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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요일은 쉽니다 Mar 29. 2022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히가시노 게이고

지금 선택한 길이 올바른 것인지 누군가에게 간절히 묻고 싶을 때가 있다


모임, 스물두 번째

220325, 3월의 산을 넘고 비 오는 날 망원에서

※가공되지 않은 raw data 그대로입니다



[대화 시작]


Y: 너에게 어떤 책이었어? 


S: 저는 그때 얘기한 것처럼 이 분의 다른 책(<녹나무의 파수꾼>)을 처음 읽고 팬이 됐어요. 다른 책들도 스타일은 비슷한데 보통 미스터리, 추리 소설이 많고 이건 좀 따뜻한 이야기예요. 아마 <나미야 잡화점>이 이분의 베스트셀러일 거예요. 근데 이 분 책은 살인 사건을 다룬다고 해도 섬뜩하고 무서운 게 아니라 재밌어요. 그래서 저한테는 굉장히 재밌게 읽을 수 있고, 편하게 읽을 수 있고, 퇴근하고 읽고 싶은 책이자 작가? <녹나무>를 할까 <나미야>를 할까 고민했는데,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건 <녹나무>지만 이게 조금 더 마법 같은 설정이니까 이걸 뽑았어요. 언니는 어땠어요?


Y: 나도 굉장히 사람 냄새나는 책이었어. 이 사람이 일본 작가이지만 일본 작가라고 안 느껴질 정도로 그냥 그냥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인데 그 개개인의 삶에서 어떤 히스토리가 있는지, 그리고 무엇보다 이 편지를 통해 사람들의 삶의 풍성함을 엿볼 수 있는 이야기들이 많았던 거 같아. 나는 집에 내려가는 길에 기차에서 주로 읽었거든. 그럴 때마다 내려야 되는데 그다음 내용이 너무 궁금한 거야! 

S: 맞아요 (웃음). 그런 느낌이 있죠. 저는 이 분 책은 읽기 시작하면 그냥 새벽까지 쭉 읽게 되는 유일한 작가예요. 제가 첫 번째 질문을 시작할게요. 첫 번째 상담자가 달토끼였는데, 이건 근데 참 어려운 질문 - 


Y: 우리는 스타트를 왜 이렇게 어렵게 하는가 (웃음).


S: (웃음) 언니가 달토끼라면 올림픽 훈련에 매진하겠어요 아니면 사랑하는 사람의 곁을 지키겠어요? 


Y: 음... 나도 달토끼랑 비슷할 것 같아. 곁에 있고 싶어. 나도 머리로는 되게 곁에 있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그쪽으로 기울 것 같은데, 사실상 상대방도 그럴 것 같고 뭔가 나의 삶을 더 성실히 사는 걸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라고 생각하지 않을까? 지금까지 내 삶에서의 선택들도 보면 비슷해. 머리로든 마음으로든 늘 하는 고민이 당장 뭔가 결단하고 행동을 취하는 게 맞다고 생각하는데, 막상 쉽게 하지 못하는 것 같아. 

예전에 그런 이야기를 들었어. 방송국에서 일하는 분인데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거야. 할아버지도 방송국 출신이셨는데, 할아버지도 방송을 한 번도 펑크 내지 않으셨으니 너도 할아버지 빈소를 지키지 말고 네가 할 수 있는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라고 친척 분이 말씀해주셨대. 그 사람이 그걸 듣고 수긍하게 되는 그런 스토리였는데, 그런 것처럼 나의 삶에서 내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나한테 그렇게 권유할 것 같고 나도 내가 만약에 아프다면 상대방한테 그렇게 부탁할 것 같아.


S: 언니가 아파도 그럴 것 같아요? 언니가 아플 때 그렇게 말하는 동기가 뭘 것 같아요? 미안해서?

