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드 이야기 SLOWWOWSLOW
이솝의 제품을 언제 어디서 마주칠 수 있을까. 난 감각적인 매장이나 카페의 화장실에 비치된 이솝 핸드워시로 제일 많이 접했다. 그리고 이솝 제품을 선물하는 사람들을 많이 보았다. (아쉽게도 제가 받은 건 아닙니다…) 이솝의 패키징 때문에 더 센스 있는 선물이 되는 것 같다. 이솝의 패키징은 감각적이라는 말이 정말 잘 어울린다. 흰색 바탕에 검은색 산세리프체로 쓰인 라벨이 붙은 갈색 병. (찾아보니 Optima라는 폰트라고 합니다. 세리프가 없으면서 글자의 모양과 비례는 고전적인 세리프 서체에 바탕을 둔 휴머니스트 산세리프체라고 하네요.) 디자인 때문만이라도 집 안에 두고 싶은 생각이 든다. 그렇지만 싼 가격은 아니다. 선물로 받으면 너무 기분이 좋을 거 같다. (내 생일 4월 5일) 이 낯선 듯 안 낯선 브랜드를 알아보고 싶었다. 이솝이 단순히 이뻐서 지금까지 있는 건 아닐 테니까.
이솝의 창립자인 데니스 파피티스는 헤어 디자이너였다. 그는 오로지 소개를 통해서만 손님을 받았으며 손님과의 오랜 상의 끝에 머리를 손보기 시작했다고 한다. 굉장히 완벽주의자였다고 한다. 까다로운 그는 헤어디자이너로 일하면서 사용하는 시중의 헤어 제품이 만족스럽지 못했다. 결국 지인의 권유로 헤어 제품을 개발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는 미국과 호주를 넘나들며 제품 개발에 힘썼으며 실력 있는 개발자를 찾아 같이 개발하였다고 한다. 처음 출시한 것은 기존의 염색제에 에센셜 오일을 첨가한 헤어 제품이었다. 이후 헤어 제품뿐만 아니라 스킨케어, 핸드 제품 등도 개발하면서 이솝이라는 브랜드를 만들게 되었다.
각 챕터는 이솝의 제품, 디자인, 매장 순입니다. 그리고 각 챕터엔 이솝의 메시지를 찾기 위해 질문을 던집니다. 답해보면서 읽으면 저와는 다른 메시지를 얻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Why가 아닌 How부터 제시하는 것이 글 문맥상 안 좋다는 걸 알지만 제가 바로 Why를 끄집어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브랜드를 공부한 과정대로 글을 써볼까 합니다.
데니스 파피티스는 이솝이 철저하게 과학과 기술에 기초한 브랜드라고 말했다. 이솝 제품은 100% 천연 제품이 아니다. 연구실에서 제조된 인공 성분과 식물성 재료를 조합해 만든 제품이다. 반드시 효능과 안전성이 입증된 성분만을 사용한다. 이솝의 기본 원칙은 제품이 과학적으로 사람에게 효과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솝은 제품 하나를 개발하는 데 보통 3-4년이 걸린다고 한다. 제품 개발에 많은 역량을 투자한다. (실제로 다른 브랜드에 비해 제품 개발에 훨씬 많은 돈과 시간을 투자한다.) 데니스 파피티스의 제품 철학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솝의 목표는 최고 품질의 제품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이솝은 제품에 집착한다.
이솝은 과학적으로 사람의 피부를 분석하고 제품을 추천한다. 실제로 전문적인 지식을 가진 컨설턴트들이 이솝 매장에서 제품 라인을 소개하고 고객에게 적합한 제품을 고를 수 있도록 안내해준다. 웹사이트에서는 제품별로 피부 타입에 잘 맞는지 알려주고 피부 타입에 맞는 스킨케어 키트를 제안하기도 한다. 또 ‘내 피부 이해하기’라는 탭을 통해 자신의 피부 타입과 피부 고민을 분석해준 후 개인별 맞춤 제품을 제안해준다. 복합적인 피부 변화 요인(유전, 계절, 여행, 라이프스타일)에 따른 대처 방안도 알려준다. 이들이 얼마나 피부에 대해 과학적이고 논리적으로 접근하는지를 알 수 있었다. (향수와 바디&핸드 제품 같은 경우도 향과 사용감을 상세히 적어놓았다.) 이는 ‘더 아테네움’이라는 이솝 웹사이트에 있는 웹매거진을 보면 더 잘 나타난다. 이솝은 ‘실험실에서 배운 교훈’이라는 제목으로 피부에 대한 과학에 기반한 지식을 알려준다. 이솝은 과학을 판다.
