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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eji Forrest Lee Sep 16. 2020

파타고니아 오버랜딩 #1


20분 전이다. 구글맵은 예상 도착시간이 17분 뒤라고 알려준다. 18분이 되기도 했다가, 16분이 되기도 했다가 한다. 아슬아슬하다. 좀 더 빨리 달려야 하는데 길이 너무 험하다. 비포장도로에 온통 자갈이다. 따글따글 작고 뾰족한 자갈들이 튀겨서 차 바닥을 때리는 소리가 엄청나다. 겨우 포장도로로 들어섰나 했더니 이번엔 길 중간에 큰 구멍들이 푹푹 파여 있다. 어젯밤에 유성우라도 잔뜩 떨어진 것처럼 말이다. 그냥 달리다간 바퀴가 남아나지 않을 것 같아 요리조리 피해서 가다 보니 속도는 점점 줄고 도착 예상 시간은 점점 늘어난다.


20분 뒤에 도착해야 하는 곳은 다름 아닌 공원 출입사무소. 그냥 아무 공원이 아니라 전 세계의 여행자들이 찾아오는 파타고니아의 '토레스 델 파이네' 국립 공원의 출입사무소다. 우리도 이곳에 오기 위해 칠레의 수도 산티아고에서부터 30일 가까이 달려왔다. 파타고니아를 패션 브랜드로만 알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나도 처음엔 그렇게 알게 되었다. 하지만 여행을 준비하다가 이 브랜드가 어디서 이름을 따왔는지 알게 되었다. 남아메리카 대륙의 남부, 남위 40도 이남, 나라로 치면 칠레와 아르헨티나의 남부 지역을 파타고니아라고 한다. 그 끝엔 남극으로 가는 배가 출발하는 우수아이아가 있다. 남극으로 가는 길목, 세상의 끝. 거칠고 황량하지만 자연 그대로의 모습으로 남아 있는 깨끗한 땅이 떠오른다. 그곳이 파타고니아다.


이곳이 바로 파타고니아 / © oldkwany, 출처 Unsplash


파타고니아 브랜드의 로고를 보면 높은 산들이 삐죽삐죽 솟아 있다. 파타고니아에는 그런 산들이 많다. 거대한 돌산 봉우리와 그 봉우리가 품고 있는 빙하 호수의 신비로운 모습이 전 세계의 관광객을 이곳으로 불러 모으고 있는 것이다. 우리도 오늘 그 산봉우리와 빙하 호수를 알현하기 위해 산을 탈 것이다. 단, 20분 안에 도착할 수 있다면 말이다. 나처럼 평소에 산을 잘 타지 않는 사람을 위해 일러두자면, 산에 올라갔다가 어두워지면 위험해질 수 있기 때문에 모든 산에는 입산통제 시간이 있다. 그 통제 시간이 20분 남았다는 것이다.


- 차에서 뭔가 이상한 소리 들리는 거 같지 않아?

- 글쎄, 비포장도로라서 그런 거 아니야?

- 차 느낌이 좀 이상하긴 해. 그런데 지금 멈추면 우리 시간 안에 도착 못해.

- 아, 어떡하지. 일단 그냥 가자.


불안했다. 우리는 지금 파타고니아 로드트립을 위해 산티아고에서 구입한 도요타 SUV, 우리의 듬직한 레니를 타고 달리고 있다. 레니는 힘 좋고 튼튼한 차다. 물론 기름을 많이 먹어서 우리의 통장을 텅장으로 만들고 있기도 하지만 오르막과 내리막, 자갈길과 진흙길을 모두 헤치고 우리를 이곳까지 무사히 데려다 준 일등 공신이다. 문제는 타이어다. 전 주인이 굳이 자랑스럽게 언급하며 중고차의 Selling point로 내세웠던 한쿡타이어는(그녀는 한쿡이 코리아인 것을 알고 있었을까) 이미 2주쯤 전에 한 번 펑크가 난 이력이 있다. 칠레치코라는 조그만 국경 마을에서 물어물어 찾아간 고메리아(정비소)의 과묵한 아벨 아저씨가 능숙하게 구멍을 찾아 땜질을 해줘서 다시 달릴 수 있게 되었다. 처음 보는 타이어 땜질이 신기했지만 조금 허술해 보이기도 했는데 그게 다시 터진 걸까? 도착지에 거의 다 와 갈 때쯤엔 거의 타이어 금속 휠 자체로 달리고 있는 느낌이 엉덩이 두 쪽에 고스란히 전달되었다.


아니나 다를까. 간신히 시간 안에 도착해 차에서 내려보니 레니는 왼쪽 뒤로 푹 가라앉아 있었다. 아, 또 그 타이어다.


현재 시각 오전 11시. 지금 산에 올라가지 않으면 30일을 달려온 목적을 눈 앞에서 놓치게 된다. 하지만 지금 레니를 정비해주지 않으면 오늘 밤 우리는 마을에 돌아가지 못할 지도 모른다. 이대로 두고 산을 탈 것인가. 아니면 산을 포기하고 레니를 어떻게든 해야 할까.


아침에 이렇게 방명록 쓰고 나왔는데 말이지..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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