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일요일은 쉽니다 Jan 28. 2022

작년 어느 날 꿈처럼 당신을 만나

당신은 나의 스물아홉이던 날들의 주인공이 되었다



한 10여 년 즈음 전에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인생에서 처음 맞이한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이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할머니는 참 많이 힘들어하셨다. 아마 그제까지 인생의 많은 것을 할아버지에게 의지하며 살아오신 터라, 지하철을 타고 어딘가 가는 것도 시장을 보러 나갔다 오는 것도 익숙지 않았을 터라, 할아버지 없는 세상을 홀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막막하셨던 게 아닐까 싶다. 해가 뜰 즈음 할아버지가 소천하시고, 장례식을 준비하기 위해 집 근처 병원으로 옮기며 엄마와 삼촌이 수속을 밟는 동안 할머니랑 나는 같이 간단한 짐을 챙기러 외갓집에 돌아왔다. 할머니는 안방에 들어와 장롱에서 전화번호부를 꺼내고 전화를 걸기 시작하셨는데, 수화기를 들고 번호를 누를 때까지는 멀쩡하시다가 상대방의 "여보세요"만 들으면 "돌아가셨어요"하고 오열하셨다. 아무런 인사도 없이 그저 "돌아가셨어요"하고 몇 분을 무너져 내리시다가 이내 소식을 전달해달라고 부탁하시고는 다음 사람에게 전화를 거셨다.


일 년 동안 할머니는 삼촌 댁에도 계시다가, 우리 집에서도 지내시다가 다시 외갓집으로 돌아오셨지만 아무래도 나는 할머니를 그대로 두면 안 될 것 같았다. 사람이 누구나 그렇듯 할머니 곁에는 친구가 필요했다. 혹시 강아지 한 마리를 데려오는 게 좋지 않겠냐는 나의 말에 어른들은 꿈쩍도 안 하시다가, 어느 날 할머니가 어항 물을 갈아 주시며 물고기들과 대화하시는 걸 보고는 엄마가 그래, 강아지를 한 마리 데려오자 하셨다. 열심히 찾다 우연히 어느 동물병원 앞 누가 강아지를 버리고 갔는데 새로운 주인을 찾고 있다는 공지를 보고 나는 바로 그 동물병원을 찾아갔다. 인터넷 공지에 올라와있던 강아지는 시츄였는데, 병원에서는 똑같이 동물병원 앞에 버려졌다가 한번 더 파양 되고 오늘 돌아온 말티즈가 있는데 처음 키우는 거면 여러모로 이 강아지가 더 좋을 거라고 추천을 해주었다. 엄마는 할아버지가 보내주신 강아지가 아닐까 하며 이름을 별이라고 지어주었다. 그렇게 별이가 우리에게 오게 되었다.


그리고 별이는 아무런 예고도 없이 우리를 떠났다. 의사를 원망한들 고소한들 별이가 살아서 돌아오지 않으니 의미가 없겠지, 하는 마음에 멍하니 이별 첫날을 보냈다. 회사에서도 가던 시간이 병원에 맡기고 온 후 어쩜 그렇게 안 갈까 싶더니, 떠난 후에는 더 가지 않았다. 괴로운 회사에서도 하루는 갔는데 나의 소중한 친구가 없는 세상에서 하루는 도저히 지나가질 않았다. 아침에 올려달라고 침대로 와야 하는데 조용했고, 발이 바닥에 부딪히며 나는 특유의 구슬 소리가 들리질 않았다. 그래도 무얼 먹어야 하나 해서 부엌으로 나가보니 달리의 시계처럼 늘어져 자고 있어야 하는 모습이 보이질 않았고, 냉장고를 뒤척이면 총총 걸어와 식탁 밑에 숨어서 지켜보고 있어야 하는데 그 눈망울이 보이질 않았다. 친구가 떠난 지 21시간, 나의 세상은 통째로 흔들린 듯 다른 삶이 되어버렸다.


"날이 추운데 장례를 어떡하나..."


선배의 소식을 들은 지 삼일째 되는 날, 출근 전 아침을 먹으러 식탁에 앉으니 엄마가 창밖을 보며 걱정하셨다.


"날이 추운데 어떡하나..."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엄마는 장례식 첫째 날, 둘째 날은 잘 버티다가 마지막 날 할아버지 관을 실은 채 출발할 때 병원을 나와 외갓집에 들러 장지에 도착할 때까지 엉엉 우셨다. 할아버지는 요즘은 청년이라고도 불릴 나이에 일찍 돌아가셨는데, 나는 그때 평생 엄마가 우는 모습을 처음 보았다. 할아버지는 딸을 참 많이 사랑하신 분이었는데, 부모의 마음이 다 그런 거라면 소년의 아버지도 그러지 않으셨을까. 소년의 아버지는 소년을 얼마나 아끼고 사랑하셨을까. 또 소년은 예고도 없이 아버지를 떠나보내게 되어 그 마음이 얼마나 찢어지고 또 무너지고 있을까. 그에 비하면 영상과 영하의 경계를 왔다 갔다 하는 바람은 따뜻하게 느껴졌다.


점심이 지나가고 2시가 지날 무렵 당신이 이제 병원에서 나와 장지로 향하고 있겠구나 싶어 가느다란 실로 연결되어 있는 마음이 저려왔다. 빈소부터 병원 입구에 대기하고 있는 차로 향하는 그 길은 너무나도 짧아서 이리도 짧다니 인생이 허무하지 않은가 생각했던 나의 옛 기억이 떠올랐다. 아마도 아버지의 모습을 끌어안고 걸어야 할 소년도 그러지 않을까 마음이 저려왔다. 그렇게 날이 어두워지고 퇴근 시간이 다가오니 이제 절차가 다 끝났을까, 당신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 또 마음이 저려왔다.


