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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탄쟁이 Apr 08. 2024

엄마를 두고 유학을 가야 하나

가족

남들이 보기엔 아무것도 아니어도 난 정말 심각해. 하고 싶은 공부가 있어서 유학을 준비하고 있는 21살의 마녀야. 유학 준비하는 데 있어서 예상치 못했던 심각한 문제가 하나 있는데 그게 바로 우리 엄마야.

우리 엄마랑 나랑은 모녀 지간을 떠나서 진짜로 세상에서 제일 친한 친구야. 정말 사이가 좋아. 
근데 돌아가신 건 아니지만 우리 집엔 아버지가 없거든. 그래서 엄마랑 나랑 서로 의지하면서 사는데 내가 유학 가면 엄마 혼자 남게 되는 게 너무 걱정이야.
지금도 학교 때문에 엄마랑 나랑 떨어져 살고 주말에만 만나거든. 근데 왜 요즘 사회적으로 문제 되는 가족 해체 그런 거 있잖아 딱 그 꼴이야.
엄마 혼자 아침에 일어나서 식사하고 출근하고 퇴근하고 돌아와서 빈집에 혼자 있고 운동하러 다니고 그러다 보니까 우울증도 생기고 그러나 봐. 엄마가 몸도 무지하게 약한 편에 갱년기까지 겹쳐서 그래서 내가 주말에 올라가서 엄마 앞에서 재롱부려주고 같이 수다 떨어주고, 아무튼 최대한 기분을 풀어주고 그래.
내가 일종의 엄마의 스트레스 해소제인 셈이지. 내가 학교 일 때문에 2~3주 집에 못 가게 되면 엄마 상태가 별로 안 좋고 그래. 그렇다고 아무런 보장 없는 미래 없는 유학길에 엄마랑 같이 갈 순 없잖아.

정말 남들은 이게 뭐가 문제가 되나 싶을지도 모르지만 앞에서 말한 것처럼 엄마랑 난 정말 특별한 관계거든.
서로가 서로에게 유일한 가족이자 가장 좋은 친구이자 살아가는 이유야. 

근데 그렇게 애정이 클수록 이런 상황이 되니까 정말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겠어.
엄마 때문에 유학을 포기한 건 스스로도 후회돼서 못할 것 같고, 또 엄마도 자기 때문에 내가 유학 포기하는
건 바라지 않으셔. 마음이 이러니 유학 준비도 지지부진하고 엄마가 진짜 힘들게 고생해서 나 이렇게 키워주셨는데 다 컸다고 엄마 버리든 나만 잘 살겠다고 외국으로 나가는 게 엄마에 대한 배신이 아닌가 싶기도 해.
진짜 어떡하면 좋지? 내 삶도 한 번 뿐이지만 우리 엄마와의 시간도 한 번 뿐이잖아.




일단 뭐 보기에는 굉장히 보기에는 좋습니다. 그 참 모녀간에 굉장히 각별하신 그런 사이인 것 같고요.

그리고 엄마 때문에 도저히 유학 못 가겠어서 엄마랑 지내는 시간이 소중해서 같이 지내고 그럴 수 있는 길을 택한다고 해서 잘못될 것도 없고요. 그 나름대로도 저는 무척 가치 있는 일일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저 같은 경우에 케이스는 굉장히 다른데.. 제가 중학생 때 저희 집이 좀 어려워서 미국으로 이민 가 있는 친척분한테 저를 맡겨서 그때는 아주 잠깐이지만 제가 공부를 좀 했거든요 ㅋㅋ

그래서 얘를 외국에서 공부를 좀 시켜라고 얘기가 다 됐다가, 도저히 품에서는 못 떼어내겠다고 어머니가 울다 울다 못해 가지고 저를 못 보냈는데 저는 그럼으로써 우리나라에 남아서 중고등학교를 다 우리나라에서 마치게 됐죠.

저는 그게 참 좋은 결정이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중학교 고등학교를 우리나라에서 다니면서 이 청소년기를 이 나라에서 보내는데 도대체 어떤 의미인가에 대한 그 마음속의 격분을 우리 동포들하고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 있고, 그 얘기를 같이 할 수 있게 된 그것도 좋고, 그 시기에 엄마 아버지랑 같이 살 수 있었던 것 또 좋고.. 아 같이 살진 못했구나. 저희 집도 가정 문제 때문에 아버지가 집에 같이 못 살고 돈 벌러 가 계신 적이 좀 많았어요.


무슨 기분인지는 대충 이해는 하겠습니다. 근데요, 이제 '사이가 좋다'라는 것, 또 '둘이 가까이 붙어 있다'라는 것이 꼭 좋은 일은 아닙니다.

지금까지는 좋은 일인 거죠. 예를 들어서 생각을 해봐요.

지금 물론 아버지가 돌아가신 거는 아니라고 하지만 일단 홀어머니 밑에 있는 외동딸의 입장이 됩니다.

이럴 경우에 나중에 결혼을 했을 때 배우자의 입장은 갑갑해질 수 있어요. 어머니하고 사이가 너무나 가까우면은요. 

예를 들어 이게 잘 된 경우엔 '친정어머니하고 집사람이 집사람이 외동딸인데 친정어머니하고 참 각별한 사이라서 장모님이 집에도 자주 오셔서 챙겨주고 해 가지고 우리 집은 분위기가 참 따뜻하고 좋아~' 이렇게 되는 경우도 있겠지만 '야 그래도 결혼해 가지고 내가 마누라랑 사는데 말이야, 그래도 이 공간에서는 내가 좀 쉴 수 있고 그래야 되는데 야 365일 중에 330일 장모님이 온다.. 이거 나 좀 피곤하지 않냐' 이렇게 되는 수도 있겠죠.


