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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요일은 쉽니다 Mar 07. 2022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김지수 (E_최종)

"걱정하지 마. 나 절대로 안 죽어."


모임, 스물한 번째

220223, 선생님은 우리가 독서모임을 끝낼 때까지 기다려주셨던 걸까

※가공되지 않은 raw data 그대로입니다



[대화 시작]


S: 오늘은 마지막 세션으로 10번째 챕터부터 보겠습니다. 제가 처음에 적어둔 질문은

"'사람은 그렇게 두 종류야. 가만히 앉아 어딘가 행복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 부산하게 행복의 뒤꽁무니를 쫓아 뛰어다니는 사람.'"

언니는 어느 쪽이에요?


Y: 예전에는 행복을 찾아 쫓는 느낌이었다면, 지금은 그냥 내 자리에서의 행복을 돌아보고 살펴보는 추세인 것 같아. 행복의 크기도 예전에는 되게 크고 혁명적이고 휘황찬란하다 생각했다면, 지금은 그냥 아까 네가 보내줬던 글처럼 

"뭉크가 죽고, 아빠가 아프고, 힘든 일은 한꺼번에 몰려왔어요. 그때 든 생각이 '일주일 중 30초 정도만 행복하면 살자'라는 생각이었어요. 키우던 강아지가 자기 방귀 소리에 놀라거나, 동생이 머리를 망쳐서 웃긴 얼굴로 온다거나, 30초 정도 웃음이 터지는 그런 하찮은 순간들이 저를 살게 하더라고요."
- "1년간 18만 부… 회사 다니며 쓴 동화책이 어른 울렸다" (220222 중앙일보)

그냥 그 30초가, 그게 행복일 수도 있겠다는... 그리고 더더욱 그런 사람이 되기를 바라는 것 같아. 큰 행복을 좇아 사는 사람이 되기보다 그냥 작은 행복에 크게 기뻐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바라는... 


S: 오늘의 작은 행복을 찾으려는 편이네요. 


Y: 그렇지. 그냥 하루 일과에 있어 나 스스로에게 관대한 것 같아. 그냥 수고했다, 수고했다...


S: 예전에 언니가 퇴근하고 뭐 먹고 씻고 나서 침대에 앉아 자기 전에 뭘 보거나 읽는 게 하루의 소소한 기쁨이라 했어요.


Y: 지금도 그래. 지금도 그런 시간이 있다는 것만으로 되게 감사해. 근데 진짜 모르겠어. 예전에는 회사에 취직해야 행복할 것 같고, 결혼을 해야 행복할 것 같고, 빨리 얼마를 모아야지 행복할 것 같고 그랬거든. 그게 행복의 척도인 것처럼 쫓아 산 사람 중 하나였는데, 머리로는 늘 알지 그게 아니라는 걸. 알지만 근데 또 지금도 그러고 있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해. 그래서 이런 책들이 참 도움이 되는 게, 알면서도 내가 망각하는 순간들이 자주 찾아오는 거 같아서 이런 질문을 던져줄 때마다 '아, 그게 나의 행복이구나' 하고 정리돼. 


S: 요즘에는 근데 뭐가 행복이라 생각돼요? 퇴근 후 갖는 나의 여유? 


Y: 그것도 그렇고 나는 근 몇 년 사이에 뭔가 고유한 자연으로부터 오는 위로와 행복이 되게 크다는 걸 느꼈어. 그중에 하나가 나는 산. 나는 등산을 자주 가거든. 근데 등산이 좋은 게 생각을 안 하고 싶을 때는 생각을 안 하게 되고, 생각을 하고 싶을 때 생각을 할 수 있어. 생각이 너무 많을 때는 등산하면서 생각을 환기시키고, 내가 스스로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다 하면 등산하면서 좀 더 깊게 고민해보고... 너는? 


S: 저는 요즘에는 좀 일상의 행복을 챙기려고 하는 것 같아요. 전에는 그냥 저 어디 멀리에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요즘에는 오늘의 행복을 챙기자는 위주여서 왜 지난번에 얘기한 것처럼 한동안 드라마를 열심히 봤고 (웃음). 아, 주말에 <연모>를 다 봤어요. 끝나서 너무 슬퍼요. 근데 그걸 다 보고 나니까 새로운 걸 또 시작하기엔 약간 무섭고 (웃음). 아니 근데 어차피 이제 시트콤으로 넘어가서 유튜브에 자꾸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가 떠서 보고 있어요. 드라마나 시트콤이나 (웃음). 그런데 뭔가, 너무 주말만을 기다리지 않기 위해서는 오늘을 좀 더 즐겨야 되는 것 같아요. 주말만을 기다리며 사는 건 너무 슬퍼. 그래서 주중을 좀 더 기쁘게 만들고 주말을 좀 더 괴롭게 만들어 어떻게 평준화를 해볼까 하기도 했는데 (웃음), 아 도저히 그렇게는 못하겠다 (웃음).


