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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지윤 May 15. 2020

세 단어

내가 애착하는 단어들에 대하여

하나,

주섬주섬.


큰 줄기 없이 이것 저것 주워 담고 있지만 그 속에 품고 있을 수줍은 지향성이 좋다. 아직 형태를 갖추지 못해 주변 모든 것에 호기심을 가져야하는 어린 아이같은 단어라 좋다. 매일 주섬주섬 발품을 팔아 모은 뗄감이 언젠간 좋은 불씨를 피워내겠지, 너도 나도 그랬으면.



둘,

아랑곳.


내가 나만의 가게나 스튜디오를 가지게 된다면 어떤 이름으로 할까. 언제든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이 준비 된 사람이고 싶었다. 정작 기회나 용기가 왔을 때는 급한 마음에 엉뚱한 이름을 짓게 될 것 같다. 그렇게 언제부터인지 마음에 품고 있는 단어. ’-곳’이라고 끝나는 단어라  공간감이 들어 좋다. 검색해보니 ‘알다’에서 나온 순우리말. 그래서 ‘아랑곳 하지 않다’라는 말은 관심을 두거나 알고 싶지 않다는 뜻이 된다. 내가 아랑곳하고 싶은 것만 아랑곳할 수 있는 공간. 그런 곳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이 단어를 품고 산지 3년은 넘은 것 같다. 그렇다 보니 시도 하나 지었었다. 제목은 ‘우리 모두 아랑곳에 모여’. 내가 에세이집을 내게 된다면 같은 제목으로 하고 싶다. 아랑곳은 사람들과 연대하면서도 동시에 배타적인 곳. 내 세계관 속의 낙원. 언젠가 실재하는 공간이 될지는 모르겠다. 아직 나는 너무 게으르다. 



셋,

아늑. 


살면서 그나마 ‘사랑했다’라고 말할 수 있는 남자는 지금까지 2명이다. 그 중 첫 번째 남자에게 내가 자주 했던 말이 있다. ‘너는 되게 아늑한 사람이다’ 지금 생각해도 참 기특한 말이다. 낭만적이다. 개소리도 아니다. 그 남자는 같이 있지 않아도 아늑했다. 폭신한 보호막이 언제나 나를 둘러싸고 있는 것 같았다. 질투하고 울고 싸워야 사랑인줄 알았는데 이 남자랑은 그런게 없었다. 서로 하루 이틀 연락이 안되어도 끄떡 없었다.


‘아늑’의 생김새는 의외로 부드럽지 않다. 간결한 골격. 아늑했던 남자와는 아주 간단한 이유로 헤어졌다. 더이상 너가 남자로 느껴지지 않아. 특별했던 생애 첫 느낌을 나는 아주 구리고 진부한 이유로 저버렸다. 



2020. 04.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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