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일요일은 쉽니다 Mar 25. 2022

나의 모든 수를 그대로 둘 수 있을 만큼

하나도 무의미한 돌은 없었다



[Fast-forward, 2022/3]


소년과 함께 마지막으로 식사를 한지도 벌써 거의 한 계절이 지나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그와 마주 앉았을 때 두껍지 않은 외투를 입고 있었는데, 두꺼운 외투를 입고 출근할 만큼 짧지 않은 기다림의 시간이 흘렀다. 층이 나뉘며 이제는 복도에서 마주칠 일도 없어 보지 못한 지 적지 않은 날이 지났다. 그런데 해가 지날수록 느는 것은 마음을 밀어두는 것과 또 마음을 묻어둔 채 기다림에 익숙해지는 것이라 그저 계절에 소년의 이름을 새기며 매일의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대신 그 그리운 마음을 그는 보지 못할 익명의 글로 기록했다. 소년이 소녀의 계절에 주인공이었다 말할 용기는 없었지만, 그래도 소년이 소녀의 계절의 주인공이었다 누군가는 알고 있길 바라는 마음에 기록했다. 나의 스물아홉이 소년으로 인해 설레기도 하고 따뜻하기도 했다고. 나의 스물아홉이라는 드라마에 그가 주인공이었다고. 당신은 그렇게 빛나고 특별한 사람이니까 꼭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그 마음을 기록했다.


사실 선배가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고 자리를 비운 한 달 동안 나는 매일 편지를 썼다. 퇴근을 하고 저녁이 되면 옛 기억 하나를 끄집어내서 선배에게 한 자 한 자 적어 내려갔다. 이걸 묶어서 시집으로 내고 싶다는 욕심이 생길 만큼 매일의 글에는 많은 정성이 깃들어 있었다. 감정을 숨기는데 능숙해졌다고 믿고 싶지만 돌아보면 티가 나는 행동이었다. 가지런히 정리해 넣어둔 파일 속 모서리가 튀어나온 종이 한 장처럼, 아무리 선배에 대한 고마움으로 포장했다 한들 감춰지지 않았다. 완벽하게 감춰야만 내가 당신을 또 편하게 마주할 수 있는데, 정직하게 직구를 던지던 옛 모습이 남아 있어서 그런지 마음을 정석으로 풀었다. 서로의 부재를 서로의 존재로 채우고 있었으니 어찌 이보다 선명한 표현이 있었을까. 다만, 당시에는 걱정하는 마음이 앞서 이렇게 투명하게 마음이 비칠지 모른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했다.



선배의 복귀 후 조금씩 날씨가 따뜻해지며 나는 그때의 시간에 의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진심이라고 한들, 아무리 진심이라고 한들 원치 않는 진심도 있지 않았을까. 부담스러운 진심도 있지 않았을까. 그래서 멀어지게 하는 진심도 있지 않을까. 친구로서였다고 하기엔 마음을 조금 덜어냈어야 하는데 너무 많이 담아버린 것만 같았다. 그래서 차마 더는 소년을 찾지 못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그러다 당신이 떠난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때까지는 그 어떤 소식이 들려와도 혼자 걱정하는 것으로 끝냈으나, 이번에는 침묵을 깰 수밖에 없는 소식이었다. 선뜻 다가가지 못하고 건넨 형식적인 연락에, 당신은 걱정했던 것과는 달리 예전 모습 그대로였다. 오히려 무언가 바뀐 것 같았다. 그것을 무어라 설명해야 할까. 나의 마음을 다 알고 있고 딱 한 걸음만 더 다가가면 닿을 수 있을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한 걸음, 소년과 소녀 사이에 한 정거장만 같던 거리가 사실은 한 걸음이었다고 보여주는 것만 같았다.  


그런데도 더는 용기가 나지 않았다. 한참을 고민하고 또 여러 번 물었다. 마지막을 앞두고 선물을 전해주어도 될까. 편지를 적어도 될까. 마음을 최대한 덜어내고 최소한만 담았는데, 그럼에도 전해도 되는 것인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혹여 소년에게 부담이 될지, 이것으로 인해 소년과 멀어지게 될지, 그래서 마음에 상처가 될지 그러한 두려움이 덮고 있었다. 한 걸음, 우리 사이에 딱 한 걸음이 남은 것만 같았는데 그냥 조용히 없었던 일로 모든 것을 덮어두어야 할지, 이제는 스치지도 말고 지나쳐야 하는 건지 답을 알 수 없었다. 무엇이 가장 걱정되는지 묻는 친구의 말에 "나의 엉망인 삶에 누군가를 묶는 것" - 그것이 가장 걱정된다고 답했다. 내가 힘들어하던 소년의 곁을 지킨 것과, 힘든 나의 곁을 누군가 지켜야 하는 것은 너무나도 다른 문제였다.



