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 뒤편을 보여주는 브랜디드 콘텐츠
올 해 초, 유튜브 콘텐츠 기획 회의에서 동료 하나가 CU 편의점의 ‘씨유타임즈’라는 코너를 소개했다. 그녀는 그 중에서도 ‘삼각김밥’ 편을 플레이시켰는데 선정 이유는 ‘궈여워요’였다. 네모난 모양으로 납작하게 펴진 현미밥 덩어리들이 레일 위를 지나갈 때마다 토핑 기계가 씩씩하게 참치를 얹는 영상. 이제 ‘’성형 기계’의 차례다. 세모난 프레임이 밥알들을 뭉치고 나니, 파란 레일 위로 세모난 주먹밥들이 수줍게 등장했다.
- 오, 귀엽다.
- 그쵸! 그리고 되게 깨끗해 보이지 않아요?
언젠가 삼각김밥에 세균이 득실득실하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먹을 때마다 이상한 자괴감이 들어 괴로웠었다. 하지만 이제는 당당히 먹을 수 있겠어. 깨끗해보이네. 이 영상의 기획자가 ‘위생’이라는 키워드까지 노리고 만들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우리는 그렇게까지 느끼고 말았다.
90년대부터 “스타의 셀프카메라’ 류의 방송들이 넘쳐 났던 걸로 기억한다. 내가 제일 좋아했던 것은 2000년대 중반에 엠넷에서 했던 이효리의 ‘오프더레코드’. (기억나는 받는이는 쎄이 예에!) 무대 위에서는 화려했던 이효리가 벤 안에서는 인상을 쓰고 한 숨을 쉬고있는 장면을 손톱을 물어 뜯으며 열심히 봤던 기억이 난다.
BTS. 우리 방탄소년단의 이름이기도 하지만, ’Behind the scene’의 줄임말이기도 하다. 이제 ‘BTS’는 유튜브에서 하나의 장르가 되었다. 단순히 이효리의 'BTS'가 아니라, 영화나 뮤직비디오, 가수의 앨범이 등 어떤 콘텐츠든 ‘BTS’ 콘텐츠가 연이어 올라온다. ‘관음’과 ‘호기심’의 본능을 충족시켜주는 건 물론이고 힘든 제작 과정에 대한 ‘연민’과 ‘감동’까지 불러일으킨다. 우리가 갤러리에 가서 작품 옆에 적혀있는 감동적인 해설과 예술가의 생애를 꼭 읽고 넘어가는 것과 같다.
브랜드들에게는 굉장히 고마운 기회다. 리테일 공간과 ATL 접점에서 소비자가 만나는 브랜드의 이미지는 ‘Stage’라고 볼 수 있다. 만약, 브랜드의 디지털 콘텐츠 기획자인데, 뭐부터 만들어야할지 고민이라면 ‘BTS’라는 세글자에서 출발하면 된다. 신세계 정용진 회장이 잔디밭에서 이마트 고기를 먹고 유튜브에 올리는 것과 스타트업 TOSS가 대규모 투자와 맞물려 웰메이드 다큐멘터리를 릴리즈한 것 모두, 무대 뒤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보여주기 위함이다. ‘브랜드가 왜 이런 도전을 하고 있는지’, ‘브랜드가 꿈꾸는 세상이 무엇인지’. 상품 그 자체가 아닌 그 뒤에 있는 ‘BTS’는 그 자체로 일단 희소성을 획득한다. 물론, 지금까지 다뤄지지 않은 진짜 BTS일 때만.
최근 대기업들과도 협업하며 어마어마한 존재감을 드러내는 ‘모빌스 그룹’은 그 출발부터 ‘Stage’와 ‘BTS’의 경계를 없애버렸다. 브랜드 런칭에 대한 고민과 기획부터 유튜브(MoTV)에 모두 연재했던 실험은 ‘소비자’를 ‘브랜드’의 일부로 편입시키는 데 성공했다. ‘소비자’는 브랜드와 동떨어진 관찰자를 넘어서서 친구들에게 열심히 ‘MoTV’에서 공감한 사상과 메시지를 전파하고 마치 정치 정당을 지지하듯이 브랜드를 지지한다. 아이돌 덕질을 오래하다, 성덕의 계급에 오른 친구가 있다. 콘서트에서 ‘대기실 방문’ 추첨에 몇 번 당첨이 되었었는데 ‘모빌스 그룹’은 ‘대기실 방문’과 같은 인터랙션을 브랜드의 런칭부터 시작한 셈이다. ‘BTS’가 곧 브랜드의 ‘STAGE’가 되버린거다.
또 한 해가 지나가고, 몇 달 후면 1년치 콘텐츠 기획 회의를 하고 있겠다. 벌써 부터 ‘내년엔 이런거 합시다’하고 서로 레퍼런스를 주고 받는데, 최근에는 ‘삼양라면’의 뮤지컬 애니메이션도 거론이 됐다. ‘그동안 다양한 라면들에 치여 힘들었고 불안했다’고 고백하는 주인공의 촉촉한 눈에서 나의 ‘BTS 이론’을 또 맹신하게 되었다.
브랜드는 완벽한 모습만 보여줄 수 없다. 완벽한 척 하고 속이려고 할 때, 문제는 그 때 생긴다.
2021.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