍에서 점점 커지는 유대 관계였던 것 같아. 근데 그게 너무 커지니까 나중에는 내가 이걸 어떻게 보답할 수 있을까가 고민되는 거지.
S: 특히 우리는 항상 빚을 지면 빚을 갚을 생각을 하니. 좀 뻔뻔해도 되는데 염치가 너무 많아 (웃음).
Y: (웃음) 그러니까. 그래도 뻔뻔하기에는 뭔가 내가 받은 게 단순한 게 아닌 것 같았어. 어느 정도는 좀 뻔뻔하고 염치없을 수 있겠지만 그 이상의 것을 받아서 잊을 수가 없는 거지. 너무 고마우니까 어떻게든 보답하고 싶고... 그래서 내가 그때 말했잖아, 친구의 결혼식에서 도왔던 게 내가 보답할 수 있는 기회였던 거 같아 나는 너무 행복했다고. 나의 마음으로는 그만큼 해도 아깝지 않고 힘들지도 않고 오히려 너무 기뻤어.
너의 바늘구멍은 언제였어?
S: ㅎr... 이 모든 것은 백신 휴가가 원인이었는데 (웃음)... 그때 쉬면서 뭐하지? 그러다가 <그해 우리는>이 시작할 때라 우연히 티저를 보고 재밌겠다 해서 보기 시작했거든요. 근데 그러다가 <옷소매>가 재밌다고 해서 옷소매에 또 빠졌다가 이제 끝나고 <연모>로 넘어왔단 말이에요? 회사도 덜 바쁘니 순식간에 안 보던 드라마 광이 되어버렸는데 (웃음), 요즘에는 드라마를 보면서 어떤 상황이나 주인공의 감정이 너무 공감 가는 순간들이 있어서 그걸 마치 바늘구멍처럼 느껴요. 우리는 주인공들의 사연도 알고 마음도 알고 그 디테일들을 다 알면서 서로가 엇갈리는 모습을 보거나 짊어져야 하는 짐이 너무 무거운 상황을 보거나, 여기에 화면도 너무 슬프고 아름답게 연출이 되고 절절한 가사의 노래가 나오고 그러면... 진짜 저 사람이 배우가 아니라 그냥 그 캐릭터에 이입이 되어서 바늘구멍의 순간처럼 너무 마음이 아플 때가 있어요. 언니 <연모> 안 봤죠? 계속 갱신이 돼서 <그해 우리는> 보다 <옷소매>가 재밌고 <옷소매>보다 <연모>가 재밌고 (웃음).
근데 <연모>에서 그 바늘구멍의 순간들은, 남장 여자의 설정이니까 여자로서 보이고 싶은 마음을 숨겨야 하고, 또 세자로 나오니까 세자의 책임감, 무게, 그 자리 때문에 하고 싶은 말, 또 살고 싶은 삶을 살지 못하거든요. 근데 박은빈의 연기를 보면서, 그냥 너무 순간순간 그녀의 마음이 뭔지 알 것 같은 장면들이 나오면 그게 바늘구멍처럼 마음을 좀 찔렀어요. 요즘에 제일 많이 공감하는 테마는 하고 싶은 말을 하지 못하고 전하고 싶은 마음을 전하지 못하는 건데, 그걸 표현한 장면들이 나올 때마다 너무 찡했어요. 자기는 여자인데 남자로 살고 있고 또 세자니 하고 싶은 말도 숨겨야 하고... 그래서 <연모>를 보면서 너무, 너무너무 슬픈 장면들이 있어서 이휘의 마음이 내 마음인 것 같은 순간들이 바늘구멍처럼 느껴지더라고요.
제 동기는 보다가 말았대요 (웃음). 남장 여자인데 너무 예쁘니까 좀 더 중성적인 얼굴을 골라야 했지 않겠냐는 등 설정에 공감이 가지 않는다는 얘기를 했는데, 근데 설정이 정말 말이 안 되긴 하지만 왜 살면서 한 번쯤은 정말 하고 싶었던 말을 하지 못하고 지나쳐야 하는 순간이 있잖아요. 살면서 다른 어떠한 이유로 인해 한번 즈음은 정말 전하고 싶었지만 전하지 못한 마음이 있었을 터인데, 그런 맥락에서 주인공들의 감정 묘사가 바늘구멍처럼 공감이 갔어요.
연모의 팬으로서 올리는, <연모> 이휘의 말하지 못한 마음
https://www.youtube.com/watch?v=kL_4U8zhT7A
https://www.youtube.com/watch?v=Ls7GLIlb_4I
연모의 팬으로서 올리는, <연모> 이현의 전하지 못한 마음
https://www.youtube.com/watch?v=yBgaqBAvHd8
https://www.youtube.com/watch?v=ja7vBbxA_BY
S: 주인공들 각자가 마음을 숨기고 말하지 못하고 그런 상황 속에서 감정 묘사가 억지스럽지 않고 다 안타까워서, 그냥 보면서 너무 안타깝고 그래서 이런 말도 안 되는 설정에도 몰입이 되고 ㅠㅠ...