[SKIP]


Y: 마지막 부분에서는 고통에 대해서 좀 많이 다루고 있잖아. 여기서 말씀해 주셨던 것 중에 이제 글 쓰는 것에 대해 설명하시면서 끝없이 쓰는 것이 행복인 동시에 갈증이고 고통이다... 왜 뒤에도 그런 게 있었는데, 이어령 선생님께서 되게 중요한 순간에도 글을 쓰는 시간을 계속 사수하시니 사모님이 저 사람은 아버지 제삿날에도 글을 쓰고 있더라고 말씀하신 것도 나왔거든. 근데 사실 책에서 말하는 것처럼 그것이 고통일 수도 있지만 사실은 쾌락이고 즐거움이고 뭔가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 큰 원동력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그것처럼 너한테 행복이면서 쾌락이고 동시에 고통이고 갈증인 그런 게 있을까? 


S: 저는 삶 자체 (웃음).


Y: 엄청난데 (웃음). 


S: (웃음) 삶은 진짜 행복도 있고 고통도 있고... 공부도 그랬던 것 같아요. 재밌지 않았어요, 한 번도. 재밌어서 하진 않았고 그냥 해야 되고 해야 된다는 것에 동의가 되니까 했는데 또 뭔가 배움에 있어서는, 성장에 있어서는 기쁨이 있었던 것 같아요. 내가 실력이 조금씩 늘거나 성적이 잘 나오거나 하면 그 기쁨은 있었고, 그게 일에 있어서도 비슷하지 않나 싶어요. 근데 회사보다 학교에서 더 극대화됐던 것 같아요. 왜냐하면 학교는 어떻게 보면 나만의 싸움이잖아요. 고통도 혼자 겪지만 그 열매도 온전히 나의 열매잖아요. 근데 회사는 그에 비해서 너무 내가 컨트롤할 수 없는 게 많아요. 내가 어쩔 수 없는 것들이 많아지니까 고통이나 기쁨도 그만큼 적은 것 같아요. 특히 대부분의 사람들이 성장하고 싶어 하지 않는 조직이라면... 언니는요? 


Y: 나도 일을 생각했어. 뭔가 일이라는 게 참 재밌으면서 되게 힘들고, 고통이 있으면서 또 성취감도 있고, 돈도 벌면서 건강도 잃고 양날의 검 같은... 스트레스는 많아지지만 또 연차가 쌓이면 경력이 되고 그런 여러 가지 복합적인 의미가 있지. 


그리고 또 생각해 보면 종교적인 믿음도 그런 거 아닐까? 삶의 목적, 삶의 이유라는 명목으로 쫓아가지만 사실상 그것 때문에 괴로울 때도 있어. 좁은 길을 선택해야 하는... 그 좁은 길 안에서 억울할 때도 있고... 그 믿음이 결코 편안함과 행복만 있는 것은 아닌 거지. 여러 가지 다채로운 게 있어. 


[SKIP]


S: 책에 옛날 신화가 나왔는데

"'그 진실을 알려면 또 골방에서 나와야 해. 필록테테스가 그때 뱀에 물려 무인도에만 있었다고 가정해보게. 전쟁에서 이기는 승리의 참 의미를 알았겠나? 그 스스로의 전쟁에서 이길 수 있었겠어? 상징적인 자기 인생의 전쟁에서 말일세. 영원히 못 이기는 거야. 그런데 결국 광장으로, 트로이 전쟁터로 나갔잖아. 상처와 활이 하나가 됐을 때는, 아무도 끝내지 못했던 그 전쟁을 끝낼 수 있는 거야. 인생을 해결할 수 있는 거라네.'" 

결국 전쟁터로 나와 상처와 활이 하나가 됐을 때 드디어 그 전쟁을 끝낼 수 있다... 이렇게 적어놨네요, 내가 끝내야 하는 나의 전쟁은? 나의 상처이자 활인 것은? 


근데 이것도 아까 얘기랑 똑같은 것 같아요. 아까 행복과 고통이 양면인 것처럼 상처랑 활도 진짜 같은 것에서 나오는 것 같아요. 너무 힘들었지만, 너무 힘든 시간이나 힘든 여정이었지만 나중에는 그 덕분이었다고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요?


Y: 뭐가 있을까... 시간이 지나면 모든 것에서 다 의미와 가치를 찾을 수 있을 것 같아. 한참, 한참이 지나면. 근데 그것도 있어. 한참이 지나서 어떤 일에 대해 의미와 뜻, 목적 이런 걸 안다 해도 그 당시 나의 아픔에 대해 과소평가하는 것에 대한 억울함은 있어. 그때 난 정말 힘들었는데 나중에 시간이 지나서 그래도 모두 은혜였다라고 말하면 내가 겪었던 아픔에 대해 너무 간략하게 치부하는 느낌... 