Y: 모르겠어. 마지막까지 그 사람을 붙잡고 싶지 않아. 
죽을 때까지 바짓가랑이 붙잡으면서 애절하게 그러고 싶지 않아... 근데 여기서처럼 사실 상대방은 그걸로 더 괴로울 수도 있겠지. 나도 그냥 아빠랑 좀 비슷한 이별일 것 같아. 내가 그 입장이 된다면 아빠랑 비슷하게 남겨진 사람들한테 대단한 걸 바라지 않을 거고, 내 욕심일 것 같다는 생각도 들어. 너는?


S: 나는 내가 아프면 붙잡고 싶을 거 같지만 붙잡지 못할 것 같아요. 근데 그 이유는 그냥 온전히 미안해서... 미안해서지 솔직한 마음은 같이 있었으면 좋겠다 일거 같아요. 그리고 만약에 내가 몇 년 후에 죽는 병이면 그동안 옆에 있으면 서로 지칠 것 같긴 한데, 만약에 몇 달밖에 없다면 다 버리고 옆에 있을 거 같아요. 물론 또 그 나름대로의 후회가 남고 또 그 나름대로 힘들기도 하겠죠. 그래서 좀 같이 있을 수 있는 방법을 최대한으로 찾을 것 같아요. 이렇게 올림픽을 나가야 되면 안 되지만 집에서 근무할 수 있게 프리랜서로 뛴다거나 등 뭔가 방안을 찾으려 하지 않을까... 


이게 참 마음이 그랬던 게, 저는 시한부의 삶은 아니지만 A라는 리스크가 있잖아요. 우리 사촌 언니는 상황을 아니까 한번 그랬단 말이에요, 네 남편 될 사람은 무슨 죄냐고. 농담으로 말한 건데 되게 사실이기도 한 거예요. 나도 그 얘기를 듣고 '그래, 맞아' 싶기도 했고 나 때문에 다 힘든 것도 싫고 그런 생각들이 되게 지배적이었어요. 근데 이번 주에 그 일이 있었잖아요. 관련 영상을 보는데 노래 하나가 나오는 거예요. 가요 같은데 일단 노래가 좋아서 찾아보니 <행복을 주는 사람>이 나오는데 노래 가사가 "내가 가는 길이 험하고 멀지라도 그대 함께 간다면 좋겠네"인 거예요. 나는 그 가사가 너무 충격적이었어요. 되게 발상의 전환인 거예요. 내가 가는 길이 험하고 머니까 헤어지자가 아니라 같이 갔으면 좋겠다는 게 좀 신선했어요. 


Y: 얘기를 들으면서 생각난 건데 되게 유명한 결혼 비하인드 스토리 중에 하나가 유희열인가? 그분이 결혼할 와이프를 되게 사랑하고 이제 결혼해서 행복한 삶을 살면 좋겠는데 사실 그게 말처럼 쉽지 않을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래서 미안하다 이런 이야기를 했는데 그 와이프 되실 분이 나는 오빠가 내가 힘든 시기에도 같이 할 수 있는 사람이라서 당신이랑 결혼을 결심하게 됐다고 하셨대. 정확한지 한번 찾아봐야 될 것 같은데 그런 맥락이었어. 사실 나는 지금도 그런 생각을 하거든. 지금까지도 내가 결코 쉽지 않았던 순간들이 많았는데 앞으로 살면서 그게 더 많고 뭔가 정말 환장하겠다 싶을 정도의 순간들도 있을 수 있겠구나. 그런 걸 내가 혼자 부딪힐 때랑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부딪힐 때는 다르겠다. 그게 오빠면 진짜 좋겠다는 생각이 들고 그래서 그 얘기가 되게 와닿았던 것 같아. 


S: 아까 질문이랑 연결되는데 아마 달토끼 남자친구가 이야기했을 거예요. 

"사랑하는 사람이 나 때문에 꿈을 포기하는 것은 죽는 것보다 더 힘든 일이다."

