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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지윤 Mar 04. 2022

암은 사람을 더 아름답게 할까

사랑하는 언니를 지켜보며 

엄마는 전화기에 대고 울부짖었다. 여유롭게 출근 준비를 하던 나도 그 소리를 따라 굳어버렸다. 네 언니 갑상선암이래. 엄마가 말했다. 고칠 수 있는 병이야. 너무 걱정마 엄마. 일단 출근을 해야했으므로 나는 싸이코패스처럼 말하고 집을 나왔다. 현관문을 닫자, 그제야 눈물이 났다. 


집안 어른들이 싸울 때면 나는 늘 언니 방으로 갔다. 고등학생이었던 언니는 인상을 팍 쓰고 무신경하게 공부를 하고 있었고 나는 그 앞에서 울었다. 어른들이 싸우는 이유는 하나다. 돈 때문이다. 어른들을 믿으면 안된다. 우리는 다 제로 베이스에서 시작하는 거다. 언니는 울고 있는 내게 그렇게 말했다. 그녀는 특별한 사람이었다. 


언니는 늘 1등이었다. 고등학교에 입학하자, 선생님들은 내게 큰 기대를 걸었다. 1등 동생이라는 이유였다. 그 관심은 좋으면서도 끔찍했다. 언니는 사랑스러운 학생이었다. 나한테는 그렇게 독하게 말하면서 밖에서는 친구들에게 상냥한 그녀가 가증스럽다고 생각했다. 


언니는 모두가 예상한대로 멋진 대학생이 되었다. 한번은 물고기 비늘이 반짝거리는 민소매 티셔츠에 화려한 귀걸이를 하고 내 친구들에게 떡볶이를 사줬다. 난 가증스러운 그녀가 자랑스러웠다. 언니는 이상하게도 연애를 하지 않았다. 나는 공부하기 싫은 날마다 언니 방에 가서 대학생활 이야기를 들었다. 나는 언니에게 왜 연애를 하지 않느냐고 물었다. 어차피 지금 연애한다고 결혼할 건 아니잖아. 그럼 시간 낭비야. 그녀는 이렇게 대답했다. 정말 특별한 사람이었다. 


언니는 4학년 2학기부터 컨설팅 회사에 출근을 했다. 언니 인생에서 모든 통과의례는 한치의 오차도 없이 정시에 이뤄지는 듯 했다. 그런 언니가 늘 부러웠다. 정장을 입은 언니는 줄곧 새벽에 집에 돌아왔다. 20대 중반에 언니는 첫 연애를 시작했는데 그 연애는 결혼으로 이어졌다. 연애가 시간낭비라던 언니는 정말 단 한번의 연애로 결혼까지 성공했다. 경영학도였던 언니의 인생은 가장 효율적인 공정으로 오차 없이 운영되었다. 언니는  서른이 되는 1월에 결혼을 했다. 그리고 그 해 여름에 갑상선암 진단을 받았다.


언니의 모범적인 질주가 멈춰버렸다. 언니는 마음을 강하게 먹었지만 가끔은 무서워했다. 주변 사람들은 갑상선암은 암도 아니라고 위로 아닌 위로를 했다. 언니의 어떤 동료는 본인도 갑상선암에 걸리고 싶다며 부러워했다. 우리가족의 공포와 슬픔이 더 심각한 질병을 가진 환자와 가족들에게 실례가 되는 걸까라는 생각도 했지만 그렇다고 우리의 슬픔이 멈추지도 않았다. 사랑하는 언니가 아프고 우리 가족은 대신해줄 수 있는 게 없다는 사실은 명백했다.


언니가 수술대에 누워 창백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태어나 처음 보는 언니의 약한 모습이. 나는 어릴 때부터 여기저기가 아팠던 터라, 전신 마취도 수술도 여러번 받았다. 늘 나보다 앞서 경험하고 내게 조언을 물려 주던 언니에게 처음으로 내가 조언을 줄 수 있던 순간. “의사가 ‘산소입니다’ 하면서 호흡기를 씌워줄거야. 의사 말을 믿고 크게 숨을 들이쉬어. 그게 마취하는 거야. 그럼 푹 자고 일어나면 돼.”


갑상선을 떼 낸 언니는 한동안 스카프를 매고 다녔다. 스카프를 맨 언니는 회사를 그만뒀다. 언니의 체력과 체중은 쉽게 돌아오지 않았다. 나는 태어나 처음 언니와 단둘이 일본 여행을 갔다. 서울만큼이나 복잡한 도쿄의 지하철역에서 언니는 아주 아주 천천히 걸었다. 언니, 왜 그렇게 느리게 걸어? 빨리 걸을 필요가 하나도 없으니까. 천천히 걷자. 모두가 뛰어가는 환승역에서 나는 언니와 느릿느릿 걸었다. 그순간 우리는 참 특별했다. 



나는 다시는 회사로 돌아가지 않을거야. 언니는 틈날 때마다 이 말을 했다. 갑상선암이 언니를 멈추지 않았다면 언니는 언젠가 더 끔찍한 병에 걸렸을지도 모른다고, 우리 가족은 생각했다. 게절이 몇 번 바뀌고 언니는 상담대학원에 입학했다. 언니는 아름다운 사람이 되어있었다. 


암에 대해 검색하다가, ‘암은 사람을 더 아름답게 한다’라는 문장을 봤다. 수술을 앞뒀던 언니에게 나는 차마 이 문장을 전해주지 못했었다. 하지만 지금 언니를 볼 때마다 이 문장을 떠올린다. 회사로 돌아가지 않겠다던 언니는 ‘인생을 더 가치있는 데 쓰고 싶다’고 했다. 어쩌면 언니는 또 한 번 아주 좋은 타이밍에 레이스를 멈춘건지도 몰라. 내가 괴롭다고 할 때 마다, 언니는 언제든 멈추어도 좋다고 말하며 차를 내어주지. 



얼마전 언니는 1년 넘게 상담해온 내담자의 상태가 좋아진 것 같다고 기뻐했다. 어때? 뿌듯해? 보람있지? 라는 내 질문에, 언니는 감사하다고 답했다. 언니는 계속 더 아름다워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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