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뭐 있겠어? 믿고 싶은 사람 말을 믿으면 되지."
S: 오케이, 시작하겠습니다. 이번 주 책은 <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입니다. 어떠셨어요?
Y: 이번에도 역시나 시기적절하게 책을 잘 골랐다는 생각을 했고, 이게 소설이 맞나? 싶은 생각도 들었어. 어떤 의미에서 너무 현실적이야. 너무 현실적이고 각각 등장 인물도 그렇고 너무 있을 법한 사람들을 가지고 있을 법한 내용으로 엮어가니까 아까 네가 말한 것처럼 어딘가 실제로 존재하는 독립서점이 아닐까? 싶어서 찾아보게 됐어. 그리고 이것도 아마 시리즈로 나오지 않을까 싶기도 했어. 그렇다면 그다음 내용은 러브 스토리로 나오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들고. 되게 인간적인 소설이었어. 우리의 정서를 촉촉하게 적셔주는 너그럽고 배려 깊은 이야기들... 그래서 저는 재밌게 읽었습니다.
S: 저도 <달러구트>가 생각나면서 대신 마법은 없고 현실적인데, 그렇다고 또 에세이 같지는 않고 픽션 느낌은 있고. 그러고 휴남동이 연남동 느낌이 아닐까? 생각했어요. 이 책은 그냥 베스트셀러라서 집었고 독서모임에서 다룰 생각은 없었는데 생각보다 너무 재밌어가지고 하게 됐죠.
언니는 여기 나왔던 캐릭터 중에 언니랑 제일 비슷하다고 생각한 사람이 누가 있었어요? 제일 공감이 가거나 혹은 제일 마음이 끌리거나...
Y: 마음이 끌렸던 친구는 민철이. 고등학생인 그 친구를 응원했고 마음이 쓰였어. 이제 앞으로 이 친구의 방향은 어떻게 될까 궁금하게 되고. 그리고 인상 깊었던 캐릭터는 승우. 승우가 오빠랑 되게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어. 그래서 승우를 보면서 아, 오빠도 이런 생각인 걸까? 이런 마음인 걸까? 생각을 하게 됐지. 다른 캐릭터들도 다 너무 좋았어.
S: 맞아, 특별히 밉상인 캐릭터는 없었어요. 다 특색 있고 성격도 다르면서 각자의 매력이 있고. 나는 제일 좋았던 캐릭터는 승우! 작가님이 제일 좋았고 내가 생각할 때에 굉장히 적절하게 표현할 땐 표현하고 말 때 말고, 티 낼 때는 내고 물러설 때는 물러서고 자기 절제를 할 수 있는 사람인 것 같아서 멋졌어요. 그리고 민준이도 짠했어요. 민준이도 그냥 자기 인생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하고 또 진로를 두고 부모님하고 의견이 부딪히기도 하는 면에서 공감이 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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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 영주가 서점을 열게 되는데 서점의 방향성과 특징을 생각하면서 이 서점에 어떤 책을 들여놓느냐, 어떤 책이 좋은 책인가 기준에 대해서 고민하는 부분이 있었는데 너에게 좋은 책의 기준은 뭐야?
S: 저에게 좋은 책의 기준은 일단 밑줄을 치거나 따로 공책에 필사하는 부분이 많으면 많을수록 더 와닿은 책으로 남아요. 밑줄을 치거나 따라 적는 이유는 두 가지인데 (1) 너무 좋은 깨달음을 줬거나 (2) 너무 아름다운 문장이거나. 또 두 번째 기준은 특별히 손이 가는 책이면 좋은 책이에요. 퇴근하고 읽고 싶은 책?
Y: 나도 두 가지인데 첫 번째는 뭔가 내 마음이 동하는 책. 그게 네가 말한 것과 비슷한 결인데 나도 뭔가 공감이 가는 부분에 포스트잇을 붙이거나 표시를 하거든. 문장이 와닿아서 마음을 촉촉하게 하는 경우도 있고 동기 부여가 되는 내용일 때도 있고 마음을 관통해서 찔림을 느끼는 경우일 때도 있어. 그리고 좋은 책의 또 다른 기준은 다른 누군가에게 추천하거나 선물할 수 있는 책인 것 같아. 내가 그 책을 읽고 너무 좋았기 때문에 나한테만 머물지 않고 다른 누군가도 같이 느껴볼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선물하게 되니까.
S: 그런 의미에서 예전에 교회를 안 다니던 직원이 자기한테 좋은 책은 성경책이라고 했던 적이 있었어요. 그 친구가 메신저 피드에 계속 성경 구절을 올리는 거예요. 그래서 하루는 궁금해서 교회를 다니냐고 물었는데 안 다닌대. 그럼 왜 성경 구절을 올리냐고 물으니 성경을 읽으면 자기 마음이 너무 평안해진다는 거예요. 갑자기 그 친구 생각이 나네요...
