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일기
오늘은 아내가 친구 결혼식에 참석하는 날이다. 아침 8시 반에 출발 예정이기에 어머니가 육아를 도와주시려고 아침 일찍 오셨다. 아내는 아침 일찍 도착한 수산물 박스를 베란다 한쪽에 정리하고 집을 나섰다. 어제 조개가 먹고 싶어 시킨 홍합이었다. 스티로폼 상자가 생각보다 크다는 생각을 했다.
아내는 오후 5시쯤 집에 도착했다. 결혼식도 보고 친구들과 수다도 떨고 와서 밝은 표정이었다. 어머니가 오후 4시쯤 집에 가셨기에 1시간 동안 아이 둘을 본 나는 아내가 오자 긴장이 살짝 풀리는 느낌이었다. 그전에도 이래저래 육아에 치였지만 마지막 1시간은 혼자서 봐야 하기에 아이들에게 이리저리 휘둘린 터였다.
아내는 옷을 갈아입고는 홍합탕 끓였냐고 물어본다.
빠직. 이마에 혈관이 돋아나는 것 같다.
애들 돌보느라 그럴 시간이 없었다고 말하고 나자 첫째가 아내에게 아이스크림이 먹고 싶다며 조른다. 아내는 첫째를 준비시키더니 둘째 보면서 홍합탕 좀 끓여놔 달라고 이야기하곤 집을 나선다. 첨엔 별생각 없었다. 홍합탕 그냥 물 넣고 마늘 넣고 파 좀 넣고 끓이면 되는 거라 생각했으니까.
둘째를 아기의자에 앉히고 고무장갑을 낀 후 본격적인 홍합손질을 시작한다. 스티로폼 상자에 얼음을 쏟아내고 나니 생물 홍합이 보인다. 처음 느낌은 "생각보다 많은데?"였다. 3kg의 홍합을 싱크대에 쏟아낸 후 손질하는데 생각보다 손이 많이 간다. 손질된 깔끔한 홍합일 줄 알았는데 지저분한 이물질이 많이 묻어있었다. 줄같이 생긴 이물질을 하나하나 제거하는데 몇 개 하고 나니 막막함이 몰려온다. 그 순간 둘째가 울기 시작한다. 떡뻥이라도 쥐어주려 했지만 고무장갑을 껴서 번거롭다. 말로 달래며 하는데 되질 않는다. 순간 울컥하며 화가 올라온다.
'아니 저번에 홍합손질할 때도 둘째랑 나만 두고 나가서 힘들게 하더니 이번에도 마찬가지네?'
말로 달래며 손질하다가 전혀 먹혀들지 않자 그냥 달래는 걸 포기하고 계속 홍합을 손질한다. 문제는 한참 했다고 생각했는데도 절반도 끝나지 않았다는 사실이었다. 참다 참다 아내에게 전화를 했다.
"집에 빨리 와줄 수 있어?... 그냥 바로 들어와 줘"
"어디 다친 거야?"
"아니 지금 홍합 손질하는데 한참 남았는데 둘째는 울고 미치겠어. 고무장갑 벗고 달래기도 힘들고. 그냥 빨리 들어와 줘."
"알았어 근처야. 바로 갈게~"
나도 모르게 짜증 섞인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아내가 딱히 잘못한 것도 없는데 너무했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내 상황이 쉽지는 않았다.
아내는 돌아와 별말 없이 아이들을 챙겼다. 내가 순간 짜증 나서 몰아붙인걸 그냥 이해하고 넘기는 듯했다. 순간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아내가 잘못한 것도 없으니 그냥 톡 쏘아붙일 수도 있을 텐데.
서둘러 홍합을 삶는다. 가장 큰 냄비에 담으니 간신히 한 번에 다 삶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물이 끓고 나서 넘치지 않게끔 불을 줄이고 기다린다. 그 순간 홍합이 점점 더 많아진다. 순간 잘못 본 건가 했는데 그게 아니라 홍합이 입을 벌리기 시작하자 냄비 속 공간을 더 많이 차지하게 돼 부피가 커진 것이었다. 서둘러 웍을 꺼내 홍합을 옮겨 닮고 두 개에 나눠 끓이기 시작했다. 이렇게 많은 걸 다 먹을 수 있으려나. 원래는 밥이랑 같이 먹으려 했지만 아내와 나는 그냥 홍합만 먹기로 했다.
육아 백과사전을 찾아보니 둘째도 홍합을 먹을 수 있게 되어있어 첫째와 둘째의 그릇에 홍합국물에 밥을 말았다. 짤테니 맹물을 좀 부었다. 뜨거운 게 식으니 일석 이조다. 양푼 가득 홍합을 담고 먹기 시작한다. 아내는 첫째 나는 둘째를 맡는다. 둘째가 어리기에 한입에 먹을 수 있도록 홍합을 가위로 잘라서 식힌 후 아기용 식기에 담아주는데 둘째가 엄청난 속도로 먹기 시작한다. 나는 홍합을 맛도 못 봤는데 내가 잘라 주는 속도보다 먹는 속도가 빠르다. 홍합이 다 떨어지니 보채기 시작한다. 서둘러서 계속 잘라준다.
상황은 첫째도 마찬가지였다. 홍합국물에 만 밥은 쳐다보지도 않고 홍합만 계속 먹는다. 아내도 첫째가 먹는 속도를 감당하기 힘들어 보였다. 한참을 홍합을 발라주자 먹는 속도가 느려지기 시작한다. 먹을 만큼 먹은 것 같았다. 그러자 아내와 나도 먹기 시작한다. 홍합을 발라내 초장에 찍어먹으니 정말 맛있다. 홍합의 좋은 점이 별다른 재료 없이 삶기만 해도 감칠맛이 좋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양푼이로 한 번 두 번 세 번을 먹자 양이 눈에 띄게 줄었다. 저번에 홍합이 남아 손질한 홍합을 그대로 얼렸다가 사용했을 때 영 신선하지 않아서 이번엔 삶은 홍합을 살만 발라서 얼려놓을 생각이었데 좀만 더 먹으면 그 많은 홍합을 다 먹겠다 싶었다.
첫째는 홍합이 점점 줄어들지 나머지 홍합을 자기가 다 먹을 거라며 보채기 시작한다. 첫째야... 홍합 더 있어...
홍합파티는 결국 냄비가 바닥을 들어내고 나서야 끝이 났다. 마지막 가라앉아있어 홍합살이 열개 정도 있어서 첫째에게 다 줬더니 다섯 개 정도 먹고 남긴다. 모두 배부르게 먹었다.
홍합 국물을 그냥 버리기가 아쉬워 지퍼백에 윗 국물만 떠서 담는다. 나중에 콩나물 국 끓여 먹을 때 육수로 쓰면 좋겠다는 생각에서였다. 이제 식탁을 정리하려고 홍합 껍데기를 버리는데 쓰레기통이 순식간에 가득 차버린다. 일반쓰레기는 어제 버렸는데 홍합껍데기가 부피가 크다. 그냥 두면 냄새가 날 테니 다시 종량제 봉투에 담는다. 얼른 버리고 와야겠다.
집에 돌아와 식탁과 화구를 정리한다. 홍합탕을 끓이다 넘쳐 지저분하다. 행주로 깨끗이 닦고 나서야 저녁시간이 끝난다.
온 가족이 홍합탕에 대한 만족도 가 높다. 다음에도 넉넉하게 시켜서 또 해 먹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