여기에 같이 적어놨네요. 그렇다면 부모의 사랑은 어떠한가? 부모님은, 특히 엄마는 자식을 위해 꿈을 포기하는 경우가 많잖아요.


Y: 근데 뭔가 부모님은 다른 거 같아. 부모님은 내가 뭔가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 이미 그렇게 하기를 결정하고 나를 품은 느낌이니까. 그에 비해 달토끼는 꿈을 선택할지 사랑을 선택할지 결정 앞에 놓여있는 거고. 그러니 부모님에 대해서는 내가 뭔가 할 수는 없는 거지. 근데 또 우리는 몰라, 부모님이 나를 위해 꿈을 포기했다는 사실을. 그냥 너무 당연한 거고 엄마는 주는 사람인 거고... 


S: 맞아요. 내가 크면서 꿈과 사랑이라는 것에 대해 깨달으면서 아, 엄마가 나를 위해 꿈을 포기했구나를 깨닫는 것 같아요. 요즘 엄마의 하루는 진짜 하루 세 끼 밥을 하면 끝난다는 걸 많이 느꼈어요. 그날의 메뉴를 선택하고 고민하는 게 중요하지 않은 일은 아닌데 그렇다고 누가 인정해 주는 일도 아니고... 보면서 좀 마음이 좋지는 않았어요. 


[SKIP]


Y: 아마 두 번째 편지의 주인공이 생선가게 뮤지션이었을 텐데, 하고자 하는 꿈은 있으나 잘 풀리지 않은 상황이었고 쇠약해져 가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게 되는 아들이 현실적인 선택을 앞두고 있는 상황이었잖아. 너는 그 뮤지션의 입장이었다면 어땠을 것 같아? 


S: 저는 감사하게 그 뮤지션과 좀 다른 게 있다면 그 생선가게를 물려받는 것 안에서의 특별함도 찾았을 것 같아요. 하나는 내가 좋아하는 일이고 하나는 의무이자 책임인 일로 나뉘는 게 아니라, 이 의무이고 책임인 일 안에서도 내가 좋아하는 걸 찾을 수 있었을 거 같아요. 또 그만큼 좋아하는 일 안에서도 힘들거나 괴로운 것들이 있는 거고... 그렇게 결국 생선가게를 물려받았을 것 같아요. 그러니 솔직하게 따지고 보면 온전히 의무 때문에 받은 게 아니라, 한 90%는 책임감이었더라도 10% 정도는 나도 뭔가 그 안에 끌리는 게 있지 않았을까... 좋아하는 일과 해야 하는 일 혹은 열정과 책임 가운데서 고민하는 게 정말 클리셰인데 참 세월이 지나도 공감 가는 소재죠. 


Y: 뭔가 나는 표면적으로는 생선가게와 음악의 갈림길에서의 선택이었던 것 같은데, 결국은 아버님도 그렇고 아들도 그렇고 추구하는 가치가 되게 잘 맞은 것 같아. 예를 들어 아버님도 분명히 생선가게를 아들에게 물려주고 싶은 마음이 있었겠지만, 그러면 주위의 지적이라든지 사실 세상의 이야기를 그냥 수용하고 편하게 살라고 얘기할 수 있었겠지만 그런 걸 되게 지혜롭게 아버님도 걸러서 듣고 아들을 믿고 밀어준 거잖아. 

"'아버지는 네 꿈이 이루어졌으면 하는 거야... 그걸 아버지 쪽에서 방해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고 있어. 자기 몸 아픈 것 때문에 네가 꿈을 버리는 일은 절대로 있어서는 안 된다고 했어.'" 

