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Paris (파리)를 떠나는 마지막 밤 열차

by Nima

내 머리 위로 한참이나 멀리 있는 유리 돔 위로 짙은 어둠이 내려앉았다. 벌써 어둠이 깔리다니, 유럽은 해가 늦게 지는 곳 아니었나. 드골 공항에 도착할 때만해도 노을이 아름답다며 혼자 좋아했던 나는 시계가 가리키는 숫자를 보고 질려버렸다. 자정이 가까워졌다. 낯설고 차가운 Paris (파리)의 자정 무렵, 나는 기차역에 혼자 있었다. 하필 왜 대한항공을 끊었던가. 저녁 비행기로 파리에 혼자 떨어지려면 대책이 있었어야지.


“Pardon. (실례합니다.)”


지나가는 사람마다 ‘빠르동(실례한다)’을 내뱉으며 내 짐들을 걷어차고 있었다. 종종걸음으로 바쁘게 제 갈 길 가고 있는 사람들에게 나는 큰 방해였다. 막차시간이 다 되어가는 기차역 한 복판에서 어쩔 줄 몰라 하며 어정쩡하게 서 있는 동양인 여자, 빵빵하게 부풀어 오른 빨간 여행 캐리어를 덤으로 달고 있는 여자, 손이 오그라들고, 마음이 오그라들었다. 아까 TGV(프랑스 철도) 카운터의 무뚝뚝한 그 여자는 나한테 ‘손가락 5개’를 모두 펴 보이며 가라고 했다. 신경질적으로 다음 사람을 크게 불렀다. 너 너무 귀찮으니까 빨리 가라는 표정, 나도 알아들었다. 그놈의 프랑스어 욕을 아는 바가 없다니, 안타까웠다. 운 좋은 줄 알아, 뚱보 아줌마. '서울의 나' 였으면 아줌마가 나한테 이럴 순 없었을 거야. 하릴없이 씩씩거리며 돌아선 나는 다시 한 없이 작아진 채, 그렇게 수많은 플랫폼들을 사이에 두고 비석처럼 서버렸다.


프랑스에서 스페인으로 내려가는 마지막 밤 열차.

그것이 내가 오늘 타야하는 열차이다. 그 열차를 놓치는 순간, 나는 이 망할 놈의 기차역에서 노숙해야 한다. 난 밤 열차 안에서 주무실 계획만 세웠지, 호텔이며 민박이며 알아본 게 없으니까. 무조건 그 여자 말대로 손가락 5개가 가리키는 곳으로 가야했다. 아마 5번 플랫폼인 것 같다. 그래야 한다. 그 여자가 가라고 한 그 곳이 오늘 밤, 자정 전 내가 당도해야 하는 곳이어야했다. 하지만, 5번 플랫폼은 나를 반기지 않았다. 나의 행선지 '마드리드'로 가는 열차가 있는 곳이 아니었다. 내 차표를 받아든 아랍계 남자가 고개를 저으며 아니라고 하는 것 같았다. 아니라는 것, 알아듣기 싫었지만 알 수밖에 없는 그 모습을 보자 하늘이 무너질 것 같았다. 나는 손가락을 모두 폈다. ‘5’라고 알아들어주길 빌었지만, 알제리가 고향일 것 같은 남자는 미간을 찌푸리며 또 고개를 저었다. 난 미친 사람처럼 손가락을 펴들고 열심히 흔들었다.


“This is Platform Five, No? (여기가 플랫폼 5번이잖아요.)”

“Quoi?(뭐? -프랑스어)”

“Where do I have to go? (어디로 가라고?)”


나는 그야말로 사방 군데로 삿대질을 해댔다. 시계는 11시. 내 차는 11시 반 출발. 나는 발광이라도 해야 했다. 그 때였다. 등 뒤에서 누군가 내게 말을 걸었다.


“What's wrong? (무슨 일이에요?)”

“Uh? (네?)”


발광을 해대는 내 뒤로 누군가 영어로 말을 건넸다. 나는 자동반사적으로 순식간에 돌아섰다. 김연아 선수가 잘 하던 무슨 악셀 턴마냥 뛰어오르듯 돌아선 나를 보고 그는 적잖이 겁을 먹었을 것이다. 다짜고짜 어디서 왔냐고 묻는 걸 보면 말이다.


“Where are you from? (어디서 왔죠?)”

“What? (뭐?) I need to go to spain right now. (나 당장 스페인 가야 되거든.) Wherever I'm from. (내가 어디서 오든 무슨 상관?)”

