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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요일은 쉽니다 Apr 11. 2022

평균 연령 60세 사와무라 씨 댁의 행복한 수다

부모님과 함께 사는 베테랑 회사원


모임, 스물세 번째

220406, 벚꽃은 4월 6일의 옳은 선택

※가공되지 않은 raw data 그대로입니다



[대화 시작]


Y: 어떠셨습니까?


S: 만화책인 게 너무 신선했어요. 제 인생에서 두 번째 만화책인 거 같아요. 만화책을 별로 못 접해봤어요. 웹툰도 안 보고. 딱히 이유가 있어서는 아니고 그냥 굳이 접할 기회가 없었어요.


Y:  나도 처음에 약간 당황했어. 내가 골랐지만 처음에 이거 어떻게 읽는 거지...? (웃음) 읽어보니 가벼우면서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들에 대해 기록해 놓은 느낌이라 되게 좋았어. 가볍게 열어서 읽기 시작하면 주르륵 익히는 그런 만화책이니까.


S: 퇴근하고 읽고 싶은 책이 있고 퇴근하고 읽기 싫은 책이 있는데, 이건 퇴근하고 읽고 싶은 책이었어요. 그래서 시리즈를 다 읽어야겠다 했네요. 근데 앞에 인물 소개를 읽으면서 왜 이렇게 남의 이야기 같지 않던지... (웃음)


Y: 나는 어렸을 때 되게 선명하게 기억나는 게, 내가 초등학생일 때 아빠가 대학원을 마무리하시던 시기였는데 도서관에서 항상 우리한테 책을 빌려다 주셨거든. 그래서 아빠가 대학원 다녀오시는 날만을 기다렸어. <그리스 로마 신화>도 만화책으로 나온 게 있었는데 되게 두꺼웠지만 진짜 재밌게 읽었거든. 이제 그걸 잘 읽으니까 엄마 아빠가 기독교 서적 중에서도 만화로 나온 책들을 사주셨어. 그리고 또 중학생 때 친구들이랑 로맨스 만화책을 돌려보기도 했고, 금서 같이 몰래 갖고 다니면서 친구네 집 가서 몽땅 쌓아놓고 읽던 기억이 있어. 또 그때 유행했던 일본 만화책도 있었는데, <미스터 초밥왕>인가, 진짜 재밌었거든. 시골 중학교였는데 애들이 다 그 책에 빠져서 도서관에서 아예 대여 금지를 하기도 했어 (웃음). 그렇게 만화책에 대한 좋은 추억들이 있어.


그러다 이제 오랜만에 만화책을 읽어보자고 해서 봤는데, 나도 되게 오랜만이었어. 나는 이 그림체도 너무 귀여운 것 같아. 약간 대충 그린 것 같은, 그래서 더 친근하기도 하고.


S: 그렇죠, 슉슉 그린 느낌이죠. 일상의 소재와 되게 잘 어울려요. 이번에 이 책으로 한 게 정말 탁월한 선택이었다 생각했거든요. 아 근데 정말, 히토미 소개를 읽을 때 뼈 맞은 느낌이더라니까요 나의 10년 후 미래인가 싶어서 (웃음). 언니랑 나랑 보현이 삼인조도 그렇고.


근데 이런 삶이라면 10년 뒤 모습이어도 괜찮을 것 같아요. 지금 드는 생각이지만 설명만 읽으면 슬프기도 한데 책에 나왔던 그림들에 빗대어 상상해보면 이런 삶이라고 하면 괜찮은 것 같아요. 그리고 뭔가 자연스러웠어요. 노부모를 모시고 사는 골드미스인데 별로 이질감이 없었어요.


[SKIP]


S: 질문이 너무 부끄럽네요. 내일 지구가 멸망한다면 마지막으로 먹고 싶은 것은? 죄송합니다 (웃음). 친구들이 서로 물어본 장면이었어요, 내일 지구가 멸망한다면 뭘 먹고 싶냐고. 또 뭐라고 대답하는 남자가 멋있을 것 같냐고. 나는 여기다 이렇게 써놨네, "우동ㅋㅋ" (웃음). 난 보통 질문만 쓰고 답은 안 쓰는데 이건 오죽 고 싶었으면 (웃음). 좋아, 이제 내일 지구가 멸망해도 나는 여한이 없어 (웃음).


Y: 내가 오늘 저녁 메뉴를 잘 선택했네 (웃음). 나는 대단한 걸 먹고 싶기도 한데, 또 한편으로는 똑같은 구내식당 가서 밥 먹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싶어.