아들도 내가 사랑하는 아버지가 아프고 현실적으로는 고향에 내려가서 일을 도와야 하는 게 아닌가 마음이 쓰이지만, 결국에는 아버지의 지지에 힘입어서 내 가치를 끝까지 선택한 것도 그 사람의 선택이고. 그 가치가 서로 잘 맞아떨어진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 


나도 그런 과정 중에 있는데, 나는 생선가게를 물려주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사람이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우리 아빠는 왜 생선가게를 했을까라는 생각이 든거지. 그 결정적인 터닝 포인트에서 이제 나도 그러면 우리 아빠가 하는 그 생선가게에 대해서 그냥 하지 말고 그걸 왜 해야 되는지 궁극적인 질문을 하고 진짜 제대로 해보자는 과정 중에 있는 건데, 그게 하루아침에 명확해지지 않으니까 그 시행착오 속에 있는 게 어쩌면 더 괴로운 거 같아. 예전에 그냥 당연히 물려받을 거라고 생각했던 상황이 오히려 더 쉬웠어. 근데 지금은 아닌 거지. 내가 안 받을 수도 있는 거고 받게 된다면 내가 왜 받아야 하는지에 대해 스스로 납득이 됐으면 좋겠어. 


S: 단계도 있는 것 같아요. 처음에는 당연히 그 길이 내 길이라 생각하다, 그다음에는 좀 본질적으로 그 길이 왜 내 길이지? 그 길은 무슨 길인 거지? 생각하다, 시간이 한참 지나서 다음 단계로 가면 그냥 아버지의 꿈이 나의 꿈이 되는 단계가 오는 것 같아요. 그건 마치 어느 날 갑자기 안 보던 신문을 보게 되고 안 먹던 나물반찬을 먹게 되는 것과 같은...


Y: 맞아.


S: 나이가 드는 거겠죠? 저는 또 재밌었던 것 중에, 아마 할아버지가 하신 말씀인 것 같은데

"'내가 몇 년째 상담 글을 읽으면서 깨달은 게 있어. 대부분의 경우, 상담자는 이미 답을 알아. 다만 상담을 통해 그 답이 옳다는 것을 확인하고 싶은 거야.'" 

언니는 언제 상담을 해요? 언제 고민을 얘기하는 것 같아요? 그리고 언니도 답을 아는데 답을 확인받고 싶은 게 대다수예요? 


Y: 그렇지. 아무래도 그런 취지가 있을 것 같아. 내가 받는 상담에 있어서 한 70%는 그런 뉘앙스인 것 같아.

이미 어느 정도 결정을 했고 내가 이 얘기를 함으로써 그 결정에 대한 지지를 얻고자 하는 게 한 70%인 것 같은데, 나머지 30%는 좀 객관적인 생각을 들어보고 싶은 것 같아. 내 선택이 틀릴 수도 있고 실패할 수도 있잖아. 그러니 감안해서 어느 정도 타인의 이야기를 듣고자 하는 생각도 있어. 


근데 상담을 떠나서 내가 만나는 사람들과의 만남 안에서도 난 그걸 되게 중요하게 여겨. 그러니까 내가 하는 이야기에 모든 사람들이 다 지지해 주면 좋겠지만, 오히려 뭔가 나와 생각이 반대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기도 해. 반대에 대해 그렇게 큰 반감을 느끼지 않거든. 


S: 언니는 언니의 마음에 답이 거의 정해져 있는데 상담을 들은 사람이 다른 답을 냈어요. 그래서 마음이 바뀐 경우도 있어요? 


Y: 음, 응 있어. 그래서 나는 타인이 나한테 미치는 영향이 되게 크다고 생각하거든. 귀가 얇은 걸 수도 있겠지. 근데 그래서 세상 사는 게 재밌는 거 같기도 해. 답이 있다면 모두 답대로 살았겠지. 그런데 답이 아닌 것들 때문에 우연이 생기는 거고 기회가 오는 거고 그런 거 아닐까? 그래서 세상에 다양한 스토리가 생기는 거 같아.


