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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탄쟁이 Apr 03. 2024

꿈과 공부성적의 우선순위는?

진로*교육*미래

내 마음은 지금 갈팡질팡. 내 나이는 지금 열다섯. 어떤 게 더 좋은 길일까. 난 어릴 적부터 꿈이 너무 많았어. 
... 중학교에 들어서서 내 꿈은 건축 미술가와 공간 디자인의 꿈을 가지게 됐어. 아빠의 영향이 컸지. 우리 아빠는 직업이 정말 많아. 입시미술학원 원장, 모 대학교 겸임고수, 모 대학교 사회원 미술 강사. 또 예전엔 부산 미술협회장이기도 했어. 근데 아빠는 화가라고 불리는 것을 매우 좋아했지. 나만의 화가인 아빠는 나에게 공간에 대한 디자인과 같은 류에 소질이 있다고 본거야. 나는 잘 몰랐지만 아빤 그걸 느꼈데. 아빠를 따라서 여러 건축물 구경도 하고 사진도 찍고 엄마랑 아파트 리모델링 하는 곳에 가서 인테리어 구경 가고 또 직접 투상도를 그리면서 나만의 공간을 그려보기도 했어. 나도 아빠의 피를 물려받아서인지 그림을 못 그리지는 않으니까 아빠는 내가 건축미술과 공간디자인에 대한 장래를 가질 거라고 확신하고 있었지. 남들이 장래희망이 뭐냐고 물어보면 미술건축과 공간디자이너가 되는 게 꿈이에요라고 당차게 얘기할 수 있었어.

하지만 얼마 전 내 마음이 흔들리게 된 일이 있었어. 이모네 가족과 우리 가족의 여행이었는데 가까운 거리에 살고 워낙 친하게 지내서 솔직 담백한 말을 주고받았는데 이모부는 건설회사 부사장이기 때문에 내 꿈에도 관련이 없진 않을 거라 생각해서 장래희망 이야길 늘어놨거든. 이모부가 나에게 몇 가지 질문을 하게 됐어. 건축 건설에 관련된 거라면 수학을 잘해야 되는데 수학은 잘하냐 물어보시더라고. 난 그냥 수학은 반에서 4~5등 하는 편이야. 그래서 나는 ‘아니오 좀 못 하는데요’ 하니까 말이 끝나자마자 ‘그러면 좀 어렵겠네. 그리고 건축회사에서 여자 사원은 오래 못 가’ 이러시는 거야. 그땐 그냥 더 노력하면 되겠구나. 근데 옆에서 듣고 계시던 이모가 하신 말씀이, ‘목표를 정하고 그 목표에 다다르려 하지 말고 일단 먼저 공부부터 잘한 다음에 자신의 장래를 정해. 그게 폭이 넓고 더 좋아’라고 말하시는 거야. 내가 이때까지 살아오면서 들어온 말은 ‘공부 열심히 해라’가 아니라 ‘목표를 세우고 노력해서 공부를 해라’였거든. 그냥 흘리는 말이겠거니, 근데 이모부와 이모는 나에게 성적과 학교에 관한 질문을 하기 시작했어. 나는 꼬박꼬박 대답을 했고 그 대답에 따른 말은 ‘그거 하려면 어렵겠는데’였어. 나는 내 꿈에 자신감을 넣지 않은 적이 없었어. 나는 내 꿈에 불가능이 없다고 생각을 했었어. 그리고 그렇게 내 꿈에 대해 확신을 가지고 있었어. 그런데 난 이 대화를 통해 점점 작아지게 됐고, 이모부와 이모의 결정은 거의 내가 그 꿈을 포기해야 한다는 쪽으로 몰리게 됐지. 나의 가능성을 보고 있던 아빠도 이모와 이모부의 말에 화가 났는지 ‘제 딸은 가능성 있습니다. 열심히 할 수 있습니다’라고 정확히 말했지만, 그때 옆에 엄마가 말하는 거야. ‘일단 공부부터 잘하고 봐야지 뭔 말이 많아 입만 살아서.’ 편을 가르려고 시작한 대화는 아니지만 나의 편은 아빠. 그리고 이모부와 이모와 엄마 그렇게 편이 나뉘게 되었어. 아빠는 끝가지 내 얘기를 들어주었지만 이모, 이모부, 엄마는 가능성이 없다는 식으로 말했지. 난 그때 정말 화가 났어. 나를 못 믿는 가족들에 대한 화에, 내가 정말 안 되면 어떻게 하나 하는 슬픔도 서려있었어. 내 생각은 이모부와 이모의 말 그대로 공부가 중요하긴 해. 그렇지만 자신의 능력을 보여주려고 하면 학력부터 보는 게 아니라 능력을 먼저 보고 학력은 부수적인 요소로 읽혀져야 한다고 생각하거든.
이렇게 생각하고 있지만 내 마음은 싱숭생숭, 갈팡질팡. 확신하고 있었던 나의 빛나는 장래는 이대로 공부 앞에서 우르르 무너지게 놔두어야 할까? 내 마음을 어떻게 잡고 다스려야 하는지 모르겠어. 자다가도 불안한 내 꿈에 대한 생각을 하면 벌떡 깨는 정도는 아니자만 조금씩 걱정을 하곤 해. 분명히 나는 건축미술과 공간디자인의 길을 걸을 거야. 그런데 이상하게 불안하고 진정되지 않은 이유가 뭘까? 나의 이런 모습에 다른 어른들은 ‘아직 15살밖에 안 됐으면서 아직 장래를 결정하기엔 너무 이르지 않느냐. 고2 애들도 장래를 못 정하는 판에 중2짜리가 무슨’이라고 혀를 끌끌 차기도 하지만 나는 그 생각에 반대야. 사람들은 더 커서 넓은 장래 폭에서 꿈을 고르라는 말을 해. 하지만 나는 내 길을 하나 정하고 난 다음에 그 길에 알맞은 가지를 쳐서 넓혀나가야 한다고 생각하거든. 이런 나의 대답에 어른들은 또 ‘15살이 무슨 말을 늙은이같이 하냐’고 태클을 걸지. 어른들의 태클을 하나하나 받아쳐주면서도 내 꿈에 확신을 하지 못하고 마음은 갈팡질팡 흔들리고만 있어. 이런 내 마음 어떻게 해야 할까. 또 나에게 어떤 길이 더 좋은 길일까.