S: 회사 밥이 맛있나 보네요?


Y: 아니야 맛있진 않아 (웃음). 그냥 먹을 만할 것 같은데 뭔가 유명한 거에 그렇게 휘둘리고 싶지 않아.


S: 오늘 저의 질문들이 다 귀여운데, 그 장바구니와 남편 에피소드에 나온 부분인데 나중에 결혼한다면 이것만큼은 남편이 해줬으면 좋겠다 싶은 일상의 무언가가 있나요? 책에서는 남편이 장바구니를 들어주는 거였어요. 알려주면 내가 오빠한테 말해놓을게 (웃음).


Y: 내가 예전에 얘기했던 것 같은데 화장실 청소.


S: 잉? 아냐, 언니가 화장실 청소 좋아한다고 했었어요.


Y: 좋아하긴 하는데 싫어해 (웃음). 하면 열심히 하는데 귀찮아 하긴 해. 그리고 아빠가 우리 집에 올 때마다 화장실 청소를 해주셨었거든. 그러니까 나는 귀찮아서 미루던 일을 아빠는 와서 물어보지도 않고 그냥 해주시고 가셨어. 집에서도 아빠가 항상 화장실 청소를 싹 하고 나오시더라고. 그래서 다른 건 다 내가 해도 되는데 그냥 내가 좀 귀찮아하는 화장실 청소를 해주면 내가 더 사랑해 줄 수 있을 것 같아 (웃음). 아빠의 영향이 있겠지.


S: 그러면 언니는 이것만큼은 내가 하겠다도 있어요? 아내나 엄마로서 이것만큼 내가 꼭 해주고 싶다!


Y: 음... 빨래랑 다림질?


S: 엄청나죠. 빨래도 얼마나 귀찮은데.


Y: 근데 되게 좋은 질문이다. 이것만큼은 뭘 해주길 바라는 건 흔하게 생각할 수 있지만, 이것만큼은 내가 해주겠다는 보통 잘 생각하지 않잖아. 오빠한테 물어봐야겠다. 너는?


S: 저는 꼭 같이 해줬으면 좋겠다 싶은 건 장을 같이 봤으면 좋겠어요. 같이 고르고 담고 들고 오는 게 재밌었으면 좋겠고, 나 혼자 보면 일이 되는데 같이 보면 데이트가 되는 거 같아요. 내가 꼭 해주겠다는 굶기진 않겠다. 하지만 그거는 내가 안 굶을 거니까 (웃음).


[SKIP]


Y: 가족 멤버들 3명이 각자 모임에서 많이 하는 대화 주제를 꼽았잖아. 이야기들이 대단한 게 아니고 일상적인 건강, 돈, 취미 이런 것들이었는데 너는? 네가 모임에서 가장 많이 얘기하는 베스트 3은 뭐야?


S: 우리 나이 때라서 그런 거 같은데 회사 얘기가 꼭 들어가죠. 주로 답답함이나 상사 흉을 보거나 출근하기 싫다 였던 거 같고. 그다음에 또 들어가는 게 관심 있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 얘기가 들어가고. 마지막으로 요즘에는 가족 얘기가 많이 들어가더라고요. 이해가 가지 않거나 부딪히는 어려움, 스트레스. 별이가 있을 때는 별이 얘기를 많이 했는데 이제 없으니까... 언니는요?


Y: 나도 그렇지. 회사에 나의 시간을 반 이상 쏟고 있으니까 회사 얘기를 많이 하고. 두 번째는 이제 내 나이 때는 두 갈래로 나뉘는데 결혼이나 육아. 육아의 테마에 있는 친구들은 육아 얘기를 많이 하고 결혼을 준비하는 친구들은 결혼 얘기를 많이 하고. 세 번째는 나는 취미 얘기도 하는 것 같아. 운동이라든지, 관심 있는 분야라든지, 책이 됐든지 그런 얘기를 해.


S: 언니는 진짜 운동을 하니까 운동 얘기를 할 수도 있네요. 흠... 언니 첫 월급으로 뭐 샀어요?


Y: 나도 그거 질문하려고 했는데! 예전에 얘기했었는데 나는 첫 월급으로 엄마 아빠한테 빨간 내복을 선물했었어.


S: 맞아. 근데 부모님 말고 언니를 위한 선물은요?