그리고 이 잡화점은 어떻게 보면 심리 상담 역할을 하고 있는 거잖아. 그런 면에서 편지를 쓰는 사람들이 건강할 수도 있어, 어딘가에 털어놓고자 하는 의지가 있으니... 여기 그런 내용이 있었거든. 할아버지가 나미야 잡화점에 편지를 보낸 사람들은 다 근본적으로 똑같은 마음이라고. 한 구석에 구멍이 휑하니 뚫렸고 거기서 중요한 뭔가가 쏟아져 나오는 거다. 그래서 뭐가 됐든지 간에 좋은 말이든 나쁜 말이든 엉터리 소리든 답장을 받으러 반드시 찾아온다는 거지. 그리고 그래서 인간의 마음속에서 나오는 소리는 어떤 것이든 절대로 무시해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셨어. 너도 완벽한 답장이나 해결은 아니더라도 뭔가 휑한 속을 채워줬던 그런 기억이 있어? 


S: 저도 비슷한 질문을 적었는 데 있어요. 대학교 3학년 때 그 해 학점을 어쩌다가 좀 많이 듣게 되었어요. 근데 많아서 힘드니까 이제 하나를 빼야겠다 해서 그 전 학기 교수님한테 가서 A랑 B랑 두 개를 듣고 있는데 이 중 하나만 들으려고 하니 무엇을 추천하시겠냐고 물어봤거든요. 근데 교수님이 A는 이래서 좋을 것 같고 B는 이래서 좋을 것 같다고 하시는 거예요. 그래서 내가 다시, 그래서 어떤 걸 들을까요? 하고 여쭤보니까 교수님이 "나는 네가 둘 다 할 수 있을 것 같다"라고 말씀을 해주셨어요.


그리고 그렇게 사무실을 나와서 그날 저녁 룸메이트한테 그 얘기를 해줬는데, 그러면 교수님이 네 질문에 답을 안 해주셨네라고 하더라고요. 근데 나는 내가 애초에 구하러 간 답보다 더 큰 선물을 해주신 느낌이었어요. 그래서 나도 어떻게 끝냈는지 모르겠는데 그냥 둘 다 들었어요. 그리고 그 학기에 성적도 제일 잘 나왔고. 그게 제 인생의 베스트 상담이었던 거 같아요. 정말 생각도 못한 답이었어요. 한 30분 좀 안돼게 이야기 나눴던 거 같은데, 그 30분으로 짧게는 나의 한 학기가 바뀌고 길게는 그 이후 제 인생이 바뀐 거죠. 뭔가 말의 힘을 생각하면 항상 제일 먼저 기억나는 사례예요. 


[SKIP]


S: 그것도 있었어요. 할아버지가 해주신 조언 중에,

"가족에 대한 나의 기본적인 생각은, 좋은 일로 잠시 헤어져야 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항상 함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싫어져서, 그만 지겨워져서, 라는 이유로 서로 뿔뿔이 헤어진다는 것은 가족의 참모습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언니는 이 생각에 동의해요? 가족을 지키기 위한 길이 내가 원하지 않은 길일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Y: 우리 집도 어렸을 때부터 가족은 같이 있어야 한다는 기조가 있었어. 예를 들어 내가 아무리 기숙사에 살고 있다 해도 주말에는 가족들이 모여서 같이 시간을 보냈어. 근데 어렸을 때는 그게 되게 싫었거든? 나는 친구들이랑 놀고 싶고 나가서 만나고 싶은데 엄마나 아빠가 제재를 해서 억울함이 엄청 많았어. 근데 나도 그렇게 살아서 그런지 그런 가치관이 있는 것 같긴 해. 같이 살아야 된다기보다는 가족을 우선시해야 된다는 그런 가치관. 가족이 건강해야 또 그 안에서 공급받는 것을 통해 영향력 있는 삶을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해서 중요한 거 같아. 


