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나보니 코로나 베이비
그날은 이상하게 몸이 천근만근이었다. 결혼 후 첫 휴가를 떠나기 일주일 전이었다. 설마 아니겠지, 하면서도 퇴근길에 약국에 들러 임신 테스트기를 샀다. 어라? 두 줄이네. 때마침 들어온 남편에게 벌게진 얼굴로 임신했다고 외쳤다. 그리곤 기쁨과 아쉬움이 뒤섞인 눈물을 머금고 항공권을 취소했다. 2020년 1월 중순이었다. 저녁 뉴스에 중국 우한의 원인불명 폐렴이 심상치 않다는 보도가 나왔다.
그렇게 별이는 콩알만 할 때부터 코로나 베이비가 되었다. 입덧이나 빈뇨 같은 임신 증상보다도 전염병에 대한 두려움이 나를 무척 괴롭게 했다. 임산부가 코로나19에 걸리면 태아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아무도 몰랐다. 모두가 불안한 시기였다. 사람들이 약국에서 공적 마스크를 살 때도 줄 서는 것조차 겁이 나 집에만 있었다.
물론 걱정만 하지는 않았다. 아기가 뱃속에서 엄마의 희로애락을 느낀다는 말을 듣고 억지로라도 코로나 생각을 지우려 애썼다. 가급적 뉴스도 안 봤다. 온통 심각한 이야기뿐이었으니까. 이건 사실 변명이다. 아이를 가진 이후 굉장히 세상일에 무지해진 나에 대한 변명이다. 아무튼 태교도 틈틈이 했다. 태교 동화도 읽고, 손재주는 없지만 뜨개질도 하면서 마음을 다스렸다.
가을이 됐다. 별이가 세상에 나오던 날에도 나는 분만실에서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병원에선 모자동실도 금지였다. 하루 서너 번 수유 콜을 받고 가야 품에 안아볼 수 있었다. 그것도 산모만 허락됐다. 남편은 사흘 내내 별이를 눈으로만 담아야 했다. 코로나19가 유독 원망스러웠던 날들이었다.
본격 육아를 시작하자 우리는 더욱더 자유롭지 못했다. 남편은 며칠 기침을 하더니 혹시 모른다며 두 번이나 자발적으로 자가격리를 했다. 백일이 지나 집에 친구들을 초대하고 싶었지만 확진자가 늘었다는 소식에 마음을 접어야 했다. 코로나 시대를 예견했더라면 아기를 좀 더 늦게 갖지 않았을까 생각한 적도 있다. 내 아이가 이런 혼란스러운 시절을 겪게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별이가 태어나고 하루도 크게 웃지 않은 날이 없다. 울기만 할 줄 알던 미완성의 작은 생명체가 하나씩 인간다운 스킬을 획득해갈 때마다 남편과 나는 크게 환호했다. 사회적 미소를 짓고, 옹알이하고, 뒤집기를 하고, 푸푸 투레질을 하고, 스스로 이불을 얼굴에 덮어 까꿍 놀이를 하는 모습을 보면 참 행복해진다. 하루하루 행복의 총량이 늘어난다. 퍽퍽한 코로나 시대에 행복과 사랑이 되려 충만해질 수 있도록 때맞춰 아기천사가 찾아와준 것 같다.
여전히 코로나19는 매섭지만, 어느덧 찾아온 봄은 따스하다. 겨우내 집에만 있던 별이를 유아차에 태워 부지런히 바깥 구경을 다닌다. 처음 마주하는 풍경들이 마스크로 둘러싸여 있어 안쓰럽다. 왜 사람들이 눈만 내놓고 다니는지 별이는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꽃 하나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호들갑스럽게 보여준다. “이거 봐 꽃이야 꽃!” 걸음마다 멈춰 서서 하나하나 설명해 주느라 집 앞 산책도 1시간씩 걸린다.
흐드러진 꽃 무더기와 벤치에 앉아 조는 길고양이, 자전거 타는 가족들과 떡볶이 사 먹는 아이들. 우리가 일 년 전 마음껏 누렸던 일상의 단면들을 별이가 조금이나마 느끼고 기억해주기를 바란다. 내년 봄에는 마스크 벗은 사람들 사이를 아장아장 뛰어다니는 별이를 마음 속에 그려본다.
2021년 4월 씀
새닙의 육아에세이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