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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요일은 쉽니다 Feb 10. 2022

나의 8할은 당신이었다

나는 당신의 그늘 아래 멈춰 잡지도 보내지도 못한 채 그대로 머물러 있다



당신은 나와 처음으로 점심을 먹은 날 암묵적인 수습기간 중 규정을 무시하고 이 회사를 추천하지 않았다. 오지 말라고, 별로 좋은 곳이 아니라고 그랬다. 당신은 말을 돌려하지 않고 감정을 숨기지 않는 편이기에 회사에 대한 애정이 없는 것은 함께했던 그 짧은 시간에도 당신이 입고 온 셔츠의 색깔만큼이나 선명했다. 그러던 당신이, 회사로부터 합격 통보를 받고 자리를 정리하고 도와주신 분들께 인사를 하고서야 뒤늦게 가기 전 연락 달라는 당신의 문자를 보고 잠깐 휴게실에 마주 앉았을 때, 이전과는 다른 목소리로 입사를 할 것인지 물었다. 당신의 질문을 이해했지만 사실 나도 마음을 정하지 못했던 터라 아직 건강검진이 남아있어 회사의 선택에 최종 관문이 남았음을 이야기하니 당신은 당신의 스타일대로 다시 물었다, 나는 희원씨 마음을 묻는 거라고. 나는 당신이 던진 직구에 스윙하지 않고 그대로 포수 글로브로 들어가도록 살짝 웃어 보이기만 했다.


그날 모든 정리를 마치고 회사를 나오며 지하철에 몸을 실고서야 당신에게 제대로 된 인사를 했다. 나는 당신의 표정 하나 동작 하나를 다 세심하게 관찰했기에 그 시간 동안 당신에게 내가 짐만 된 것 같아 미안함이 너무나도 컸는데, 그 미안함이 마음에 돌덩어리같이 무겁게 내려앉은 채 빚만 지고 나오는 게 빚지는 걸 싫어하는 내 성질상 참 괴로웠어서 당신의 이름을 누르고 카톡 창을 띄웠다. 나의 8할은 당신이랑 팀장님이었는데, 함께하는 기간 동안 선배 생각을 하면 제일 힘든 후배 만나 너무 고생만 한 것 같아서 마음에 돌덩어리 같이 정말 미안했다고. 그리고 만약에 인연이 또 이어진다면 이다음에도 많이 가르쳐달라고. 조금 후 지하철에서 내리기 전 당신은 그동안 수고했으니 주말 푹 쉬고 가족과 행복한 시간을 보내라고 답을 보내왔다. 그러고는 내년에 꼭 보자고 덧붙였다. 수습을 시작할 때 당신과의 첫 식사에서 좋은 곳이 아니니 오지 말라고 했던 말과 달리, 수습이 끝날 때는 내년에 꼭 보자고 온 당신의 답장을 보고 나는 잠깐 마음이 복잡해졌다.



가볍게 넘겨도 되는 인사였을까, 아니면 사실 나는 그때부터 마음이 혼란스러웠던 걸까.

라디오에 사연이 나온 날, 신청곡이 끝나기 전 DJ에게 보냈던 문자는 이런 내용이었다.


"사연의 주인공입니다. 어제 장례식장에서 눈동자에 눈물이 가득한 채로 애써 웃어 보이길래 꼭 안아주고 싶었지만... 오늘 퇴근길 만약 라디오에 사연이 나온다면 정신없을 텐데 또 연락해도 된다는 하늘의 뜻일까 했는데, 언니 어떡하죠? 선배가 걱정되고 보고 싶습니다."


나는 소년이 보고 싶었다.

소년이 너무 보고 싶었다.



참 좋아했던 사람과 헤어지고 나서 그 사람이 돌아오길 바란다면 먼저 연락하면 안 된다는 친구의 조언에 나는 헤어지고 일 년 후 비행기를 타고 12시간을 날아 그 사람이 있던 곳까지 가서도 추억이 한가득인 동네만 맴돌다 결국 연락을 하지 않고 돌아왔다. 혹시라도 그 사람이 돌아오길 바란다면 절대 먼저 연락하면 안 된다 하여, 내게 유일하게 남은 희망이었던 그 말을 붙잡고 마음을 숨기고 또 감추는 것을 연습했다. 혹여라도 그러면 그 사이 그 사람이 돌아오지 않을까 싶어 그 사람이 건강한 것만으로도 충분했던 사랑을, 어쩌면 나보다 또 나의 삶보다 소중했으면서도 그 사람에게 다시 연락을 하지 않았다.


 이후에 혹시 연이 아닐까 싶은 사람은 있었지만, 그때도 마음을 내비치지 않았다. 하고 싶은 말을 숨기고 해야 할 말을 하지 못하는 것이 단련된지라 계절이 지나는 것을 바라보기만 하는 것이 익숙하고 당연한 일상이 되어버렸다. 내 성질상 마음을 표현하는 것이 어려웠던 적은 없지만, 인연이 되지 말았어야 하는 사람을 내 손으로 운명을 바꾸어 연을 맺는다 한들 결국 헤어지게 되는 아픔이 너무 짙게 물들어 또 그렇게 될까 겁이 났다. 자연스럽게 맺어졌다 헤어지면 모를까 내가 나서서 맺었다 헤어지게 된다면... 나는 이별을 한 번 더 이겨낼 자신이 없었다.



