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와 일의 평행선을 달리며
'단 하나의 초능력이 주어진다면?'이라는 질문에 내 대답은 한결같았다. 몸이 여러 개로 복제되게 해주세요. 워낙 행동이 느리고 생각도 오래 하는 편이라 늘 시간에 쫓기는 내겐 이만한 능력이면 딱 좋다. 굼뜬 몸을 나눠서 한 몸은 이 일을 하고 동시간대에 다른 몸은 저 일을 하면 얼마나 좋을까.
아기를 낳고는 초능력이 더 절실해졌다. 몸 전체가 어려우면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팔이라도 딱 한 개만 더 생기게 해주세요. 두 팔로는 아기를 안고 있으니 한 팔로 밥이라도 먹게. 팔이 저리면 다른 팔로 교대라도 하게. 신생아를 돌보면 몸과 마음이 약간 정상이 아닐 때가 많아서 허튼 상상을 자주 하게 된다. 팔 하나만 더 만들어달라는 소원에 진심을 꾹꾹 눌러 담아 빌었다.
일 년의 육아휴직을 마치고 회사로 돌아갔을 땐, 내 소원이 너무 소박했다는 걸 깨달았다. 육아휴직은 팔이 세 개라도 모자란다고 생각했지만, 워킹맘은 몸이 세 개쯤 되어야 하는구나. 회사에선 아기가 눈에 밟히고, 아기를 돌보면서는 집안일을 생각하고, 집안일 하면서는 못다 한 회사 일을 걱정하는 뫼비우스의 띠가 머릿속에서 뱅글뱅글 이어졌다.
이렇게 하소연하고는 있지만, 나는 워킹맘 중에서도 난이도 최하위에 속한 운 좋은 여자임을 고백한다. 언제든 아기를 돌봐주실 수 있는 부모님이 차로 10분 거리에 살고 계시고, 내년에는 직장 어린이집 입학이 예정돼 있으며, 재택근무를 적극적으로 권장하는 회사에 다니고 있어 월 2~3회 정도 사무실에 출근한다. 흔한 대한민국 워킹맘들의 애로사항 중 상당수를 나는 감사하게도 면제받았다.
마치 면죄부 같은 면제권을 누리게 될 거란 걸 다행히 임신 전부터 예상했다. 만약 이런 환경이 아니었다면, 예를 들어 주변에 아무 연고도 없는 지역에 살거나 워라밸이 좋지 않은 회사에 다녔다면, 애초에 아이를 갖는 것부터 진지하게 고민했을 것이다. 내겐 일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육아 때문에 일을 그만둬야 한다면 도저히 견딜 수 없을 것 같았다. 다행히 도움을 얻을 수 있는 여건이 되어 별 탈 없이 워킹맘으로 두 달째 잘 살고 있다.
이렇게 복에 겨운 상황이지만, 그래도 몸이 세 개였으면 좋겠다. 능력 있는 커리어 우먼이 되고 싶은 마음과 아이의 성장을 한 컷도 놓치고 싶지 않은 마음은 늘 평행선을 달린다. 이 둘을 동시에 이루기는 쉽지 않다. 평일에는 하루에 3시간 정도를 아이와 함께 보낸다. 그나마 놀아줄 수 있는 시간은 저녁뿐인데, 7시에 아이가 집에 오면 두어 시간 놀다가 잠을 재운다.
복직하기 전엔 저녁이 되면 아이를 빨리 재우고 싶어 안달 났었는데, 지금은 저녁이 너무나 소중해졌다. 아이가 늦게 잠들면 오히려 좋다. 예쁜 모습을 많이 볼 수 있으니까. 잠들기 전까지 잠시라도 심심해하지 않게 하려고, 더 많이 웃게 하려고 노력한다. 걸음마를 하면 엄청난 리액션으로 응원해주고, 부엌 서랍을 열면 기꺼이 모든 냄비를 꺼내주고 국자도 쥐여준다. 잠자기 싫어하며 이불을 만지작거리면 뒤집어쓰고 까꿍 놀이를 한다. 오은영 박사님이 '양보다 질이 중요'하다고 말씀하신 것을 위안 삼아 두 시간을 꽉꽉 채워 논다.
몸을 여러 개로 쪼개는 대신 시간을 쪼개어 살 수밖에 없는 워킹맘의 삶. 많은 워킹맘들이 일도 육아도 다 잘하고 싶지만 결국 이도 저도 못 해서 속상해한다는 이야길 들은 적이 있다. 어떻게 사는 게 잘하는 건지는 아직 모르겠다. 하나를 얻으려면 다른 하나를 어느 정도 포기해야 하는 현실이 슬프고 안타깝다. 그 힘겨운 일을 해내고 계시는 선배 워킹맘분들이 대단하고, 나 또한 올바른 답을 찾아가는 과정에 있다. 초능력 대신 시간을 효율적으로 나눠 쓰는 능력부터 키워봐야겠다. 아이의 마음속에, 엄마가 마냥 바쁘기만 한 사람이 아니라 뭐든지 뚝딱뚝딱해내는 파워워킹맘으로 기억되길 바란다.
2021년 11월 씀
새닙의 육아에세이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