Y: 그러고 보니 너는 박은빈 나오는 드라마가 벌써 두 번째네?
S: 세 번째. <스토브리그>가 진짜 인생 드라마였고, <브람스>를 추천해준 보현이는 보다가 말았지만 저는 나름 재밌게 봤고 또 연기를 너무 잘해요!!! 캐릭터가 다 다른데 다 너무 자연스럽게 연기를 잘해서 정말 천상 배우가 아닌가 싶어요.
[SKIP]
Y: 김지수 기자가 선생님한테 춤을 춰본 적이 있으시냐고 물어봤어. 춤을 춘 적이 없으시다고 해서, 그러면 춤추고 싶은 마음도 없으셨냐? 하니까 춤은 안 췄지만 춤에 대해서 글을 쓴 적이 있다고 하시더라고. 그리고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던 게 목적이 있으면 걷는 게 되고 목적이 없으면 춤이 된다. 걷는 것은 산문이고 춤추는 것은 시다. 목적이 자기 안에 있거든 일상의 수단이 아니라 일상의 목적이 되는 것, 그게 춤이라는 의미에서 글을 쓰며 사는 것이 본인에게는 춤이 된다고 하시더라고. 너의 일상의 춤은 뭐야? 이제 드라마인가 (웃음)?
S: (웃음) 아 너무 어렵다.
Y: 나도 말해놓고 어려워. 일상 속에 수단이 아니라 목적이 되는 것... 아무래도 나의 일상에 회사가 차지하는 비중이 너무 크니까 회사에서 생각을 해보면, 그곳에서 춤이 될 수 있는 포인트가 내가 누군가에게 베푸는 친절이 될 수도 있을 거 같아. 친절함이 일하는 데 있어서 능률을 높이는데 기여하고, 반면에 그 반대의 전혀 결이 다른 부정적인 감정들이 개입되면 춤이 아닌 거의 때려 부수는 그런 감정이 휘몰아치니까 (웃음). 너무 추상적인가? 김지수 기자는 선생님과의 대화가 마치 춤을 추는 것처럼 느껴진다고, 라스트 댄스라고 표현했어.
S: 내가 김지수 기자였으면 나도 그렇게 느꼈을 것 같아요.
Y: 그러면 질문을 바꿔서 내 라스트 댄스가 뭐였으면 좋겠어? 내 인생의 마지막 댄스... 나는 죽음이라는 순간 앞에서 살려고 발버둥 치지 않고, 다른 사람들의 마음에 상처 주지 않고, 고인 최정윤 씨는 이 세상을 친절하게 살았다는 말을 들었으면 좋겠어.
S: 저는... 근데 막상 또 진짜 마지막, 끝, 죽음을 염두에 두고 살지는 않으니까 어렵네요. 그래도 뭔가 좀 마지막까지 쉬지는 않다 갔으면 좋겠어요. 쉬지 않다 갔으면 좋겠어요.
Y: 뭔가 일을 쉬지 않는 건가?
S: 음... 도전? 그러면 일일 가능성이 제일 높죠. 정체되어서 아무런 성장이나 발전, 비전 없이 그저 살다가 가고 싶지 않아요. 그런 사람들을 회사에서 너무 많이 보고 있어서 더 경계가 되는 거 같아요.
"'[재능은] 타고나. 모든 아이들이 다 타고나. 천재로 태어나서 둔재로 성장할 뿐이지. 하나님이 주신 것을 훼손하지 않고 그대로 갖고 사는 사람들이 천재라네.'"
Y: 그러면 도전과 성취, 발전이 너를 춤추게 하는 희원이의 춤이겠네.
S: 그러네요. 그 성장과 발전도 되게 애증의 관계인 것 같아요. 당연히 나도 몸이 편한 게 좋은데, 편하게 살다 보면 거기서의 단조로움이 되게 괴로울 때가 있어요. 뭔가 뒤쳐지는 문제가 아니라, 그냥 오늘 하루를 최대한으로 살지 못하고 낭비한 느낌이에요. 지금 나의 시간, 나의 재능, 나의 무언가를 낭비한 느낌. 나는 루팡들이 부럽지가 않아요. 나는 내일보다 오늘이 더 똑똑할 텐데 오늘을 그냥 흘려보내기엔...
"'정해진 대로 살면 그게 정말 행복일까? 아니야. 가짜 행복이네. 길 잃은 양이 된다는 것은 자기 의지대로 큰 강자와 작은 강자의 기준을 만드는 일이라네. 화문석을 짜는 일이야. 돈을 받는 노동이라도 자기 생각이 들어가 있고 자기만의 성취의 기준이 있어. 그때 비로소 '그림자 노동'에서 벗어나는 거야. 예술가가 되는 거야. 노동을 하는 순간에도 예술을 하고 있는 거야.