그래서 나는 그렇게 얘기하고 싶지 않은 것도 있어. 그때 나는 정말 힘들었는데, 나중에 나한테 좋은 일이었고 모두 이해가 된다고 했을 때 그러기엔 그때 내가 너무 힘들었는데... 그때 힘들었던 나를 누가 공감해주고, 나라도 그때 나를, 그때 나를 좀 기억해 주고 싶은 마음이 있어. 나는 그래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은혜였다는 말이 어려운 것 같아. 나도 그렇게 얘기를 하고 싶어. 그런데 그렇게 얘기하는 순간 너무 가벼워지는 느낌이랄까... 그걸 듣는 사람은 이제 괜찮구나, 지금은 살만한가 보다 이렇게 생각을 하면 나의 이야기는 하나의 지나가는 이야기로 끝나니까... 나라도 나를 좀 헤아려주고 싶은 마음이 있어.


S: 나는 또 그런 것도 있어요. 예전에 힘들었던 기억을 얘기할 때 나는 이제 다 지나갔고 괜찮아졌다고 생각했는데, 너무 힘들었던 그 기억은 흐릿해졌을 수도 있는데 얘기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날 때. 그렇게 몸이 기억하고 반응하기도 하더라고요. 그 얘기를 꺼낼 수 있는 단계가 되더라도 내 몸은 그걸 되게 다르게 기억하고 있을 수도 있고... 


그래도 같은 무언가가 기쁨도 고통도, 상처도 활도 된다는 건 맞는 것 같아요. 나를 되게 힘들게 했던 것으로부터 오는 힘이 있다는 생각 해요. 나를 굉장히 괴롭혔던 무언가로 인해 내 안에 단단해지고 강해지는 그런 게 있는 것 같아요. 


Y: 맞아, 책에도 나왔을 거야. 내가 제일 고통받고 몰아치듯이 나의 한계에 다 달았을 때 비로소 뭔가 자아를 찾게 된다는 것. 진짜 내 모습을 알게 되고, 진짜 내가 누군지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기회가 생기는 게 내가 정말 속수무책일 때, 상처랑 활이 하나가 됐을 때 - 


S: 그때 전쟁을 끝낼 수 있다는 게 맞는 말인 것 같아요. 상처가 나의 활이 될 만큼 그 기억으로부터 자유함도 있고, 성장도 있고, 그제서야 비로소 그 전쟁을 끝낼 수 있다. 결국 상처를 갈고닦아서 무기로 만들 수 있을 때에서야... 


Y: 내가 끝내야 하는 나의 전쟁은 너무 많은 것 같아. 가족도 그렇고, 힘든 그런 상황들을 마주하면 되게 괴롭고 힘들고 지치는데 결론은 마주해야 돼. 지치고 힘들고 괴로운 것 안에 수도 없이 계속 마주해야 내성이 생기는 거야. 그리고 그걸 마주해야지만 꼬여진 실타래도 풀 수 있고, 마주하지 않고서는 꼬여진 실타래 자체를 아예 방치하는 거니 풀고자 한다면 결국 마주하고, 마주한다면 내가 살아가는 삶에 있어 제일 큰 지원군이 되는 거지.


너는? 너는 어떤 전쟁을 끝내야 해? 


S: 뭔가 요즘 생각에는... 예전에는 A라고 생각했는데 요즘에는 어느 정도 심리적으로 극복이 돼서 그런 건지 아니면 이제 좀 더 상황이 객관적으로 보이는 건진 몰라도 그게 본질적인 문제가 아니었다는 생각은 들어요. 어쩌면 내가 끝내야 하는 나의 전쟁은, 예를 들어 자기 연민이었을 수 있고, 아니면 열등감이었을 수도 있고... 뭔가 좀 더 본질적인 내 안에 갈등이 있지 않았나 싶더라고요. 딱 무어라 규정할 수 없는 되게 다양한 감정이 섞여 있었던 것 같아요. 


끝내기가 어렵죠. 그리고 나도 우리 가족에 있어서 예전에는 되게 명확한 악당이 있고 그 사람이 문제고 그 사람을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요즘에는 처음으로 생각이 많이 바뀌었어요. 각자가 상처를 주는 게 보이기 시작하니 가족 내에서의 전쟁도 양상이 바뀌는 것 같아요. 그러니 좀 혼란스럽기도 하고 마주하기 어려운 것도 있고. 