“You need to go to spain tonight? (오늘 밤 스페인으로 간다고요?) One transfer? (한번 갈아타고요?)”


그랬던가. 나는 티켓을 다시 살펴보려고 했다. 남자도 내 티켓에 바짝 붙었다.


“Let me see. (한번 봐요.)”

“No.(싫어.)”


내가 너를 어떻게 믿고 30만 원짜리 이 티켓을 주나. 너가 도둑이면 난 정말 노숙자가 될 것인데. 나는 이를 앙다문 듯 대단히 불편하다는 표정으로 ‘No(싫어)’라고 했다. 남자는 어이없어 하는 것 같았다.


“I, also going to spain tonight, but …….(제가 오늘 스페인 가서 그런 건데.)”

“Where? Where? Platform number? (어디요? 어디요? 플랫폼 어디?)”


그 때, 솔직히 나는 그 남자도 스페인 가는 기차를 탄다고 알아듣지 못했다. 그저, ‘Spain tonight'이라는 단어만 귀에 꽂혔다. 나는 길길이 뛰었다. 어디냐고 다그쳤다. 잠시 뒤로 주춤거리던 남자는 손을 까딱거렸다. 티켓을 달라는 눈치였다.


그래. 너 놈이 이걸 쥐고 뛰면 난 너 등 뒤에 업혀 물어 버릴거야. 난 마음을 다잡았다. 난 13시간이나 비행기를 탄 여자답지 않게 눈알에 힘을 주며 천천히 티켓을 건네주었다. 남자는 묘한 웃음을 머금고 내게 티켓의 오른쪽 귀퉁이를 가리켰다.


“Platform 8. (8번 플랫폼이요.)”


세상에. 세상에. 세상에. 티켓에 쓰여 있었구나. 나의 '무식'이 '글로벌'하게 알려지는 순간인가. 그 차가운 기차역 한 가운데에서 붉게 잘 익은 토마토처럼 내 얼굴은 달아올랐다. 하지만, 붉고 자시고 신경 쓸 때가 아니었다. 20분도 안 남았을 티켓팅 시간을 위해 8번으로 달려가야 한다. 부끄러움은 잠시 미루어두고 이별을 고해보자. 멋쟁이, 고맙습니다. 나는 최대한 여유 있는 미소를 띠며 그의 손에서 내 비싼 티켓을 낚아챘다.


“Merci, merci. (고마워요, 고마워요)”


나는 티켓을 말아 쥐며 뛰어갈 준비를 마쳤다. 그때 얼핏 그가 나에게 무엇인가 이야기를 하려는 것 같았다. 하지만, 아는 척 해 줄 수 없다. 난 좀 바쁘거든. 너 아쉬운 거 안다, 너 이렇게 여독에 찌들어 뒷머리 팍 눌린 내 모습조차 마음에 드나 본데, ‘쯧쯧‘이라고 말할 수밖에. 여자라면 장거리 비행에 찌들어도 좋다는 당신은 외로움에 사무친 당신, 미안하지만, 저는 갈 길이 바빠서 이만 가야하오니 안녕하시길.


“Merci!!!! (고마워요.)”


나는 뒤뚱거리며 뛰어가는 동안 그래도 인사치레삼아 한 번은 뒤를 돌아보며 웃어주었다. 다만, 그렇게 차갑던 역 안의 공기가 언제 내 얼굴을 다 데웠는지, 옮기는 발걸음 마다 더운 김이 서리는 것 같았다.


**


8번 플랫폼은 유령이 나올 것 같았다. 오가는 사람들로 복닥거려야 정상인 플랫폼은 간간이 보이는 역무원들이 있을 뿐, 지네같이 길게 늘어선 열차 칸마다 불 켜진 곳도 하나 없었다. 불마저 모두 꺼져 있다니. 이 플랫폼에서 스페인으로 출발하고 싶어 안달난 사람은 오직 나뿐인가.


“뭐야? 8번 아냐?”


티켓을 다시 살펴보았다. 찬찬히 한 자 한 자. 알파벳 처음 배우는 유치원생 조카처럼 나는 티켓을 뚫어져라 다시 보았다. 그래도 내 눈에는 모든 활자가 여전히 변함없었다.


‘플랫폼 8번, 11시 반 출발. 파리에서 마드리드.’


나는 불 꺼진 기차 옆을 서성거리며 말을 걸 사람을 찾았다. TGV (떼제베: 프랑스 철도)직원처럼 보이는 사람을 물고 늘어져야 했다. 나는 이 차가운 기차역의 노숙자가 되고 싶지 않았다. 그 때, 검은 열차 내부에서 움직이는 그림자가 겨우 보였다. 나는 빛의 속도로 그 움직임을 좇아 달렸다.