왜 이솝은 제품 개발에 다른 코스메틱 브랜드보다 훨씬 더 많은 역량을 투자할까? 왜 이솝의 이미지를 팔지 않는 걸까? 왜 제품에 대한 과학기술과 효과에 집착할까? 이렇게 과학적으로 접근하는데 왜 사람들은 이솝을 감각적이고 감성적인 브랜드로 생각할까?
이솝은 지적이고 지속 가능한 디자인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지적인 디자인은 이솝 제품의 정보만이 나열되어 있는 라벨에서 볼 수 있다. 라벨 디자인은 이솝이 과학적이고 효과적인 제품임을 더 드러낸다. 제품 유형, 성분, 향 등 제품에 대한 실용적인 정보만이 적혀 있다. 제품에 대한 자신감으로도 보이고 제품에 신뢰가 가기도 한다. 그래픽, 일러스트, 고급스러운 타이포그래피, 채도 높은 색을 사용하는 여타 다른 코스메틱 제품과는 차이가 있다. 또 용기는 굉장히 기능적이다. 더하지도 않고 빼지도 않은 용기이다. 굉장히 실용주의적인 디자인이다. 소비자들에게 이솝의 제품가치를 잘 보여주는 데에는 많은 시각적 디테일이 필요 없다.
이솝은 환경보호에도 관심이 있다. 이솝의 패키징은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는 것을 목표로 제작된다. 이들은 기본적으로 외부 카턴 상자(종이 상자)를 사용하지 않고 재활용이 가능한 유리, 알루미늄, PET를 사용한다. 그리고 최근에는 PET 플라스틱 용기의 80% 이상을 사용 후 재활용된 원료 함량을 최소 97% 높인 재활용 플라스틱으로 전환하였다. 실제로 이솝은 사회환경적 성과, 투명성 등에 대한 높은 검증 기준을 충족해야만 얻을 수 있는 비콥 인증을 받았다.
이솝의 디자인이 놀라운 이유는 이성적으로 접근한 디자인이 사람들에게 감성적으로 다가간다는 것이다. 초반에 말했듯이 이솝은 감각적인 매장과 카페에서 제일 많이 보인다. 왜 이들의 실용주의적 디자인이 감성적인 디자인으로 사람들에게 다가갈까? 단순히 미니멀한 디자인이 인기를 끌고 있어서일까?
이솝은 매스미디어를 통한 광고를 하지 않는다. 이솝은 오프라인 매장을 통해 이솝을 드러낸다. 이솝은 각 나라 각 지역의 특색을 담은 시그니처 매장을 연다. 이들의 시그니처 매장 철학은 각 지역의 특색을 담아서 모든 매장이 달라야 한다는 것이다. 이솝의 시그니처 매장 디자인을 총망라해 아카이빙한 ‘Taxonomy of design’ 에서 추려온 몇 가지 매장을 소개해보려고 한다.
이솝 센츄리시티는 20세기 폭스가 과거 60년대 야외 촬영지로 사용했던 부지에 조성된 LA 상업지구에 자리 잡고 있다. 이 매장의 소재와 색상은 LA의 여가문화에 기반해서 나왔다. 캘리포니아 전역의 교외 경관에서 빠지지 않는 오랜 전통이었던 뒷마당 수영장을 모티브로 하였다. 이 수영장은 데이비드 호크니, 에드워드 류샤 등 현지 예술가들이 그린 작품을 통해 LA의 정체성으로 더 거듭났다. 캘리포니아의 수영장은 물가에서 느긋하게 보내는 휴식과 여유를 상징한다. 이솝 센츄리시티는 정면에 곡면의 유리 패널, 안쪽에는 각이 있는 구조물이 삽입되어 물표면을 디자인적으로 표현했다고 한다. 바닥과 벽, 선반을 둘러싼 담청색의 세라믹 타일은 수영장 타일을 그대로 본뜬 것 같다.
