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 스타트업의 IR 과정을 도와드린 적이 있습니다.
보통 다른 기업의 IR 작업을 해드릴 때는 단순히 문서 작성만 하는 것이 아니라, 회사 경영 전반에 대한 상황을 먼저 충분히 파악한 뒤 이를 기반으로 아래 5가지 작업을 복합적으로 진행하고는 합니다.
[스타트업 IR 지원 과정]
① 경영·사업 상태에 대한 전반적 진단
② 투자자에게 어필 가능한 포인트들을 도출
③ IR 스토리라인 정리 후 IR 자료 제작
④ 투자자 분들이 물어보실만한 핵심 질문, 예상 답변 준비
⑤ 적정 Valuation 범위, Multiple 논거 설정
이번에 함께 했던 회사는 리테일 분야의 스타트업으로 최근 4-5년 간 사업을 건실하게 아주 잘 진행해 오셨던 곳이었습니다. 이 회사는 사업을 시작한 지 4-5년 만에 매출 400억을 돌파하고 단 한 번의 적자도 없이 꾸준히 수익을 내면서 성장을 해왔는데, IR 작업을 하면서도 개인적으로 꽤나 대단하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었습니다. 실제 창업자 분도 꽤나 똑똑하시고 또 생각이 깊으신 스타일이었고, 그래서인지 IR 작업을 함께 하면서도 합이 정말 잘 맞았던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스타트업이 IR을 돌고 투자를 유치할 때 중요한 것들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투자 유치는 해당 기업의 생존과 미래를 결정하는 정말 중요한 요소들 중 하나입니다. 특히나 요즘처럼 시장의 분위기가 좋지 않을 때일수록 IR의 본질을 잘 이해하고 그에 맞는 전략을 잘 세워야만 하겠죠.
개인적으로 과거 투자 유치 과정을 수차례 직접 진행해 보고, 또 다른 기업의 투자 유치를 여러 번 도와드리면서 경험했던 것들을 토대로 정리해 본 ‘스타트업 IR 시 중요한 것 3가지’는 아래와 같습니다.
IR 자료를 작성할 때는 (너무 당연한 말이지만) 사실 투자 유치를 받으려고 하는 그 회사의 사업이 얼마나 잘 되고 있는지가 가장 중요합니다.
투자 유치를 한다고 하면 ‘우리 회사를 어떻게 해야 더 멋들어지게 꾸밀 수 있을까’를 먼저 고민하시는 경우가 많은데, 조금 냉정하게 말해서 호박에 줄 긋는다고 수박이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겉으로 그럴듯하게 잘 꾸미는 데에도 분명 한계는 존재하며, 설령 그렇게 해서 투자 유치에 성공한다고 한들 그것은 장기적으로 회사 – 창업자 – 투자자 모두에게 손해가 되는 경우가 훨씬 많습니다.
정말 건실하게 사업이 잘 진행되고 있고, 잘 성장하고 있어야 IR을 잘 준비해서 더 높은 기업가치를 인정받고 더 많은 투자금을 유치하는 것이 의미가 있는 것이죠.
반대로 사업이 부실하거나 IR 때 말한 약속을 충분히 잘 지킬 정도로 팀의 역량이 강하지 않다면, 운이 좋게 투자 유치에 성공한다고 한들 사실 그 돈은 투자자에게는 손실이 되고 창업자에게는 큰 짐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한동안 스타트업 투자 붐이 일었을 때는 자금 조달이 워낙 쉬웠어서 스타트업을 한다 그러면 너도나도 투자부터 받으러 다니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여겨지기도 했었는데요. 팀의 이력이 조금만 괜찮으면 ‘일단 돈부터 받고 뭘 할지는 그다음에 생각해 보자’라고 생각하는 곳들도 있을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진정으로 책임감이 강하고 정말 사업을 잘하는 곳들은 오히려 ‘투자를 꼭 받아야 하는지?’ ‘우리가 투자자의 돈을 책임지고 받을 만큼 준비가 되었는지?’를 심사숙고 한 뒤, 여기에 충분히 자신감이 생기면 그때 투자 유치를 시작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리고 그런 곳들이 더 안정적으로, 더 오래, 더 크게 성장을 해나가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일단 이렇게 사업이 잘 진행되고 있고, 앞으로의 가능성도 충분하다고 판단되면 이제 필요한 것은 바로 자신감·기세입니다.
