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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닙 Jan 20. 2022

완벽하지 않은 엄마가 되려고 노력 중입니다

초보 엄마에게 필요한 한 단어


출산 후 나의 시간은 아기를 기준으로 흘러간다. ‘지금 몇 시지?’ 보다는 수유한지 몇 시간 지났는지를 떠올린다. 오늘이 몇 월 며칠인지는 몰라도 생후 164일차인건 안다. 첫째 딸 별이에게 내가 세상의 전부이듯 나의 세상에도 별이가 꽉 들어차 있다. ‘엄마’라는 새로운 역할은 아직도 조금은 낯설다. 여전히 종종 실수하고, 부모로서 알아야 할 것도 많다. 아기에게 간지럼을 태우면 안 된다는 것도 최근에야 알았다. 좋아서 웃는 건 줄 알고 자주 태우곤 했었는데! 이렇게 서툰 엄마여도, 별이에게 나는 유일무이한 안식처다. 


그래서일까. 별이의 눈동자 속에 비친 저 여자가 어쩐지 세상에서 가장 강한 사람인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이렇게 말하면 남편이 웃을지도 모른다. 첫 한 달은 그토록 나약할 수가 없었으니까. 친정에서 산후조리를 할 때였다. 가족 모두 외출하고 별이와 단 둘이 있을 땐 극도로 불안해졌다. 가장 긴장됐던 건 대변 기저귀 갈기였다. 제발 똥은 싸지 말아줘, 기도해봐도 별이는 꼭 우리 둘만 있을 때 똥을 쌌다. 


당시의 나를 누군가 봤다면 시트콤 찍는 줄 알았을 거다. 일단 침대에 눕힌다. 조심스레 기저귀를 벗긴다. 앗, 침대에 깔아 둔 속싸개에 똥이 묻었다. 속싸개를 바닥에 내려놓는다. 잘못 놔서 뭉개 버렸다. 손빨래거리가 늘어났다. 당황한 채 아기를 세면대로 데려간다. 한 팔로 부둥켜안고 한 손으로 엉덩이를 씻긴다. 갑자기 아기가 배에 힘을 준다. 마음이 급해 손바닥으로 받아 낸다. 아기는 시원한지 웃는다. 손에 묻은 똥을 닦아내던 내 기분이 어땠는지는 노코멘트.


지금 생각하면 웃음이 나지만 그 땐 똥 하나에도 절절맸다. 어디 그 뿐일까. 별이가 친정 엄마나 남편 품에서는 잘 먹고 잘 자는데 내 품은 불편한지 찡찡거렸다. 우유 먹이는 것도, 트림시키는 것도 익숙해지기까지 꽤 오래 걸렸다. 당시의 나는 별이에게 사랑해보다는 미안해라고 더 많이 말했던 것 같다. 


온종일 육아정보를 수집하는 것도 아기 돌보는 것과는 별개로 또다른 스트레스였다. 임신 기간에 완모(완전 모유수유)를 꿈꾸며 열심히 공부했지만 출산 일주일 만에 젖을 말리게 되면서 허둥지둥 분유 타는 법을 찾아봤다. 미리 사둔 기저귀가 잘 맞지 않아서 당근마켓에서 급히 다른 브랜드 기저귀를 구했다. 잠은 또 어찌나 안 자는지! 소위 등센서를 막아준다는 육아템은 닥치는 대로 다 알아봤다. 유튜브와 맘카페를 넘나들며 정보 검색만 해도 하루가 모자랐다. 


피로와 산후우울감이 켜켜이 쌓여가던 어느 날, 우연히 한 댓글을 봤다. "의사선생님이 그러시더라고요. 아기는 엄마가 키운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스스로 자란다고요. 아기들은 수시로 변해요. 지금 운다고 몇 달씩 우는 거 아니고 지금 잘 안 잔다고 계속 안 자는 거 아니고 배앓이도 몇 달씩 하는 거 아닙니다. 그냥 시간이 가면 좋아져요." 유독 마지막 단어가 가슴에 남았다. '그냥'. 이 단어가 이렇게 기분 좋게 들릴 수도 있구나. 평소엔 왠지 성의 없는 말 같았는데, 전전긍긍 일희일비 육아를 하던 초보 엄마에게 필요한 처방은 ‘그냥’이라는 단어였다.


모든 것에 ‘그냥’을 붙이기 시작하니 육아가 한결 나아졌다. 우유를 찔끔 먹다 남겨도, 낮잠을 도통 길게 못 자도, 그냥 흘러가는 대로 놔두었더니 정말 신기하게도 점점 잘 먹고 잘 자기 시작했다. 엄마가 되면 아이 앞에서 완벽한 슈퍼우먼이 되어야 하는 줄 알았는데, 그건 나의 욕심이었다. 


아기가 스스로 할 수 있도록 한 발 물러나 빈 틈을 만들어주었더니 그 틈 사이로 여유가 생기고 행복이 차오른다. 입을 한껏 오므리며 옹알거릴 때, 자기 손가락을 신기한 듯 관찰하며 꼼지락거릴 때, 본능적으로 뒤집고는 힘들다고 징징댈 때, 멀리서 나를 가만히 바라보다 갑자기 싱긋 웃을 때, 그야말로 모든 순간 순간이 더없이 사랑스럽다. 이렇게 엄마가 되어가는가 보다. 



2021년 2월 씀

새닙의 육아에세이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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