S: 할아버지가 너무 강하게 말씀하셔서 이걸 읽으면서 가족에 대한 가치관은 어떤 걸까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어떻게 보면 헤어지기 시작하면 가족의 의미도 좀 쇠퇴하는 것 같고, 그래서 어쩔 수 없이라도 이렇게 함께 있어야 거기서 오는 힘이 있는 것 같고. 결국 가정 안에서의 결핍은 그 사람의 성향에 영향을 끼치기도 하고, 또 아물지 않는 상처로 남기도하고... 


이건 좀 다른 질문. 나미야 잡화점에 사연을 보낸 사람들이 다 닉네임으로 보내잖아요. 언니의 현재를 닉네임으로 표현한다면 (웃음)?


Y: 아... 어려워 (웃음). 뭔가 나의 상황을 함축적으로 표현하는 닉네임이... 


S: K-장녀 (웃음). 


Y: (웃음) 나는 K-미혼. 


S: 아니 이건 여담이지만 스타벅스도 앱에도 닉네임을 설정하잖아요. 근데 한번 엄마가 주문을 하셨는데 나는 엄마의 닉네임을 몰랐어요. 근데 카운터에서 신입 오렌지님을 부르는 거예요. 그걸 듣더니 엄마가 나한테 픽업하러 가라고! 아니 근데 내가 일어서는 순간 진짜 근처에 있던 사람들이 다 빵 터졌단 말이에요 (웃음). 그래서 엄마한테 할 거면 오렌지 부장 정도는 하라고, 신입을 해놓고 나한테 가지러 가라고 그러면 (웃음)! 


또 그 질문도 적어놨어요. 왜 고민 편지에 답장 쓰는 것에 대한 이 세 친구들의 의견이 다르잖아요. 주인공은 답을 보내지 말자 주의인데, 친구 하나는 격려라도 해주자고 해요. 

"'그런 이야기를 해봤자 그 사람이 진지하게 받아들일 리가 없어... 이건 어떻게 해봐도 결국 바뀌지 않는다는 뜻이야. 우리가 편지에 어떻게 써서 보내든 일어날 일은 일어나는 거라고.'
'그렇다면 최소한 그 사람을 따뜻하게 격려해주는 말을 해주는 게 더 낫잖아.'" 

언니는 어떤 주의예요? 솔직하게 말해주자 주의예요 따뜻하게 말해주자 주의예요? 만약 어떤 고민을 듣고 언니의 솔직한 마음은 부정적이다, 그러면? 


Y: 그 사람이 어느 정도 방향성을 잡고 얘기한 거라는 걸 알기 때문에 굳이 부정적인 이야기는 하지 않을 것 같아. 웬만해서는 지지를 해주겠지, 물론 범죄를 저지르겠다거나 나쁜 방향이 아닐 경우에 말이야. 진짜 최악의 것이 아닌 이상 극구 반대하거나 말리진 못할 거 같아. 


S: 지금 <K팝 스타>를 5년째 떨어졌어. 그리고 내가 보기에 솔직히 실력은 별로거나 평범해. 근데 한 번 더 도전해봐도 될까요? 이러고 왔어요. 


Y: 음... 응원을 하되 또 다른 가능성을 열어놓을 거 같아. 막 그 친구한테 "야 너 진짜 아니야" 이렇게 얘기하진 않겠지만, 다른 길도 있다, 다른 것에 재능이 있을 수도 있다고는 얘기할 거 같아. 


S: 그러고 보니 나미야 잡화점이 라디오에 사연을 보내는 느낌이기도 한 것 같고... 언니는 지금 고민을 보낸다면 무슨 고민을 보낼 것 같아요?


Y: 흠... 넌?


S: 음... 일단 회사에 대한 것? 안정적이지만 성장이 정체되어 있는 길과 도박이지만 좀 더 성장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길 중 어디로 가야 할까요? 그것도 굉장히 클리셰인데 늘 하는 고민인 것 같아요. 이 정도에서 안주할지 아니면 뭔가 위험을 감수하고 새로운 길을 갈지 물을 거 같아요. 


