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에서 외노자로 사는 이유
한정석은 <작고 기특한 불행> 39페이지에 등장하는 실존 인물이다. 팔뚝에 ‘여행자’라는 뜻의 독일어 타투를 하고 해수욕을 하는 친구로 등장한다. 그는 지금 이곳 베를린에 살고 있다. ‘살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그가 여기서 밥벌이도 하고 집안일도 하고 친구도 사귀고 데이트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방면의 욕망을 본인의 힘으로 책임지고 충족하고 있으니, ‘살고 있다’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살고 있다’라는 상태의 난이도는 더럽게 높다는 것을, 그를 관찰하며 새삼 깨닫는다. 우리는 각자의 땅에서 대단한 일을 해내고 있음에 우쭐해도 될 것이다.
나는 베를린, 정석의 집에서 2주 째 하숙 중이다. 지금 이 순간, The Barn이라는 (독일의 3대 로스터리 중 하나라 불리우는) 카페의 원탁 테이블에 앉아 글을 쓰고 있는데 내 정면에는 뽀뽀를 아끼지 않는 레즈비언 커플이 있다. 한 명은 신문을 보고 한 명은 노트북을 두들긴다. 그 옆에도 노트북을 두들기는 여자 하나가 있다. 세상이 ‘살아 가는’ 방식은 분명 ‘노트북 두들기기’로 표준화되어 왔다. 나도 베를린에서 그 일에 동참했으니, 이곳에서 ‘살고 있다’고 조금은 말할 수 있을까.
정석이 시간을 쓰는 방식은 나와 정반대에 있다. 그는 평균, 7시반 쯤 일어난다. 15분 정도 만지작 거리던 핸드폰을 매섭게 끊어내고, 무려 책을. 책을 읽는다. 한 번은 4시에 잠이 깬 적이 있는데 잠이 오지 않아서 책을 소리내어 읽다가 어떤 문장에 사로잡혀 눈물이 났다고 했다. 나는 그 이야기가 도시 괴담처럼 소름 끼치면서도 부러웠다. 8시에는 동네 크라이밍 센터에서 암벽을 탄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 간단히 토스트를 먹은 후 재택근무를 시작한다. 그의 생활에는 ‘지연’이 없다. 널부러져 있는 시간이 없어 산뜻하다.
널부러져 있는 게 정체성인 나는 정석 덕분에 고등학교 이후 처음으로 매일 8시 반에 일어났다. 어느날, 10시에 일어난 나를 보고 정석은 말없이 고개를 저었다. 나는 왠지 분한 마음이 들어, 그의 뒤통수에 대고 외쳤다.
“행성마다 시간은 다 다르게 흐르거든”
왜 이렇게 비유적인 표현을 썼는지 나도 모르겠다. 나는 까랑 까랑하게 소리를 질렀다. 다른 행성에서 그 행성의시간을 살아보는 일은 생각보다 훨씬 흥미로웠다. 우리는 점심에 집 앞 강변에 앉아 아프리카 음식을 먹었고, 집 앞 공원에 앉아 햇볕을 쬐었다. ‘어디서’, ‘어떻게’가 뒤집혀지니, 나라는 사람도 뒤집혀졌다. 왠지 더 좋은 사람이 된 것 같다.
정석의 집에는 의자가 정말 많다. 스툴을 합치면 12개가 넘는다. 이 중에서 3개에는 식물이 앉아 있다. 의자의 대부분은 중고로 샀다고 한다. 부엌에도 화장실에도 창문이 있다. 여기저기서 해가 드는 집. 창 밖으로는 노랗게 익은 나무가 보이고, 아파트의 뒷마당이 보이고, 맞은편의 유럽식 건물이 보인다.
“베를린 살면서 좋은 게 뭐야. 자랑 좀 해봐.”
침대에 앉아 책을 읽던 그에게 물었다.
그는 한 참을 생각하더니 느릿 느릿 조심스럽게 말했다.
“지금 창 밖으로 보는 풍경이 서울에서는 사치였어.
창 밖에 나무를 볼 수 있다는 게, 왜 그렇게 힘든 일일까.
서울에서는 벽이나 다른 아파트가 보이는 경우가 많잖아.
그냥 평범하게 살아도 나무가 있는 풍경을 보며 살 수 있어 좋아.
