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우리는 '우리'가 쉽게 될 수 없을까
스마트폰이 갑자기 망가져서 벽돌이 되었습니다.
강제로 지난 5일간 스마트폰 없이 살았습니다.
물론 와이파이만 되는 폰 하나를 들고 다녔지만 대부분의 순간에는 무용지물 이었습니다. 지하철에서 버스에서 엘리베이터에서 저는 고독감을 느껴야만 했습니다. 친구가 폰을 만질 때에도 친구뿐 아니라 세상으로 부터 차단되는 기분을 느껴야 했고요. 자기전에 하던 폰 놀이가 없어졌고 불을 끈 후 바로 잠들어야만 했습니다.
누군가는 해방감을 느끼지 않느냐고 물었지만, 제 대답은 아니오. 입니다. 사실 저 위에 언급한 것은 제게 크게 다가오지 않았습니다. 이동 중에 폰 좀 안 만지면 어떤가요. 자기전에 폰 안갖고 놀면 죽나요. 다만 조금 불편한 것뿐, 스마트폰이 제 인생을 크게 달라지게 하지 못한다는 것을 저는 알게됐습니다.
지난 토요일 친구와 ‘폰 없는 상태에서’ 만나기로 했습니다. 홍대와 합정역 어딘가에서 7시까지 만나기로 했지만 친구는 그 자리에 없었습니다. 순간 화가 났어요. “내가 폰이 없는데! 미리 도착하지 않아 나를 불안하게 하다니!”
곰곰히 생각해봤어요.
친구가 오지 않으면 어떻게 해야할지. 도둑질할 와이파이도 잡히지 않고 주변에는 폰을 빌려줄만한 인상좋은 사람도 눈에 띄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아차! 생각해보니 친구의 휴대폰 번호가 없었습니다. 동기화를 미쳐 시켜놓지 못해 전화번호가 안뜨는 것이죠.
다시 주변을 둘러 보면서 친구의 모습이 나타나길 기다렸습니다. 폰이 없으니 전방을 주시하는 것 외엔 할게 없네요. 마냥 기다리고만 있으려니 이번엔 걱정이 들었습니다. “오다가 무슨 사고라도 난 것일까" "나는 바람 맞는 것일까...” 통신이 되지 않는 폰을 확인해보니 약속 시간에서 20여분밖에 흐르지 않았습니다. 이토록 조급증이 심하다니요. 저는 인내심이라곤 눈꼽만큼도 없는 사람입니다. 원래 같았으면 늦게 온다고 카톡으로 공격질을 하고 있었을 겁니다.
그리고 잠시 후 친구가 도착했을 때 안도감, 안정감이란…저어기서 허겁지겁 달려오는 모습을 보니 폰도 없이 서 있을 저를 꽤나 걱정했던 모양입니다. 지금 이 시간은 친구와 함께하기로 했으니, 폰 안의 혹은 폰 밖의 어떤 세계도 상관없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어차피 연락을 받지도, 하지도 못하니 말이죠. 같이 있는 사람에게 집중하는건 당연한 거지요.
심야 영화로 ‘이터널선샤인’을 봤습니다. 10여년전에 보고 32살이 돼서 다시 보는 겁니다. 영화를 본 후 가슴이 무척이나 먹먹했습니다. 굉장히 슬픈 기분이 된 채로 택시를 타고 집으로 오는 30여분 동안 그리고 이후 오랫동안 내내 계속 영화의 여운이 남아있는 이유가 무엇인지 생각해봤습니다.
제가 내린 결론은 바로 ‘폰이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스스로 느끼는 감성, 감정을 스스로 차단하고 있습니다. 그 도구는 스마트폰입니다.
책이나 영화를 본 후 느낀 감정을 공유하고 곱씹고 풍덩 빠지기 전에 우리는 스마트폰으로 단절시킵니다. 더이상 감성이 이성을 지배하지 못하도록.
계절이 지나가는 것에 어느 누구보다 민감했던 사람이, 어느 순간부터는 찬바람과 함께 겨울 냄새가 코를 훅 끼쳐와도 아무런 감정을 느끼지 못합니다. 주변을 둘러볼 새가 있나요 스마트폰을 보느라. 추워서 터치가 잘 안된다며 투덜거리기나 하지요.
사람이 사람을 상처주기는 너무 쉽습니다. 사랑에 실패하거나 주변 사람에 배신당하는 일도 흔합니다. 근데 예전과는 달리 너무 이제 너무 빨리 치유되는 것 같이 느껴져요. 잊는 것도 빨라요. 하물며 보잘 것 없는 인연이 던진 말에도 상처받았던 여린 감성은, 이제 없습니다.
스스로 어른이 되었다고 자부하나요? 성숙해져서 마음이 단단해졌다고 믿고 있나요?
아니에요. 너무 쉽게 단절시키기 때문입니다. 감성, 감정 그 하찮은 것들을 생각할 겨를이 없습니다. 외부 자극이 오면 우리는 바로 고개를 숙이고 스마트폰 내 세상으로 여행을 떠납니다. 카톡을 하며 친구와 낄낄대고 유머 글이나 뉴스를 보면서 속으로 웃고 분노하는 사이 자잘하게 나를 아프게 하던 외부 자극은 어느새 물러나 있습니다.
폰을 가까이 하지 않고 며칠동안 살아봤더니, 알겠습니다. 얼마나 환경에 둔감해져 있는지. 얼마나 감정이 없이 살아가는지. 얼마나 고독해졌는지.
고독해지지 않으려 선택한 스마트폰 세계에 어느새 지배당해 고개를 드는 것 조차 무서워진 겁쟁이가 되진 않았는지 생각해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