Y: 흠... 첫 알바 월급으로 샀던 건 기억이 나. 첫 알바를 진짜 열심히 해서 노트북을 샀었어. 금액도 기억나 100만 원짜리였어. 진짜 비싼 거였지. 근데 거의 무기처럼 무거운 노트북이었거든 (웃음). 그걸 진짜 오래 쓰기도 했고 내 돈으로 처음 사는 고액의 물건이었어. 그러다 보니 되게 애지중지하고... 그게 기억이 나. 근데 회사에서 받은 첫 월급으로 나를 위해 뭘 했는지는 기억이 안 나. 너는?


S: 저도 특별한 건 없었어요. 그냥 일상적으로 이렇게 커피 마시고 밥 먹고 했던 거 같아요. 최근에 내가 나에게 한 선물로서는 저도 노트북이요. 조금 애매한 상황이었어요, 고장이 날 것 같긴 한데 아직 바꾸기는 애매하고... 그러다 새로 샀죠.


Y: 나는 최근에 산 것 중에서는 옷. 옷을 좀 사는 편이어서, 또 자주 사 한 달에 한 번이라도.


S: 그러면 기존에 있던 옷들은 정리해요 아니면 계속 모아놔요?


Y: 모아놔서 문제가 생겼지. 이제 그러다가 한바탕 버리고 또 채우고 (웃음).


S: 그러면 옷은 언제 버려요? 낡았을 때 아니면 질렸을 때?


Y: 몇 년 동안 그 옷에 손을 안 댔으면 상태가 좋아도 나눠주거나 버려. 유행이 지나서 촌스러운 건 가감 없이 버리도록 훈련하고 있어. 근데 나는 비싼 옷은 못 사고 적은 돈을 쓸데없이 많이 쓰는 편이어서 차라리 비싼 옷을 오래 입으면 그게 더 득일 수도 있겠다.


S: 요즘은 월급으로 뭐 해요?


Y: 요즘에는 가족한테 많이 쓰는 것 같아. 아빠가 돌아가시고 나서 후회했던 게 가족들한테 돈 쓰는 것에 대해 후하지 못했던 것 같더라고. 그때는 돈을 되게 쓸데없는데 많이 쓴 것 같아. 그러다 이제 가족들한테 큰돈을 쓸 수 있는 기회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또 그럴 때는 기꺼이 하지 못했던 순간들이 생각나더라고. 그게 너무 미안했어. 예를 들어 아빠한테 좋은 옷 한 벌 못 해드린 것도 그렇고... 그래서 그 이후로 좀 더 가족들한테 많이 쓰려고 하는 편이야.


S: 이건 맨 마지막에 나온 건데 지금 얘기랑 연결해서, 언니 삶에 있어 최고의 사치는? 책에서는 현미차 한 잔 마시고 친구들하고 수다 떠는 걸 꼽았어요. 그런 식으로 물질적일 수도 있고 비물질적일 수도 있고요.


Y: 난 여행. 돈을 많이 쓸 때도 그렇지만 적게 쓰는 무전여행이어도 내가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사치인 것 같아. 돈을 많이 쓰면 많이 쓰는 대로 사치스러우면서 기쁘고, 돈을 안 써도 그냥 새로운 곳에서 환기되는 그 순간이 좋아.


S: 맞아요, 여행이 그렇죠. 그걸 지금 못 가고 있으니까 답답한 거고... 저는 이걸 보고 제일 먼저 생각난 거는 마켓 컬리였어요. 우리는 동네 시장에서 장 보니까 컬리가 되게 사치스럽다고 생각했는데, 또 거기서 오는 묘한 재미가 있긴 있더라고요. 밤에 시켰는데 아침에 눈 뜨고 보면 문 앞에 와있는! 물질적으로는 컬리가 생각났고 비물질적으로는 별이랑 같이 놀던 게 생각나요. 별이랑 같이 보낸 시간이 많지는 않았거든요, 항상 할 일이 있으니까. 지금 생각해보면 별이랑 놀던 시간이 제일 행복했던 사치 같아요.


Y: 또 책에서 어떤 냄새를 맡고 여름이 왔구나 생각하는 내용이 있었어. 여름 내음이라고 했는데 너에게 여름 내음은 뭐야?


S: 나는 여름 하면 냄새로는 딱 안 떠오르는데 매미 소리! 매미의 그 시끄러운 그 소리 있죠. 그게 소음일 때도 있지만 그냥 듣는 순간 여름이네 싶을 때도 있어서 여름 하면 매미가 제일 먼저 떠올라요. 언니는요?


Y: 나는 내음이라고 하기에는 좀 그런데 여름날 새벽 아침에 느끼는 공기 있지? 땅바닥도 아직은 차가운 듯한 그런 시원한 공기.


