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멜 Mer Mar 10. 2021

제주에 살고요, 사람이 궁금해요.

제주에 살면서 느꼈던 것들과 글을 쓰게 만든 것들에 대하여

제주에 살고 있다는 말을 하면 대부분 반응이 비슷하더라고요.


제주에 살아? 뭐 하면서 살아? 먹고 살 만 해? 좋겠다, 나도 제주도 살고 싶어!
제주도에 살고 싶어서 내려오신거에요? 우와, 좋겠다. 나도 제주도 살고 싶어!


이런 말을 들으면 저는 대답 없이 그저 웃고요, 서울살이가 지친다며 제주도에 살고싶다고, 부럽다고 말한 이들 중 단 한 명도 제주도에 살러 내려오지 않습니다. 맞아요, 제주에 연고가 없고 통장이 두둑하지 않은 2030세대라면 제주에서 일하며 먹고 산다는 것이 그렇게 로망 넘치는 일만은 아니거든요. 다행인지 불행인지 저는 제주도에 잘 적응해(가끔 의문이 들 때도 있지만요) 어느 새 제주살이 3년을 꽉 채우고 본격 제주도민 4년차로 거듭났습니다.




아, 아까 처음 말했던 질문에 대한 답을 말하자면, 전혀요. 단 한 번도 제주에서 살겠다는 마음이 든 적은 없습니다. 태어나길 인천에서 태어나 천안에서 초중고등학교 시절을 보내면서 20대에는 무조건 서울에서 살겠다는 결심을 했고, 20살의 여름부터 제주도에 내려온 28살의 초입까지 약 8년 정도를 서울에 살았어요. 서울을 사랑했고, 서울에서 하는 일을 사랑했고, 서울에서 만난 사람들을 사랑했고, 서울이 가진 모든 것을 사랑했어요.


그런데 왜, 어쩌다 제주에 내려갔냐고요. 어떻게 말해도 긴 이야기는 아닙니다만, 정말 짧게 말하자면 돈을 벌러 내려왔어요. 일종의 섬노동자입니다. 1년 정도 제주의 고성리라고 하는 아주 아주 작은 동네에서 일을 했고, 반 년 정도는 뭐 해먹고 살지 고민하며 놀다가, 한 달 미국도 다녀왔다가, 고민 끝에 제주도에 조금 더 남기로 결정을 했습니다. 그리고 또 반 년은 프리랜서로 일을 했고, 코로나가 터지기 직전에 회사에 입사해서 지금까지 1년이 조금 넘는 기간 동안 일하고 있습니다.


지금 일하고 있는 회사는 제주의 남는 유휴자원을 필요로 하는 곳에 연결하는 일종의 플랫폼 회사입니다- 라고 대표님이 말씀해주셨는데, 이렇게 말하면 아무도 이해를 못 하시더라고요. 제 식대로 한 번 설명해볼게요. 제주는 서울과 달리 남는 자원이 참 많아요. 빈 집도, 빈 땅도, 예산도, 일자리도, 프로젝트도, 일손도 의외로 많지요. 하지만 이게 필요로 하는 곳에 잘 연결이 안 되더라고요. 그래서 지금은 남는 자원을 가지고 있는 분들의 의뢰를 받아 이것을 필요로 하는 곳에 연결을 하는 일을 하고 있는데요.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는지 예시를 들어볼까요. 도시재생을 위해 매거진을 만들기도 하고요, 무허가건축물을 사들여 허가를 받은 뒤 커뮤니티 공간으로 재구성하기도 하고요, 공공기관의 용역을 받아 제주의 로컬기업들을 컨설팅해드리기도 하고요, 제주청년들의 취업과 직무에 대해 이야기할 멘토를 만나는 테이블을 기획하고 운영하기도 하고요, 제주시의 의뢰를 받아 제주의 환경문제에 대해 이야기하는 리빙랩을 개최하고 운영하기도 하지요. 요컨대 제주의 문화와 로컬, 사람에 관한 거의 모든 일을 하고 있는 것 같네요.


