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아바타 2>를 보고
로아크가 바닷속으로 잠수를 할 때마다 나도 한 번씩 숨을 참아 보았다. 10초, 20초. 그러는 동안 이 영화의 플롯은 잠시 잃어버렸다. 나도 츠이레야처럼 수영할 수 있는데. 나도 키리처럼 산호들에 손을 뻗어 보고 싶은데. 상상이 구현한 외계 행성의 바다가 눈앞에 있는 것 같았다. 그 정도로 아바타 2의 CG 화면은 황홀하고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워낙 생생하게 잠수 장면이 표현됐다 보니 영화를 보며 개인적으로 몇 해 전 입문하게 된 "프리다이빙"을 떠올리기란 결코 어렵지 않았다. 프리다이빙은 별다른 장비 없이 맨 몸으로 물 속에 들어가는 잠수를 말한다. 우리나라 해녀들의 바다 잠수를 떠올려 보면 이해가 쉽다. 물 밖에서 천천히 호흡을 하다가 단 한 번의 숨을 마시고 그 한 번의 숨으로 바다를 탐험하는 일. 사람들은 그걸 프리다이빙이라 부른다.
영화에는 바로 그런 프리다이빙의 흔적이 많았다. 멧케이나 족에게 잠수는 아주 중요한 생활 방식이니, 그건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일례로 멧케이나족인 츠이레야가 오마티카야 부족인 로아크에게 다이빙 호흡을 알려주는 장면에서, 츠이레야가 로아크에게 숨을 천천히 들이마시고 내쉬라고 하거나 호흡이 너무 빠르다고 지적하는 대사들은 정말로 프리다이빙 선생님들이 학생들을 가르칠 때 하나 같이 내뱉는 말이었다.
그런데 심지어 내가 만난 프리다이버들 중 몇몇은 이런 말도 자주 했었다.
"물과 물은 이어져 있어요."
"바다는 이어져 있어요."
아리송한듯 신비로운 듯 귓가에 맴도는 이 말은 부제가 ‘물의 길’인 아바타 2에도 동일하게 나온다.
"물의 길에는 시작도 끝도 없어."
그렇다면 물과 물이 이어져 있다는 말은 무슨 뜻일까?
이는 여전히 내게 모호한 표현이지만 나는 바다를 사랑하는 다이버들도, 또 이 영화도, 물의 성질에 빗대어 우리 모두가 자연의 일부라는 걸 말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물이 흐르고 깊어졌다가 다시 좁아지듯이 자연의 생명은 태어나서 자라고 사라지고 또 순환한다.
그리고 이 이치는 모든 생명에게 동등하다. 발이 있거나 없거나, 아가미가 있거나 없거나, 그 다름에 상관 없이 모두 자연의 일부로 존재했다가 사라진다. 그리고 그런 순환을 이해하는 일은, 자연과 자연은 서로의 가치를 존중해야 한다는 철학으로까지 이른다.
“I see you.”
그래서 그런지 <아바타:물의길>에서는, 에이와의 메시아 같은 존재일 뿐만 아니라 가장으로서 권위를 가진 제이크의 활약이 결코 크지 않다. 그건 혹시 사랑하는 가족과 부족, 종족을 구원하는 것은 권위와 힘만으론 불가하다는 뜻일까? 오히려 이번 영화에서 최후에 제이크와 네이티리를 구원하는 것은, 대자연에 적응 하는 법을 알고 그와 교감할 줄 아는 그들의 어린 자녀들이다. 이는 어쩌면 제임스 카메론이 생각하는 다음 세대가 나아가야 할 방향성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다 영화를 보고 얼마 뒤, 이 영화를 가지고 뜻밖에 논쟁을 벌인 일이 있었다. 영어 회화 수업때였다. 수다스러운 나의 영어 선생은 나에게 영화 한 편이 아무리 자연의 아름다움이나 환경 보호의 중요성에 대해서 말해봤자, 그건 다 소용이 없는 일이라고 무심히 말했다. (People never change.) 영화는 영화일 뿐이고 사람들은 바뀌지 않는다고. 차라리 전쟁 이야기를 더 재밌게 하지 괜히 환경 보호 메시지를 담으려다 망한 것 같다고. 오늘 우리는 <아바타:물의길>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내 생각에 영화 <아바타:물의 길>은 사실 꼭 "환경 보호"를 콕 짚어 말한다기보다는, 그 보다 훨씬 크고 앞선 개념인 자연의 순환에 대해 말하고 있다고 생각이 들었지만, 그리고 또 그것은 앞서 말했듯 어떤 모습을 하고 있던 우리 모두가 자연의 일부이며 그런 자연의 섭리 속에서는 서로를 존중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메시지를 전하는 것에 가까워 보였지만, 일단 내가 시급하게 반박하고 싶은 그의 문장은 따로 있었다. 영화는 영화일 뿐이라는 말이었다.