S: 맞다, 언니는 여름을 제일 좋아한다 그랬죠?


Y: 응, 나는 사계절 중에 여름을 제일 좋아해. 너는?


S: 저는 봄 하고 가을 정도의 시원함을 좋아하는데, 시작하는 것보다는 마무리하는 게 더 좋아서 가을이요.


Y: 나는 여름의 싱그러움이 너무 좋아. 아까 네가 말한 것처럼 초록 초록한 그 싱그러움. 그 단어가 딱 적절한 것 같다, 싱그러움. 그 무한한 초록의 생명이 좋은 것 같기도 해.


S: 이건 아까 <스물다섯 스물하나>랑 연결될 수도 있는데 이런 대화가 있었어요.

"첫사랑일 거야."
"기본으로 헤어지겠지만, 그게 좋은 거지."

기본으로 헤어지는 첫사랑인데 그게 좋은 건가???라고 적어놨네요. 화났나 봐 (웃음).


Y: 분명 그 말도 맞긴 해. 첫사랑이 이루어지지 않아서 사랑에 대해 배우고 성숙해지고, 그 첫사랑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의 내가 있는 거니까 맞는 말이지. 그리고 이루어지지 않아서 더 애틋하기도 하고.


S: 그렇지, 맞아. 이루어지지 않아서 애틋하지만 그래도 희도랑 이진이는 이루어지길 바랐다 (웃음). 현실에서는 안 이루어지니까 드라마에서라도 이루어지길 바란 거죠.


나는 아직 모르겠어. 그래도 사랑하는 게 좋은 거지 이런 맥락이었는데 아직 저는 너무 삶을 결과 중심적으로 보고 있어서 그게 여전히 받아들이기 어려워요. 연애가 결혼으로 끝나야 되는데 헤어졌으면 목적을 달성 못 한 거니까 그러면 나의 시간이나 감정, 마음을 낭비한 거 아닌가... 삶을 효율로 따지려니까 어렵더라요. 그래서 이런 사고방식을 빨리 버려야 더 풍성한 삶을 살 수 있을 텐데 싶어요.


Y: 근데 또 그 사고방식을 버린 사람은 인생의 경지에 오른 사람이 아닐까. 거의 해탈한 지경에 이르러 연연하지 않을 수 있는 거지.


S: 맞아, 뭐가 정답일까.


Y: 정답이 없네.


S: 정답이 없는 것 같아, 진짜...


여기에 또 부모님이 이렇게 오랜 세월을 같이 사니까 서로에 대해 다 알게 되었다는 에피소드를 다룬 게 있었는데, 오랜 세월을 함께하니까 서로 원하는 게 여전히 똑같지는 않을 수 있지만 적어도 그 사람이 어떻게 생각할지는 알게 된다는 맥락이었거든요. 언니는 오랜 세월 오빠를 만났으니까 다 아는 것 같아요?


Y: 그렇지. 어느 정도 알긴 하는데 그래도 일부일 거라는 생각이 들어. 그래서 그걸 잊지 않으려고 해, 내가 아는 건 이 사람의 일부라는 걸. 내가 이 사람에 대해 다 안다고 생각하면 실수가 많은 것 같아, 오해도 많고... 그래서 이 사람을 다 아는 것처럼 생각이나 행동하지 말자는 게 나의 새로운 태도야. 오빠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을 만날 때도 그 사람에 대해 다 아는 것처럼 얘기하지 말자. 그렇지만 내가 지난주에 너한테도 그렇게 다 아는 것처럼 조언을 해서 -


S: 굉장히 띵언이었다니까 (웃음). 지난주에 언니랑 헤어지고 집에 가면서 나는 지금 이 나무 덤불 사이에 있으니까 이렇게 복잡한데, 그날 내가 언니한테 종합적으로 다 얘기했단 말이에요. 그렇게 모든 조각을 다 던져주면 오히려 저 사람이 한 걸음 떨어진 시선에서 상황을 되게 정확하게 볼 수 있겠구나를 많이 느꼈어요. 자기의 이해관계가 얽히지 않은 사람이 모든 걸 다 듣고 판단해 주는 건 나한테 되려 정확하고 새로운 시각을 던져줄 수도 있겠다. 나는 너무 그 중심에 있고 이해관계가 복잡한데, 오히려 제3자의 입장에서 명확하게 보이는 거죠.


Y: 그래도 내가 너무 함부로 얘기하지 않았나.


S: 아니야, 난 그날 상당히 속이 시원했어요.