Y: 성경 구절을 통해 평안을 얻는다면 그 사람에게 성경책은 좋은 책이네.
S: 왜 나한테는... (웃음)
Y: (웃음)
S: 비슷한 질문을 적어뒀었는데 영주가 책을 입고할 때 따지던 기준이 있었어요.
영주는 책을 입고할 땐 다음의 세 가지를 주요 기준으로 따졌다.
1. 그 책은 좋은 책인가, 2. 그 책을 팔고 싶은가, 3. 그 책은 휴남동 서점과 잘 어울리는가.
딱 보기에도 정성적인 기준이라서 아마 다른 사람들이 볼 땐 ‘사장 마음대로’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영주에겐 매우 중요한 기준이었다. 영주가 서점 일을 즐겁게 하기 위해서.
언니는 관계에 있어 지속할지 정리할지를 정하는 기준이 뭐예요?
Y: 최근에 관계에 대해 진짜 많이 고민하고 있는 상태야. 내가 지속하는 관계들은 뭐라고 딱 정리가 안 되는데, 내가 정리하게 되는 관계들에 있어서는 하나의 키워드가 있어 - 무례함. 무례한 태도에 대해서는 너그러울 수 없더라고.
S: 최근에 그런 상황이나 예시가 있어요?
Y: 예를 들어 당연하게 여기는 거? 나의 어떠한 영역에서 상대방이 니즈가 있을 수 있어. 근데 보통은 상대방이 정중하게 요청을 하는 게 일반적이잖아. 근데 무례하게 마치 당연하다는 듯이 요구를 하면 정이 떨어진다고 해야 되나? 뭔가 지나치다는 생각이 들더라고. 그렇게 느껴지는 관계들에 대해서 바로 정리하지는 않지만, 그냥 자연스레 거리를 두게 되는 것 같아.
그리고 관계에 있어 또 하나의 큰 변화는 삶의 희로애락을 느끼면 느낄수록 좀 더 간결해지고 애를 쓰는 영역이 조금씩 줄어드는 것 같아. 어렸을 때는 모든 사람에게 동일한 에너지를 쏟으면서 그들과의 관계를 유지하는 게 유익함이라고 생각했고 그 관계가 넓을수록 나에게 유익하다고 여겼는데, 시간이 지나고 여러 계절을 겪으면서 느낀 건 넓은 관계가 아니라 좁은 관계 안에서 지속성이 어쩌면 더 중요하겠다는 걸 느껴. 그것도 상호작용이 가능해야지 일방적인 관계에는 한계가 있어. 무례한 관계 안에서도 상대방은 나한테 지속적인 관계를 요청할 수 있어. 하지만 난 무례한 것은 수용이 안 되니 쌍방이 될 수는 없거든. 그러면 그 관계는 한계가 있지. 그러니 지속성은 서로의 노력인 것 같아. 어떤 관계가 서로의 노력으로 인해 유지된다면 굉장히 소중하다고 생각하고 그 관계에 더 많은 에너지를 쏟아야 한다고 생각해.
최근에 대학교 친구들을 오랜만에 만났는데 그 만남이 마냥 편하지만은 않았어. 뭔가 각자가 노력을 해서 만나는 모임이구나가 느껴졌는데, 그래서 나는 참 소중했어 노력해서 모였다는 것 자체가. 만나서 서로 100% 각자의 삶에 공감을 못할지라도 서로를 생각하는 마음으로 노력하고 모임을 지켜온 거거든. 그래서 오히려 나한테 소중하더라고. 관계는 갈수록 많은 노력이 필요하기도 한 것 같아. 어렸을 때는 관계를 맺고자 하는 의지가 없어도 학교에 가면 봤잖아. 그러니 너무 자연스럽게 유지가 됐던 건데 이제는 각자의 영역이 너무 다르고 맞춰서 만나는 거니까.
너는?
S: 저는 상처예요. 좋은 기준은 아닌 것 같은데 그 사람하고 나의 관계에 상처가 나면 정리를 하는 것 같아요. 근데 몇 년 전에는 상처가 한 번만 나도 정리했는데, 요즘에는 그래도 그건 너무 야박하다 싶어서 한 세 번까지는 보는 것 같아요.
Y: 세 번이라니 엄청난데?
S: (웃음) 근데 내가 느낀 건 한 번 상처를 낼 사람이면 보통 세 번 내더라고요. 그리고 세 번 안 낼 사람이면 보통 그 첫 번째 상처도 내지 않고요.
Y: 그걸 알면서도 세 번을 참아줘?