[SKIP]


"'가족도 마찬가지야. 집안에 깡패 같은 놈이 하나 있고 탕자 같은 놈이 하나 있어야 정이 두터워지지. 전부 모범생만 있으면 효자도 안 나와. 전부 효자인데 무슨 효자야. 불효자가 있으니 효자도 있는 거지.'

상처와 활이 함께 있는 것, 그게 인간의 모습이고 가족의 모습이고 나라의 모습이라고 그는 피를 토하듯 말을 토했다." 

언니가 생각하기에 이상적인 가족은 어떤 모습이에요? 이상적인 가족은 무엇일까요? 


Y: 이어령 선생님의 말을 인용해 숟가락을 얹어보자면 (웃음), 깡패가 깡패인 모습 그대로 있을 수 있는 곳? 깡패가 깡패가 아닌 척할 수도 있잖아 밖에서는. 나 깡패예요 하고 다니는 사람이, 나 도둑놈이에요 하고 다니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 그런 것처럼 가족은 그냥 그 모습 그대로 있어도 되는 곳이지 않을까... 뭐가 됐든지 간에 그렇게 있어도, 어쨌든 가족이 잘못해도 잘못한 걸 가지고 용서를 구할 수도 있고 잘한 것은 내 일처럼 함께 기뻐할 수 있는 것... 뭔가 그 꾸밈없이 있는 모습 그대로 허용될 수 있는 곳이 제일 이상적인 가족일 것 같아. 


S: 저도 비슷하게, 저는 아프거나 문제가 있거나 정상이 아닌 걸 알면서도 품을 수 있는 공동체... 이상적인 가족은 그럴 것 같아요. 가장 좋은 걸 고르는 게 아니라, 오히려 아픈 사람한테 더 마음이 가고 아픈 걸 알면서도 데려올 수 있는. 


Y: 나는 또 어쩌면 이상적인 가족을 만들고 싶어서 거짓말을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어. 나의 모습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고 싶지만, 또 있는 모습 그대로가 괜히 불화의 원인이 될까 싶어 애써 어느 정도는 선한 거짓말을 하는 거지. 있는 모습 그대로이고 싶지만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부담을 주고 싶진 않은, <아버지에 갔었어>처럼 가족한테 말하지 말고 모르는 척하라는 그런 맥락... 


S: 또 이론적으로는 그래야 하는데 실제로는 가족이 가장 이상적인 공동체가 아닐 수도 있는 것 같아요. 여기서만큼은 아픈 모습을 편하게 보여도 돼야 하는데, 상대의 그 아픈 모습을 내가 받아들일 준비가 안되어 있을 때도 있고 혹은 언니 말처럼 아픈데 아프다고 말하지 못할 때도 있고 여러 가지 다양한 형태로 그냥 가족이라는 것 자체가 애초에 이상적일 수 없을 수도 있나 봐요. 


Y: 오히려 그냥 정말 사랑하는 사람과 단둘이 1대 1의 관계라면 가능할 수도 있을 것 같아. 내가 신뢰하고 나의 어떤 모습이든 간에 나를 허용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친구일 수도 있고 연인일 수도 있고, 오히려 그러면 그 1대 1의 관계 안에서는 가능할 수도 있을 것 같아. 그리고 가족 안에서도 나랑 엄마의 관계와 동생과 엄마의 관계 등 각각의 관계가 다 다르니까, 구성원이 하나둘씩 붙을수록 더 복잡해지지. 


[SKIP]


S: 책에서

"'어느 조직이든 이쪽과 저쪽의 사이를 좋게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조직은 망하지 않아. 개발부와 영업부, 두 부서를 오가며 서로의 요구와 불만을 살살 풀어주며 다리 놓는 사람, 그 사람이 인재고 리더야. 리더라면 그런 '사잇꾼'이 되어야 하네. 큰소리치고 이간질하는 '사기꾼'이 아니라 여기저기 오가며 함께 뛰는 '사잇꾼'이 돼야 해.'" 

언니는 회사에 이런 사람이 있어요?


Y: 어, 우리 팀에 있는 사원분. 내가 지금까지 만난 회사 사람 중에, 일로 엮인 공동체 안에서 만난 사람 중에 제일 괜찮은 사람인 것 같아. 업무 능력도 탁월하고 뭔가 사람의 본성도 친절해. 우리 팀이 3명이잖아. 나랑 과장님 사이에 그분이 있는데 그 사잇꾼 역할도 되게 잘해. 나랑 과장님은 성향이 되게 다르고 일하는 스타일도 다르거든. 근데 그 안에서 예를 들어 누구한테 치우칠 수도 있고 나보다 과장님이 더 높으시니까 그분한테 더 맞출 수도 있고 한데 양쪽이 서운하지 않게 중간에서 역할을 잘해. 그래서 만약 내가 이곳을 떠나게 된다면 그 사람이 나를 대체하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거 같아. 나는 그분을 차기 리더로 생각할 만큼 그분은 내가 정말 신뢰하는 사람이니까. 그리고 그 신뢰가 쌓일 수 있었던 근거는 그분의 역할이거든. 너는? 너네 회사에는 있어?