나는 말했다. 물론 단 하나의 콘텐츠가 한 사람의 행동을 단번에 바꾸기는 어렵겠지만 한 영화가, 한 소설이, 또 어디서 본 콘텐츠 한 클립에 대한 기억이 계속해서 Pile up 되면, 그건 언젠가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커다란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힘주어 말했다. 그래서 좋은 크리에이터는 사회에 도움이 되는 메시지를 던져야 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한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그날 나는 가능하면 몇 해전 어느 독서모임에서 내가 들은 이야기를 써먹고 싶었다. 그 말은, 내 기억이 아주 정확하진 않겠지만 이런 말이었다. 어떤 좋은 소설을 읽고 집에 돌아가면 당장 뭐가 바뀌지는 않더라도, 문득 어느 날 잠자리에 누웠을 때 내 마음에 실금이 가 있는 걸 알게 된다고. 하지만 순간 cracked 보다 더 나은 뉘앙스를 가진 단어를 떠올리지 못해서 나는 내가 괜히 본래 그 문장이 가진 힘을 해치게 될까봐 이내 그만두었다.
내 영어 선생의 의견처럼, 바다의 아름다움을 극대화하느라 이야기의 힘을 놓친 아바타는 그래서 실패한 영화인 것일까?
물론 영화 <아바타:물의길>은 콘텐츠로서 가진 단점도 많다. 영화는 일단 지나치게 길다. 게다가 가족에 대한 사랑이 너무 교조적으로 그려져서 "설리 가족은 하나다" 라는 반복적인 대사에 살짝 어리둥절하기까지 하다. 그리고 환대와 포용에 대한 어려운 이야기를 한 번에 하려다 이야기가 너무 복잡해졌다는 아쉬움도 있다.
그러나 영화 평론가가 아니다. 내가 무언가를 경험하고 나면, 안 좋았던 것들에도 불구하고 결국에 내게 좋았던 것들이 뭐였는지에 대해서 더 먼저, 그리고 오래 이야기하고 싶어 하는 쪽이다. 그게 내게 훨씬 더 많은 가르침을 준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프리다이빙을 즐겁게 하기 위해서는 오만함을 내려 놓고 자연에 순응하는 게 중요하다. 인간의 맨 몸은 바다의 일부다. 바다의 위엄을 존중하지 못하면 다이빙은 그저 위험해진다. 그래서 나는 프리다이빙을 처음 배운 그해, 잠수하는 방법이 아니라 겸손에 대한 태도를 배웠다고도 생각한다. 그건 바다 속이 아니라, 바다 밖에서도 유효한 정신이었다.
적어도 내게 영화 <아바타:물의길>은, 내가 바다 앞에 서지 않아도 다시금 그 아름다운 감정을 느낄 수 있도록 했다. 자연 앞에 겸손해지고, 그 안에서 서로 다른 자연의 일부들을 존중하려 노력하는 일의 아름다움에 대해서, 다시 한 번 더 생각해 보게 도와주었다. 그건 마치 내가 대자연 속에 놓인 것처럼 느끼게 해주는 특출난 영상미와 현실감 덕분이다. 그러니까 사치스럽게 아름다운 해양 그래픽 영화라는 건, 그것 그대로 또 의미 있는 게 아닐까? 바다에 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