S: 몰랐어 (웃음). 최근에 나의 데이터를 돌려보다 알게 되었어요. 그리고 그것도 있어요. 웬만해서는 첫인상이 맞는 거 같아요. 난 그런 경우는 종종 있는데 예를 들어 첫인상이 별로였어. 근데 그다음에 지속적으로 보니까 어? 내가 생각했던 사람이 아니었네? 괜찮네? 했는데 아니야 (웃음). 시간이 더 지나서 데이터가 더 축적되면 잠깐 괜찮아 보였을지 몰라도 결국은 첫인상으로 돌아오더라고요. 생각해보면 첫인상은 그 사람의 무의식 속에서 나온 것으로 결정되잖아요, 어떤 표정이나 순간적인 말투나. 근데 적어도 회사 안에서의 관계들을 생각해보면 되게 인위적으로 행동하는 게 많단 말이에요. 그러니 관계를 유지하며 서로 인위적으로 대했던 모습들보다, 처음에 순간적으로 자기의 본모습이 나왔던 게 더 정확할 때가 있다는 걸 좀 느꼈어요. 그리고 보통 안 좋은 경우가 더 맞아떨어지는 것 같아요. 첫인상이 안 좋았을 경우 결국에 별로일 확률이 더 높더라고요.
Y: 상처는 어떤 거야?
S: 예를 들어 자신의 가치관이나 생각을 강요할 때요. 특히 화나 짜증을 내면서 강요할 때? 그리고 저의 기준은 나였다면 저 말을 안 했을 텐데, 나였다면 상대방한테 그렇게 대하지 않았을 텐데라고 생각하게 되면 정이 떨어져요. 근데 그게 야박하다는 생각은 해요. 나는 일반적으로 표현을 덜 하고 사니까.
[SKIP]
S: 영주가 승우한테 물어본 것 중에 작가님과 작가님의 글은 얼마나 닮았냐는 질문이 있었는데 언니는 언니의 글과 닮은 것 같아요?
Y: 애매한데 닮은 것 같으면서도 아닌 것 같아. 우선 나는 되게 솔직하려는 편이야. 그리고 솔직한 글을 좋아해. 그래서 내가 일상생활에서 표현하는 것보다 더 신랄하게 또 가감 없이 표현하려고 해. 내가 말로 내뱉지 못하는 이야기를 글로 풀어냄으로 해소를 하는 것 같아. 근데 그렇게 풀어내는 글들은 결국 또 너무 좋으려고 해. 그러니까 뭐라고 해야 되지... 글이 좋으려고 하는 게 아니라 좋게 끝내려고 하는, 결과가 해피엔딩이길 바라는 느낌. 내가 긍정을 추구하는 성향이긴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그렇지 못해서 그렇게 긍정적인 걸 추구하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어. 그래서 또 온전히 그 글이 나와 닮았다고 생각할 수 없는 것 같고... 근데 또 추구하는 방향에 있어서는 비슷한 것 같기도 하고 약간 애매해. 또 그것도 있어. 나의 어려움과 상처가 현실에서는 시간이 지나 미화될 수 있는데 글은 그때 나의 생각과 마음, 감정을 그대로 기록해서 쓰니까 글이 좋은 것 같기도 해.
S: 저도 비슷해요. 저는 글을 쓸 때 훨씬 솔직해지는 것 같고, 그래서 감정을 다루면서 솔직한 나의 마음을 나누기에 글이 더 쉬워요. 근데 어쩌면 그건 그냥 그 차이일 수도 있어요. 이렇게 사람을 앞에 두고 얘기하는 거랑 브런치의 경우 불특정 다수가 읽는 곳이니 상대방이 보이지 않아서 더 편한 것일 수도 있어요. 인스타는 물론 누구에게 공개되는지는 알지만 그럼에도 직접 대면하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서 더 솔직하게 적는 것 같기도 해요.
Y: 그럴 때 영어로 쓰는 거 아니야? (웃음) 그래서 영어로 올라오면 아, 오늘 희원이가 뭔가 공개하고 싶지 않구나라고 생각했어 (웃음).
S: (웃음) 근데 저는 글을 쓰면서 미화하는 것도 있어요. 근데 그건 미화하려고 하는 게 아니라 문장을 아름답게 만들려다 보니까 미화될 때도 있어요. 얼마 전에 되게 웃긴 걸 봤는데, 뭐더라... 모든 글 뒤에 "여름이었다"를 붙이면 멋있어진다는 그런 내용이었는데 (웃음). 예를 들면
숙희랑 떡볶이를 먹으러 가는 길이었다.
여름이었다.
이런 거였는데 이걸 보고 빵 터졌거든요. 그런 느낌으로 미화할 때가 있는 것 같아요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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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 지미가 남편 때문에 힘들어했는데 민준이가 너무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고
"이런 말 해도 괜찮을지 모르겠지만요. 사장님도 한번 진지하게 생각해보셨으면 좋겠어요."
"뭘?"
"가족에 대해서요. 한번 가족이라고 해서 계속 가족일 필요는 없잖아요. 사장님이 가족과 함께할 때 불행하다면, 그건 아닌 것 같아요."
