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일기
여느 날처럼 평범한 휴일 아침. 아이들이 잘 노는 것 같길래 소파에 누워 핸드폰을 좀 하고 있는데 첫째가 나를 부른다.
"아빠! 이리 와봐!"
아빠가 오라면 오고 가라면 가야 하는 사람인지에 대한 의문을 미뤄두고 반사적으로 몸을 일으킨다.
"가고 있어~"
첫째는 퍼즐을 맞추고 있었다. 동물모양과 숫자 퍼즐모음을 맞추는데 잘 되지 않자 나를 부른 것이었다. 쉬운 것은 혼자 맞출 수 있지만 어려운 것(첫째 기준 10피스 이상)은 나나 아내의 도움을 받아 맞추곤 했다. 옆에 앉아 하품을 하며 같이 퍼즐을 맞추고 있는데 갑자기 첫째가 퍼즐 모음을 쏟더니 흩어놓기 시작한다.
"퍼즐 흩어놓으면 안 돼! 한 번에 한 개씩 맞춰야지 그렇게 엉망으로 만들면 정리하기 힘들잖아!"
첫째는 내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하고 계속해서 퍼즐을 어지르기 시작한다. 동물모양 퍼즐이 10개, 숫자모양 퍼즐 역시 10개 총 20개의 퍼즐이 바닥에 너저분하게 흩어진다. 퍼즐당 평균적으로 6피스 정도 되니 총 120피스짜리 퍼즐이 되어버린 것이다. 이건 내가 혼자 맞추려고 해도 꽤나 시간이 걸린다. 정리하는 게 만만치 않아 진다는 것이다.
"첫째야. 아빠가 퍼즐 흩어놓지 말라고 했지 이렇게 하면 맞추기가 더 힘들잖아. 더 이상 흩어놓지 말고 아빠랑 같이 맞추자."
이미 다 흩어진 퍼즐. 너저분한 퍼즐을 한데 모으고 퍼즐 판을 줄을 맞춰 정리했다. 호랑이, 사자, 숫자 6, 숫자 10... 20개의 퍼즐판에 집중하며 바닥의 퍼즐을 집었다. 세 개를 집어 맞춰보려니 이게 어느 퍼즐판에 속하는지도 잘 모르겠다. 펭귄 같기도 하고 숫자 10에 해당하는 퍼즐 같기도 하고. 숫자 퍼즐이 동물의 마릿수로 수를 표현하다 보니 비슷한 느낌이라 더 헷갈렸다. 퍼즐 다섯 개 집으면 한두 개 정도 맞추고 다시 옆에 정리해 두었다. 잘 모르겠는 건 한번 전체적으로 다 시도해 본 후 다음에 맞춰보려고 전략을 짠 것이다.
이렇게 저렇게 용을 쓰며 퍼즐을 맞추고 있는데 첫째가 심심한가 보다. 아무래도 난이도가 너무 올라가서 흥미를 잃은 것 같았다. 퍼즐을 가지고 장난을 치다가 나를 두고 방을 나가버린다.
"첫째야 어질러 놓은 퍼즐 다 맞춰놓고 나가야지. 어지른 사람이 정리하는 거야. 아빠는 도와주는 거고."
"아빠가 해!"
아빠가 하라니. 가슴에 새겨진 참을 인자에 금이 가는 소리를 들었다.
"너 그렇게 정리 안 하고 나가면 퍼즐 다 버려버릴 거야!"
나의 위협에 첫째는 눈하나 깜짝하지 않고 대답한다.
"버려~!"
이성의 끈이 끊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비닐봉지를 가져와서 퍼즐과 퍼즐판을 담기 시작했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을 느낀 첫째가 엄마한테 갔다가 나에게 돌아왔다. 아무래도 아내가 아빠한테 사과하고 퍼즐 다시 맞추라고 조언을 해준 것 같았다. 첫째가 쭈뼛쭈뼛 다가왔다.
"아빠 퍼즐 다시 맞추고 싶어요."
평소 같으면 알겠다고 다시 맞춰보자고 이야기하겠지만, 그리고 그게 맞는 방식이겠지만 짜증이 난 나는 감정적으로 행동했다.
"안돼. 아빠가 정리 안 하면 버린다고 이야기했지. 아빠 퍼즐 버릴 거야."
단호한 내 말에 첫째가 흠칫한다. 그리고 울음을 터트린다. 아내가 다가와 내게 핀잔을 준다. 애가 사과를 했으면 받아주고 같이 하면 되지 왜 이렇게 단호하게 하느냐고 나를 나무란다. 아내 말이 맞지만 이미 감정이 상한 나는 아내 말을 받아들이기 싫었다. 방을 나가면 퍼즐을 버린다고 분명히 이야기를 했고 한 번 말한 건 단호하게 지켜야 할 때도 있는 거라고 아내에게 강경하게 이야기했다. 이제 아내와 나의 감정싸움이 되었다.
그렇게 아침부터 아이들 앞에서 아내와 싸웠다. 다툼 끝에 퍼즐은 분리수거장이 아니라 놀이방 한편에 두기로 했다. 다만 이 퍼즐을 아이들이 가지고 놀려면 첫째와 내가 퍼즐을 전체를 맞추는 과정이 선행되어야 하는 것으로 아내와 합의했다. 만약 첫째가 먼저 내게 퍼즐을 맞추자고 요청하지 않고 시간이 많이 흐르면? 그냥 퍼즐을 버리기로 했다.
한참 후 다툼의 여운이 가셨을 때 내가 첫째에게 퍼즐을 맞추지 않겠냐고 넌지시 물어봤지만 하기 싫다고 대답한다. 첫째도 자존심이 있는 모양이었다. 이렇게 퍼즐을 버리게 되려나 생각했지만 겉으론 티를 내지 않고 평소처럼 시간을 보냈다. 아이들과 외출하고 놀다 보니 오전에 있었던 퍼즐사건도 금방 잊혔다. 그렇게 하루가 금방 지나갔다.
다음날 아침 첫째가 나를 부르는 소리에 잠이 깼다. 몽롱한 기분에 아직 정신을 제대로 차리지 못하고 있는데 첫째가 이야기한다.
"아빠 퍼즐 맞춰요."
어제의 일이 생각나며 몸을 벌떡 일으켰다. 첫째가 먼저 자존심을 접어줬으니 얼른 퍼즐을 맞추고 갈등을 봉합하고 싶었다. 첫째의 손을 잡고 놀이방으로 가서 퍼즐을 맞추기 시작했다. 첫째는 둘째가 들어와 퍼즐을 어지럽히는 게 싫은지 놀이방 문을 닫았다. 그리고 한참 동안 나와 첫째는 집중하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전체 퍼즐의 난이도가 높으니 내가 대부분의 퍼즐을 맞추고, 첫째에게는 마지막 피스로 하나의 퍼즐판을 완성하고 그 퍼즐판을 차곡차곡 정리하는 역할을 맡겼다. 어제의 일이 있어서 그런지 별다른 불평 없이 열심히다. 집중한 첫째의 입이 귀엽다.
그렇게 퍼즐을 다 맞추고 첫째와 하이파이브를 하며 놀이방을 나섰다. 그동안 첫째가 무언가를 진드감치 하는 모습을 보지 못했는데 오늘 새로운 모습을 본 느낌이었다. 무엇보다도 속 좁은 아빠와의 갈등을 먼저 다가와 풀어준 첫째의 모습이 대견스러웠다. 어른이 맘이 넓은 모습을 보여줘야 하는데. 못난 모습만 보여주다니 부끄럽다. 첫째에게 더 다정히 대해줘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