깔수록 실망만 늘어나는 민낯
싱가폴 5일차. 나의 여행파트너는 이제 떠나고 없다. 아침에 일어나보니 네팔 친구가 기다렸단듯 동일한 도움을 요청해 온다. 더 이상 이렇게 불편한 마음으로 여행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나도 할 만큼 했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적당히 핑계를 대고 다른 숙소로 옮기기로 했다. 내가 급하게 찾은 숙소는 싱가폴 외곽 지역에 있었다. 숙소 컨디션은 솔직히 최악이었다. 이제까지 내가 알던 싱가폴은 반쪽짜리였나 싶을 정도로 열악한 곳이었다. 역에서 숙소까지 가는 도로는 좁고 더러웠다. 이곳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지쳐 보였다. 여행의 설렘이라곤 전혀 찾아볼 수 없는 곳이다. 내가 생각했던 싱가폴이 아니다. 예상에도 없이 이곳으로 쫓겨난 거 같아 억울하기까지 하다. 시내로 가는 버스를 탔다. 사람들 표정이 우울하다.
버스에 탑승한 젊은 사람들 표정은 특히 지쳐 보인다. 오차드로드에서 쇼핑중인 젊은 사람들 분위기와 사뭇 다르다. 갑자기 싱가폴이란 국가에 대해 의문이 생겼다. 폭풍 검색을 시작했다. 싱가폴은 1인당 국민소득이 5만6113달러로 세계 8위, 아시아 1위인 나라로 자주 언급됐다. 그런데 이 싱가폴이란 나라에 대해 알면 알수록 실망스러운 민낯이 드러난다. 일례로 싱가폴 민주주의 지표가 167개국 중 75위에 불과하고 소득 불평등을 나타내는 지니계수는 155개국 중 123위다(참고로 126위가 나이지리아).
언론자유는 171개국 중 153위다(참고로 156위가 이라크). 표현의 자유가 사실상 없다는 거나 마찬가지다. 몇년 전까지는 오럴섹스 금지법도 있었단다. 싱가폴은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 분야’라는 조사에서 150개국 중 1위를 차지했고 행복지수는 151개국 중 90위다 (모든 수치는 2015년 기준). 더 이상 싱가폴에 있고 싶지 않아졌다. 나는 다급하게 호주로 가는 비행기표를 샀다. 적당히 몇곳 둘러보다가 듣도 보도 못한 스쿠트라는 저가항공사 비행기 티켓 발권을 서둘러 다음날 호주 시드니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모든 게 순식간에 이뤄진 일이었다.
그렇게 싱가폴에서의 일주일이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