지미가 말없이 민준을 봤다. 지미는 지금 민준이 한 말이 마음에 들었다. 지미가 망설이고 망설이면서 스스로에게 하지 못하던 말을 민준이 용기를 내 해주고 있었다. 지미는 민준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언니가 민준이었다면 똑같은 말을 해줬을 것 같아요? 근데 이것도 다르지. 지미가 언니의 친구일 때랑 지미가 언니의 딸일 때랑 해주는 말은 또 다를 거 아니에요.
Y: 내가 친구라면 민준이와 같은 얘기를 해주지 않았을까? 근데 엄마였어도 나는 친구 같은 말을 해주고 싶어. 친구 같은 입장으로 조언해줄 수 있는 엄마였으면 좋겠어. 너는?
S: 저는 친구였으면 그 사람이 원하는 대로 생각한 대로 말해줬을 것 같아요, 그 사람의 생각을 지지하는 방향으로. 보통 마음에 이미 어느 정도 정했을 테니까 그걸 지지하는 방향으로 말해줄 거 같아요, 용기를 주는 방향.
그런데 딸이다? 혹은 엄마다? 동생이다? 그러면 내 의견이 좀 가미되겠죠. 내가 생각하기에 옳은 게... 상대가 자식일 때가 나의 의견이 제일 많이 가미되겠죠.
Y: 어쩔 수 없는 것 같아. 더 살아본 사람으로서 부모는 자식이 고생하지 않았으면 좋겠는 거니까. 내가 그 고생을 낱낱이 해 봤으니 좀 더 좋은 방법을 알려주는 건데 그렇다고 그걸 깨닫기까지 지난 나의 삶을 다 일일이 나누지도 않잖아. 그러면 오히려 내 이야기를 내 자녀에게 낱낱이 다 설명해주는 게 현명할 수도 있겠어. 그렇다면 관계가 솔직해지겠지. 그러면 좀 더 이상적인 가족이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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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 전 승우가 영주를 좋아하는 마음이 되게 은은한 느낌이었어요.
Y: 맞아. 최근에 봤던 많은 커플들의 고백 장면 중 제일 인상 깊었어. 공항으로 향하는 순간에 30초 동안 상상해봐라 나와 함께 할 시간에 대해, 그게 싫으면 안 가겠다. 싫진 않다. 그럼 오케이, 가겠다. 그게 신선했어. 그리고 무엇보다 영주를 생각하는 마음이 사려 깊었기 때문에 더 매력적이었어. 아픔을 갖고 있는 영주인데 그걸 무시하고 자기의 감정만을 앞세울 수도 있잖아. 근데 당장 결혼하자는 게 아니라 우리 서로 좋아해 보자는 거다, 그렇게 부담스럽지 않게 다가가는 그런 스텝들이 매력적인 인물로 만들었지.
승우는 영주를 보지 않은 채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대로 문을 향해 걸어갔다. 영주가 그 뒤를 따랐다. 문 앞에서 승우는 잠시 멈춰 섰다가 몸을 돌려 영주를 봤다. 그는 자기가 그녀를 바라보고 있는 걸 좋아한다는 사실에 마음이 아팠다. 승우는 이대로 영주를 끌어안고 그녀의 등을 부드럽게 쓸어주고 싶었다. 그리고 그녀에게 사람은 누구나 상처를 주고받는 법이라고, 사람은 누구나 만나고 헤어지는 법이라고, 영주도 그때 그런 것뿐이라고, 영주도 이미 알고 있을 그 사실을 말해주고 싶었다.
...뭐라 대답하지 못하고 있는 영주를 승우가 가만히 바라보았다. 승우는 자리를 뜨지 못한 채 한동안 그렇게 서 있었고, 침묵 끝에 마지막으로 영주에게 말했다.
"대표님. 전 지금 대표님에게 결혼하자고 하는 게 아니에요. 그냥 서로 좋아하자는 겁니다."
승우가 할 말을 끝낸 뒤 고개 숙여 인사하고는 문을 열고 나갔다. 서점 외부에 켜진 불이 승우가 가는 길을 밝혀주고 있었다. 영주는 승우가 떠난 문 앞에 한참을 서 있었다.
S: 언니 말대로 나도 그 대사가 되게 설레었어요. 결혼하자는 게 아니라 우리 그냥 지금 서로 좋아하자는 뜻이라는 말이 맞고 그렇게 풀어놓으니까 굉장히 단순 명료한데, 우리는 항상 그걸 되게 복잡하게 생각하잖아요. 좋아하니까 이래야 되고 저래야 되고, 그러다가 결혼하게 되면 또 이렇고 저렇고. 이렇게 생각하다가 좋아만 하자는 걸 못하죠.
저는 둘이 같이 밥 먹고 찻집에 갔다가 돌아가는 길에 모과청을 주는 게 제일 설레었어요. 그거야말로 진짜 간당간당한, 친구로서 줬다고 할 수도 있고 근데 그렇게 치기에는 너무 섬세하고 사심 있는 것 같잖아요. 언니는 모과청 같은 기억이 있어요?