전적으로 아빠가 옳으시구요, 이모하고 이모부는 좀 속물이시구요, 엄마는 좀 난처하세요. 이모 하고 이모부가 속물이시건 좋은데 문제는 뭣도 모르신다는 거예요. 그니까 직업을 어떻게 골라야 하는지, 어떻게 꿈을 형성하고 애가 어떻게 학업을 해나가야 되는지에 대한 올바른 단계를 본인들이 올바른 단계를 밟지 못했기 때문에 자기들이 겪은 단계를 옳다고 지금 보고 있는 거예요. 근데 그건 자기들의 경우지 남의 경우에도 옳은 길은 아니거든요? 그다음에 자기가 어떤 희망이나 꿈같은 것들을 설정하고 학업 성적 같은 것들이 그것을 이루기 위해서 뒤따라가는 것이 전 세계적으로 보편타당한 가치이고, 그게 맞는 길입니다. 그러고 나서 ‘성적을 올려놓고 그 성적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나중에 골라잡아라’라는.. 그 정도로 천박한 얘기를 살면서 참 듣기가 힘든데, 학생들은 많이 듣습니다. 

그리고 공간 디자인이라던가 어떤 이런 꿈들을 꾸고 있고, 거기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같이 의논을 해 주고 꿈을 키워줄 수 있는 이런 소중한 아빠라는 파트너 한 명을 가지고 있다는 게, 이모랑 이모부 같은 사람들 같은 사람이 세상에 천만 명이 있더라도, 문제는 훼방꾼 천만 명보다는 한 명의 협조자가 중요한 것이고, 아빠라는 협조자 한 명이 이렇게 있다는 것은, 정말로 중요한 겁니다. 그리고 교수이시고 강사이시고 화가인 아빠가 건축미술과 공간디자인에 대해서 딸내미한테 전문가로서 조언을 해 주면서 꿈을 키우고 있는데 뭐 비전문가가 꼭 얘기를 못할 건 없지만, 비전문가인 이모하고 이모부가 옆에서 뭐 공부를 뭐 몇 등 이상을 해야 어쩌고저쩌고..

