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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ima Oct 06. 2021

사형수의 마지막 식사

나는 뭘 먹고 싶을지 생각해봤나

며칠 전, 습관처럼 돌려보는 네이버 뉴스 헤드라인에 미국 사형수들의 마지막 식사 사진이 보였다.

머그샷 사진별로 마지막 식판이 매칭되어 있었는데, 계란 후라이 5개, 베이컨 한 가득이 쏟아질 것 같은 식판 하나를 보자, 마음이 안 좋았다. 진짜 먹고 싶었던걸까. 그냥 미국 가정식 기본 메뉴 같은데 특별히 생각나서일까, 아니면 교도소라 그게 최선이었던 걸까. 마지막까지 생각나는 베이컨이란 어떤 맛으로 기억된 것일까. 오지랖이 도지던 찰나, 마지막 순간의 나라면 무엇을 먹고 싶을지 궁금했다.


떠오르지 않았다.


나는 무엇을 좋아하나.

나는 무엇을 고싶나.

무엇을 하고 싶나.

무엇이 나를 행복하게 하는가.


최근 들어 부쩍 이 질문들에 내가 대답하기 어려워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놀랄 일이다. 난 이런 사람이 아니었던 것 같은데. 가고 싶은 곳도 많고, 해 보고 싶은 것도 많았는데, 요즘의 나는 매우 낯설고 알 수 없는 사람같다. 그냥 시간을 흘려 보내는 사람일 뿐, 내 하루는 어제와 같고, 내일과도 같을 것 같다. 그 사실이 징그럽다.



지난주 금요일, 그러니까 10월 1일, 사람들이 보통 월요일에 체크해야할 일들을 자꾸 화요일로 미루는 것처럼 보였다. 월요일에 하는 것 아니냐고 물었더니 내 옆의 과장님이 웃었다.


"차장님, 이러다가 월요일에 나오시겠어요. 하하하."


그제야 알았다. 그 날은 벌써 10월의 1일이었고, 나에게는 주말이 3일이나 된다는 사실을.

갑자기 묘하게 설레기 시작했다. 일단 금요일 저녁, 본가에서 효도하고 나면, 토, 일, 월 내게 뭔가 대단한 시간이 펼쳐질 것만 같았다.


금요일 저녁 내내 핸드폰을 들고 누워 '핫플레이스'라는 곳들을 찾아보았다. 가면 실망할 것이 분명한 '인스타 감성의 특정 스팟'만 강조된 카페들이 즐비했다. '애견동반'이 가능한 카페들을 찾아보았다. 몇 군데, 만족스러운 곳이 밟혔다.



느즈막히 시작된 토요일, 조금 더 검색하기로 했다. 내 강아지 복순이를 배 위에 앉히고 드러누워 애견을 위한 카페를 열심히 찾았다. 돌이켜보니 출발해도 시원찮을 시간이었는데 그제야 뭐라도 찾겠다고 핸드폰을 만지작 거렸던 것이고  그 때부터 대단한 망조가 아닐 수 없었다. 그래도 그나마 뭐라도 찾고 있을 때는 설레기라도 했다. 나도 모르게 잠들어버린 뒤 일어나니 토요일 밤이 다 지나갔다는 사실을 깨닫기 전까지.


그래, 내가 하는 일이 그렇지 뭐.


 하루종일 바닥에서 시체처럼 자고 있던 주인이 일어나자 반가워 죽는 복순이를 데리고 오피스텔 앞으로 산책을 나갔다. 잠시 고민이 되었다. 내일 학원보내야할 애기가 있는 것도 아니고, 이렇게 게으르게 늘어진 나를 주인이라고 믿고 있는 강아지 한 마리 뿐인데 뭐가 걱정이냐. 이 길로 당장 차를 타고 1박 2일 가면 안 되나.


다시 네이버를 찾기 시작헸다.

어디를 가야할지 몰라 무조건 '뭐하지'탭을 눌러보았다. 원피스 입은 언니들의 샤랄라 인증샷 핫플들이 넘쳐났다. 태안, 단양, 양양, 부산. 달려볼까? 어디로?


검색만 한 시간 하고 나니,  이미 지쳤다. 너무 많은 정보가 한꺼번에 쏟아졌지만, 정작 나는 나만의 위시리스트 같은 게 없었다. 이렇게 레퍼토리 없이 살다니. 개 한마리 뛰어놀 동네를 못 정한단 말인가.


밤이슬 촉촉하게 맞던 우리는 그냥 집으로 돌아왔다.



어김없이 늦게 일어난 일요일.

이제는 안되겠다는 마음으로 고양시로 내달렸다. 그나마 강아지도 놀 수 있고, 커피도 마실 수 있는 곳 중에서 사진이 제일 마음에 들었다. '빠방'타면 신나 죽는 복순이는 한껏 들떴는지 샐샐 웃고 있었고, 입구 길 표지판이 엉망이라 두 어번 다른 길로 빠졌던 것만 제외하면 그래도 성공적으로 '도장깨기'가 될 것 같았다.


하지만, 거기까지가 제일 행복했다.

혼자 강아지와 무언가를 하기엔 어려운 곳이었다. 일단, 커피를 시키러 들어갈 때 강아지와 함께 들어갈 수가 없었다. 여차 저차 복순이가 밖에서 기다리고 나는 번개처럼 커피를 들고 나와 앉았다. 생각보다 복잡했던 그 곳은 생각보다 너무 사람이 많았고, 그저 건성으로 한 두바퀴 돌다가 다시 차에 올라탔다.


운전하는 동안 나에게 질문했다.


여길 왜 와야한다고 생각했나.

하고 싶은 일이 뭔가.

보고 싶은 것은 없나.

복순이랑 하고 싶은 일들이 이렇게도 없었나.

이렇게 레파토리가 없는 주말을 언제까지 보낼 것인가.

한 게 뭐가 있다고 벌써 10월인데, 나는 주말이 기대되는 사람이 될 수는 없는 것인가.


그나마도 낯선 곳을 거닐어 피곤했는지 쌔근쌔근 잠이 든 복순이는 몰랐겠지만, 운전하는 내내 나는 한숨을 쉬고 있었다.



'뭐 좋아하세요?'


뭐 먹고 싶냐는 질문을 받을 때 항상 '다 좋아한다'고 했던 나를 돌아보기로 했다. 상대방에게 배려한답시고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았던 나의 삶을 좀 바꿔야겠다.


내가 좋아하는 것, 내가 잘 먹는 것, 건강상 좀 줄였으면 좋겠지만 그만 먹기 아쉬운 것 이런 것들 하나하나 알아보아야겠다.


그 뿐만이 아니다.


이번 주말에는 무엇을 할지, 어디를 갈지, 어떤 일을 해볼지 월요일부터 차근차근 고민하고 금요일에는 주저 없이 실행에 옮기는 그런 사람이 되어야겠다. 토요일 밤에나 네이버 '뭐하지'나 뒤적거리며 남들이 조회수 올리려고 화보처럼 찍어둔 사진이나 구경하며 지내는 사람으로는 그만 살아야겠다. 어딜 갈지, 무엇을 먹을지, 미리미리 상상해보고 충분히 즐거워하는 살아있는 사람으로 살아야겠다.


지금의 나처럼 사는 건, 내일 죽어도 별로 아쉽지 않아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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