전통찻집에서 나온 두 사람은 자연스레 역 쪽으로 걷기 시작했다. 지하철 입구 앞에서 두 사람은 마주 섰다. 오늘 즐거웠다고 말하는 영주에게 승우가 코트 주머니에 넣어놨던 모과청을 건넸다. 영주가 화장실에 간 사이 사놓은 모양이었다. 모과청을 건네받은 영주가 이렇게 섬세하기 있기냐며 활짝 웃었다.
”마실 때마다 행복해지시라고요.”
”정말 그래야겠어요.”
Y: 옛날 옛적에, 이건 오빠는 아니고. 아, 다시 할까? (웃음) 내가 이 집에 맨 처음에 자취를 시작했을 때 만나던 남자친구가 있었는데 그 남자친구가 여기에 공유기를 설치해줬는데 그걸 지금까지 너무 잘 쓰고 있단 말이야.
S: 공유기 중요하죠.
Y: 근데 그게 왜 생각났을까. 다시 하자 (웃음). 너는?
S: 저는 제가 모과청을 준 기억들이 먼저 떠오르는데, 제일 먼저 떠오르는 건 그때 사수가 장례를 치를 때 연락하던 것들이나 혹은 헤어질 때 준 선물이나, 나의 섬세함을 따라올 자가 없다고 생각해요 (웃음). 나의 섬세함을 재현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거라 생각하는데 그걸 재현한 사람이 한 번 있었어요. 초등학교 때 버디버디 시절의 친구인데 그냥 그 어린 시절 서로 장난치고 놀던 친구가 프랑스로 가게 됐어요. 그러고 나는 연락이 끊겼고 현석이랑은 둘이 친해서 계속 연락을 하고 지냈대요. 그러다 그 친구가 중학생 때 다시 한국으로 귀국했는데, 하루는 현석이가 그 친구네 집에 놀러 갔다 우연히, 이게 잘못 들으면 호러가 될 수도 있는데, 내 졸업사진을 오려서 몇 년 동안 지갑에 넣어두고 다녔다는 걸 알게 된 거예요. 초등학생 때 헤어져서 중학생 시절 내내 사진을 품고 다녔던걸 나는 나중에 고등학생이 되었을 때 현석이를 통해 우연히 알게 됐어요. 그래서 되게 미안했던 기억이 있어요. 나를 참 애틋하게 추억해줬구나. 저의 모과청을 뛰어넘은 모과청이에요.
근데 너무 미안한데 왜 이름이 생각 안나지 (웃음)... 아, 얼굴은 생각이 나는데 이름이 뭐더라...
Y: (웃음) 아, 모과청이랑은 좀 결이 다른데 최근에 오빠가 우리 집에 같이 설날에 내려갔거든? 근데 오빠가 잠깐 문구점을 들리자는 거야. 그래서 왜 그러냐 물어보니까 설날이니까 가족들이 다 같이 윷놀이하면 좋겠다고 사가자는 거야. 근데 그게 나한테 모과청 같았어. 우리 가족을 생각해서 하는 노력? 윷놀이랑 공기랑 사서 같이 하자고 먼저 제안해주고 노력하던 오빠의 모습이 내가 느낀 섬세함이 아니었을까...
[SKIP]
Y: 책에서 정기적으로 독서 클럽을 운영하는데 민철이 엄마 이름이 희주였나? 희주가 리더가 되어서 이끌었던 주제 중에 일에 대한 게 있었어. 일을 바라보는 우리의 태도에 대한 이야기였는데, 내가 공감했던 부분은 일을 무조건 해야 한다는 강박으로 사람들이 살아간다는 것이었어. 그게 나도 공감이 가는 게 다음 스텝을 준비할 때 예를 들어 환승 이직을 하는 것도 무조건 내가 일을 해야 한다는 전제 하에 하는 액션인 거잖아. 일을 안 한다는 건 보기에 없는 거야. 그런 나의 선택이 조금은 안타까운 거지. 근데 이게 또 모순적인 게 일을 안 하고 있으면 또 일을 하고 싶어. 근데 또 일을 계속 해야겠다는 강박으로 살아가는 나 자신도 뭔가 안쓰럽고... 그래서 그 양면성을 어떻게 적절하게 소화할 수 있을까 생각을 하게 됐는데 지금 딱 전환의 시기에 있으니 너무 두각 되는 거 같아. 일을 하지 않으면 나의 다음 스텝에 있어서 한계가 생기고, 또 일을 하면 나의 경력이 계속 이어진다는 장점도 있고. 하지만 지쳐 있으니 큰 전환 앞에 있는 나에게 너무 타이트한 것 같기도 하고... 결혼이라는 큰 테마 앞에서 그 기점으로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이 또 나뉘잖아. 그걸 내가 온전히 누리지 못할 수도 있다는 아쉬움도 있다 보니 그 양면이 나한테는 너무 고민이 돼.
