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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란 Dec 30. 2022

내가 그리워하는 것은 사실 애초에도 존재하지 않았던

뉴진스 Ditto 뮤직비디오를 보고ㅣ 부제 : 30대 여성에게 뉴진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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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내가 소비한 것 중에 스스로를 살짝 놀라게 한 것이 하나 있었다면, 다름 아닌 뉴진스의 첫번째 EP 앨범이다. 내가 아이돌의 앨범을 돈 주고 산 것은 아마 처음있는 일이었다. 여느 아이돌 앨범이 그러하듯 뉴진스 앨범도 출시되자마자 온라인에서 예약 구매를 받고 있었고, 나는 어떤 알고리즘에 의해 그 구매 페이지를 안내하는 포스트에 닿아 버린 터였다. 그런데 나중에 앨범을 받아 들고서야 깨달았다. 나는 그들의 음악이 아니라 이 가방이 갖고 싶었구나.


앨범의 패키지는 CD플레이어를 담아서 들고 다닐 수 있는 동그란 토트백이었다. 사실 CD 플레이어는 지금 뉴진스 또래인 2000년 중후반 생들은 본 적도 없는 물건일 터였다. 90년대 생보다 1년 일찍 태어난 나 조차 초등학생 때나 봤었다. 이제 나는 뉴진스가 정확히 누구를 겨냥하는지 알 것 같았다. 오랜만에 눈에 띄는 특별한 아이돌을 만났다고 생각했는데, 실은 나는 그들이 전략적으로 노린 '과거를 그리워하는' 30대 여성 소비자였는지도 몰랐다.


그런 생각이 들자 나는 그 가방을 나의 집 어딘가에 보관하는 것에 주춤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 뒤로 여기저기에서 뉴진스의 노래인 어탠션이나 하입보이가 귀에 딱지 앉도록 들려왔다. 그 또한 주변에 있는 20대 중반부터 30대 후반까지의 내 지인들로부터였다. 사무실에서, 유투브에서, 인스타그램 스토리에서. 10대 친구들도 뉴진스에 열광하고 있는지도 몰랐지만, 중요한 건 내 주변의 여러 30대들이 이들에게 지나치게 열광한다는 점이었다. 궁금했다. 내 또래에게 뉴진스 소녀들은 왜 다른 아이돌과 다르게 보일까?


물론 나는 뉴진스를 기획한 프로듀서 민희진이 79년생 여성이라는 것을 안다. 뉴진스의 대표적인 스타일인 와이드 팬츠나 프린팅 크롭 티셔츠, 알록달록한 머리 삔 같은 것들은 민희진의 10대 후반에 유행했던 아이템이다. 이미 여러 알리바이는 뉴진스가 90년대 후반과 2000년대 초반의 틴에이저를 전시하고 연기하는 브랜드라는 것을 말해 주고 있었다. 그것은 확실히 지금의 30대가 반가워할 만한 것이었다. 하지만 바로 그런 이유로 나는 내가 뉴진스를 좋아하는 게 괜찮은 취향인지 헷갈렸다.


프로듀서 민희진이 규정한 소녀의 이상향은 누구라도 부인하기 어려운, 어리고 예쁘고 영특한 소녀의 표상이긴 하다. 게다가 그들의 음악과 안무는 독창적이고 아름답다. 그러나 그런 소녀들을 보고서 연령대를 막론한 멋과 재능이 있다고 말하는 것과, 역시 우리의 지난 추억을 잘 구현했다고 '착각'하는 일은, 내게 질적으로 전혀 다른 문제였다. 약간의 쑥스러움, 일종의 Guilty까지. 30대인 내가 중학생인 뉴진스를 좋아하는 건 사실 스스로 미처 끊어내지 못한 미성년의 감수성 때문일지 모른다는 게 싫었다.


그러다 며칠 전 뉴진스의 새로운 노래인 Ditto의 뮤직비디오를 보게 되었다. 비디오 테이프, 캠코더, 실뜨기, 지지직 거리는 화면의 노이즈, 이번에도 그들이 서있는 시제는 현재가 아니라 20 여 년 전의 과거이다. 하지만 나는 무력하게도 또 그 비디오에 빠져들었다. 나는 평소에 음악을 많이 듣는 사람이 아니지만, 그날은 Ditto만 한시간 가까이 듣다가 잠에 들었다. 나는 이 음악을 생각할 수록 아름다운 걸 넘어 무언가가 사무치도록 슬프게 느껴졌고 그건 금방 끝내 버리기엔 너무 매혹적인 감정이었기 때문이다.