여러 가지의 문제입니다. 그러니까 지금 현재 상태 가족이란 구성원이 어머니하고 본인 딱 둘인 상태에서 너무너무 절실하고 두 분이 최대한 같이 붙어 있고 있고 싶고 그러시지만 앞으로는 이제 이 가족 구성원의 인원수 멤버에 변화가 생기고, 혈통이 섞이지 않은 배우자가 또 가족 단위의 구성원이 되며, 그 안에서는 새로운 아기들이 또 태어나고 이제 미래를 준비하셔야 됩니다.


어머니를 저버리라는 얘기가 아니라요. 둘이 그냥 눌어붙어 앉아가지고서 손 맞붙잡고 꼭 끌어안고 있는 것이 꼭 이 좋은 일만은 아니다는 거죠.


그리고 호랑이가 새끼를 기르고 나면 호랑이 새끼가 어느 날이 오면 어느 날엔가 아무 예고도 없이 엄마 안녕이라는 이야기도 없이 사라져서 이제 자기 길을 떠납니다. 어미 호랑이는 이제 새끼가 떠난 것을 알 뿐이에요. 그런데 새끼 호랑이가 굴로 돌아와서 '난 도저히 못 떠나겠으니까 엄마랑 끝까지 살 테야' 막 이러면서 어미 호랑이 얼굴 막 핥고 그러면 어미 호랑이가 뭐라 그러겠어요?


호랑이는 독립해서 이제 자신의 사냥 구역을 갖고 자신의 고독을 즐기면서 다른 산을 향해서 가야 됩니다.

인간도 우리 어머니 아버지들한테 받은 그 은혜를 우리가 딛고서 새로운 길로 내일로 가야 되지 않습니까?

그러면 엄마 옆에 지금 옆에 붙어서 꼭 끌어안고 있어 줘야 되는 분은요. 딸이 아니고 어머니의 배우자세요. 지금 함께 안 살고 계신 아버지가 같이 계시지 못한다면 이유가 뭔지 모르겠지만 새아버지가 되실 분 혹은 엄마의 애인 분이시죠? 그분이 옆에 있어주셔야 될 분이고, 그런 사람들이 결코 이해하지 못하는 모녀간의 세계가 있겠지만 아무리 친한 딸이라 그래도 이해하지 못하는 그런 부부간의 문제가 있습니다. 그것을 딸인 본인이 다 채워주시기는커녕 솔직히 3분의 1도 못 채워드려요.


또 얼마 전에 저 형뻘 되는 분 한 분이 부인이 돌아가셨는데, 이제 주위 사람 제 또래하고 뭐 이런 몇몇 사람들이 그 돌아가신 부인께서 조금 박대를 하셨었다고 그러면서 차라리 잘됐다는 막 이런 투의 얘기를 하고 있는 사람이 있길래 제가 발칵 화냈거든요. '
여기서 우리가 형 처지 걱정해 주고 있는 후배들 5천 명보다 그 잔소리하고 물 잔 집어던지는 와이프가 더 소중한 법이다. 남자한테는. 여자한테도 그런 거고. 그걸 왜 우리가 제삼자 입장에서 왈가왈부하느냐.' 그거 좀 그렇지 않습니까?

그러니깐 옆에 있는 배우자 어머니 혹은 아버지, 그런 분들의 몫이지 내 몫이 아니에요.


부담을 가지지 말라는 뜻은 아닌데 거기에 묶여서 유학을 못 간다거나 미래에 대한 계획을 접는다거나 하셔서는 안 되고, 어머니도 그렇게 해가지고선 불편하실 테고, 또 우리가 은혜를 갚는 방법은 부모님 곁에 계속 이 모든 수발을 다 들고 뭐 하는 그런 방법도 있겠고 뭐 조선시대식으로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은요. 
품 떠나서 우리 원하는 대로 우리가 바라는 대로 살아가는 것, 그것도 이제는 효도의 일종인 그런 시대입니다.


원하는 삶을 사세요. 원하는 일을 하시고. 그리고 그 어머니 애틋해하고 안타까워하는 그 마음 어머님께서는 뭐 충분히 알고 계실 테니까 또 극단적인 생각은 하지 말자고요.

'유학 나가 있는 동안에 우리 엄마 덜컥 돌아가시면 어떡해' 지금 그런 상황 아니잖아요.

옆에서 병간호해야 되는 상황도 아니고 또 연인들이 먼 장소에 떨어져서 '롱 디스턴스 러브 어페아' 이 2억 만리 땅에서 전화질 한 번 하면 애틋한 그런 것이 생기듯이, 유학 가서 거기 그 국제통화 요금 아끼느라 그 시간 딱 정해져 있고 그 엄마랑 한 번 통화할 때.. 그런 것도 굉장히 절절하고 괜찮은 시간이고 사랑하는 사람들끼리 떨어져서 그리워하는 것도 좋은 일이라고 생각해요.


유학이라는 게 뭐, 솔직히 남편하고 이제 결혼해 가지고 완전히 외국으로 나가버리는 거라면은 요거랑 또 상황이 조금 다른데.. 유학 간 건데 그건 뭐 가야죠 뭐. 나중에 후회하지 마시고요.



@ 2003.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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