[SKIP]


S: 언니는 딱 한 번 마법을 부릴 수 있다면 어떤 마법을 부리고 싶어요?


나는... 서로한테 진짜 상처가 되었던 기억 하나를 지울 수 있거나, 혹은 시간을 되돌려서 그때 너무 전하고 싶었는데 못한 말을 해주거나... 혹은 한 번 정도는 결정을 내리기가 어려울 때 미래에 대한 시뮬레이션을 돌릴 수 있는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크게는 내가 이직을 한다면 vs. 회사에 남는다면도 있고, 작게는 이런 말을 한다면 vs. 하지 않는다면도 있고 그렇게 미리 미래를 볼 수 있다면... 나이가 들수록 실수에 대한 두려움이 커지고, 실수나 실패를 점점 비용적인 측면에서 효율을 따져가며 보게 되니까 틀린 답을 정할까 무서운 거 같아요. 인생이 모험이고 그래서 재밌지 않냐는 말은, 아직 공감하기엔 그만큼 용기가 없어요. 아직은 그래도 답을 알고 옳은 답을 선택하고 싶은 마음이 커요. 그래서 언니가 아까 "오늘은 벚꽃길을 걷는 게 옳은 선택"이라고 답장했을 때 그 "옳은"이란 단어를 보고 되게 신기했단 말이에요. 우리가 보통 옳은이라는 말을 안 썼던 것 같은데 요즘 나의 테마였거든요. 옳은 선택이 뭘까? 그래서 한 번 즈음은 미래를 볼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맨날 미래에 대한 시뮬레이션을 돌리기엔 또 되게 피곤한 삶이잖아요. 그래서 막상 그런 능력이 있어도 안 쓸 수도 있고. 근데 한 번 정도는 내가 너무 선택을 못 내리겠을 때 미래를 볼 수 있다면 좋겠다 싶더라고요. 전 영화나 드라마도 스포일러에 대한 거부감이 없기 때문에 그런 능력이 있으면 좋을 것 같아요, 한 번 즈음은.


Y: 나는... 뭔가 마법, 내 인생에 마법을 부려보고 싶지 않아. 다른 사람의 인생에는 좋은 마법을 부리고 싶어. 그렇다면 나는 가족이나 내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의 인생을 선한 방향으로 이끌어 갈 수 있는 마법을 부리고 싶어. 예를 들어 아까 네가 말한 것처럼 우리는 드라마 결말이 해피 엔딩이기를 바라잖아. 나도 타인의 삶에 마법을 부림으로써 얻는 만족감이 더 클 것 같아, 나의 인생에 부리는 마법보다.


S: 언니는 전부터 내가 느끼는 거지만 점점 이타주의적인 삶으로 전환을 맞이한 거 아니에요? <나미야 잡화점> 때도 그랬어, 언니의 고민에 대해서 안 쓰고 더 간절한 사람에게 기회를 주겠다고. 해탈한 경지에 이른, 인생의 욕심이 없는 -


Y: 그렇다기에는 옷 사는 걸 너무 좋아하는데 (웃음). 그러게, 큰 욕심이 없다고는 얘기할 수 없지만 그래도 남의 인생을 선하게 만드는 데 쓰고 싶다? 그게 나한테는 더 의미 있을 것 같아. 그런 의미로 보았을 때 신의 역할이 엄청난 거 아니야. 선한 길로 이끄는...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하고, 뭔가 답답하기도 하시겠지만 또 한 사람의 스토리인 것을 기억하면 재밌겠다.


S: 그래도 난 내가 신이라면 인간에게 이렇게 많은 권한을 주지 않을 것 같아요.


Y: 왜?


S: 인간이 너무 통제를 벗어나서.


Y: 그럼 독재자 아니야? (웃음)


S: (웃음) 독재자예요. 그래서 자유를 허락하신 마음은 참... 또 다른 경지의 사랑이기도 하고 믿음이기도 한 거 같아요. 난 그냥 모든 걸 다 통제할 수 있는 지렁이들로 뒀을 것 같은데 (웃음). 하다 못해 나는 드라마 결말만 해도 내가 원하는 대로 흘러갔으면 좋겠어요. 아직은 나의 마음이 그래요. 작가의 뜻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가 싫을 때도 있어요.


[SKIP]


Y: 와, 오늘도 결국 끝까지 걸어왔네.


S: 비 올 때도 함께했죠 (웃음). 오늘은 이렇게 마치겠습니다.



커버 사진

"Summertime sadness" https://unsplash.com/photos/FLigbWjCZz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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