“Excuse me. (저기요, 실례합니다.)”

“Quoi? (뭐요?)”


통로에 멈춰선 사람은 직원 같았다. 파란색, 붉은색이 섞인 TGV 유니폼 조끼 끝자락이 보였다. 그런데 얼굴은 잘 안보였다. 나는 열차 객실로 조금 더 다가갔다.


“Is it going to Madrid? Spain tonight? (이거 마드리드 가요? 오늘 밤 스페인 가는 거요?)”

“Uh…….”


조끼는 통로 계단을 두 칸 내려왔다. 이빨과 흰자만 하얗게 보이는 정통 아프리카 흑인 아저씨는 애석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옴찔 거렸다.


안 돼!! 그런 안타까운 표정은 제발 이제 그만!!

대신 내가 묻는 말에 영어 좀 해줘!!! No French(프랑스어 말고)!!!!!

나는 소리를 지르기 직전이었다. 나의 다급한 표정을 본 까만 아저씨는 더욱 입을 옴찔 거렸다. 그리고는 두 손바닥을 모조리 펴서 진정하라 듯한 제스처를 보여주었다. 하지만 그것은 불붙은 내 불안에 기름 한 병을 끼얹는 짓이었다.


“Yes or No? You can tell me, (맞아 아니야? 말 해줄 수는 있잖아!!) This is platform #8, and nobody in this train? Is it possible? (여기가 플랫폼 8번인데 왜 이 기차에 사람이 없냐고? 이게 말이 되냐고?)”

“왜냐하면, 연착되었으니까요.”


어디서 들어본 듯한 목소리가 한국말로 말했다. 흑인 아저씨는 구세주라도 본 양 어깨를 으쓱하며 내 뒤를 보았다. 나는 그렇게 또 뒤를 돌아보았다. 아까 그 남자였다. 그런데 그는 분명히 한국말로 ‘연착’이라고 했다. 너 외국사람 아니었어?


“나 언제 따라왔어요?”

“네?”

“한국 사람이에요?”

“뭐 그럴 수도 있고.”

“그게 무슨 소리야, 아니 근데, 이 기차 연착 맞아요? 그거 어떻게 알아요?”

“방송했잖아요.”

“저기 표시는 안 바뀌었는데?”

“바꾸겠죠. 이건 TGV인데. (프랑스 철도는 사실 연착으로 악명 높다.)”


이렇게 허무해지다니. 화가 났다. 나는 하얀 이빨 아저씨를 혼내줘야 한다. 어찌하여 당신은 ‘연착’도 영어로 뭔지를 몰라? Delay(연착)을 몰라서 그렇게 옴찔옴찔 낑낑거려? 너 그러고도 글로벌 TGV 직원이야? 나는 흑인 아저씨에게 '니킥'이라도 날리고 싶어졌다. 하지만 그가 서있던 자리엔 개미 한 마리 없었다. 나는 ‘닭 쫓던 개’처럼 멍하게 기차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기차표 시간이 걸려있는 파리 ‘남역’의 아날로그 전광판을 올려다보았다. 어디가 어디인지 찾기도 어려운 이놈의 시간표, 나는 정말 화가 났다. 그러나 그는 내 수고가 안타깝지도 않은지 다시 무서운 소리를 했다.


“기차는 한 시간 뒤에나 갈 거예요.”

“프랑스어 할 줄 알아요? 어떻게 연착된 걸 알았어요?”

“…….”


기억이 없다. 난 ‘르 떼제베(Le TGV)’ 어쩌구 하는 여자 목소리만 들렸는데, 아무튼 너는 연착 방송을 들었단 말이지? 내가 정신이 나가 이 동네를 휘젓고 있을 때, 사람들은 기차가 늦어진다는 것을 다들 알아서 여유를 부리고 있었겠구나. 시간을 벌었다는 것이 다행이기도 하고, 나만 모르고 있었다는 것에 대해 화가 나기도 했다. 나는 뇌가 녹을 것 같았다. 그는 두리번거리며 다른 곳으로 가려고 했다. 나는 그 때 그를 잡아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어디가요?”

“왜요? 따라오게요?”

“뭐요?”


안돼. 쏘아 붙일 일이 아니야. 따라오지 말라고 발로 차도 나는 이 아저씨한테 몇 가지 더 물어봐야하는데.그러니까 언제부터 내가 한국 사람인 줄 알았는지, 이런 거.얼핏 동양인인건 알았지만, 한국 사람이라고는 상상도 못했던 남자는 어서 말이나 해보라는 듯 고개를 까딱거렸다. 나는 목청을 가다듬었다.