이솝 가로수길은 다양한 부티크, 갤러리, 카페가 즐비한 서울의 문화거리인 가로수길에 위치하고 있다. 심플함을 강조한 형태를 주로 사용했으며 스토어 문턱에 넓은 화강암 디딤돌을 놓아 분주한 시내 속에서 고요함을 선사한다. 또 한국의 음영의 미를 부각하기 위해 다양한 질감과 대비되는 색조를 활용하였다. 가운데의 한국산 소나무 원목 테이블은 모서리를 가공하지 않고 그대로 살려두었고 스토어 벽면은 한지로 마감하였다. 한국의 고전적인 미와 현대적 미를 접목시켰다.
메이페어(런던)의 중심지인 마운트 스트리트는 전통과 현대적인 건축양식이 공존한다고 한다. 18세기 앤 여왕 시대의 독특함을 보여주는 상점들 사이로 현대적인 양식이 함께 존재한다. 이 특징을 그대로 담아 과거를 상징하는 화려한 소재와 모던한 깔끔한 선을 이용해 대조를 일으킨다. 예를 들면 모던한 합판 테이블 위에 빈티지 램프가 올려져 있다.
(각 매장의 설명글은 이솝 웹사이트를 참고하여 작성하였습니다. 저의 해석이 아닙니다. 이솝의 웹사이트에서 더 자세히 보실 수 있습니다. 이외에도 많은 시그니처 매장이 있고 각 매장을 보는 재미가 있습니다. 보는데 시간 가는 줄 모르니 유의하고 보세요.)
각 도시의 시그니처 매장은 전 세계에 하나밖에 없는 매장이라는 것만으로도 매력적이다. 또 자신이 사는 지역의 색깔을 입은 매장은 소비자들 입장에서 익숙하면서도 새로울 거 같다. 사람은 자신의 특성과 유사한 사람과 더욱 유대관계를 유지하고 지내는 경향이 있다. ‘걸맞추기 원리(Matching Principle)’라고 한다. 사람들이 자신의 지역 양식을 입은 매장을 좋아하는 이유도 이와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다. 한옥 양식을 띠는 몇몇 스타벅스 매장은 인기가 많은 것처럼 말이다. 또 외국인이 자국의 음식을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면 미소를 띠는 것과도 비슷한 것 같다. 이솝의 시그니처 매장도 괜히 호감이 갈 수밖에 없다.
보통 시그니처 매장이라고 한다면 브랜드의 시각적 이미지를 최대한 드러내기 마련이다. 나뚜루 시그니처 매장이 온통 초록색인 것처럼 말이다. 심지어 이솝은 매스미디어 마케팅을 하지 않기 때문에 시그니처 매장은 그들의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보여줄 수 있는 적은 수단 중 하나이다. 왜 브랜드를 대표하는 공간에 브랜드의 시각적 이미지를 최대한으로 입히지 않고 각 지역의 특색을 입힌 것일까?
모든 질문들을 한 가지의 이유로 답할 수 있을까? 모든 질문에 쉽게 답하라고 한다면 다 할 수 있다. 제품 개발에 힘을 쓰는 이유는 창립자의 고집이고 실용적인 이솝의 디자인이 감성지게 느껴지는 이유는 미니멀한 디자인이 현재 인기를 끌기 때문이다. 매장에 지역의 특색을 입히는 이유는 각 지역의 소비자들의 방문을 늘리기 위해서이다…
그러나 난 브랜드가 오래 살아남는 이유는 일관적인 브랜드의 메시지를 전달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한 가지 이유로 답할 수 있다면 그것이 브랜드 메시지이자 이솝의 브랜딩 방향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찾은 이솝의 브랜드 메시지이자 가치는 ‘조화’이다. ‘조화’란 ‘서로 잘 어울림’을 의미한다. 우리는 흔히 두 무언가의 조합이 어색하지 않고 잘 어우러져 있을 때 조화롭다고 한다.