그리고 인간관계에 있어서는 얼마나 이기적이어도 되는지? 얼마나 이타적이어야 하는지... 이건 아까만큼 명확하게 A냐 B냐의 질문은 아니지만 조언을 구하고 싶어요. 


Y: 음, 나는... 나는 안 보낼 것 같아. 


S: 우와! 왜요? 


Y: 간절하지 않은가 봐. 뭔가 내 고민이 오히려 간절한 누군가의 편지를 방해할 것 같고... 그리고 나는 요즘 나이가 들면서 더 그런 것 같은데 나의 고민을 가지고 누군가한테 가서 하소연했을 때 상대방을 더 곤란하게 한 경우도 많았던 것 같아. 그 사람들에게는 그 정도까지 심각한 문제가 아니라 공감이 어려운데 나는 그 정도 수준에서 공감을 바라고 자문을 구하는 느낌? 그래서 어느 순간 내 문제는 내가 알아서 해야겠다고 변한 것 같아.


근데 내가 편지는 안 쓰더라도 답장을 써주고 싶긴 해. 그리고 나도 받아볼 것 같아, 나의 답장이 어떻게 삶에 영향을 미쳤는지. 

"0월 0일 오전 0시부터 새벽까지 나미야 잡화점의 상담 창구가 부활합니다. 예전에 나미야 잡화점에서 상담 편지를 받으셨던 분들에게 부탁드립니다. 그 편지는 당신의 인생에 어떤 영향을 끼쳤습니까? 도움이 되었을까요 아니면 아무 도움도 되지 못했을까요. 기탄 없는 의견을 보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그때처럼 가게의 셔터 우편함에 편지를 넣어주십시오. 꼭 부탁드립니다." 


S: 나도 그게 진짜 궁금할 것 같아요. 뭔가 할아버지가 당신의 삶이 어떻게 변했는지 알려달라고 물으시는 게 그냥 심심한데 의견이나 받아보자의 느낌이 아니라 정말 간절한 - 


Y: 맞아.


S: 부디 좋은 영향을 끼쳤을 수 있다면 좋겠다, 하는 그런 너무 간절한 마음 같았어요. 


Y: 맞아, 그 느낌이야. 할아버지의 간절한 느낌이었어. 


S: 근데 아직 인생을 덜 살아서 그런지 누가 나한테 와서 "그때 그 말씀을 해 주셨던 게 절 살렸습니다" 한 경험은 없어요 (웃음). 한 30년 더 살면 생기겠죠? 


저희의 공식적인 마지막 질문. 가장 좋았던 문장이 있으신가요? 


Y: 나는 아까 나눴던

"해코지가 됐든 못된 장난질이 됐든 나미야 잡화점에 이런 편지를 보낸 사람들도 다른 상담자들과 근본적으로는 똑같아. 마음 한구석에 구멍이 휑하니 뚫렸고 거기서 중요한 뭔가가 쏟아져 나온 거야... 그런 수고를 하고서도 답장을 원하지 않는 사람은 절대로 없어. 그래서 내가 답장을 써주려는 거야... 인간의 마음속에서 흘러나온 소리는 어떤 것이든 절대로 무시해서는 안 돼."


S: 저는 이번에는 옮긴이의 말 중에 너무 공감 가는 문장이 있어서

"지금 선택한 길이 올바른 것인지 누군가에게 간절히 묻고 싶을 때가 있다... 어딘가에 정말로 나미야 잡화점이 있었으면 좋겠다." 

