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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진 Jul 24. 2024

어린이집 적응_(D + 1091일, D + 466일)

육아일기



 첫째와 둘째가 새로운 어린이집에 적응기간을 가진 첫 주였다. 첫째는 무난히 적응할 거라고 생각했고 둘째 역시 문화센터에서 수업을 잘 듣는 모습을 보고 걱정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큰 오산이었다.


 처음 이틀은 첫째와 둘째 모두 보호자와 같이 탐색하는 시간을 가졌는데 둘째가 엄청 울었다. 공간도 사람도 낯설어 그런 거겠지만 둘째는 내가 옆에 있는데도 울고 나가자고 떼쓰기 바빴다. 놀아주고 달래고 안아줬지만 적응시간 1시간이 왜 이렇게 길게 느껴지는지. 빠른 적응은 글렀구나 싶었다.


 첫째는 보호자와 함께하는 이틀은 문제가 없었다. 1시간으로 시간도 짧았으니 어려울 게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혼자 어린이집에 적응하기로 한 셋째 날 점심시간 전에 선생님께 전화가 왔다. 첫째가 너무 힘들어하는 것 같으니 데려가는 게 좋을 것 같다고 말이다.


 멍한 느낌이었다. 첫째가 적응에 어려움을 겪는 건 전혀 계획에 없었다. 같이 어린이집을 옮긴 친구는 적응을 잘했다고 하니 더 아쉬웠다. 그래도 혼자 적응한 첫날이니 그럴 거라고 생각했는데 넷째 날은 더했다. 등원을 시킨 지 한 시간도 되지 않아 전화가 왔다. 아이들을 데리고 하원을 하는데 막막함이 느껴졌다. 첫째가 이렇게 적응이 힘들다면 다음 주까지 도와주시기로 한 장모님이 없으면 나 혼자 두 아이를 어찌 적응시켜야 하는지 뾰족한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둘째 역시 적응이 어려웠다. 둘째 날부터 장모님이 같이 교실에 들어가 적응을 도와주셨는데 내가 같이 갔던 첫째 날처럼 계속 울고 나가자고 떼를 썼다고 한다. 교실 앞으로 갔을 때 장모님과 같이 있는 뒷모습이 잘 놀고 있는 것처럼 보여 안심했는데 그게 아닌 모양이었다. 


 아이들도 힘들어했다. 주말에 어린이집에 가는 날만 기다리던 첫째는 어린이집에 가기 싫다고 떼를 썼다. 아빠도 집에 있는데 왜 자기가 어린이집에 가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논리적인 주장을 펼쳤다. 틀린 말이 아니기에 어린이집을 가야 멋진 형님반이 되는 거라고, 울지 않고 잘 적응해야 산타할아버지가 선물을 준다고 설득했지만 구차하기 짝이 없었다. 둘째는 어린이집 현관만 들어서면 집에 돌아가자고 바짓가랑이를 끌어당겼다.


 목요일에 아내와 이야기하는데 한숨이 푹푹 났다. 두 아이 모두 적응이 어려울 거라곤 생각도 못했기에 이 상황을 풀어낼 해결책이 떠오르지 않았다. 애착 베개를 챙겨서 등원시켜야 하나, 첫째를 혼자 두지 말고 다시 내가 같이 교실에 들어가야 하나 이런저런 걱정을 하며 잠이 들었다.


 금요일 아침에 등원을 시키는데 뭔가 비장한 마음이 들었다. 오늘까지 어려움을 겪으면 정말 비상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아내가 회사일로 한창 바쁘지만 휴가를 써야 할 것 같았다. 첫째를 등원시키는데 아빠랑 교실에 같이 들어가고 싶다고 혼자 들어가고 싶지 않다고 눈물을 뚝뚝 흘린다. 아빠가 10초만 안아주고 가겠다고 이야기하고 꼭 안아주는데 10초가 지나도 가지 말라며 꼭 붙잡는다. 한참을 실랑이하다가 결국 선생님이 첫째를 번쩍 알고 교실로 들어가는데 울며 발버둥을 친다. 목이 갈라져라 아빠를 부르는 소리를 뒤로하고 어린이집을 나섰다.


 장모님과 둘째가 적응하는 1시간을 기다리기 위해 어린이집 근처 카페에서 라테를 시켰다. 커피가 쓰다. 내 복직까지 생각해서 규모가 큰 어린이집으로 옮긴 건데 이렇게 힘들어할 줄 알았으면 그냥 기존 어린이집에 다니게 할걸 그랬다는 후회를 했다. 그럼 첫째는 적응이 따로 필요 없었을 거고 둘째만 좀 신경 써줬으면 되는데, 괜한 욕심을 부린 건 아닌지 죄책감이 들었다. 


 카페에 앉아있는 게 맘이 편하지 않아 다시 어린이집으로 향했다. 첫째가 있는 교실 창문에 붙어 귀를 기울인다. 혹시 첫째가 울고 있는 건 아닌지 가만히 들어봤는데 울고 있는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울음을 그친 건가. 둘째를 기다리며 두세 번 창문에 가서 소리를 들었는데 다행히 우는 소리는 계속 들리지 않는다. 작은 희망을 품고 장모님과 둘째를 데리러 간다. 오늘은 둘째가 교실에서 울지 않았단 사실에 안도했다. 천천히 적응을 하고 있어 다행이었다. 선생님은 다음 주 월요일에 컨디션을 보고 둘째도 혼자 적응할 수 있도록 할 예정이라고 말해주셨다. 


 둘째는 무사히 집에 왔지만 첫째는 계속 걱정이 되었다. 핸드폰을 알림을 소리로 바꿔두고 수시로 확인했다. 점심을 준비하며 한 번, 설거지를 하며 한 번, 둘째 간식을 주며 또 한 번. 적응이 어려운 첫째를 데려가란 전화가 금방 전화가 올 거라고 생각했는데 점심시간이 지나도록 전화가 오지 않는다. 12시쯤 되자 벨소리가 울리기래 올게 왔구나 하고 받았는데 첫째 양말이 젖어서 하원 시 좀 가져다 달라는 전화였다. 당황해서 첫째가 적응을 잘하고 있는지 묻지도 못하고 알겠다고 하고 끊었다. 데려가란 말이 없으니 그래도 적응을 잘하고 있다는 말이겠지 하며 말이다.


 12시 반이 되어 어린이집에 도착하니 첫째가 웃으며 교실 밖으로 나온다. 선생님 얼굴도 밝다. 처음엔 좀 울고 간식도 안 먹겠다고 버텼는데 같이 놀자고 하고 기다려주니 마음을 조금 열었다고 해서 기뻤다. 점심 역시 안 먹겠다고 버텼는데 첫째가 준비되면 먹으라고 하며 기다려줬더니 결국 먹기 시작했고 한 그릇 더 달라고 해서 두 번 먹었다고 했다. 오전 간식을 먹지 않아 배가 고팠던 모양이었다.


 아내와 나는 첫째가 점심시간까지 혼자 있어준 것에 안도했다. 금요일도 일찍 하원했으면 아이들도 힘들고 우리의 걱정도 커질 뻔했다.


 내일부터 다시 새로운 주가 시작된다. 아이들이 잘 적응해 주길 바라며 주말에 아이들을 데리고 어린이집 놀이터까지 다녀왔는데 부디 첫째와 둘째가 이 마음을 알아줬으면 좋겠다. 첫째만 적응을 잘하면 둘째의 적응기간이 길어지더라도 바쁘신 장모님 도움 없이 나 혼자서 어찌어찌 감당이 될 텐데. 부디 이번주에 좋은 결과가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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