S: 우린 없어. 망했어 (웃음). 


Y: (웃음) 아니면 다른 회사에서는 있었던 적이 있어? 다른 회사나 다른 공동체? 아, 희원이 네가 사잇꾼이었어 우리 셀에서. 


S: 그러기엔 너무 한 게 없어요 (웃음).


Y: 아니야. 뭔가 나와 셀원들의 사이에서 그 중간 역할을 정말 탁월하게 했어. 너의 존재가 모든 걸 했어.


S: 근데 이렇게 인재를 정의해 주시니까 관점이 새로워졌어요. 그리고 인재의 다양한 덕목 중 좌와 우를 잘 조율할 수 있는, 지혜롭게 다리를 놓아줄 수 있는 게 중요하다는 걸 다시 한번 깨달았어요. 


Y: 그래서 진짜 좋은 인재는 영역에 상관없이 그 능력이 발휘되는 것 같아. 내 분야가 아니어도, 그 사람이 사회에 있든 교회에 있든 가정에 있든 막내의 자리에 있든 리더의 자리에 있든지 간에 그 탁월함은 빛을 발하는 거 같아. 


S: 엄청난 말이네요. 우리가 항상 그 사람일 수 있는 거죠. 그러니까 내가 아직 리더가 아니라고 가만히 있기보다, 내가 오늘 나의 현재의 위치와 자리에서도 그 역할을 할 수 있는 거죠. 


언니가 나중에 그 사원분보다 먼저 퇴사하게 되면, 마지막에 인사할 때 당신이 있기 때문에 이 조직은 망하지 않을 거라고 말해주고 가요. 


Y: 오! 꼭 그 말을 해줄게. 


S: 나는 책을 읽으면서 제일 슬펐던 것 중에, 왜 이 책에 방금 말한 '사잇꾼'처럼 새롭게 정의하는 것들이 있잖아요. 그런 맥락에서 이어령 선생님이 가장 슬픈 것은 

"'지금도 보면 눈물이 핑 도는 것은 죽음이나 슬픔이 아니라'
'네'
'그때 그 말을 못 한 거야.'" 
"'딸을 먼저 저 세상으로 보내고 나니 가장 아쉬운 게 뭔 줄 아나? '살아 있을 때 그 말을 해줄걸'이야.
그때 미안하다고 할걸, 그때 고맙다고 할걸... 지금도 보면 눈물이 핑 도는 것은 죽음이나 슬픔이 아니라네. 그때 그 말을 못 한 거야. 그 생각을 하면 눈물이 흘러.'"

인생의 가장 큰 후회 혹은 아쉬움이 선생님의 나이에서 돌아봤을 때 하지 못한 말이라면... 언니도 하고 싶은데 하지 못한 말이 많겠죠? 


Y: 그렇지. 그 부분을 읽으면서 미안하다는 말을 꼭 할 걸이라는 생각이 들었던 게, 내가 주말마다 가서 반주하는 걸 되게 싫어했다고 했잖아. 사실 별거 아니었거든. 근데 그걸 내가 너무 귀찮아하고 생색내듯이 했던 것에 대해 미안하다고 말하고 싶어. 오늘은 얘가 할 수 있으려나 아빠가 내 눈치를 보셨어. 근데 내가 그걸 미안해하는지는 모르셨을 거야. 사실은 내가 안 하고 싶어서 안 한 게 아니라 내가 못하기 때문에 안 하려고 했던 거야, 내가 잘 못 쳐서. 근데 아빠는 그냥 내가 잘 치든 못 치든 간에 쳐주길 바랬는데, 함께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좋았던 것 같아.


S: 근데 살면 살수록 그런 오해가 쌓였던 우리들의 시간이 많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때 그랬구나, 그때 아빠가 그런 의도로 했던 행동이구나 이런 부분들을 살면서 더 많이 깨닫겠죠. 


Y: 응, 그리고 살면서 그때 그 말을 못 했다는 걸 더 절실히 깨달으면 그게 참 슬플 것 같아. 시간이 지날수록 더 깨달아 간다면...


S: 근데 그러면 지금 하고 싶은데 못 한 말도 있어요? 오늘 내가 아직 할 수 있어, 아직 나도 그도 살아있는데 전하지 못한 말. 


