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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진 Aug 01. 2024

결혼기념일 _ (D + 1140일, D + 515일)

육아일기


 평소엔 아이들을 내가 등원시키지만 오늘은 아내와 함께 집을 나섰다. 지하주차장 앞에서 아이들과 함께 아내에게 회사 잘 다녀오라고 인사를 한 후 어린이집으로 향했다. 무사히 등원을 마치고 집에 들어온 나는 아내에게 문자를 했다.


 "11시 반까지 집으로 와~ 같이 식당으로 가자 ㅎㅎ"


 아내는 회사에 가지 않고 카페에 있었다. 자격증 공부를 하다가 집에 들어올 예정이었다. 회사에 휴가를 냈지만 공부를 위해서는 아니었다. 내일이 결혼기념일이기 때문이다. 


 아내는 결혼기념일 당일에 휴가를 내고 싶었지만 그날 처리해야 하는 업무가 있어 아쉽지만 전날 휴가를 내야만 했다. 그래도 기분만 내면 되니 상관없었다. 점심엔 꽤 가격이 있는 오마카세를 예약했다. 아내가 그전부터 가고 싶다고 이야기하던 곳이었다. 각자 할 일을 하고 집에서 만나 식당으로 향했다. 이게 얼마 만에 둘이서 밖에 나온 건지. 묘한 기분이 들었다. 아이들이 태어나기 전에는 이렇게 데이트하는 게 일상이었는데 육아가 시작된 이후로는 이렇게 둘이 걸은 게 언제인지 기억이 안 난다. 아내가 팔짱을 낀다. 어색한 느낌이 든다. 가족끼리 이러는 거 아니야 라는 드립을 치고 싶었지만 날이 날이니만큼 꾹 참는다. 그렇게 걷다 보니 옛날생각도 나고 기분이 좋았다. 


 예약했던 식당에 도착하니 고급스러운 느낌의 인테리어가 맘에 들었다. 셰프와 간단한 이야기를 하며 음식을 먹기 시작했는데 맛도 맛이지만 향이 참 좋았다. 오랜만에 아내와 낮술을 하기로 해서 술을 시켰다. 가격대가 있는 식당이기에 술 역시 비쌌지만 일 년에 하루 있는 날이니만큼 기분 좋게 마시기 시작했다. 음식도 맛있고 술도 향긋하고 거기에 아이들로부터 해방된 느낌까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배부르게 식사를 마쳤다. 만족스러웠다. 


 낮이니만큼 주변에 술을 마실 수 있는 곳이 마땅히 없어서 그냥 집으로 가서 낮잠이나 잘까 고민하고 있는데 아내가 이대로 집에 가긴 아쉽다며 산책 겸 다른 곳을 둘러보자고 한다. 날이 화창한데 알딸딸한 기분을 느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걷는 것도 나름 괜찮았다. 하지만 마땅한 곳이 없었다. 상가를 구석구석 다니다 그냥 집에 돌아가려고 하는데 천변에 불이 켜진 치킨집이 보였다. 다행히 영업을 한다고 해서 치킨 한 마리와 맥주를 시켰다. 배가 부른 상태였지만 어차피 포장해 가면 되니 부담을 가지진 않기로 했다. 서늘한 바람을 맞으며 야외석에서 맥주를 마시는 데 기분이 좋다. 예전에는 대학교 친구들과 낮술도 하고 노상에서 술도 마셨는데 옛날 일이다. '그럴 때가 있었지.'라는 생각을 하는 걸 보니 나도 젊은 나이는 아니다 싶었다.  


 술을 적당히 마시고 두시쯤 집에 들어왔다. 네시 반쯤 아이들을 하원시켜야 하니 낮잠을 잘 생각이었다. 아내가 술도 얼마 마시지 않았고 주문한 케이크를 찾으러 가야 해 안 잔다고 해서 나만 침대에 대자로 누워서 잤다. 아내가 케이크를 가지러 가기 전에 4시쯤 깨웠는데 그대로 다시 잠들어서 4시 반이 다 돼서 일어났다. 아직 술이 덜 깬 느낌이었지만 아내와 같이 아이들을 하원시키러 갔다. 중간에 아내가 건네준 목캔디를 쪽쪽 빨면서 말이다.  


 아이들을 무사히 하원시키고 집으로 왔다. 아이들의 저녁은 미역국으로 간단히 먹이고 결혼기념일 축하 초를 불었다. 박수를 치며 노래를 부르는데 아이들의 표정이 즐거워 보인다. 동영상을 찍었는데 아이들이 참 예쁘게 나왔다. 아이들이 나의 꽃이라는 말이 다시 한번 떠올랐다. 


 아이들을 키우며 힘들다는 생각을 자주 하지만 그것보다 더 자주 행복을 느낀다. 이러한 행복의 시작이 되었던 결혼을 기념하는 오늘. 박수를 치고 초를 불만한 기쁜 날에 틀림이 없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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