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감탄쟁이 Jun 22. 2024

고스 개미와 베짱이 재해석,
고진감래의 오류

행복*위로*인생 (마왕의 생각)

약간 다른 종류의 이야기인지는 모르겠지만요. 개미와 베짱이 이야기 했잖아요. 이솝우화에 나오는. 그래서 미래를 위해서 뭔가를 이렇게 계속 모으고 축적하고 그래서 겨울에 대비하는 개미와, 현재 연주하고 노래하고 이러면서 세월을 보내다가 나중에 추운 겨울이 돼서 개미네 집에 찾아가서 불쌍하게 '추워요' 라고 얘기해야 되는 그 베짱의 이야기가 나오잖아요. 


근데 그건 이제 노력해서 미래를 대비하고 꾸준히 먼 거리를 보면서 그런 뭐 인간형에 대한 어떤 그런 강조는 될지는 모르겠는데, 그 이야기가 가지는 폭력성도 있는 것 같아요. 뭐냐 하면 겨울을 대비하는 그 개미에 비해서 겨울이 오든 말든 노래를 부르다가 추운 겨울날 결국 얼어 죽고 말 환경에 처해서 개미의 도움을 청해야만 하는 그 베짱이의 인생관은 전혀 언급이 되어 있지 않다는 거 하고, 베짱이가 그렇다면 여름날 불렀던 노래에 대한 가치는 전혀 언급이 돼 있지 않다는 것하고, 또 그런 개미 말고 베짱이로서의 삶은 굉장히 열등하고 하등하고 가치 없는 것처럼 그렇게 보일 수도 있다는 것. 


베짱이가요, 개미처럼 무리를 지어서 영차영차 일을 해서 겨울을 대비하면 그게 베짱일까요? 제가 하고 싶은 질문은 첫 번째, 베짱이가 그래서 겨울을 대비해서 음식을 모은다면 그것이 베짱이라고 불릴 수 있겠느냐. 더 이상 베짱이로서의 아이덴티티 정체성은 어디 가게 되는 거냐? 이게 정말 골때린 문제란 말입니다. 

두 번째, 베짱이가 베짱이들끼리 모여서 회의를 하고 우리도 이제는 집단으로 거주를 하면서 음식을 모아서 같이 이 굴을 파고 해서 캠프를 마련하고 공동생활을 하면서 겨울에 대비해서 축적하고 정부를 수립하고 이런 걸 만들어보자라고 한들, 그 여왕개미의 지도하에 집단 커뮤니티를 꾸며나가는 개미들하고 애시당초에 경쟁력이 있을 것이냐? 베짱이로서의 경쟁력은 여름 한철의 경쟁력이더라도 여름날 하늘의 노래를 울려 퍼지게 하는 것이 베짱이의 임무가 아니겠느냐 이런 생각이거든요. 

셋째, 베짱이는 겨울이 돼서 얼어 죽게 되면 연주를 못하고 개미의 집에 가서 정말로 구걸을 했을까?

넷째, 베짱이는 그래서 개미한테 가서 구걸을 하지 않았을 때 겨울에 찬바람이 분다라는 것을 과연 몰랐을까, 혹은 베짱이가 겨울에 찬바람이 분다는 것을 알면서도 자신의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여름 한철에 피어나는 쪽을 택하고 노래를 부른 것은 아니었을까? 뭐 이런 데 대한 의문들입니다. 


무슨 얘기냐면 너무 미래를 위해서 현재를 유보하고 미래를 위해서 현재의 어떤 즐거움 같은 걸 억제하는 걸 너무나 당연시하는 그런 이야기를 하도 많이 듣다 보니까 어떤 의미에서 그러면 뭐 좋은 얘기고 사람이라면 의당 오늘 하루 인생 살고 말 것처럼 그렇게 행동해서는 안 되는 거니까 무슨 말인지 알겠는데, 너무 또 그런 얘기만 들으면 짜증이 납니다. 그러니까 고등학생 때 되게 화가 많이 났던 것은 고등학생이라면 진학을 하고 어른이 돼서 미래에 먹고살 길을 준비하고 이런 것들을 위해서 고등학생 시기의 즐거움에 대해서는 마땅히 포기를 해야 되지 않느냐라는 얘기를 들었을 땐 화가 굉장히 많이 났던 거거든요. 


무슨 소리냐면 그런 학교에서 내가 고등학교 1 2 3학년 3년을 날리고, 즐거움을 다 포기를 하고 어른이 돼서 성공을 했다고 할 때, 뭐 4~50이 돼서 안정이 됐다고 치자. 그럼 4~50의 안정된 행복한 순간을 누릴 수는 있겠지만 고등학생 시절의 즐거움이라든가 이런 것을 맛볼 수는 없는 거 아니겠느냐? 그게 어떻게 1 대 1의 보상이 되느냐? 가령 고등학교 때 여름방학 때 일주일 캠핑 갈 거를 내가 안감으로 해서 그럼으로 해서 성공을 한다라는 보장도 없지만 성공해서 사십 대 때 1년에 3개월을 휴가를 즐길 수 있는 위치가 되었다. 40살의 나이로 1년에 3개월의 휴가를 보내는 것과 고등학생 때 일주일 동안 캠핑을 가는 거하곤 전혀 다른 얘기다라는 거죠. 그러니까 이거는 어느 정도 조화를 이뤄야 되는 건데, 오늘만 살고 죽을 것처럼 막 그렇게 미래는 없다는 식으로 얘기한 사람들도 좀 한심한 거지만 미래를 위해서 오늘에 대한 것들은 극단적으로 희생되어도 마땅하다고 이야기하는 것 역시 대단히 극단적이고 잘못된 얘기가 아닐까요? 


물론 그 중간에서 어디서 타협하는 게 옳다는 룰은 전혀 없습니다. 그거는 그리고 니들이 알아서 타협해라- 그러면 우리는 무조건 놉니다. 예. 그런 쪽으로 가는 거지만 현재의 오늘 하루하루의 즐거움에 대해서 눈을 감고 충분히 입에다가 꿀떡 삼키는 게 아니고 삼키기 전에 아까워서 입에다가 머금고 충분히 맛을 보면서 음미하고 '아우 좋아~'라고 현재를 즐기는 것 역시 미래를 대비하는 것 중에 하나가 아닐까? 제가 지금 뭐 쾌락주의를 강조하는 건 아니고요. 그래서 나중에 나이를 좀 먹은 다음에는 하루하루 재미있고 즐거움에 충실했던 그 날들, 예전에 지냈던 날들이 후회가 안 될 것 같거든요.



@2003.12.30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