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일기
첫째가 다니던 어린이집의 마지막 하원일이다. 다음 주부터 새로운 어린이집으로 옮기고 새 학기가 시작하기에 오늘이 기존 어린이집에서는 마지막 날인 것이다. 보통 4시 반쯤 집에서 출발해서 첫째를 하원시키러 가는데 오늘은 마음이 편치 않아 4시 좀 넘어서 집을 나섰다. 둘째를 준비시켜 웨건을 끌고 어린이집에 도착해 첫째를 호출했다. 그러고 나서 습관적으로 신발장을 봤는데 아뿔싸. 첫째의 신발 하나만 남아있다.
보통은 네다섯 켤레의 다른 아이들의 신발이 남아있었다. 하지만 마지막 날은 정규일이 아닌 신청자에 한해 등원시키는 보조보육일이어서 그런지 다른 아이들이 일찍 하원해 버렸다.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내가 어린이집 아이들 중 첫째를 마지막으로 하원시킨 건 처음 있는 일이었다. 가끔 아빠는 왜 이렇게 늦게 오냐며 툴툴대던 첫째였기에 미안하다 못해 마음이 아프기까지 했다. 첫째는 보조선생님과 꼭 껴안으며 마지막 인사를 했다. 생각보다 쿨하게 인사를 하기에 살짝 당황했지만 미안한 마음에 먼저 말을 꺼냈다.
"첫째야 아이스크림 사 먹으러 갈까?"
첫째의 얼굴에 의문이 생긴다. 그전엔 먼저 사 먹으러 가자고 해도 요지부동이었던 내가 먼저 이야기를 꺼내니 말이다.
"아빠, 나 콧물 나오는데?"
보통 아이스크림을 먹으러 가자고 조르는 첫째에 대한 내 방어논리는 콧물이 나오면 아이스크림을 먹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감기에 걸린 상태에서 아이스크림을 먹으면 몸에 좋지 않기도 했지만 평소에 아이스크림을 사주지 않기 위한 내 궁여지책이기도 했다. 갑자기 변한 아빠의 모습에 어리둥절하던 첫째는 금세 기분이 좋아졌는지 활짝 웃으며 가게로 향한다.
첫째가 원하는 아이스크림을 사고 둘러보다 나도 먹고 싶어 져서 아이스크림과 과자를 산 후 집으로 향했다. 물론 둘째 것은 없다. 아직 제대로 군것질을 해본 적이 없어서 그런지 둘째는 보채지도 않는다. 구매한 아이스크림은 집에서 먹기로 약속했기에 순조롭게 귀가한 후 첫째에게 아이스크림을 건네주니 정신없이 먹기 시작한다. 나도 그 모습을 바라보며 과자를 좀 까먹었고 첫째와 나를 초롱초롱하게 쳐다보는 둘째에겐 떡뻥(아기용 쌀과자)을 쥐어줬다.
그렇게 군것질을 하니 저녁시간이 되도록 배가 고프지 않다. 오늘은 좀 신경 써서 소고기와 버섯을 넣은 콩나물 밥을 준비했는데 나조차도 과자를 먹어 별로 먹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는다. 그래도 저녁을 먹어야 하기에 준비를 해서 먹이기 시작했다. 첫째는 한 입 먹더니 "와 맛있다"라고 소리치기에 콩나물 밥을 잘 먹을 줄 알았는데 몇 숟가락 먹더니 식탁을 벗어났고, 둘째 역시 좀 먹는 듯하더니 내려달라고 운다. 첫째는 내 과자까지 좀 먹었기에 이해가 되는데 밥 잘 먹는 둘째는 도대체 왜 이러는지. 신경 써 준비했기에 속이 상한다.
밥을 더 먹지 않으면 다음엔 아이스크림을 사주지 않겠다고 협박을 해보지만 통할리 만무하다. 거기에 아내가 퇴근이 늦어져 저녁을 먹지 않겠다고 연락이 와서 아까운 콩나물 밥은 덩그러니 남겨졌다. 정성 들여 준비한 밥을 아무도 먹지 않으니 속이 상한다.
이게 다 마지막 하원 때문이다. 제일 늦게 나오지만 않았어도 군것질을 하진 않았을 텐데. 뭐 늦게 하원시킨 건 내 잘못이 제일 크기에 할 말은 없지만 아쉬운 마음이 가시질 않는다.
다음 주부턴 새로운 어린이집에서 새로운 선생님과 새로운 생활이 시작된다. 첫째뿐만 아니라 둘째도 처음으로 어린이집에 등원한다. 첫째와 둘째가 적응을 잘할 수 있을까. 걱정이 된다. 별일 없이 적응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