근데 나도 가정이 있거나 뭔가 마음 쓰는 대상이 있었으면 이야기가 달랐을 거예요. 하지만 지금은 젊고, 아직은 그래도 열정과 힘이 많은데 지금 나의 바둑은 회사밖에 없으니까 우선순위도 회사가 될 수밖에 없더라고요.
[SKIP]
S: 그리고 이어령 선생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이 대화가 노동이 될래? 예술이 될래? 그게 자네에게 달려 있네. 책 나와 보면 알겠지. 자네가 노동한 건지 예술한 건지. 쫄지 마. 우리는 지금 이 순간, 살아있는 말을 나눴어.'"
얼마 전에 제가 다른 책을 읽다가 그런 구절을 봤거든요. 광고 회사의 되게 높은 디렉터 분이셨는데, 회사를 다니면서 돈을 벌기 위해 광고를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광고하면서 돈도 버는 사람이 있다고. 그러면 이 두 부류의 사람은 다를 수밖에 없다. 그게 노동과 예술의 차이이기도 하겠죠.
오늘은 여기서 마치고 다음번에 이어령 선생님의 책을 마무리하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EXTRA]
"'흔히 시인을 신의 감정을 대필해서 표현하는 존재라고들 해. 그러나 물질중심사회에서 시인은 하등 쓸모없는 존재야.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세상은 시인을 필요로 한다네.'"
"'럭셔리한 삶... 나는 소유로 럭셔리를 판단하지 않아. 가장 부유한 삶은 이야기가 있는 삶이라네. '스토리텔링을 얼마나 갖고 있느냐'가 그 사람의 럭셔리지... 똑같은 시간을 살아도 이야깃거리가 없는 사람은 산 게 아니야. 스토리텔링이 럭셔리한 인생을 만들어. '세일해서 싸게 산' 다이아몬드와 첫 아이 낳았을 때 남편이 선물해준 루비 반지 중 어느 것이 더 럭셔리한가? 남들이 보기엔 철 지난 구식 스카프라도, 어머니가 물려준 것은 귀하잖아. 하나뿐이니까. 우리는 겉으로 번쩍거리는 걸 럭셔리하다고 착각하지만, 내면의 빛은 그렇게 번쩍거리지 않아. 거꾸로 빛을 감추고 있지. 스토리텔링에는 광택이 없다네. 하지만 그 자체가 고유한 금광이지.'"
"'죽음은 신나게 놀고 있는데 엄마가 '얘야, 밥 먹어라' 하는 것과 같은 거라고.'"
"'5월에 핀 장미처럼 가장 아름답고 찬란한 대낮이지. 장미밭 한복판에 죽음이 있어. 세계의 한복판에. 생의 가장 화려한 한가운데. 죽음의 자리는 낭떠러지가 아니야. 고향이지.'"
"'아닐세. 인생은 파노라마가 아니야. 한 커트의 프레임이야. 한 커트 한 커트 소중한 장면을 연결해보니 파노라마처럼 보이는 거지. 한 커트의 프레임에서 관찰이 이루어지고, 관계가 이뤄져. 찍지 못한 것, 버렸던 것들이 나중에 다시 연결돼서 돌아오기도 해.'"
"'앙드레 지드의 이런 경지를 모르면 문학을 못 하네... 동생과 형의 대화도 말할 수 없이 깊어. 동생이 그러지.
'집 나간 형을 생각하고 그 꿈을 꾸며 살았는데, 형이 돌아오면 나는 어떡하느냐.'
'미안하다. 나는 실패했지만, 너는 떠나라. 나는 실패했지만 너는 돌아오지 말아라. 낯선 곳에서,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곳에서 살아라. 내가 도와주마.'
새벽에 떠나는 동생을 형이 도와줘. 돌아온 탕자인 형이 동생에게 마지막으로 한 말이 그거잖아.
'계단 헛딛지 마라. 쓰러져. 발밑 조심해. 쓰러지면 돌아오지 못해.'"
"'구하라 그리하면 주실 것이다'의 성경 구절을 실현하기 위해, 우리는 먼저 길을 잃어야 한다는 선생의 말은 깊고도 깊어 호흡을 가다듬어야 했다. 그것은 용기의 과제이기도 했고, 믿음의 문제이기도 했다.
길을 잃어도 영영 미아가 되지 않을 거라는 믿음. 그 거친 길에서 내 손으로 따먹는 열매, 그 열매에서 맛보는 목자의 은혜와 마침내 성숙한 탕자로 돌아올 집이 있다는 안식까지. (그 집의 좌표가 설사 죽음일지라도). 그것이 눈보라 치는 우주의 회오리 속에서 기꺼이 '자기'를 사는 인간의 아름답고 기구한 운명이라고 그는 가르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