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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지윤 Jul 28. 2019

잔치라 불러다오

철없는 30대들의 철원 페스티벌 여행기


페스티벌이란 말을 들으면 브라질의 쌈바 축제가 제일 먼저 떠오른다. 사람들은 몇  달 동안 준비한 춤과 이국적인 장면을 이방인들에게 전시하고, 이방인들은 속절 없이 물들어 버리지. 강렬한 페스티벌의 뿌리에는 강렬한 에고(ego)가 있기 마련이다. 영국 음악의 자부심을 양분 삼아 글래스톤베리가 태어났고 포틀랜드의 '자유' 를 보호막 삼아 사람들이 벌거벗고 자전거를 타듯이.



친구 주댕은 내가 아는 사람 중 가장 끈질긴 뮤직 페스티벌 덕후다. 나를 영국 페스티벌로 데려가 준 것도, 내게 페스티벌용 캠핑 의자를 선물해 준 것도 주댕이었다. 주댕은 영국, 스코트랜드, 스페인, 스웨덴, 일본을 누비며 페스티벌을 다녔다.  드래곤볼 모으듯 쏘다닌 페스티벌 덕분인지 주댕은 묘한 분위기를 풍기는데. 은퇴한 영국 아저씨같기도 하고 스페인 골목에서 잠을 청하는 걸인 같기도 하고. 여기 저기서 주섬주섬 모은 여러 문화의 에고(ego)들이 주댕에게 묻어있다. 주댕의 얼굴을 10년 째 덮고 있는 수염. 실로 짜여진 팔찌와 나무로 만든 반지. 줄곧 붉게 달아 올라있는 주댕의 얼굴.


나보다 4년 선배인 주댕은 이제 삽십대 중반이다. 페스티벌을 그만 다닐만도 한데, 외국 페스티벌을 즐길만큼 즐긴 주댕은 국내로 눈을 돌린 모양이다. 제비가 박씨를 물어다 주듯 주댕은 국내 곳곳에서 열리는 음악 페스티벌 URL을 단체 채팅방에 던져 주고있다.


던져진 URL 중 우리를 이끈 건, 철원 PEACE TRAIN 페스티벌. 문재인 대통령이 판문점에서 김정은 위원장을 만났던 2018년, '철원'이라는 지역과 'PEACE'라는 단어의 조합에 우리의 마음은 들끓었다. 자고로 음악 페스티벌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평화를 부르짓는 젊은이들'에 본인이 평생 해당된다고 믿을 것이다. 우리도 마찬가지였다. 글래스톤베리에는 달라이 라마가 왔었는데, 이곳에는 누가 올 것인가. 지구 상에 유일한 분단 국가의 군사 지역에서 우리는 어떤 노래를 누구와 함께 불러야 한단 말인가. 존레논이 살아있다면 마땅히 이 페스티벌에 와야하는 것이 아닌가.

  


막상 철원에 가보니, 달라이라마는 커녕 평화를 부르짓는 젊은이들도 없었다. 다만 외출 나온 군인들이 많았고 찐 옥수수와 과일을 비닐 봉지에 담아 온 할머니들이 그늘마다 앉아계셨다. 재밌는 건 할머니들이 절대 페스티벌의 물을 흐리지 않았다는 거다. 오히려 우리를 더 흥분시켰달까. 그들은 밴드의 음악에는 정박자 박수를 쳐주었고고 밤 12시 디제이가 EDM을 틀어댈 때까지도 돗자리를 접지 않았다. 아주머니와 아저씨들은 둥글게 모여서 이디엠 박자에 맞춰 기합 소리를 냈다. 헙! 헙! 헙! 헙! 클럽에 가면 아직도 호루라기를 들고 무대에 올라가서 분위기를 띄우는 알바생들이 있더라. 이 아저씨들을 페스티벌에서 섭외한 건 아닌가? 라는 의문이 들 정도로 그들은 너무나  '잘' 놀았다.


쌈바축제처럼 지역에서 결연한 쇼를 준비한 건 아니었지만 철원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흥이 그 자체로 쇼였달까. 별 준비 안했지만 흥겨운 자리, 말그대로 잔치였다. 우리 집에서 잔치를 열어요. 준비한 건 없지만 와서 놀다 가세요. 철원 고석정에 잔치가 열렸다.