어딘가에 정말로 나미야 잡화점은 없을 수 있지만, 가장 가까운 곳에 서로의 나미야 잡화점이 되어주기를... :-) 


[EXTRA] 


"하긴 이별이란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인연이 끊기는 것은 뭔가 구체적인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다. 아니, 표면적인 이유가 있었다고 해도 그것은 서로의 마음이 이미 단절된 뒤에 생겨난 것, 나중에 억지로 갖다 붙인 변명 같은 게 아닐까. 마음이 이어져 있다면 인연이 끊길만한 상황이 되었을 때 누군가는 어떻게든 회복하려 들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은 이미 인연이 끊겼기 때문이다. 그래서 침몰하는 배를 그저 멍하니 바라볼 뿐 네 명의 멤버들은 비틀스를 구하려 하지 않은 것이다." 
"존 레논은 비틀스를 해체한 것을 후회하지는 않았을까. 문득 그런 의문이 떠올랐다. 너무 성급했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을까." 


"'아버지도 참 유별나셨어요. 남의 고민을 상담해줄 시간이 있으면 장사 잘할 연구나 하시면 좋겠다고 나는 항상 불만이었는데. 하지만 아버지는 그게 사는 보람이었던 거 같아요.'" 


"이름 없는 분에게

어렵게 백지 편지를 보내신 이유를 내 나름대로 깊이 생각해보았습니다. 이건 어지간히 중대한 사안인 게 틀림없다. 어설피 섣부른 답장을 써서는 안 되겠다, 하고 생각한 참입니다. 늙어 망령이 난 머리를 채찍질해가며 궁리에 궁리를 거듭한 결과, 이것은 지도가 없다는 뜻이라고 내 나름대로 해석해봤습니다.

나에게 상담을 하시는 분들은 길 잃은 아이로 비유한다면 대부분의 경우, 지도를 갖고 있는데 그걸 보려고 하지 않거나 혹은 자신이 서 있는 위치를 알지 못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아마 당신은 그 둘 중 어느 쪽도 아닌 것 같군요. 당신의 지도는 아직 백지인 것입니다. 그래서 목적지를 정하려고 해도 길이 어디 있는지조차 알 수 없는 상황일 것입니다. 지도가 백지라면 난감해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누구라도 어쩔 줄 모르고 당황하겠지요. 하지만 보는 방식을 달리해봅시다. 백지이기 때문에 어떤 지도라도 그릴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이 당신 하기 나름인 것이지요. 모든 것에서 자유롭고 가능성은 무한히 펼쳐져 있습니다. 이것은 멋진 일입니다. 부디 스스로를 믿고 인생을 여한 없이 활활 피워보시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상담 편지에 답장을 쓰는 일은 이제 더 이상 없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멋진 난문을 보내주신 점, 깊이 감사드립니다.

나미야 잡화점 드림" 


옮긴이의 말 중

"...인간 내면에 잠재한 선의에 대한 믿음이 있고, 모든 세대를 뭉클한 감동에 빠뜨리는 기적에 대한 완벽한 구상이 있다. 생각해보면 히가시노 게이고는 어떤 참혹한 살인 사건이나 악의를 묘사할 때도 기본적으로 인간의 선량함에 대한 믿음을 놓아버리는 일이 없었다." 

"현실에 대한 두려움을 떨치고 스스로를 정직하게 바라보았을 때, 기적이 일어난다."

"쉽고 재미있게 술술 읽히는 소설, 그러면서도 삶의 심오한 기척 또한 놓치지 않는 작품은 세상 모든 소설가의 꿈이겠지만, 히가시노 게이고는 그 꿈을 상당 부분 이루었다..."

"나도 밤새 써 보낼 고민 편지가 있는데, 라고 헛된 상상을 하면서 혼자 웃었다. 어쩌면 진지하게 귀를 기울여주는 사람이 너무도 귀하고 그리워서 불현듯 흘리는 눈물 한 방울에 비로소 눈앞이 환히 트이는 것인지도 모른다." 

"한 편으로는 십 년, 이십 년 전의 소중한 사람에게 밤새 긴 편지를 써 보내고 싶기도 하다. 그런 때에 어떤 것을 알려주어야 할까." 



커버 사진

"Summertime sadness" https://unsplash.com/photos/FLigbWjCZz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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