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별의 스타트업 IP
NO RULES RULES
“지구상 가장 빠르고 유연한 기업”이라고 불리는 한 기업이 있다. 바로 <넷플릭스>의 이야기다.
기업공개 당시 1달러였던 주가는 20년이 지난 지금은 수백 달러에 달할 정도로 성장했다. 시총의 성장 규모가 놀랍다. 그러나, 숫자의 성장을 말하고 싶은 것이 아니다.
넷플릭스가 비디오 대여 시장의 기회를 포착한 작은 스타트업에서, 영화 산업과 방송 산업을 위협하는 전 세계 최대 온라인비디오사업자(OTT)로 성장하기까지의 비결은 무엇일까?
책 <규칙 없음>은 넷플릭스의 기업 문화를 그 이유라고 말한다. “규칙이 없는 규칙(NO RULES RULES)”의 역설적으로 보이는 기업 문화로 인해 넷플릭스가 인재를 유치하고, 탁원한 성과를 낼 수 있었다고 한다.
공중파에서 볼 수 없었던 <킹덤>, <오징어 게임>, <더글로리>와 같은 신선한 콘텐츠가 만들어질 수 있었던 배경도 넷플릭스의 기업 문화가 녹아들었기 때문이다.
넷플릭스는 감독과 작가에게 무한한 자율성을 부여하는 것으로 이미 정평이 나있다. 그리고 상당한 제작비를 지원한다. 최근 <오징어 게임> 시즌 2를 구상하고 있는 황동혁 감독의 시나리오는 대본을 완성하고도, 낯설고, 상업성이 없다는 이유로 10년 만에 겨우 세상에 등장했다.
규칙이 없다는 것.
정해진 시간표가 없는 대학에 처음 입학한 1학년이 맞닥뜨리는 당혹감처럼, 우리에게는 다소 낯선 문화로 다가온다.
직원들에게 더 많은 자유를 주고, 회사도 함께 성장하는 이상적인 그림이 현실 세계에서 그려질 수 있을까?
물음표 너머에서 넥플릭스의 컬처 데크(Culture Deck)를 살펴보고자 한다.
넷플릭스의 기업 문화는 스타트업 업계에서 이상으로 삼는 ‘애자일(Agile)한 조직’과도 닮았다. 정해진 룰만을 고수하는 것으로는 혁신을 만들 수 없기 때문에, 기업은 조직은 유연하고 창의적인 활력을 불어넣을 불쏘시개가 필요하다.
물론, 지도 없이 출한한 배가 망망대해에 표류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되기 마련이다. 정해진 항로를 따라가면 신대륙을 찾을 수는 없지만, 적어도 목적지에는 안전하게 도달할 수 있다.
넷플릭스의 창업자 리드 헤이스팅스는 규칙 없는 자율성을 강조하기에 앞서 “인재 밀도를 높일 것”을 첫 번째 전제 조건으로 삼았다.
“규칙 없음”과 “인재 밀도”는 어떠한 관련이 있을까?
“규칙 없음”은 자율성의 극대화를 의미한다. “높은 인재 밀도”는 성과의 극대화를 의미한다. 그리고, 넷플릭스는 원하는 최대 성과를 얻기 위해 직원들의 자율성을 극대화하는 방식으로 언뜻 보기에 달라 보이는 두 가치를 연결시켰다.
자율성이 높인다고 단순히 성과가 높아질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오산이다. 일을 하지 않을 자유도 생기고, 성과를 얻어낼 동력이 사라질 수도 있다. 모두가 대표와 같은 생각을 가지고 일하지는 않는다.
넷플릭스는 성과를 내기 위해 인재가 필요했다. 그리고, 영입한 인재가 더 잘 일할 수 있도록 인재 밀도를 높이는 환경을 조성했다. 자율성이 높은 환경에서는, 서로를 위하는 피드백을 조금 더 자유롭게 줄 수 있다. 탁월한 누군가를 보고 좌절하는 것이 아니라, 자극받고 서로를 성장시켜 주는 문화를 만들고자 하였다.
기업을 운영하는 대표의 입장이 되어보자.
‘적당한 보수로 보통 수준의 능력을 가진 엔지니어를 수십 명 고용하는 선택지’와 ‘거액을 주고 1명의 록스타 엔지니어를 영입하는 선택지’가 있을 때, 당신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기업의 업종과 상황에 따라 다르겠지만, 직원에게 투입하는 인건비와 회사가 얻을 수 있는 성과를 고민할 수밖에 없다. 기업 문화의 지향점이나 가치관에 따라 형태가 달라질 뿐이다.
넷플릭스는 수십 명의 엔지니어보다 록스타를 영입하는 정책을 택했다. 인재를 통해 성과를 낼 수 있다고 믿은 것이다. 인재풀을 확보하고, 이들을 유치하고, 이들과 함께하는 기업 문화를 고민했다. 치열한 고민의 결과는 “직원에게 자율성을 주고, 책임과 성과를 얻어낸다는 것”이다. 리드 헤이스팅스는 다소 엄격했던 지난 창업 경험을 반면교사 삼아 넷플릭스의 기업 문화를 피벗(Pivot)했다.