한 사람으로 인해 함께 묶인 온 가족이 힘들어질 수도 있다는 걸 뼈저리게 배웠다. 그런 것은 모를 수 있다면 모른 채 살고 싶었지만, 선택권도 또 예고도 없이 삶은 삶의 이면을 보여주기도 했다. 그래서 험한 길, 먼 길이 예정되어 있는 미래를 생각할 때 그 길을 누군가와 함께 걷는다는 것은 나에겐 사치여서가 아닌 미안함이었다. 평생을 두고도 갚지 못할 빚이었다. 그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가족에게, 사랑하는 사람에게 지우면 안 될 짐이었다. 내가 뭐라고, 혹은 내가 무엇이라고 한들 나 때문에 험하고 먼 길을 가는 것은 불행의 지름길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어느 오후, 인터넷으로 한 영상을 찾아보다 우연히 흘러나온 노래를 듣는데 멜로디가 좋아 희미하게 들리는 가사 한 줄을 적고 검색해보니 해바라기의 노래가 나오는데 -  



"내가 가는 길이 험하고 멀지라도 그대 함께 간다면 좋겠네"



내가 갈 길이 험하고 머니 여기서 헤어지자거나 우리는 꿈을 꾸지 말자는 말 대신

그대 함께 간다면 좋겠다니

이런 가사도 있다니.


그 같은 오후 참 존경하는 선배가 최근 힘들었던 시간을 회상하다, 돌아갈 수만 있다면 그보다 더 전으로 다시 갈 만큼 과거의 시절이 그립다는 말을 했다. 그 대사가 너무 마음이 아파서, 그 마음을 왜 모를까, 돌아갈 수만 있다면, 그래 그럴 수만 있다면 무엇을 주고서라도 다시 갈 만큼 무언가는 여전히 괜찮았던 그때로 가고 싶은 마음을 어찌 모를 수 있을까 싶어 그 옆에 있던 나도 눈물이 핑 돌았다.



그런데 우연히 가사를 접하게 되면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만약 시간을 되돌린다면 지금껏 소년과 쌓아온 조각 중 하나가, 둘이, 그 이상이 사라질 테니 어쩌면 이제는 돌아가고 싶지 않을지도 모르겠다고.


한 기자가 대국이 끝난 후 바둑기사한테 어떻게 복기를 하는지 물었다고 한다. 그가 대답하길, 바둑기사들은 무의미한 돌을 두지 않기 때문에 처음부터 끝까지 다 놓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돌아보면 내가 당신을 향해 두었던 수 중에 그 어느 것 하나 허투루 둔 것은 없었고 또 신중히 두지 않았던 것은 없었다. 그래서 후회하는 수는 없다. 시간을 되돌리더라도 다시 두고 싶은 수도 없다. 나의 모든 수를 처음부터 끝까지 그대로 놓을 수 있을 만큼, 당신을 향한 나의 모든 걸음은 그 하나하나에 깊이가 있었다. 하나도 무의미한 돌은 없었다.


글로 사람을 위로하고 싶었던 만큼, 글로 소년을 위로하고 싶었다. 그래서 매일 편지를 썼다. 당신을 향한 나의 마음이 투명하고 또 선명하게 보였을지 모르겠으나, 그저 당신을 위로하고 싶었다.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이기도 했다. 그래서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했다.



그건 스물아홉 그 경계에서

사실은 가장 귀하고 소중하게 아껴두었던

소년을 향한 내 마음의

전부였다.



어제 무엇이 가장 걱정되냐고 물었던 친구에게 오늘 오후에 들은 노래 가사를 읊으며, "마라톤을 완주해도 될까? 메달을 따지 못해도 응원해줄래?" 물으니 메달을 따지 못해도 좋으니 완주를 응원한다는 답이 왔다. 내가 내딜 마지막 한걸음이 어떤 결과를 초래하든, 완주했으니 후회는 없을 것이라고.


그래, 나 사실은 험하고 먼 길이라도

때론 지루하고 외로운 길이라도

그대 함께 간다면 좋겠다고



#6. 나의 모든 수를 그대로 둘 수 있을 만큼, 하나도 무의미한 돌은 없었다


#2521 #스물다섯스물하나 #나희도 #백이진 #스물아홉




매거진의 이전글 나의 8할은 당신이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