Y: 엄마. 그냥, 엄마가 되게 힘들고 어려울 것 같은데 그걸 내가 충분히 공감해주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 엄마의 마음을 헤아리는 말을 못 하고 있어. 하고 싶은데 타이밍도 어렵고, 아직 그런 말을 하기에는 너무 우리의 마음이 여린 것 같아. 그냥 그 얘기를 하는 순간 터질 것 같아. 아직 마음의 준비가 안 됐어. 너는? 


S: 일차적으로 우리가 그때 유서에 다 써놨기 때문에 좀 안심이 되고... 많아요. 보통 어떤 말을 하고 싶은데 그 말을 못 하는 이유는 내가 그 말을 안 해야 더 득이 된다고 생각해서 못하는 것 같아요. 그게 그 사람한테 혹여라도 상처가 되거나 혹은 이 관계가 어색해질까 봐, 혹은 자존심이 상할까 봐 뭔가 그러한 많은 것을 계산해 봤을 때 이 말을 하지 않는 게 더 득이라는 생각이 들면 목까지 차올랐다가 다시 삼켜버리고 마음도 묻어두게 되는데, 근데 만약에 우리가 오늘 자정에 다 죽는다면 또 전화해서 갑자기 그 말을 하고 싶을 수도 있잖아요. 왜 계산이 달라질까요?


Y: 음,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땐 더 이상 자존심이고 껄끄러움이고 미래의 일이고 중요하지 않으니까... 결국엔 그 말을 못 하는 게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상대방을 위해서인데, 죽음 앞에서는 나를 위해, 나의 아쉬움이 커져버리니 필사적으로 하는 거지. 


S: 되게 명확한데? 진짜 명확하다. 이제까지는 상대를 위해서였는데 마지막에는 나를 위해서라니. 


Y: 내가 나에게 해줄 수 있는 마지막 선물, 그런 거 아닐까? 


S: 되게 명확하다. 그 생각이 맞을 것 같아요. 


Y: 내가 나 스스로에게 주는 장미꽃 같은데... 그래서 어떻게 보면 이어령 선생님이 이 책에 전반적으로 말씀하신 지금을 기억하라는 게 결국엔 너의 삶을 살아라는 이야기 아닐까? 자신의 삶을 잘 지켜오신 순수한 어린이 같아, 그래서 더 외로우셨고... 더 진중하고 공부할 수밖에 없는 상황 속에서 본인의 낙, 기쁨, 행복을 찾으신 거겠지. 그러니 이제 남겨진 자들에게 해줄 수 있는 진솔한 이야기도 결국 너의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는 거고. 김지수 기자에게도 늘 강조하시는 게 이 글을 쓰는 것도 결국엔 너에게 달려있다잖아. 네가 이제 마침표를 찍어야 하는 너의 순서다, 너의 무대다 이런 느낌이야. 


S: 선생님이 항상 책에서 자기는 3월이면 이 세상 사람이 아닐 거라고 그러셨는데 이제 곧 3월이잖아요... 정말 이별이 오는 건가 싶어 마음이 무거워요. 

선생님이 마지막에 그러셨어요. 

"'젊은이들에게 전하고픈 말이 있는지요?'
'딱 한 가지야. 덮어놓고 살지 마세요... 부디 덮어놓고 살지 마세요.'" 

우리는 덮어놓고 살잖아요, 때로는 죽을 때까지. 되게 무던하게 덮고 완벽하진 않겠지만 잊고 살아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덮었는데 계속 생각나서 괴로운 사람도 있을 것이고, 모두를 위해 덮었는데 아무도 좋을 게 없는 희한한 덮음이 될 때도 있을 것이고, 모두를 위해 덮었는데 모두가 왜 덮었냐고 되려 물어보는 덮음도 있을 것이고... 


[SKIP]


Y: 책 끝부분에서 어디였지, 숙명여대인가 성신여대인가 학교 앞에서 기다리던 여학생의 이야기가 있었잖아. 

"'눈감기 전에 꼭 보고 싶은 사람이 있다네.'

가슴이 두방망이질을 쳤다. 수화기 너머 목소리에 윤기가 돌았다. 오래전에 숙명여대에서 신입생을 위한 강연을 하고 내려오던 길이었다고 했다. 여학생 한 명이 발을 동동 구르며 주차장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추위에 얼굴이 파래져가지고, 나한테 꼭 할 말이 있다는 거야. 눈물이 그렁그렁해서 그러더군. '선생님, 돌아가시면 안 돼요!' 생뚱맞은 말에 나는 몹시 당황했네. 그래서 그만 차갑게 툭 던지고 말았지. '학생! 그게 뭔 소린가? 죽고 사는 문제를 어떻게 내 맘대로 하나?'