회사의 일은 굉장히 즐겁고 다양한 프로젝트를 접할 수 있어서 잘 다니고 있지만 개인적인 프로젝트들도 꽤 진행하고 있습니다. 사진 찍는 걸 좋아해서 텀블벅에 직접 찍은 제주의 사진으로 제작한 달력을 판매하기도 하고요, 제주의 오래된 원도심을 소개하면서 스냅 촬영을 진행하기도 해요. 운동과 바다수영, 재즈와 책을 좋아해서 함께 할 수 있는 모임을 자주 열기도 하고요.




휴, 이제 좋은 점은 다 말했으니 드디어 제주에 살면서 불편한 걸 말할 차례네요.

사실 이걸 말하고 싶어서 이 긴 글을 쓴 거거든요.


제주에서는 제가 좋아하는  함께 공유할 사람을 찾기가 너무 힘들었어요.


네, 바로 이게 문제입니다. 사실 저는 외로움을 잘 타지 않는 사람이라고 3n년 동안 생각해왔거든요. 그런데, 아니더라고요. 분명 제주에서 살아가는 라이프스타일은 제게 꼭 맞는데, 뭔가가 부족하더라고요. 여긴 새벽 3시, 4시에도 문을 연 카페나 영화관이 없고요, 그 흔한 독서모임이나 영화모임도 찾기가 어렵죠. 제가 좋아하는 재즈를 편하게 들을 수 있는 공간도 찾기 어렵고요. 아니, 있긴 있는데 집에서 두 시간이 걸리면 별로 의미가 없잖아요. 두 시간이면 서울도 갈 수 있을걸요.


제주에 와서 만난 제 친구들은 너무나 사랑스럽지만 제 취향에는 별로 관심이 없더라고요. 대표님은 일과 꿈, 사고방식에 대해 10시간도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정말 멋진 사람이지만 역시 제 취향과는 다른 취향을 가지셨고요. 저는 다프트펑크의 해체와 해체를 알리던 말도 안 되게 멋지던 영상에 대해서, 영화 그녀에서 제일 좋았던 부분이 어디였고 제일 별로였던 부분이 어디였는지에 대해서, 새로 나온 앤더슨 팍의 신보에 대해서, 신 맛이 나는 원두가 싫은 이유에 대해서(그래서 예가체프를 안 좋아해요), 성수에 오픈한 루이스 폴센의 스토어와 연희동의 라이카 시네마에 관해서 이야기하고 싶단 말이에요!




아무튼, 그래서 이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동안 싸이월드부터 시작해 블로그와 트위터,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많은 SNS를 했지만 저는 글을 거의 쓰지 않았어요. 사실 유튜브로는 음악재생만 하고 텍스트를 선호하는 활자형 인간에 가까운데도요, 딱히 하고 싶은 말이 없었거든요. 서울에 살 때는 공유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었고, 그걸로 충분했어요. 하지만 이제는 그럴 수가 없더라고요. 그래서 글로 제 취향과 사고방식과 생각하는 것들을 알리고 공유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누군가는 제 글을 읽고 제 취향을 읽어주겠죠. 그러다 어쩌면 제 취향과 맞는 사람이 제 글을 읽어주실 수도 있겠고요. 그렇다면 너무나 반가울 것 같아요.


앞으로 가능한 다양한 이야기를 써보는 것이 목표이지만, 여기서는 제가 제주에 살며 만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써내려가보고 싶어요. 인터뷰 형식으로 쓸 수도 있을거고, 제가 만났던 사람들을 제 기억으로 복기한 이야기일 수도 있고요. 조금 독특한 사람일 수도 있고 정말 평범한 사람일 수도 있겠죠. 제 마음대로 대상을 선정하고, 제 마음대로 질문하고, 제 마음대로 구성하려고요.


재밌을까요? 전 진짜 재미있을 것 같아요. 여기에 재미를 또 느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좋겠고요. 물론 없을 수도 있겠죠. 그래도 괜찮아요. 최근 쓴 글 중에서는, 제안서를 빼고는 이 글이 가장 긴 글인데요. 뭔가 바다에 제가 쓴 쪽지를 넣은 유리병을 띄워 보내는 느낌이에요. 어디로 파도가 칠 지는 알 수 없지만, 유리병이 어딘가에 도착했을 때 누군가가 쪽지를 읽어주었으면 좋겠어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