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page a day project
마흔 하나도 지나간지 두 달 넘었다. 나는야 마흔 둘, 신나는 일 없어도 시간은 잘도 간다.새벽에 출근해도 돌아서면 금방 점심시간, 회의하다보면 저녁시간, 퇴근 언제하나 눈치보다보면 저녁. 집에 돌아오면 강아지 챙겨주고 잠깐만 누워보겠다지만 씻지도 않고 자버리기 다반사. 두어달 날아가는 건 새삼스럽지도 않다, 이 생각이 들자 소름이 끼쳤다.
아뿔싸.
결국 이렇게 날아가면 난 빛의 속도로 50이 될 모양이다.
50이면 노인인가. 나는 노인이 되기 위해 태어났나.
50이 무슨 노인이란 말이냐, 인생은 60부터라는 말 모르냐고 하겠지만, 심장이 쪼여든다.
이렇게 허망하게 날아가고, 이렇게 산산히 부숴지는구나.
이것이 한 번뿐인 인생이라는 모양이네.
그래서 다들 그 난리였구나. 실컷 고생하고 허망에 몸 부림치는 중년들이 'Eat, Pray, Love'를 외치는 소설이 괜히 나온게 아니야. 새삼스럽지 않는 무거운 내 나이보다도 이딴식으로 흘러가면 그저 50이 되어버릴 것 같다는 막연한 공포가 엄습해왔다.
나는 노인이 되기 위해 태어나진 않았는데, 나는 무방비하게 노인이 되도록 내버려진 것 같다.
노인이 되면 곧 죽겠지.
이대로 죽을 수 없다는 생각에 눈물이 핑 돌았다.
최근 몇 주는 저렇게 허망하게 하루를 날려보내지 말자고 책을 읽기로 했다. 한 두 페이지 보다보면 카톡이 오거나, 나 스스로 핸드폰을 뒤적였다 (나 집중력 장애아동이었나). 한 두 페이지 보다 다른 책으로 관심을 유도하며 한 시간에 서너권의 책을 찝적거렸다. 그야말로 잡식 뷔페처럼 '타사의 정원', '사찰에는 도깨비도 살고 삼신할머니도 산다', '명랑한 은둔자', 그리고 '모스크바의 신사'를 동시에 펄럭거리기도 했다. 탐욕스러운 책장과 두서 없는 취향 덕분에 한 문장 다 읽히기도 전에 다른 책을 찝적거리다보니 얼추 한 시간이 지나가줬다.
바람에 흩어지는 깃털처럼, 방향 없이 쏟아져 날아가는 내 시간들을 그나마 발버둥쳐 한 시간 잡아두는데 성공한 느낌이 들었다.
그래, 이대로 살 수는 없다.
이대로 늙어 죽을 수는 없다.
이게 무슨 인생인가.
이러려고 대통령했나, 아니 이러려고 태어났나.
오만가지 초조함과 허망함, 비애로움이 범벅이 되어 내 가슴을 후려쳤다.
아마 이런 감정에 지배당하는 시기를 두고 '중년의 위기'라고 했나보지.
이 나이, 이 생활의 묘한 안정감은 어린 시절의 내가 그렇게 부러워하던 그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속절없이 흩어져버리는 깃털'같은 내 시간들이 이 안정감을 뒤흔들며 내 속을 타들어가게 한다.
나는 노인이 될 준비가 안 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