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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닙 Jan 21. 2022

철이 없었죠, 육아휴직하면 쉴 줄 알았다는 게

육아휴직의 휴는 '한숨쉴 휴'인 듯


육아휴직은 나에게 굽 높은 구두와 같다. 신발장에 한 켤레쯤 두고 싶은 예쁜 그것. 막상 신으면 불편해서 차라리 맨발로 걷고 싶게 만드는 그것. 현실 육아에 무지했던 나는, 육아휴직이 그동안 쉬지 않고 달려온 직장 생활에서 잠시 벗어나게 해줄 달콤한 휴식이라 생각했다. 만 6개월 아이의 엄마가 된 지금은 하루빨리 육아휴직이라는 하이힐에서 내려와 회사에서 이리 뛰고 저리 뛰고 싶다고 생각한다.


지금 다니던 회사에 입사했을 때 나는 스물여덟이었다. 좋은 팀원들을 만났고, 매년 새로운 프로젝트를 수행했고, 책 집필 같은 흥미로운 일에도 참여했다. 그렇게 4년이 흘렀다. 그 사이 지금의 남편을 만나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가졌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직장 생활에 숨 고르기가 필요하다고 느끼던 찰나에 육아휴직을 쓸 수 있게 되었다. 야호 드디어 쉰다! 


휴직 첫날,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회사 메일 계정에서 로그아웃하고 사내 메신저 앱을 지웠다. 그땐 휴직이라는 두 글자에 취해 미처 깨닫지 못했다. ‘육아휴직’ 네 글자에서 방점은 앞 두 글자에 찍혀 있다는 것을. 쉬는 게 쉬는 게 아니라는 것을. 회사 출퇴근은 없지만, 육아에는 더더욱 출퇴근이라는 게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회사 다닐 때와 마찬가지로 새벽 6시에 눈을 뜬다. 휴대폰 알람 말고 아기가 나를 깨우기는 하지만. 아기를 먼저 씻기고 놀아준다. 남편이 일어나면 그제야 후다닥 세수와 양치를 한다. 철컥, 쾅, 또각또각. 바쁘게 출근하는 옆집 여자의 발걸음이 7시 15분임을 알려준다. 아기에게 우유를 먹이고 다시 놀아준다.


밀린 메일을 읽곤 했던 9시에는 밀린 빨래와 젖병 설거지를 한다. 정오가 되면 볕이 잘 드는 거실에서 이유식을 먹인다. 팀원들과의 수다 대신 아기와 마주 앉아 일방향 대화를 한다. 맛있지? 응, 맛있구나. 사무실에서 혼잣말하면 이상한 사람이 되지만 육아하면서 혼잣말 안 하는 사람은 아마 없을 거다. 이젠 거의 연극 톤으로 말하는 경지에 이르렀다.


사람들이 부지런히 집으로 돌아가는 저녁 8시, 서부간선도로가 보이는 베란다에 서서 아기를 안고 재운다. 붉게 빛나는 자동차 행렬을 보면 출퇴근길이 새삼 그리워지곤 한다. 잠투정하는 아기를 간신히 재우고 저녁을 먹는다. 우리 부부에게 육퇴는 없다. 아기가 언제 깰지 몰라 저녁상을 차릴 때도, 다 먹은 그릇을 싱크대에 넣을 때도 긴장 상태다. 작은 인기척이라도 들리면 눈을 똥그랗게 뜨고 동시에 방문을 쳐다본다. 


유일하게 휴직 전과 같은 점은 남편과 침대에 나란히 누워 각자 휴대폰을 보며 한 시간 두 시간 뒹굴다 잔다는 것이다. 아무리 잠이 부족해도 이 시간만큼은 빼앗길 수 없다는 듯이. 하루 중 가장 소중하고 평화롭고 마음이 편안해지는 시간이다. 육아일기를 쓰고, 인스타그램에 들어가 친구들의 자유로운 일상을 동경하고, 아주 가끔은 회사 인트라넷에 접속해 공지사항을 읽기도 한다(대체 왜 이러는 걸까). 


그러다 마지막 종착지는 늘 사진 앨범이다. 셀카, 음식, 여행 사진 대신 어느새 아기가 지분을 잔뜩 차지하고 있는 내 사진첩. 육아가 고단했는지 깜빡하고 한 장도 찍지 않은 날도 있고, 신이 나서 예쁘게 머리띠까지 씌우고 수백 장 셔터를 누른 날도 있다. 바로 옆에서 곤히 자고 있는데도 앨범 속 아기를 한참 들여다보며 남편과 낄낄 웃다가 잠이 든다. 새벽에 수유하느라 금방 또 일어나겠지만 말이다. 


쉴 틈 없는 휴직 중이지만, 그래도 이렇게 날마다 웃으며 잠들 수 있어 행복하다. 다시 생각해봐도 육아휴직은 하이힐이 맞는 것 같다. 나를 비틀거리게 하지만, 아름답고 소중하다. 벌써 가을이면 복직이다. 더 부지런히 신고 달려야겠다. 



2021년 3월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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