뮤직비디오 속에는, 뉴진스 멤버들과 그들의 친구 희수가 등장한다. 뉴진스는 춤을 추고, 희수는 그들을 캠코더로 기록하고 있다. 예쁘고 에너제틱한 이 아이들은 단연코 학교 내에서 주류의 소녀들일 것이다. 그러나 영상 속 뉴진스 멤버들은 어느 순간 사라지고, 그들이 사실은 희수의 상상이나 마음 속에서만 존재하는 인물들이었다는 진실이 드러난다.


이를 두고 뉴진스 팬들은 희수가 뉴진스의 팬덤인 #버니즈 를 상징하고, 뉴진스와 희수의 이별은 팬들이 성장하면서 어느 순간 각자의 아이돌과 이별하는 순리를 표현한 것이라고 분석한다. 하지만 애초에 기획자의 의도가 뭐였든 내게는 아무래도 상관 없었다. 그런 분석이 없어도 나는 뮤직비디오 속 희수의 '허구의 친구들'이 무엇을 말하는지 똑똑히 알 수 있었다. 뉴진스가 춤추고 있는 자리는 내가 미성숙하고 외로웠던 10대에 선망하고 의지했던 모든 것들의 자리와도 같았다. 


나도 나의 허구의 친구들을 기억한다. 꼭 아이돌이 아니더라도 쉬는 시간이면 찾아 읽었던 책 속의 인물들이나 만화책 속의 판타지 세계들은 당시의 나를 지탱했다. 그당시 나는 찬란한 10대를 상징하는 어떤 오락이나 교우 관계에도 마음을 주지 못했지만 내 허구의 친구들은 10대 시절에 내가 갖기를 원했던 지혜나 믿음, 사려깊은 격려를 주었다. 그들은 내가 성인이 되면 작별할 어떤 열병이기도 했다. 이런 나의 10대도 빈티지 필터로 윤색한 뒤 아름다운 음악을 넣어 준다면 그대로 한 편의 뮤직비디오가 될 수 있을까.


유투브 Ban Heesoo 채널에 가면 희수가 캠코더로 촬영한 영상이 올려져잇다.


뉴진스를 소비하는 내 마음이 어떤 그리움에 관한 것이라고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내가 그리워하는 어떤 것은 애초에 실재한 적도 없다는 생각에 자꾸만 슬픈 감정이 들었다. 뮤직비디오 속 일본풍 교복 스커트와 하얀색 체육복들이 그 시절에 사실은 존재하지 않은 것이듯이, 뉴진스가 소환하는 틴에이저의 아름다움이란 얼마간 허구이거나 지나치게 소수의 것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 시절 내게도 존재하지 않아서 그 시절의 나조차 너무나 갖고 싶었던 환상을 재현한 것에 가깝다.


놀랍게도 Ditto 뮤직 비디오는 바로 그 지점을 숨기지 않는다. 희수와 즐겁게 놀던 뉴진스 친구들이 실재가 아니라 환상으로 표현된 것도 그래서였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설령 그게 다 허상이라 해도, 그건 그대로 아름답고 의미 있는 일이라는 메시지까지 보여주고 있었다. 나는 그래서 정말 Ditto 가 좋았다. 끝난 건 끝난 거 대로 슬프지만 여전히 소중한 것이다.

 

뮤직비디오 말미, 교복을 입지 않은 희수는 먼지가 묻은 비디오 테이프를 꺼내 그가 촬영했던 비디오를 본다. 그리고 TV를 통해 재생되는 비디오 속에는 현실에서 사라졌던 뉴진스 친구들이 고스란히 기록돼 있다. 테이프 속에 녹화된 청춘의 우정이 실제로 존재했든 존재하지 않았든 간에 그 시기의 열병은 인생을 살아 가는 내내 친구처럼 존재한다는 듯이, 영상 속 뉴진스 친구들은 다시 희수의 방 문을 열고 희수의 옆자리에 돌아 온다.


지금 YouTube 의 'Ban Heesoo' 채널에 가면 희수가 캠코더로 찍은 영상이 모두 올려져 있다. (링크) 정말 그 시절이 모두 진짜인 것처럼. 이제 내게 뉴진스라는 브랜드가 소환하는 10대의 아름다움은, 미성년 시절에 대한 그리움으로만 요약하기 어렵다. 저마다의 10대와 그리고 현재에 대한 안부도 포함한다. 나는 앞으로도 어린 여자의 아름다움을 찬미하는 마음은 조금 경계하려 하겠지만, 미디어가 소환하는 젊음의 재현은 계속 기대해 보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한다.




 

NewJeans 'Ditto' M/V SADE A


https://youtu.be/pSUydWEqKwE


NewJeans 'Ditto' M/V SADE B


https://youtu.be/V37TaRdVUQY


YouTube 'Ban Heesoo' 채널, Ditto의 희수가 캠코더로 찍은 영상이 올려져 있다. (1998)


https://www.youtube.com/@banhees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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