페스티벌이 열리는 '고석정'에는 고석정 랜드가 있다. 바이킹은 월미도보다 무섭다. 알바생이 수동으로 각도를 조종하는 것이 분명하다. 힙한 태국 밴드 노래를 들으며 하늘 그네를  타는 기분은 그 어느 페스티벌에서도 느끼기 힘든 황홀함. 영국 페스티벌에 갔을 때도 놀이기구랄까, 어트랙션을 몇 개 비치에 놓은 것을 봤었다. 회전목마를 비롯한 풋풋하고 페스티벌 분위기를 내는 것들 말이다. 하지만 녹슨 아치형 간판이 맞이해주는 진짜 '놀이공원'은 정말 뜻 밖이었다. 이 놀이기구를 타다가 골로 갈 수 있다는 생각이 들정도로 낡았지만 할머니들의 지치지 않는 몸짓만큼 건강하게 제 기능을 해내더라.



페스티벌 부스들은 다소 허접했고 푸드트럭보다 고석정 랜드에 원래 있는 허름한 상점들이 더 많았다. 그래서 좋았다. 브랜드들이 왕창 들어와 저마다 오라고 손짓하고 음식을 먹으려면 줄을 1시간을 서야하는 다른 페스티벌과 다르게 이곳에는 빈틈이 많았다. 아, 이 빈틈. 축제라기엔 소박하지만 신남과 흥은 진수성찬인 평화 대잔치. 빈틈에서 진짜 평화가 왔다.




그리고 그 빈틈에서 우리는 30대인 것을 잊고 무릎을 바운스했다. 새벽 2시까지 미치도록 바운스 바운스. 무릎을 튕길 때 딱딱 소리가 나도 그저 춤을 췄다. 아무도 서로를 신경안쓰는 빈틈많은 페스티벌이어서 다들 각자 이상한 춤을 출 수 있었다. 기체조같은 몸동작이라든지. 우리의 춤을 봤을 영국 밴드는 어떤 기분이었을까. 내년에 내한해야겠다고 다짐하지 않았을까. 우리를 다시 보기 위해서.



주댕은 서울로 돌아와서 우리의 사진을 포스터로 만들어줬다. 사진 속 우리는 서로 케어해주지 않고 떨어져서 음악을 듣고 있더라. 물론 춤을 출 때는 서로 기운을 주고 받았다. 카피라이터 주댕은 사진 위에 '다른 곳을 봐도 같은 것을 듣지' 그리고 '미친것 짖어도 기차는 춤춘다'라고 적었다. 이렇게 멋진 말을 주댕이 썼을리가. 어디서 베낀거냐.


2019년 철원 페스티벌을 함께한 사람들은 다음과 같다. 대학시절 함께 언론고시를 준비하다 이벤트 스타트업에서 일하는 언니. 곧 프랑스로 MBA 공부를 하러 가는 카피라이터 선배. 그리고 주댕과 나. 4명의 철없는 30대는 사진 속에서 정말 미친듯이 행복해하고 있더라. 주말에 뭐하냐는 직장 동료에게 철원 뮤직페스티벌을 간다고 했을 때, 그 동료의 눈빛이 생각났다. 참 희한한 데를 굳이 간다는 눈빛이었지. 지금와서도 설명할 엄두가 안난다. 밤 새 찐 옥수수를 왼손에 들고 오른 손에는 맥주를 들고 강원도 숲 속에서 춤을 추는 기분을 어찌 알랴. 해봐야 알지. 답답하다, 답답해.  



아직 결혼 한 사람이 없는 우리 넷은 에어비엔비로 정한 아주머니네 집에서 함께 묵었다. 거실에 이불을 쫙 깔고 누워서 쓸데 없는 소리를 주고 받다 잠이 들었다. 아주머니는 동서네 가서 잠을 자겠다고 떠나셨다. 30대 남남여여가 거실에 대자로 뻗다니. 20대같은 밤이었다고도 못말하겠다. 20대면 취업 걱정, 직장에 적응할 걱정이 많았을테니. 우리는 그냥 단세포들처럼 덩그러니 존재했다. 평화. 평화. 평화. 정말 평화로운 밤이었다.


춤을 격하게 춘탓에 온 몸이 아팠다. 아까 춤추던 할머니들은 괜찮으려나. 아마 그날 밤 철원의 모든 어른들은 몸살로 괴로워하면서도 실실 웃으며 잠들었을 거다. 그렇게 몸살로 대화합. 철원, 잔치가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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