그런데 짙은 상복을 입은 채 눈물이 가득하면서도 애써 웃어 보이던 얼굴이 잊히질 않아서  

소년이,

선배가, 너무 보고 싶었다.


그래서 처음에는 장례 기간 동안만 매일 연락해야겠다던 생각이 당신이 회사에 복귀할 때까지 매일 연락해야겠다는 생각으로 바뀌었다. 내가 힘이 들어 동굴 속으로 숨을 때면, 나의 가장 친한 친구들에게 아마 답장을 못할 테지만 하루에 한 번씩 안부를 남겨줄 수 있는지 부탁하는 것처럼, 당신에게 내가 하루에 한 번씩 안부를 남겨야겠다 싶었다.


"선배, 오늘은 잘 버티고 있어요?

아직 정신이 없죠?"


나랑 세상에서 제일 친한 친구가, 정윤이라고, 몇 년 전에 청년부에서 만난 언니인데

언니 아버지가 작년 여름에 돌아가셨거든요.

장례식은 새마을호인가 무궁화호만 다니는 서천,

목요일 자정 가까이 소식을 듣고 금요일 아침에 첫차를 타고 내려갔는데

도착해서 보니 내가 알던 그 강한 언니가, 그 강하고 밝은 언니가

상복을 입고 서서 아무 말도 못 하는데


그런데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정말 아무것도 없어서

꼭 끌어안고 등을 세게 쳤거든요,

말도 안 되는 힘내라 힘! 하면서.


그러고 그날 하루 빈소를 지키고 저녁에 다시 서울로 올라가는 길에

언니, 내가 등을 너무 세게 쳐서 아팠죠? 하고 연락을 하니까

네가 그래줘서 힘을 냈다고 하는데

마음이 먹먹한 거 있잖아요.

그러고 언니는 그 이후 일 년 동안,

아니 지금까지도 참 많이 힘들어해요. 


토요일 저녁 나는 언니를 보러 갔다. 일주일간 마음의 변화가 여름과 겨울보다도 선명한 변화라 한 주간 있었던 일을 만나면 나누겠다고 하고 만난 날, 선배 소식을 전하니 언니는 직접 알지도 만나지도 못한 소년의 이야기를 듣자마자 울었다. 언니가 만나지도 알지도 못하는 소년의 이야기를 듣고는 눈물을 흘리는 걸 보며, 내가 생각할 수 있는 것보다 소년의 마음이 더 무너져 내리고 있겠구나 싶어 내 마음도 같이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언니가 위로는 좀 해주었냐고 묻는데

생각해보니 화요일날 장례식장에서 선배도 아파서 눈물이 날만큼 등을 세게 쳤어야 하는데...

꼭 안아줄걸, 손이라도 잡아줄걸

그게 마음에 걸려요."


소년을 꼭 안아줬어야 하는데.

사진이 올려져 있던 방과 신발장 사이 잠깐 문턱의 그늘 아래 우리 둘의 모습이 감춰졌을 때 주어졌던 그 찰나의 순간에 당신을 꼭 안아줬어야 하는데.

당신에게 하고 싶었던 말이 공기 중에 흩어져 버리기 전에

당신의 두 눈에 눈물이 가득 차 살짝 건드리기만 해도 쓰러질 것 같았던 당신이

잠깐이라도, 아주 잠깐이라도 나의 그늘에 숨어 눈물을 삼키지 않아도 되도록

당신을 꼭 안아줬어야 하는데.

당신을 품에 안으면 그대로 쏟아질 것만 같은 눈물을 흘릴 수 있도록

나의 그늘로 잠시 당신을 덮어줬어야 하는데,

그랬어야 하는데 -



아니, 그래주고 싶었는데

되려 내가 당신의 그늘 아래 멈춰

잡지도, 보내지도 못한 채 그대로 머물러 있었다.


"당분간은 아무것도 괜찮지 않을 거예요. 해가 지나고 나서도 그럴 거예요.

크리스마스가 가까워지면 마음이 먹먹해지다, 가끔은 화요일만 되어도 눈물이 날 수 있어요."


그래도 또 버텨내 봐요.

오늘 언니 우는 모습을 보고 돌아오면서

우리는 또 버틸 수 있다고 말하는 것도 너무 냉정한 거 같지만,

기도하고 있어요.

조금이라도 먹고 잠깐이라도 눈 붙이세요.

우리는 결국 이겨낼 수 있어요, 분명.



"If I, if I, 사랑이면

이제 난 어떡해야 해"


우연히 보게 된 드라마에서, 마음을 숨겨야만 하는 애틋한 장면에 노래가 흘러나오는데

그 가사 첫 줄이 물감으로 칠하듯 마음에 번져서


만약 소년이라면

이제 나는 어떡해야 할까.



기다리다 후회해도

다시 난 너여야만 할까.


#5. 나의 8할은 당신이었다


#연모 #이휘 #정지운 #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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