그 여학생은 손등으로 눈물을 훔치면서 슬퍼하며 돌아갔네. '선생님, 그래도 돌아가시면 안돼요...' 하면서. 얼마 전에 그날의 일들이 떠올랐어. 그 아이는 아마 내 책을 읽고 나를 좋아하게 됐겠지. 그런데 한 존재에 깊이 의지하면 '이 사람이 이 세계에서 사라지면 어쩌나' 더럭 겁이 나거든. 어렸을 때 엄마와 애착이 심해지면 치맛자락 붙잡고 그러잖아. '엄마, 나 두고 죽으면 안 돼.'

그때 어머니가 뭐라고 그래? '엄마 안 죽어. 너 두고 절대 안 죽어.' 그러면 마음이 풀리고 안심이 되지. 아무리 어린애라도 죽는다는 걸 왜 몰라. 그런데 엄마가 '너 두고 절대 안 죽는다' 그러면 그 순간 우리에게 죽음이란 없는 거야. 우리가 죽음을 이기는 거라네.'

선생님은 오래전에 스무 살이었던 그 여학생을 다시 만나 이야기해주고 싶다고 했다. 그때 그렇게 매정하게 떠나는 게 아니었다고. 30분 넘게 추위에 덜덜 떨며 당신을 기다리던 그 아이에게 이 말을 했어야 했다고.

'걱정하지 마. 나 절대로 안 죽어.' 

스승은 환희에 차서 말을 이었다. 

'어머니가 내게 해줬던 것처럼 '걱정 마. 나 절대로 안 죽는다' 그러면 그 아이는 얼었던 두 손을 비비며 너무 기뻐하겠지. 그 순간 주차장의 자동차들은 팡파르처럼 경적을 울릴 거야. 죽음을 이긴 승리의 트럼펫이 울리는 거야. 그러면 그 춥고 멋없는 콘크리트 차고는 초원으로 변하고 꽃들이 사방에서 피어나겠지.'

만개한 꽃을 바라보듯 그가 웃으며 독백처럼 말을 마쳤을 때, 내 두 뺨 위로 눈물이 흘러내렸다. 책상 앞 통유리 너머로 6월의 장미꽃 몇 송이가 바람에 산들거렸다. 마지막까지 스승이었던 분, '내가 영화감독이라면 엔드 마크 대신 장미꽃 한 송이를 올려놓겠다'던 그의 말이 그렇게 실현되었다.

'나 절대로 안 죽어'"


나는 지금까지 존경과 위엄과 되게 크게 느껴졌던 어른의 모습에서 그 이야기 하나에 되게, 뭐라 해야 되지... 갑자기 엄청 인간적으로 선생님이 확 와닿았다고 해야 되나. 왜 이렇게 다들 선생님을 좋아하고 그분을 찾아갈까 했던 게 결국 이런 부분이 아니었을까? 그렇게 대단하신 선생님이지만 결국에는 되게 인간적이시고 겸손하신 분이셔서. 내가 우여곡절 다 겪고 뼈저리게 깨달은 지혜인데 그냥 한마디로 너희들이 뭘 알겠어 이렇게 생각하실 수도 있는데, 진짜 마지막까지 우리에게 뭔가 남겨주고 싶어 하시는 정말 대한민국의 큰 어른인 거 같아.




그러고 선생님은 2022년 2월 26일 토요일에

3월이면 없을 거라는 본인의 말처럼

영원한 목적지로 정말 여행을 떠나셨다.


[EXTRA]


"'그런데 누구도 보들레르의 인생을 가지려고 하지 않아. 술주정뱅이에 아편쟁이의 삶을 살았으니까. 무슨 말인 줄 아나? 보들레르의 시를 가지려면 그의 상처도 같이 가져야 하는 거라네.'"
"'상처 때문에 버려졌지만 상처를 가진 자가 활도 가지고 있는 거라네.'"


"'악, 퇴폐, 질병... 이런 것까지도 포용할 수 있는 사회가 진짜 건강한 사회야. 술주정뱅이, 거지 이런 낙오자들을 싹쓸이해서 가둬버린 무균 사회는 희망이 없어... <마농 레스코>라는 소설에도 나오지만 유럽에서 창녀, 깡패, 죄수들을 전부 배에 태워 미국으로 쓸어 보내잖아. 그렇게 해서 남은 사람들로 살아가면 그게 건전한 사회인가? 아니라네. 반면 미국은 그런 쓰레기 취급받던 인간들이 함께 모여 성장해간 거야. 상처와 활을 동시에 가졌기 때문에 구대륙이 아닌 신대륙에서 새로운 종교, 정치, 문화가 끓어오를 수 있었던 거야... 그 '엉망진창'이 어마어마한 힘이라네.'" 


"'알다시피 대장장이가 두드릴수록 강철은 더욱 강해진다네. 보리밭은 밟힐수록 더욱 영글어지지. 인간의 모든 이야기는 결국 고통의 이야기야.'"


