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분 전이다. 구글맵은 예상 도착시간이 17분 뒤라고 알려준다. 18분이 되기도 했다가, 16분이 되기도 했다가 한다. 아슬아슬하다. 좀 더 빨리 달려야 하는데 길이 너무 험하다. 비포장도로에 온통 자갈이다. 따글따글 작고 뾰족한 자갈들이 튀겨서 차 바닥을 때리는 소리가 엄청나다. 겨우 포장도로로 들어섰나 했더니 이번엔 길 중간에 큰 구멍들이 푹푹 파여 있다. 어젯밤에 유성우라도 잔뜩 떨어진 것처럼 말이다. 그냥 달리다간 바퀴가 남아나지 않을 것 같아 요리조리 피해서 가다 보니 속도는 점점 줄고 도착 예상 시간은 점점 늘어난다.
20분 뒤에 도착해야 하는 곳은 다름 아닌 공원 출입사무소. 그냥 아무 공원이 아니라 전 세계의 여행자들이 찾아오는 파타고니아의 '토레스 델 파이네' 국립 공원의 출입사무소다. 우리도 이곳에 오기 위해 칠레의 수도 산티아고에서부터 30일 가까이 달려왔다. 파타고니아를 패션 브랜드로만 알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나도 처음엔 그렇게 알게 되었다. 하지만 여행을 준비하다가 이 브랜드가 어디서 이름을 따왔는지 알게 되었다. 남아메리카 대륙의 남부, 남위 40도 이남, 나라로 치면 칠레와 아르헨티나의 남부 지역을 파타고니아라고 한다. 그 끝엔 남극으로 가는 배가 출발하는 우수아이아가 있다. 남극으로 가는 길목, 세상의 끝. 거칠고 황량하지만 자연 그대로의 모습으로 남아 있는 깨끗한 땅이 떠오른다. 그곳이 파타고니아다.
파타고니아 브랜드의 로고를 보면 높은 산들이 삐죽삐죽 솟아 있다. 파타고니아에는 그런 산들이 많다. 거대한 돌산 봉우리와 그 봉우리가 품고 있는 빙하 호수의 신비로운 모습이 전 세계의 관광객을 이곳으로 불러 모으고 있는 것이다. 우리도 오늘 그 산봉우리와 빙하 호수를 알현하기 위해 산을 탈 것이다. 단, 20분 안에 도착할 수 있다면 말이다. 나처럼 평소에 산을 잘 타지 않는 사람을 위해 일러두자면, 산에 올라갔다가 어두워지면 위험해질 수 있기 때문에 모든 산에는 입산통제 시간이 있다. 그 통제 시간이 20분 남았다는 것이다.
- 차에서 뭔가 이상한 소리 들리는 거 같지 않아?
- 글쎄, 비포장도로라서 그런 거 아니야?
- 차 느낌이 좀 이상하긴 해. 그런데 지금 멈추면 우리 시간 안에 도착 못해.
- 아, 어떡하지. 일단 그냥 가자.
불안했다. 우리는 지금 파타고니아 로드트립을 위해 산티아고에서 구입한 도요타 SUV, 우리의 듬직한 레니를 타고 달리고 있다. 레니는 힘 좋고 튼튼한 차다. 물론 기름을 많이 먹어서 우리의 통장을 텅장으로 만들고 있기도 하지만 오르막과 내리막, 자갈길과 진흙길을 모두 헤치고 우리를 이곳까지 무사히 데려다 준 일등 공신이다. 문제는 타이어다. 전 주인이 굳이 자랑스럽게 언급하며 중고차의 Selling point로 내세웠던 한쿡타이어는(그녀는 한쿡이 코리아인 것을 알고 있었을까) 이미 2주쯤 전에 한 번 펑크가 난 이력이 있다. 칠레치코라는 조그만 국경 마을에서 물어물어 찾아간 고메리아(정비소)의 과묵한 아벨 아저씨가 능숙하게 구멍을 찾아 땜질을 해줘서 다시 달릴 수 있게 되었다. 처음 보는 타이어 땜질이 신기했지만 조금 허술해 보이기도 했는데 그게 다시 터진 걸까? 도착지에 거의 다 와 갈 때쯤엔 거의 타이어 금속 휠 자체로 달리고 있는 느낌이 엉덩이 두 쪽에 고스란히 전달되었다.
아니나 다를까. 간신히 시간 안에 도착해 차에서 내려보니 레니는 왼쪽 뒤로 푹 가라앉아 있었다. 아, 또 그 타이어다.
현재 시각 오전 11시. 지금 산에 올라가지 않으면 30일을 달려온 목적을 눈 앞에서 놓치게 된다. 하지만 지금 레니를 정비해주지 않으면 오늘 밤 우리는 마을에 돌아가지 못할 지도 모른다. 이대로 두고 산을 탈 것인가. 아니면 산을 포기하고 레니를 어떻게든 해야 할까.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