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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니 May 03. 2018

이타주의는 커녕, 어느새 결점투성이 어른

이타주의자; 어떻게 이웃과 함께 살 것인가




초등학교 시절, 연례 학습소개 행사에서 선생님은 우리들을 세워놓고 장래 꿈을 물었다. 약속한 듯 친구들은 "나중에 커서 아픈 사람을 치료해주는 의사가 될 거에요" "대통령이 되어 우리나라를 좋은 나라로 만들 거예요" 대부분 그랬다. 그 나이 때 알고 고를 수 있는 선택지는 한정적이었던 게 문제(?)였던 것 같다. 인류를 위해 희생한 위인들이 인생의 롤 모델이어야 한다는 교육은 생각보다 훨씬 더 강력했으니까.  


자라면서 적잖게 충격이었던 것들 중 하나는 '생각보다 괜찮은' 어른조차 현실에서 만나기 어렵다는 사실이었다. 어쩜 이기적인데다 탐욕스럽고 억척스러운 어른들만 내 눈에 보이는 걸까. 책 속에서 만난, 이타주의자로 표방되는 위인들은 단지 책에 사는 사람일 뿐.


어른이 되고도 얼마 간은 롤 모델을 찾았던 것 같다. 어릴 적 교육받았던 인간상이 허상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웠으니까.

그런 기대는 얼마 가지 않았다. 인류애를 뿜어내던 한 시인은 사실 술취하면 여자 엉덩이를 주무르는 버릇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거나, 선의로 사회생활을 알려준다던 언론사에서 부장인지 국장인지 하는 작자가 노래방에 데려가서 "연애하자"그러질 않나. 뭐 항상 이런(딴) 식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불행한 사건보다, 더 혼란을 야기시키는 건 선의의 양면을 목격했을 때였다. 내가 일하며 만난 소위 '사'짜로 불리는 전문직 A씨는 건물을 몇 채나 가진 부자다. 본업 뿐 아니라 월세로도 수 십억을 벌면서도 자기 직원들을 낮은 연봉으로 쥐어짜는 것도 모자라 CCTV로 감시까지 하는 의심맨이다. 본인이 자리를 비웠을 때 직원들이 일을 하지 않을까, 무엇을 훔쳐가지 않을까 걱정하면서. 시설 개선에 돈을 쓰지 않아 사무공간은 언제나 누추했다.


그런데 이 양반은 또 반대로 수 년간 불우한 사회 계층을 위해 수 억대의 기부를 하는 사람이기도 했다. 인정욕구가 많아서 인지 남들이 귀찮아하고 보상이 적어 나서지 않는 협회의 봉사활동까지 자진해 도맡아했다. 그러면서 자신의 선행이 언론에 노출되는 것은 얼마나 좋아하는지. 그에게 돌을 던질 수 있는 이는 많지 않다. 어쨌든 법의 테두리 안에서 살고 있고, 그의 이타심에 덕을 보는 이들도 많았으니.


이런 저런 쓰고, 단 경험을 하며 사회 생활도 어언 10년이 다돼간다. 맷집이 생겨서 어지간히 무례한 사람을 만나도 담담하게 행동할 줄 안다. 이런 게 어른이 된다는 것일까? 얼마 전에는 "이타주의는 커녕 인간은 이기적인 사람, 덜 이기적인 사람 두 부류로 나뉜다"는 이야기를 하며 친구들과 깔깔 웃었다. 한 친구가 말했다. "이타적인 사람은 어느 무리에서든 호구잡힌다"고. "그 말이 맞다, 맞다"며 맞장구를 쳤다.


어릴 적 학급 소개날로 시간을 거슬러 가본다. 나는 장래희망으로 '선생님'을 말했던가. 분명한 건 나는 누군가에게 무엇이 되고 싶었다. 이제는 과거형일 뿐이지만.


얼마 전 '좋은 일은 언제 시작될까'라는 책을 열었더니 첫 페이지에 이런 말이 있었다. "필자의 어머니는 이렇게 말씀하시곤 했다. 문제는 모든 사람이 자기 자신은 물욕을 추구하면서도 막상 다른 사람에게는 정신적인 것을 주문하기 때문이라고. 인간은 결점투성이다." 그러네, 어느새 나도 그렇고 그런 어른으로 성장하고 말았다.





두산아트센터에서 진행하는 '두산인문극장 2018: 이타주의자'의 "어떻게 이웃과 함께 살 것인가"라는 질문에 저는 이렇게 답변했습니다. 여러분들은 이타주의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링크: 두산인문극장 2018 자세히보기 https://bit.ly/2ur678W
#두산인문극장 #이타주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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