“아까 저 따라온 거에요? 나 한국 사람인 건 어떻게 알았어요?”


배낭여행객들이면 모두 단체로 인천공항에서 맞춰 입고 나오는 것 같은 복장은 미리 모두 한국에 던지고 왔다. 내가 들고 온 짐 가방들은 태국에서 산 싸구려 민속 가방, 빨간 바탕에 금줄 코끼리들이 뛰노는 놀라운 어깨가방 하나와 빨간 캐리어, 이렇게 둘이었고 내 행색은 어여쁜 한국 여자들의 행색과는 거리가 멀었는데. 아이돌의 나라다운 귀여운 ‘한국 여자‘같은 모습은 내 몰골에서 찾기가 어려웠을 텐데 나를 어떻게 한국 여자라고 생각했을까? 그런데, 남자는 내 캐리어의 손잡이를 말없이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ICN (인천공항)‘ 자랑스러운 인천공항 이니셜이 캐리어 손잡이에서 수줍게 펄럭이고 있었다.


하하, 하하하. 이 사람 참 물건이군. 그 찰나에서 이렇게 국적 정보를 파악해 내다니, 눈썰미까지 좋은 양반이 아닌가. 나는 한국말도 되고, 영어도 되는 이 신기한 남자에게 나도 모르게 웃으며 말했다.


“호호, 그러면 기차는 12시에 가요?”

“1시간 뒤에 간다는 건, 출발 시간이 12시 반이란 이야기겠죠.”

“고맙습니다! 그거 가르쳐주시러 일부러 오시고, 정말 밖에 나오면 한국 사람이 좋은 것 같아요. 그럼, 좋은 여행 하세요!!!”


나는 연신 허리를 굽혀대며 그에게 고맙다고 했다. 그는 인사를 받는 것인지 놀란 것인지 주춤거렸다. 그래, 당신 착한 일 했으니 이제는 내 걱정 말고, 가던 길 가요. 난 그의 모습을 뒤로하자마자 뭐든 먹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일이 해결되고 나니 그제야 배가 고팠다. ‘금강산도 식후경’, 안정된 마음으로 기차역 빵집으로 뛰었다. 그러나, 고소한 빵 냄새 진동하는 매점은 또 나에게 '안 된다'고 말했다.


“Non. No changes. (거스름돈 없고요,) No Credit card. (신용카드는 안 돼요.)”

“How? How can you say 'no'? (뭐요? 뭔 소리에요?)”


오늘 밤은 프랑스의 전 국민이 나에게 고개를 좌우로 흔들기로 약속한 밤인가?오장 육부를 살살 녹여줄 것 같은, 부드러운 연유를 속살에 잔뜩 품은 크로아상을 집어든 나에게 빵가게 아줌마는 고개를 흔들었다. 눈물이 날 지경이었지만, 난 작은 단위의 현금이 없었다. 여행자수표와 신용카드 그리고 100유로(Euro)짜리 10장, 이것이 내가 가지고 온 전부인데 어쩌라고요. 2유로(Euro)도 안 하는 이 빵을 먹으러 100유로(Euro)를 흔들었지만, 아줌마는 고개만 저을 뿐, 잔돈이 없다고 했다. 그것도 모자라 신용카드도 안 된다? 우리나라에서는 1000원짜리를 사도 받아주는 신용카드, 그거 좀 받아달라는 이 소박한 소원은 프랑스 아주머니에 의해 좌절되고 말았다.


저녁 비행기로 도착한 바람에 은행에 들리기는커녕 ATM 근처에도 가지 못했어요, 그게 죄는 아니잖아요. 돈 안 주고 먹겠다는 것도 아닌데 저, 이 빵을 좀 먹으면 안 될까요. 나는 간절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그래도 아줌마는 고개를 저었다. ‘레 미제라블’의 장 발장 아저씨가 되어야하는 순간인가. 기내식을 얻어먹은 지 8시간이 넘어가는 상황, 내 위장이 이미 고소한 빵 냄새를 제대로 맡아버린 상황에서 아줌마의 모진 '도리도리'는 내게서 정말 눈물을 쏙 빼버렸다. 분하다느니 뭐 그런 것이 아니었다. 배가 고파서 흘린 눈물이었다. 춥고 배고파 울기 까지 하던 밤. 영원히 잊지 못할 몽빠르나스, 남역의 첫 자정이 지나가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