'오늘도 잘 버티고 있어요?

사실 병원을 나오는 날이 제일 힘든 날이죠. 하루가 너무 짧잖아요.'


마음만은 내내 옆에 같이 있었는데, 장례식을 다시 갈 걸, 가서 소년을 한번 꼭 안아주고 올걸 싶었다. 그래도 소년이 어디 있는지 알 수 있었던 병원을 다시 갈 걸 싶었다. 소년의 얼굴이 돌아가는 길 내내 마음에 걸렸는데, 그제 어제 다스려지던 마음이 오늘은 걱정으로 뒤덮여 불안해졌다.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어 침대 구석에 앉아 그저 소년이 너무 아프지 않길, 소년이 너무 괴롭지 않길 기도하는 것뿐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리고 얼마나 간절히 기도했을까, 다시 눈을 떠봤을 땐 이미 자야 하는 시간을 훌쩍 지나 새벽이 내려앉은 공기가 느껴졌다. 출근을 해야 하니 잠이 오질 않아도 억지로 자야겠다 싶어 핸드폰을 잠깐 확인하고 내려놓으려는데 -


'소현씨.'


간절한 마음이 통한 걸까. 몇 분 전 도착한 소년의 이름이 맨 위에 올라와있었다. 조심스레 열어본 창에는 소년의 마음이 한 자 한 자 담겨있었다. 모든 사람들이 응원해주는 것 같아도 용기 내지 못했던 나에게 한번 더 기회를 주듯 소년의 마음이 도착해 있었다. 한 줄 한 줄 읽어 내려가다 나에게 이 시간에 연락을 해온다면 소년이 얼마나 외롭고 무서워서 그럴까 싶어 나는 고민을 하다 용기 내 당신에게 전화를 걸었고, 연결음이 몇 번 울린 후 전화를 받은 당신은 울고 있었다. 소년이 울고 있었다. 그 흐느낌이 그대로 전해져 말을 이을수가 없었다. 어쩌면 내가 들으면 안 되는 마음을 들어버린 것만 같았다. 왜 안 자냐는 물음에 소식을 들은 이후 잠이 잘 오질 않는다고 했다. 그날 장례식장에서 소년의 두 눈을 마주한 이후 그 얼굴이 마음에 박혀, 소녀도 모르는 사이 소녀와 소년은 가느다란 실로 연결돼 당신의 감정 또한 나의 감정이 된 것이 이유가 아닐까 했다. 소년은 울며 자기 일처럼 마음 써주어서 고맙다고 말했다. 그러고는 자기가 해준 게 뭐가 있냐며 미안한 마음을 덧붙였다. 소녀는 아무렇지 않은 듯 감정을 배제한 채 답했다. 당신이 작년 이맘 즈음에 나를 참 많이 도와주었는데, 그 시간에 대한 보답일 뿐이니 미안해할 필요도 고마워할 필요도 없다고.  


그때 만약 소녀가 마음을 누르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담아 대답했다면, 그 하나가 달라져 또 많은 것이 달라졌을까. 소년이 마음에 들어와 소년의 두 눈이 마음에서 떠나질 않는다고. 사실 소년이 걱정되어 잠이 오질 않는다고. 너무 걱정이 돼서 소년에게 다시 달려가고 싶었는데 용기가 부족해 그저 소년이 홀로 외롭게 지키고 있을 그 어디 즈음을 바라보는 것으로 대신해야 했다고. 빚을 갚았을 뿐이니 미안해할 필요도 고마워할 필요도 없다는 말이 아닌, 소녀가 소년의 곁에 있으면 안 될까, 내가 당신 옆에 있으면 안 될까 물었다면 무엇이 달라졌을까.


'오늘도 여전히 아무것도 괜찮지 않지만

우리는 또 한 번 버텨냈네요.'


별이가 떠난 후 나는 별이를 떠나보내며 마음을 정리하다 일기에 몇 줄을 적어 내려갔다. 고맙다고. 나는 네가 있어 그 시간들을 다 버텼다고. 너 아니었으면 못 살았다고. 네가 있어서 다 이겨내고 다 살아냈다고, 정말로. 너무 보고 싶고 8년 전 그날 우리 집에 와줘서, 아무것도 해준 게 없는데 마지막까지 나의 친구로 남아주어서 고맙다고.


만약 내가 당신에게 미안해할 필요도 고마워할 필요도 없다는 말이 아닌, 덕분에 힘들었던 계절을 버텼는데 아마 선배 아니었으면 그대로 무너졌을 거라고, 선배가 있어서 다 이겨내고 다 살아냈다고 말했더라면. 우연히 당신과 내가 같은 팀으로 배정받아 인연으로 이어지게 되어 참 좋았다고. 사실 어제 다시 달려가고 싶었는데 지금이라도 가면 안 되겠냐고 물었다면 -



- 그랬더라면, 또 많은 것이 달라졌을까.



작년 어느 날 꿈처럼 당신을 만나



당신은 나의 스물아홉이던 날들의 주인공이 되었다.



스물아홉이던 계절에

당신이 주인공이었다.


#4. 작년 어느 날 꿈처럼 당신을 만나, 당신은 나의 스물아홉이던 날들에 주인공이 되었다


#그해우리는 #김지웅 #국연수



매거진의 이전글 그러면 우리는 그 하나가 달라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