그리고 건축회사에서 여자사원은 오래 못 간다.. 지금 15살인 소녀가 건축회사에 들어가서 있을 때 여자 사원이 오래 못 가는지 안 가는지는 세상이 얼마나 바뀔진 봐야 알겠죠. 그렇지만 건축미술과 공간디자인을 한다라는 것은 건축회사를 들어간다는 얘기가 아니거든요? 그리고 건축 설계사무소일 수는 있어도 건축회사하고는 또 다른 얘긴데, 본인이 건설회사를 하시기 때문에 지금 하는 얘기를 건설회사 들어가고 싶다로 전부 건축, 건설로 이해를 하고 계세요 지금. 디자인에 대한 얘기를 하고 있는데 건축, 건설 얘기를 실컷 하셨다잖아요 지금 이모부는. 그러니까 일단, 이모 이모부하고 미래 얘기를 하질 마세요. 말귀를 아예 못 알아듣는 사람들에게 왜 해. 일단 답이 옳으냐 그르냐가 문제가 아니고 이쪽의 질문도 이해를 못 하는데. 그런 분들과 뭐 하려고 미래 얘기를 해요. 

여러 사람의 다양한 의견을 귀담아듣는다는 것은 때로는 괜찮은 것처럼 들리지만 배가 많으면, 산이 사공으로 가. 응? 사공이 많으면 산이 배로 가요. 혹은 산이 배에 들어가서 사공이 돼요. 뭐 이렇게 되는 거니까 쓸데없는 얘기는 듣지 않을 수 있는 고집도, 우리 인생의 성공에는 필요합니다. 남의 말을 겸허히 귀담아들을 수 있는 어떤 폭넓은 마인드도 우리 인생에서 성공의 요소가 되지만, 쓸데없는 얘기에 대해선 가차 없이 귀를 닫고 무시할 수 있는 고집하고 배짱도 필요하거든요. 더더군다나 전문가인 아버지가 옆에서 조언을 해주고 있는데 뭐가 무서워요. 뭐 성적도 제가 볼 때는 충분한 것 같고. 그리고 필요성을 본인이 느끼고 그 필요에 의해서 공부를 해야 된다라는 너무나 명백한 명제가 우리나라에서 어떤 식으로 처참하게 무너지고 천민자본주의에 이해서 재단되고 있는가라는 케이스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상담인데, 와방 짜증 나네요. 그니까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그런 겁니다 그냥. 무시하세요. 목표가 먼저 있고, 그 목표를 위해서 공부를 하다가, 다른 목표가 나타나고 그게 더 좋거든, 그 목표에 맞춰서 또 목표를 수정을 하세요. 그러나 목표가 없는 것은 좋지 않고, 목표가 없지만 뭔가 되고 싶지 않은 사람은 없잖아요. 그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그게 아련하게 잡히지 않아서 계속 그냥 공부만 하면서 공부만 하려고 그게 뭔지 알아보려고 합니다.. 이런 케이스는 있지만, 가슴속에 꿈이 뭉글뭉글 피어나고 있는데 그 꿈을 일부러 접고 성적만 일단 올린 다음에 나중에 골라잡으라는.. 그런 황당한..

모르겠습니다. 저도 수학이 싫다는 이유로 맨 먼저 손들고 미분 적분하기 싫어서 문과반으로 갔는데, 미분 끝까지 안 되더라고요. 대학교 들어간 다음에 그 교양과목 중에서 들어야 되는 생물수학 이런 게 있었는데 오전에 도저히 학교를 갈 수가 없어서 그 싫어하는 수학을 들었는데 미분이 또 나오더라고요 그래서 재꼈거든요? 그런데 나중에 음향학 공부할 때 보니까 미분 또 나오더라고요? 그래서 결국 나중에 음악을 하는데 이게 필요하구나. 그래서 몇 문제 풀어보니까 되더라고요??? 그걸 고등학교 때 하지 왜 안 했는지 끝까지. 그니까 필요를 느껴서 ‘아 내가 이걸 해야 되는구나’라고 생각하면 공부가 되는 거 아닙니까?

@ 2008.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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