넷플릭스가 DVD 대여 산업에서 동영상 스트리밍 산업으로 전환하는 과정, 넷플릭스 오리지널을 출시하여 콘텐츠 제작자가 되기 위한 과정에서 인재의 필요성이 더욱 느껴진 것으로 보인다. 소프트웨어 개발이나, 콘텐츠 창작과 같은 길에서는 아웃라이어 1명이 낼 수 있는 가치는 제한이 없다.
모든 사업 영역에서 넷플릭스와 같은 인재 중심 경영이 적용되지는 않을 수 있다. 콘텐츠 산업과 플랫폼 산업이 만난 OTT 산업의 특수한 조건이 맞아떨어진 것이라고 볼 여지도 상당하다.
항공, 금융 등과 같이 규제가 사업의 진입장벽을 만들거나, 이미 자리를 잡아 관리만으로 시장을 독점하는 업종이 아니라면, 성과를 만들어 낼 동력을 끊임없이 고민할 필요가 있다.
넷플릭스는 인재를 유인하고, 밀도를 높이기 위해서 “자율성이라는 가치”와 “높은 보상이라는 유인책”을 결합했다. 열정적이고 창의적으로 일하고자 하는 직원에게 자유라는 가치를 부여하게 된다면? 스스로 성장의 욕구를 채우며, 그 직원이 만들어 내는 성과를 회사와 직원이 모두 누릴 수 있다.
시스템은 사업이 안정적으로 운영되도록 한다. 그러나, 창의력이 필요한 영역에서 시스템은 예측 가능한 중간 정도를 성과를 만들기에 적합한 제도이다. 인재가 뛰어놀 수 있는 환경은 되지 못한다.
넷플릭스가 높은 보상을 주는 방법도 주목해 볼 만하다. 성과를 잘 내는 직원은 매년 시장가치가 높아지기 마련인데, 넷플릭스는 연봉 테이블을 뛰어넘는 직원이 경쟁사로 이직하지 않도록 높은 보상을 스스로 제안하는 전략으로 성과가 좋은 직원이 떠나지 않도록 관리한다. 스카우터를 만나 다른 회사의 처우를 확인하는 것을 권하는 자신감까지 보였다.
경력의 기간을 계산해서 3년 차, 5년 차 직원의 급여를 단순히 계산하던 과거의 관습을 되돌아볼 때이다. 협상이 당연시되는 서부권의 문화의 특징이기도 하다. 연봉 테이블이 정해지는 관습을 스스로 파괴했다는 점이 주목할만한 것 같다. “시장가치”라는 지표를 기업의 가치나, 부동산의 가치를 따지는 것에만 쓰지 않고 직원의 가치를 파악하기 위해서 쓰는 흥미로운 포인트다.
수익성이 부족한 기업이 함부로 따라 하기 어려운 전략이다. 이상을 꿈꾸려면 주머니 사정이 넉넉해야 하기 때문에, 타협과 응용의 기술이 필요해 보인다.
작은 회사에서 높은 자율성을 보장받았던 개인적인 경험으로도, 장기적으로 회사가 성장하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직원에게는 이러한 대우를 고려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자율성과 높은 보상은 시너지를 만들어 낼 수 있다.
조직 관리와 인사에 정답은 없다.
마이크로 매니지로 모든 프로세스를 관리하거나, 시스템을 통해 탁월한 성과를 내는 기업들도 많다. 과거의 기업으로만 단정할 수는 없는 복잡 다단한 문제이다.
넷플릭스는 인재를 유치하고 성과를 내기 위해서 ‘규칙 없음’으로 대변되는 자유의 가치를 내세웠는데, 이는 시스템과 규칙보다는 신뢰의 가치를 높게 규정한 의사결정이다. CEO의 개인적인 경험이자, 데이터에 기반한 합리적 선택의 복합체이다.
자율성의 대가로 성과와 책임이 있다는 점을 구성원들에게도 공유하고, 개인들을 신뢰하는 방법으로 ‘No Rule’ 정책을 보완해 나간다.
넷플릭스의 문화는 ‘자율성을 전제로 한 신뢰주의’로도 해석된다. 기업을 운영하기 위해서는 수익이 필요하고, 이러한 수익은 결국 성과를 통해 창출되기 마련이다. 자유의 이름 하에 탁월한 성과를 내기 위해서 그들의 선택을 존중하고, 신뢰를 통해 누구보다 빠른 의사결정을 만들어 내는 것이 넷플릭스의 문화이다. ‘No Rule’은 신뢰라는 단어로 치환된다.
결국 ‘규칙 없음’은 주인 의식을 가진 파트너를 찾고, 목적지까지 함께하기 위한 신뢰의 룰(Rule)이지 않을까.
손인호 님이 브런치에 게재한 글을 편집한 뒤 모비인사이드에서 한 번 더 소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