‘조화’라는 단어를 찾은 곳은 결국 이솝이 집착하는 ‘이솝의 제품’이었다. 이솝은 안티에이징이나 주름개선을 위한 제품을 출시하지 않는다. 이들은 피부의 드라마틱한 변화가 아닌 피부의 균형을 위한 제품을 개발하고 출시한다. 이솝의 과학적인 제품 개발은 제품과 피부의 조화에 집중한다고 생각했다. 이들이 제품명을 ‘제품성능,향,성분+제품유형’으로 명료하게 해 놓은 이유 또한 스킨케어의 본질은 피부와의 조화이지 이미지와의 조화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 아닐까. 화려한 형용사들과 극적인 변화의 동사들을 적는다면 소비자들은 이미지를 보고 구매하게 된다. 이솝은 효과적인 제품을 구매하길 원했지 제품의 이미지를 구입하길 바라지 않았다. 이들이 안정성과 효능에 집착하는 이유 또한 마찬가지라고 생각했다. 이들의 과학은 차가운 혁신이 아니라 따뜻한 조화를 위해 존재한다는 생각을 했다. 이솝 제품이 추구하는 가치는 곧 이솝이 추구하는 가치라고 생각했다. 이솝은 어느 브랜드보다도 제품가치를 중요시하기 때문이다. 결국 이솝이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메시지는 제품에 담겨있었다.
그렇다면 이솝이 이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어떻게 소비자에게 다가갔을까? 제품의 가치이자 이솝의 가치인 ‘조화’를 ‘조화’롭게 전달해야 하지 않았을까?
이솝의 실용주의적인 디자인의 특징은 미니멀하다는 것이다. 필요 없는 것은 모두 뺀 디자인이다. 이는 어느 장소에서든 이솝의 제품이 어울릴 수 있는 특성을 지닐 수 있다는 것이다. 많은 것이 더해진 디자인보다 덜어낸 디자인이 어디에나 조화롭게 놓일 수 있다. 이솝의 디자인은 어느 공간이든 어느 사람이든 간에 조화를 이룰 수 있다. 이솝 제품은 공간에 놓여 있을 때 절대 튀지 않는다. 그 공간과 어울릴 뿐이다. 그렇지 않은가? 미드센추리 양식의 카페에서나 친환경 제품을 파는 나무나무한 매장에서나 모두 어우러진다. 이 차가운 디자인이 사람들에게 감성적으로 다가왔던 이유는 조화롭게 어우러질 수 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매장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시그니처 매장에서조차 브랜드를 최대로 드러내기보다는 그들이 추구하는 가치에 맞게 지역과의 조화를 택했던 것이다. (물론 이 이유로 실용주의적 디자인과 시그니처 매장을 기획한 것은 아닐 수 있지만..) 이솝의 기프트 마케팅, 이솝의 디자인에서 자주 쓰이는 기하학적 요소, 이솝의 채도가 낮은 색 등 여러 사소한 부분도 조화의 가치를 드러내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많은 코스메틱 브랜드들이 변화를 이야기한다. 소비자는 이솝을 통해 변화가 아닌 조화를 느낄 수 있다. 조화는 상생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 이솝은 사람들의 피부와 이솝 제품 사이가, 더 나아가 사람들의 일상과 이솝의 디자인 사이가, 도시와 이솝의 매장 사이가, 브랜드와 사람 사이가 균형을 이루고 조화롭기를 바란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그리고 이솝의 소비자들은 변화를 일상에 끌어들이기보다는 조화롭게 일상에서 함께하고 싶기 때문에 이솝을 선택한 것이 아닐까.
제 피부는 지성이면서 좀 민감하고, 좋아하는 향은 머스크 향, 생일은 식목일 크흠….
출처: 이솝 웹사이트, 인스타그램
주넌 님이 브런치에 게재한 글을 편집한 뒤 모비인사이드에서 한 번 더 소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