너는? 너는 일을 해야 하는 것과 하지 않아도 되는 그런 양면성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해? 근데 넌 또 일을 워낙 좋아하니까 안 하고 싶은 마음은 없잖아?
S: 일을 안 하고 싶은 마음도 컸었죠. 더 어렸을 때는 일을 해야만 해서 하는 마음이 있었어요, 남들이 보기에 백수일 순 없으니까. 백수여도 당당했던 시절은 20대 중반에 끝난 것 같아요. 그래서 예전에는 남들의 시선 때문에 백수이면 안되고 일을 꼭 해야만 된다고 생각했다면, 요즘에는 관점이 달라져서 나의 재능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요. 아무것도 안 하기에는 나의 재능이 아깝다, 이 생각은 20대 후반을 넘기면서 들기 시작했어요. 예전에는 나의 가치를 잘 몰랐던 것 같은데 서른이 넘으면서부터는 그리고 좀 이렇게 한가한 시즌을 맞이하면서는 오늘 하루 내가 그냥저냥 어영부영 보낸 시간이 되게 많은 걸 바꿀 수 있었던 시간이 아닐까에 대한 아쉬움이 들더라고요. 둘 다 결국에는 그래서 일을 안 할 수는 없다는 결론이지만 그 동기의 차이는 큰 것 같아요. 남들의 시선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백수가 되지 못하는 것과 vs. 시간이 아깝고 재능이 아까워서 일을 하고 싶은 것. 그게 아까 언니가 말한 회사나 공동체에 기여하고 싶은 마음과 비슷하겠죠.
이것도 일이라는 주제와 연결해서, 왜 3명의 독립 서점 주인들이 예비 창업자들과 대화하는 세션이 있었는데 영주였는지 다른 사장님이었는지 모르겠는데
“먼저 저는 A대표보다 덜 벌 때도 있고 더 벌 때도 있다는 말씀을 드릴게요. 지난달에 돈을 못 벌었다 싶으면 이번 달엔 이벤트를 왕창 열어서 사람들을 끌어모으고, 그러다 지치면 잠시 쉬었다가 다시 또 적극적으로 밀어붙이는 식으로 서점을 운영하고 있어요. 저 역시 다른 분들과 마찬가지로 서점을 운영하면서 과연 이걸 언제까지 할 수 있을지 고민이 많이 됐어요.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이런저런 고민을 안고 서점을 시작하잖아요? 그 고민은 분명 서점을 하면서도 계속 될거예요.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이거예요. 우리는 무슨 일을 하든 고민을 하게 될 거라는 거요. 서점을 안 하고 다른 일을 하더라도 고민은 생길 것이고, 또 그 일이 아닌 다른 일을 하면서도 고민은 하게 될 것이라는 거죠. 결국 이거예요. 나는 어떤 일을 하면서 고민을 할 것인가. 저는 아직까지는 서점을 운영하면서 고민을 계속 해보자, 하고 생각하고 있어요.”
그러니까 고민이 있을까 없을까의 문제가 아니라 어떤 일을 하면서 고민을 하고 싶은지의 문제라고 했는데 나는 이게 되게 명쾌했단 말이에요. 만약에 전제가 어차피 어떤 일을 하더라도 고민은 생긴다라면, 또 이걸 다르게 적용해서 어떤 일을 하더라도 후회는 남고 어떤 일을 하더라도 어려움은 있다라면, 그렇다면 어떤 일을 하면서 고민을 하고 싶은가?
그건 있었어요. 지난주에 내가 언니한테 카톡을 보냈지만, 지난번 브런치를 정리하면서 그때 우리가 많이 얘기하는 주제 베스트 3을 꼽으면서 회사 얘기를 할 때 주로 상사 욕이나 "출근하기 싫다"는 말을 제일 많이 한다고 했는데, 이전 회사에서는 그렇지 않았단 말이에요. 다른 리더급 동기나 친구들하고 이런 문제는 어떻게 해결해? 이런 팀은 어떻게 관리해? 등 일에서 해결해야 했던 문제들에 대한 토론을 했었는데, 고민의 무게가 너무 달라진 느낌이었어요. 나는 후자의 고민을 하고 싶어요. 머리는 더 터질 것 같겠지만 그래도 출근하기 싫다는 것도 되게 괴로운 마음이잖아요. 회사 가서 9시간 꾸역꾸역 앉아 있어야 하니까. 그러니 이 책의 문장을 적용해본다면 어차피 무슨 일을 해도 고민은 있다면 전에 했던 고민들이 훨씬 생산적이었어요.