"'고난 앞에서 네거티브로 가면 인간은 짐승보다 더 나빠져. 포지티브로 가면 초인이 되는 거야. 인간이 저렇게 위대해질 수도 있구나.'" 


"'그게 기독교야. 기독교는 하나님이 끝없이 인간을 용서하는 종교일세. 하나님만이 인간을 용서할 수 있어... 누가 인간을 용서할 수 있나. 다 용서받은 사람인데.'"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한 축복을 떠올려보게나. 끝없이 어린아이를 낳아서 지상을 무엇으로 덮으라고 했나? 생명으로 덮으라고 했어. 눈물 나는 이야기야. 모든 게 죽어가고 사그러드는데, 이 지구를 초록색으로 덮듯 생명으로 가득 덮으라고 했네. 생육하고 번성하라... 생명, 살아있는 것, 그게 이 세상이라네. 눈물 나는 세상이라네.'"


"불현듯 '별들의 오해'라는 말을 썼다. 우리는 몇십만 광년 걸려 지구에 도달한 별빛을 보고 있지만, 이미 그 별은 사라진 별일 거라고. 너와 나 사이에 있는 사람, 믿음, 마음... 그 마음을 내가 느꼈을 법한 순간에 이미 네 마음은 그보다 먼 데 가버리고 없는지도 모른다고. 너와 나라는 별은, 이미 마음이 지나간 길, 식어버린 빛 그림자를 바라보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어머니는 절대로 내 기억 속에서 돌아가시는 법이 없었어.'" 
"'소아마비에 걸리면 다리가 더 이상 자라지 않아. 나는 소아마비에 걸린 아이처럼 어머니를 여읜 열 몇살에 그 감정이 멈춰버렸네. 지금도 어머니를 꿈에서 만나면 그냥 말없이 울어버리지. 보고 싶은 사람을 만나면 할 이야기가 없어.'" 


"'내 마음의 빅뱅을 그 누가 알겠어요? 한 소녀가 '이 남자와 헤어질까요?'라고 물으면 아인슈타인이 뭐라고 할까? 그는 물리적 상대성 이론의 대가지만,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몰라요. 각자의 마음은, 두뇌는 지구에서 하나예요. 기술로 찍어낸 벽돌이 아니거든. 내 몸의 지문도 마음의 지문도 세상에 하나뿐이지. 하나님의 유일한 도장이야. 내 마음의 지문에는 신의 지문이 남아 있어요.'" 


"'87년간 행복한 선물을 참 많이 받으셨지요?'
'그랬죠. 산소도, 바다도, 별도, 꽃도... 공짜로 받아 큰 부를 누렸지요. 요즘엔 생일 케이크가 왜 그리 예뻐 보이는지 몰라. 그걸 사 가는 사람은 다 아름답게 보여 (웃음). '초 열 개 주세요.' '좋은 거로 주세요.' 그 순간이 얼마나 고귀해.'"


"'끝이란 없어요. 이어서 또 다른 영화를 트는 극장이 있을 뿐이지요 (웃음).'" 


"'[민아(딸)가] 그 어렵다는 법대를 조기 졸업하고 외롭게 애 키울 때, 그날 그 바닷가에서처럼 '아버지!'하고 목이 쉬도록 울 때, 그때 나의 대역을 누군가 해줬어요. 그분이 하나님이야. 내가 못 해준 걸 신이 해줬으니 내가 갚아야겠다. 이혼하고도 편지 한 장 안 쓰던 쿨한 애가, '아빠가 예수님 믿는 게 소원'이라면 내가 믿어볼 만하겠다. 그렇게 시작했어요. 딸이 실명의 위기에서 눈을 떴을 때 내 눈도 함께 밝아진 거지. 딸이 아버지를 따라가야 하는데 아버지가 딸의 뒤를 쫓고 있어요(웃음).'" 


"선생님이 안 계신 세상이라니요,
눈앞이 캄캄해지고
저는 믿어지지가 않습니다
해와 달이 저렇게 있는데
선생님만 안 계시다니요
우리의 그리움이 이렇게 큰데
선생님이 안 계실 리가 없어요
저기 저 하늘, 저기 저 바다, 저기 저 꿈틀대는 봄의 대지에
지구의 자전과 공전 속에 가득한 존재,
“나는 사랑한다 하늘만큼 땅만큼” 그런 목소리가 들려와요
이제 곧 봄의 전령사 수선화가 피겠지요
수선화가 피면 선생님의 소식으로 알겠습니다
부디 하늘나라에서 평안하소서!"
- 김승희 시인, 서강대 국문과 명예교수 



커버 사진

"Summertime sadness" https://unsplash.com/photos/FLigbWjCZz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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