여기서 오해하지 말아야 하는 점은 ①번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자신감·기세를 고민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는 점입니다. 사업이 부실한데 자신감·기세만으로 승부를 보는 것은 어떻게 보면 요행이자 사기에 가깝기 때문입니다. 다만, 사업이 정말 괜찮다면 어느 정도는 충분히 자신감·기세를 갖춰야 원하는 시간·금액 내에서 제대로 IR 과정을 마칠 수가 있습니다.
보다 보면 간혹 제품도 괜찮고, 그동안 사업도 잘해왔고, 앞으로의 가능성도 나름 괜찮아 보이는데 유독 투자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는 회사들이 있습니다. 이 경우는 보면 창업자가 너무 겸손하거나, 자신감이나 기세가 부족해서 투자자들에게 본인의 매력을 제대로 100% 잘 전달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떻게 보면 본인의 사업을 투자자들에게 매력적으로 잘 전달할 수 있는 능력은 좋은 제품을 잘 만들고, 사업을 잘 키워나가는 것만큼 창업자가 갖춰야 하는 중요한 역량 중 하나인 것이죠. 물론 그렇다고 자신감을 억지로 만들어 내려고 할 필요는 없습니다. 어쩌면 없는 자신감을 억지로 만들어내려고 하는 것은 건강하지 않은 과정일 수도 있습니다.
본인이 해당 사업에 대해 깊게 생각하고, 최선을 다해 실행했고, 사업 성과에 당당하고, 미래에 대한 자신감이 있고, 투자자의 돈을 얼마나 책임 있게 사용할 수 있을지에 대한 심도 있는 고민을 충분히 한 상태라면 기세와 자신감은 알아서 생길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IR을 할 때는 이렇게 자연스럽게 나오는 자신감이 중요합니다. 정작 내 마음은 견고하지 못한데 억지로 밝게 웃고, 크게 말하고, 말을 조금 더 잘하고, 문서를 그럴듯하게 만드는 것이 중요한 건 아닙니다.
이렇게 ①번, ②번이 갖춰지고 나면 이제 그다음에 각종 겉으로 보이는 IR 스킬들이 의미를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스토리라인을 매력적으로 짜고, IR 자료를 잘 만들고, 프레젠테이션 준비를 하고, 질의응답에는 어떻게 대답을 할 것이며, 적정 기업가치와 멀티플은 얼마이고 이런 것들이죠.
여기서도 주의를 해야 하는 점이 하나 있는데, 저는 제가 IR을 도와드리는 대표 분들께 기업가치를 조금 더 받고 조금 덜 받고에 너무 집착을 하지는 말라고 조언을 드리는 편입니다. 물론 합리적인 선에서 기업가치를 충분히 잘 받아내는 것은 사업가로서 갖춰야 할 능력 중 하나입니다.
하지만 간혹 기업가치를 높이는 것에만 욕심을 부리다가 정작 돈을 받아야 할 시점을 놓치거나, 너무 무리한 기업가치로 투자를 유치했다가 후속 라운드에서 더 크게 실패해서 사업을 접게 되는 기업들을 많이 봤기 때문입니다. 많은 경우에 지나치게 높게 평가된 기업가치는 그다음 라운드에서 부메랑으로 돌아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지금 당장은 더 높은 기업가치가 욕심이 날지라도, 현재 남아있는 런웨이나 후속 라운드등을 고려해서 좀 더 장기적·종합적인 관점에서 이를 바라봐야만 합니다.
해당 콘텐츠는 Man on the Grid님과 모비인사이드의 파트너쉽으로 제공되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