Y: 그래도 그 두 가지 종류의 고민 중에서 뭐가 더 위대하고 뭐가 더 하찮은지를 따질 수는 없다고 생각해. 그래서 나는 지금 네가 하고 있는 고민들에 대해 하찮게 여기지 않았으면 좋겠어. 그래도 내일 출근하기 싫어서 고민하는 근로자들이 있기 때문에 회사가 운영되고 이 나라가 돌아가는 거니까 위대하다고 생각하거든. 퇴근할 때 불 켜진 빌딩들을 보면서도 그래, 저기 저 한 자리에 불이 안 꺼졌기 때문에 오늘 이 나라가 운영되는 거 아닐까!라고 생각해.
S: 그것도 그렇네요. 어렸을 때는 고민이 없는 어딘가가 존재한다고 믿었던 것 같아요. 행복의 나라, 저길 가면 아무런 고민도 없을 그곳. 근데 고민이 없는 행복의 나라는 없다고 하면 계산이 달라지잖아요. 이제까지는 행복의 나라를 찾아서 어딜 가도 고민이 있으니까 불행했던 건데, 어딜 가도 고민이 있는 게 당연하다면 새로운 곳에 갔는데 그곳에 고민이 있다고 다시 불행해지진 않는 거니까요. 고민이 있는 건 당연한 거니까.
Y: 그렇네. 나도 오빠와의 관계에 있어서 이런저런 고민이 들지만, 네 말대로 어떤 곳에서도 고민을 하고 어떤 상황에서도 고민을 한다면 이렇게 생각하면 되겠네. 그 고민의 자리에 오빠가 있는 것이 좋은지 함께하지 않는 것이 좋은지.
S: 그게 더 정확한 질문인 것 같아요. 그러니까 요즘 생각해보면 나이를 먹는다는 건 내가 생각했던 전제들이 무너지고 새로운 전제들이 세워지는 과정인 것 같아요. 사실 전제가 바뀌었다고 해서 답을 알게 되는 건 아니지만, 전제가 바뀜으로 인해 질문이 굉장히 달라지는 경우는 많더라고요. 요즘에는 왜 애굽을 나와서 40년 동안 광야를 떠돌았냐가 이해가 가요. 한 방에 깨달아지지 않거든요 (웃음).
[SKIP]
Y: 승우가 민철이한테 이런 말을 했거든. 자기는 좋아하는 일을 5년 했고 좋아하지 않는 일을 5년 했는데 어떤 삶이 더 나았을까 생각해 보면 좋아하지 않은 일을 했던 때라고. 좋아하지 않는 일을 함으로써 한국어에 몰입하게 됐고 지금의 자기를 만나게 됐는데, 결국 좋아하는 일을 할 수도 있고 좋아하지 않은 일을 할 수도 있지만 삶이 행복한가 행복하지 않은가를 책임지지는 않는다고 했어. 그래서 민철이에게 글을 잘 쓸 건지 못 쓸 건지 고민하지 말고 우선은 써보라고, 일단 무조건 부딪혀보라고 했는데 너에게 지금 그런 테마는 뭐야? 이거를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하고 있는 것.
S: 퇴사요 (웃음). 고민은 충분히 했어. 답도 알 거 같아. 그리고 이미 오래 참았어. 이제 해야 되는 건 사표를 내는 건데, 할 수 있을까요? 다다음 주에 사표 내려고 했는데 (웃음). 언니는요?
Y: 나는 글을 쓸지 말지. 내가 원래 블로그에다 한 번씩 썼는데, 어느 순간 나의 영역이 너무 많은 사람들에게 오픈된 거야. 그러다 보니 이제 내가 쓸 수 있는 한계가 있는 거지. 그래서 일 년 동안 글을 못 썼어. 그러다 자연스럽게 그 습관이 없어지기도 했는데, 나의 감정들과 고민들이 어딘가에 남아 있지 않는 게 아쉽기도 하고 그 고민이 뒷받침되어야 나도 더 성장할 텐데 지금은 뭔가 붕 떠 있는 느낌? 그래서 글을 써볼까 하고 있는데 아직 고민만 하는 것 같아. 나도 만약 브런치를 시작하게 되면 알려줄게!
[SKIP]
S: 저희의 마무리 질문! 가장 좋았던 부분을 알려주세요.
Y: 나는
나는 남을 위해 일을 하는 순간에도 나를 위해 일해야 한다. 나를 위해 일을 하니 대충대충 하면 안된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이 있다. 일을 하는 순간에도, 일을 하지 않는 순간에도 나 자신을 잃지 않아야 한다.
S: 나는
영주는 “너를 이해할 수 없어”, “넌 왜 너만 생각해”라고 말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떠나온 사람들의 목소리로 덮었다. 영주는 그녀 몸에 담긴 떠나온 이들의 목소리에 힘입어 이제는 이렇게 용기를 내어 스스로에게 말할 수도 있게 되었다.
'그때는 그럴 수밖에 없었어.'
[EXTRA]
지미가 찬장에서 커피 잔을 꺼내면서 웃었다.
