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정쓰 Jan 17. 2021

단지 세상의 끝에서 외치다

이를테면 너를 알게 되어서 좋았어, <세상의 끝까지 21일>

#세상의끝까지21일 #단지세상의끝에서외치다

지구가 끝장날 때까지 스물 하루가 남는다고 해서 내 인생이 그렇게까지 드라마틱해질 거란 기대는 애초에 없다. 세상의 끝이라고 생각했던 그날들이 단지 하루에 불과했고 끝내 계속되고야 마는 꼬라지를 보아왔기 때문이란 거창한 근거는 아니다. 단순한 이유다. 그리 거창하지 않았던 내 삶이 끝에 다다른들 창대해질 리 없으니까. 먹고 싶은 걸 다 먹어보거나, 지금껏 하지 못한 말들을 다 해보지는 못할 테고 축복과 저주의 말을 (혼자) 남긴다거나, 섹스, 그래 섹스를 하거나, 잠이나 퍼질러 자거나, 그러겠지 뭐. 어떤 후손에 의해 비루한 내가 세계에서 가장 큰 종교의 신으로 추대 받게 될 정도의 확률으로 지구를 구할 슈퍼 파워 웨폰이 나에게 주어진다면? 어떻게 쓰는지 헤매다 마침내 익숙해졌을 때쯤 비슷한 힘을 가졌지만 더 똑똑한 빌런이나 재해의 압도적인 파워에 압살당하고 말 것이다. 어휴. 영웅은 아무나 하냐고.


우리를 닮은, 딱 적당한 만큼 자유분방한 페니와 딱 그만큼 선량했던 도지는 그렇게 잔잔한 끝을 준비한다. 나는 이 적당함이 과소평가 당하지 않았으면 한다. 딱 그만큼만 적당히 정상적인 것들이 남기는 표정과 메시지를 우린 너무 쉽게 지나친다. 페니와 도지는 딱 적당히 얽힌 만큼 더욱 사랑스럽고 더 진짜 같다. 뿌리 깊은 적당함을 가진 사람만이 어떤 일상적인 언어에 묵직한 진심을 담을 수 있게 되는 건 아닐까. 이를테면 너를 알게 되어서 좋았어, 같은 말.

매거진의 이전글 성장, 그거 어떻게 하는 건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