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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지윤 Nov 11. 2018

종로구 관수동 149-1

삼가 고인들의 명복을 빕니다.




일회용과 일용직을
혀끝에서 저울질 해 본다.
일용직이란 단어는 더 쓰고 더 무겁다.
어쩌면, 한 명의 지속가능한 생활이 지속가능한 환경보다 어려운 일.





꽃집에 들어갔다. 사람들은 축하용 꽃다발을 사거나 빼빼로데이를 기념하는 장미를 사고있었다. 흰색 국화는 없었다. 주인에게 흰색 국화가 있냐고 물어볼 용기도 나지 않았다. 대신 백합을 골랐다. 다 피면 분홍색이 된다는 말에, 피지 않은 흰색 봉오리만 달라고 했다. 포장은 최대한 소박하게 해주세요. 을지로 3가에 도착했다.  젊은이들의 새로운 힙플레이스가 된 을지로에 올 때 마다 '오래된 미래'가 떠오른다. 수도 없이 늘어나는 카페와 관광객들. 을지로의 새로운 황금기다. 청계천을 건너는데 솜사탕과 풍선을 팔고 있다. K팝이 흘러나오고 외국인들이 사진을 찍는다. 행복은 시끄럽고 쾌락은 잠이 없다. 빼빼로 데이를 하루 앞둔 밤 모텔은 이미 만석이었다.


관수동 149-1번지 앞에 도착했다. 낮에 열린 추모식덕에 국화꽃들이 바닥에 꽤나 쌓여있었다. 아주 작은 간이식 테이블에는 꽃과 더불어 솜사탕과 캔 사이다, 그리고 감 하나가 놓여져 있었다. 그들은 청계천에서 솜사탕을 판다는걸 알고나 계셨을까. 저물대로 저문 가을의 감을 잡숴보기나 했으려나. 제상에 올리기엔 낯선 음식들을 쭈뼛쭈뼛 올려 놓았을 사람들을 떠올렸다. 세심한 슬픔. 슬픔에도 결이 있구나 생각했다. 고시원 입구에는 폴리스라인이 쳐져있었고 창문으로 언뜻언뜻 불빛이 비췄다. 오늘 부검을 시작한다 했으니 감식반이 아직 남아 현장을 둘러보는 모양이었다. 고시원 바로 앞에는 껌과 신문등을 파는 가판이 있었는데 로또 광고판이 크게 붙어있었다. 고시원에서 생을 마감한 이들도 여기서 꽤 여러번 운명을 걸었을 것이다. 아마 1주일에 한 번 꼬박꼬박, 한번쯤은 당신께도 드라마같은 일이 생기지 않을까 아이같은 미소를 지어봤겠지.




기사에는 '일용직'이란 말이 자주 등장했다. 대학가도 아니고 학원가도 아닌 곳에 고시원이라니. 그곳은 사법고시보다 더 끔찍하고 고통스러운 시험을 매일 매일 치루는 사람들의 아주 작은 아파트였다. 직업이 카피라이터인 탓에 쓸데없이 단어를 곱씹어 본다. 일용직. 일용직. 한 번 쓰는 사람. 일용직. 그 비열한 단어를 고시원이 불탄 그 날부터 3일 째 생각했다. 생각의 연상은 요즘 제법 열심히 들고 다니는 텀블러에 다다랐다. '일회용' 컵을 쓰지 않겠다며 들고다니는 텀블러. 텀블러를 쓰며 우리는 지속가능한 지구를 위해 뭐라도 하고 있다고 스스로를 위안한다. 한  번 쓰여지고 마는 사람들 모두에게 지속가능한 업을 줄 수 있는 날도 언젠가 올까. 일용직 잔인한 단어가 사라질 날이 올까. '일회용'과 '일용직'을 혀끝에서 저울질 해 본다. '일용직'이란 단어는 더 쓰고 더 무겁다. 눈물이 찔끔난다.


햇볕이 드는 방은 월 32만원, 햇볕이 안드는 방은 대신 28만원이었다 한다. 낡을대로 낡은 건물의 1평 남짓 공간. 4만원을 아끼기 위해 선택한 방에서 탈출하기 위해 창문을 열었을 때, 밖에는 건너편 빌딩의 벽돌만 보였다고 한다. 도무지 탈출할 수 없어 돌아가신 분에 대한 기사를 보며 생각한다. 덜 열심히 살아서, 삶을 아예 놔버렸더라면, 그래서 노숙자가 되었더라면 죽음을 면했을까. 기자는 "고시원도 사실상 사각지대였던것" 이라는 깨달음의 문장을 썼다. 누군가에겐 매일 보는 장면이 누군가에겐 사람이 죽어야 얻고마는 깨달음이다.



언론에선 저소득층을 위한 주거시설에도 안전시설 정비가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한창이다. 현실적으로 안전은 돈이다. 오직 돈만이 우리를 안전하게 할 수 있다. 더 많은 시설, 충분한 탈출 구조. 더 많은 시설은 자본에서 오고 충분한 탈출 구조는 궁극적으로는 충분한 영토에서 온다. 창문을 열었는데 코앞에 다른 빌딩의 벽이 보이는 구조는 이 고시원만의 특이점이 아니다. 비좁은 영토와 더 많은 돈을 벌고 싶은 마음. 효율성을 숭배하는 대한민국에서, 특히 저소득층 지역에서 이런식의 건축은 어쩌면 숙명적이다.  더 적은 영토에서 더 많은 돈을 벌려면 작은 공간안에 더 많은 사람을 집어넣어야 하고, 옆 건물과 사이를 둘 틈도 없이 방을 하나라도 더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이 효율성에 대한 광적인 추구를 막을 법이 없다. 법이 있을지언정 감시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의 창문 밖에는 벽이 있었고 뛰어내릴 수도 없이 죽어야했다.


버스정류장 옆에 높은 장벽이 쳐졌다. 건물이 오르는 모양이다. 높은 장벽에는 귀여운 사람들의 그림과 예쁜 집들이 그려져있다. 그리고 그 안에서는 오늘도 수많은 일용직 노동자들이 높은 곳에서 떨어져 죽거나 기계를 만지다 부상을 당한다. 그 서늘한 일과를 마치고 1평 남짓한 고시원에서 잠이 든다. 그들의 노동, 그들의 주거, 그리고 그들의 인권. 내일도 1평짜리 방에서 잠을 자기 위해 오늘도 그들은 한 번의 쓰임을 당할 것이고 오늘 밤 그들의 생명은 또 한 번 운에 붙여질 것이다.


고개를 숙여 묵념을 하고 한참을 한참을 그 앞에 서있었다. 사람들이 지나가다, 어머 여기가 그 불난 고시원이야? 눈이 동그라진다. 우연히 국화꽃을 밟은 남자를 중년의 친구가 나무란다. "그걸 밟으면 어떡해". 세상을 떠난 분들 모두 그 곳에서는 소주 마실 일도 담배 태울일도 없으시기를, 그저 편히 쉬시기를, 눈감고 기원하는 일밖에 나는 할 수 있는 게 없다.





2018. 11. 10.

Fuji x100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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