"인생 뭐 있겠어? 믿고 싶은 사람 말을 믿으면 되지."
“계약 연장 안 하신다고 할 줄 알았는데, 갑자기 마음을 바꾼 이유가 뭐예요?”
할 말을 다 끝낸 기자가 일어나려다 말고 승우에게 물었다. 그간 무뚝뚝하게 굴었던 승우를 한 번쯤 골탕 먹이고 싶었는데 지금이 다신 없을 기회 같다는 생각을 하며. 기자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띠고 승우를 바라봤다. 기자의 눈빛에 무언가가 있다고 느낀 영주도 역시 고개를 돌려 승우의 옆모습을 바라봤다. 승우는 기자가 눈치를 챘다는 걸 알았지만 이를 겉으론 드러내지 않았다. 그저 평소와 똑같은 표정과 목소리로 이렇게 말할 뿐이었다.
"앞으론 조금 더 즐겁게 글을 쓸 수 있을 것 같아서요."
기자는 짧게 웃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영주에겐 마음을 적절히 숨기면서 자신에겐 “기자님이 알게 된 것 다 알아요”라고 말하는 듯한 센스 있는 대답에 더는 장난을 치고 싶지 않아졌다.
나란히 앉은 두 사람은 갑자기 할 말이 없어졌다. 짧은 침묵을 뚫고 승우가 말했다.
"우리 밥 먹을까요?"
“...한국에서도 가끔 마시던 차니까 별생각 없이 마셨는데 출장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와도 그 맛이 자꾸 생각났어요. 그래서 그때부터 집에서 자스민차를 마시기 시작했습니다... 맛은 재현되지 않았지만 자스민차가 그때의 기억을 불러왔어요.”
"어떤 기억요?"
승우가 따뜻한 찻잔을 손가락으로 쓸며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자신을 보는 영주를 봤다.
"그땐 정말 힘들었어요. 다 때려치우고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거의 매일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우연히 들른 그 식당에서 왠지 모를 위안을 받았던 것 같아요. 분위기 때문인지도 모르겠고 친절한 사장님 때문인지도 모르겠는데, 그곳의 어떤 것이 힘을 북돋아줬어요. 그 덕분에 일도 잘 마칠 수 있었던 것 같고요.”
"고마운 장소네요."
"네, 그렇죠. 그런데 제가 이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
"이 찻집도 오래도록 기억날 것 같습니다. 그런 느낌이 들어요. 미래의 수많은 순간에 지금 이날을 기억하게 될 것 같다는 느낌이요."
"요즘 많이 힘드셨어요?"
영주의 말에 승우는 웃음을 터트렸다. 영주는 승우가 소리 내 웃는 모습을 신기해하며 쳐다봤다. 누구나 저렇게 웃을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왠지 신기했다. 평소 승우의 모습에선 쉽사리 상상하지 못하던 모습이어서일까, 아니면 크게 웃는 모습이 생각보다 잘 어울려서일까. 오늘따라 느긋하게 풀어진 승우의 표정이 그를 조금 다른 사람 같아 보이게 했다.
“그런데, 작가님. 그럼 글을 제대로 잘 쓰려면 어떻게 해야 해요? 엄마가 제대로 잘 써서 내라고 했거든요.”
승우가 테이블에 놓여 있던 볼펜을 들며 말했다.
"아까 말했잖아. 솔직하게 쓰라고. 정성스럽게 쓰라고. 솔직하고 정성스럽게. 그렇게 쓴 글이 제대로 잘 쓴 글이야."
“그냥, 뭐랄까. 좀 생각을 많이 하게 되는 그런 영화였어요. 나는 내가 바라던 어른이 되었나 생각해보고, 꿈을 좇는 삶에 관해서도 생각해보고요.”
"생각의 결과가 뭐였는데요?"
영주가 질문서 수정 내용을 기계적으로 옮겨 적으며 물었다.
"...제 기억이 맞는다면 거기서 주인공 남자의 엄마가 그러잖아요. 행복이란 무언가를 포기해야만 손에 잡히는 거라고요. 남자가 오랫동안 소설을 못 쓰고 있죠?"
영주가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쓰지 못하던 그 시간 동안에도 남자는 소설이란 꿈을 좇고 있었잖아요. 그래서 행복하지 않았고요. 엄마가 이렇게 결론을 낸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해요. 그놈의 꿈 때문에 내 아들이 불행해진 거라고요. 이 장면에서 전 남자에게 연민을 느끼기보다 엄마 말에 동의했어요. 그렇지, 꿈 때문에 불행해질 수도 있지."
영주가 키보드를 두드리다가 멈췄다.
"엄마가 이런 말도 하잖아요. 이루지도 못할 꿈을 좇다 보니까 하루하루가 즐겁지 않은 거라고요. 맞는 말이긴 하죠. 그래도, 꿈을 좇으면서 즐거울 수 있다면 좇을 만하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