그것만으로도 여기가 좋아.”
기차 소리가 들리는 서울 집에 사는 나는 왠지 기가 죽었지만, 창밖의 나무를 보노라니 저절로 좋은 마음만 먹게 된다.
“그리고 한국에서는 너무 스트레스가 많았어. 30대 중반이 되니까, 친구들만 만나면 부동산이며 주식이며 나누는 이야기가 정해졌던 것 같아.”
“그건 사람의 문제라기 보다, 사회의 문제일수도” 나는 왠지 한국을 한 번 변호했다.
“맞아. 여기는 평생 세입자로 살아도 주거 안전성이 보장돼.
죽을 때까지 집을 소유하지 않는 사람도 많아.
다들 비교하고 걱정하는 대화를 많이 나누지 않지.
삶의 스펙트럼도 넓고 친구들의 스펙트럼도 넓어.
플리마켓에서 그림을 그리며 사는 친구도 있고.
번듯한 직장에 다니는 친구도 있어.
어떤 나이 대에 어떤 경제수준을 갖춰야 한다는 게 없어.
다들 격없이 대화하고 서로 판단하지 않는 달까.
사람대 사람으로 존중하는 느낌이 들어서 좋아”
그래, 좋겠다. 라고 속으로 되뇌이며 찍고 있던 카메라를 껐다. 어릴 때는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왜 나는 이곳에 살고 있지 않을까? 하면서 슬픔에 잠기곤 했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이것도 정답은 아니고, 우리의 삶이 오답도 아니라는 것. 다만 우리가 꼭 알고 있어야 할 것은 세상 밖에 우리와 다른 답으로 사는 사람들이 있다는 거다. 그들이 다른 답을 통해서 더 안전하고 지속가능한 행복을 누리고 있다면, 우리는 알아야 하고 생각해야 한다. 독일의 세입자의 평안과 한국 세입자의 불안은 어디서 비롯되는지. 적어도, 궁금해해야 한다.
"하지만 외로워. 진짜 외롭지.
사실 처음엔 난민가 다를 바 없다는 생각까지 했어.
아는 사람 하나 없이, 밑바닥부터 시작하는 거니까.
데이팅 앱도 하고, 쇼핑도 하고, 외로움을 채우려고 많이 애썼어.
근데 어느 순간, 외로움이 반복되면서
외로움을 에너지로 쓰는 법을 배우게 된 것 같아.
외로운을 없애려고 하지 않고
외로움을 가지고서 책을 읽고
외로움을 가지고서 생각을 하고
외로움을 갖고서 뭔가를 하는 거야.”
정석이 덧붙였다. 나의 외로움은 줄곧 ‘유튜브’에 위탁되곤 한다. 나는 그 외로움을 남에게 맡기고서 찾으러 갈 생각도 없는 나쁜 주인이다. 베를린의 외로움은 연료가 되어서 독서가 되고 눈물이 되고 있다. 서울에 돌아가면 외로움에게 잘해주겠다고 생각한다.
정석이 재택근무를 하는 동안, 나는 동네를 구석구석 탐험한다. 목줄을 하지 않고도 주인과 나란히 산책하는 강아지들을 보며, 강아지와 사람이 대등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하나의 ‘인격체’처럼 강아지들이 자유롭게 걸음 속도를 조절하며, 따로 또 같이 걸어가고 있다. 어느 아이들 무리는 길가에 있는 ‘모스크 사원’으로 뛰어 들어갔고, 나는 그날 ‘로미오와 로미오’라는 카페에서 커피를 마셨다.
주말에는 친구들과 클럽에 갔다. 클럽에서는 넥타이와 셔츠를 차려입은 아저씨가 춤을 추고, 브래지어를 한 아저씨도 춤을 춘다. 각자의 행성에서 온 존재들이 자신의 존재를 맘껏 뽐내며 춤을 춘다. 그곳에서 나도 춤을 췄다. 서로를 존중하고 “그러려니”하는 문화는 어디서 부터 시작되는 걸까. 생각이 깊어지려 하길래, 나는 눈을 질끈 감고 춤을 췄다.
위 글은 지난주 <보낸이 오지윤: 오지탐험>으로 발송된 글의 아카이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