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지윤 Oct 19. 2021

나는 다른 민족이고 싶다

[본능적 브랜딩] 나를 더 사랑하게 되는 브랜드

"나는 다른 민족이고 싶다"


애플이 만든건 뭐라도 구매하고 마는 ‘앱등이’ 종족이 생긴 이래, 모든 브랜드들의 목표는 ‘팬’을 만드는 일이 되어버렸다. 몇 년 전 ‘팬덤 마케팅’이라는 말이 유행하기 시작할 때 마침 ‘굿즈’의 세계가 열렸다. ‘사랑’이라는 추상적인 감정은 늘 우리를 목마르게 한다. 보이고 만져지는 사랑을 위해 시밀러룩을 입고 커플링을 맞추듯이, 우리는 사랑하는 브랜드를 위해 굿즈를 구매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 ‘배달의 민족’처럼 무형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브랜드들도, 심지어 ‘영상’이라는 프로덕트를 만드는 유튜버들도 굿즈를 만들었고 팬들은 예쁘고 쓸모없는 물성을 구매함으로써 자신의 사랑을 완성해나갔다.




그 시절, 카피라이터였던 나는  ‘팬이 생기게 해주세요’라는 클라이언트의 OT 페이퍼를 자주 받았다. 내가 보기에는 이미 ‘팬’들이 있는 브랜드들도 있었는데 스스로 사랑을 못받아들이는 경우도 있었다. 겉으로 드러내고 인스타그램에 사랑을 인증하는 힙한 존재들만이 ‘팬덤’이라는 믿음 때문인지 프로젝트들은 줄곧 ‘팬덤’을 흉내만 내다 끝이 나기도 했다. 



나는 사실 특정 브랜드에 ‘팬심’이라는 마음을 가져 본 적이 거의 없다. 카피를 쓰거나 광고를 만드는 일은 그 브랜드를 계속 생각하다가 사랑에 빠지는 ‘스톡홀름 증후군’같은 거였다면, 실제 생활에서 브랜드를 소비하는 일은 ‘광고’처럼 아름답지 만은 않으니까. 



‘배달의 민족’도 그렇다. 재택 근무 중의 나는 점심, 저녁으로 외출을 나간다. 현관문을 최소한으로 열고 팔을 뻗은 후, 손가락 끝에 닿은 비닐봉지를 빠르게 집안에 들이는 시간. 오른쪽 손끝부터 팔꿈치까지 현관문 밖으로 내민 게 나의 외출의 전부다. 음식을 배달해 주는 서비스가 내 삶의 질을 높였냐고 물으면, 대답하기 정말 곤란하다. 요리도 못하고 외출도 귀찮아하는 내가 손가락 안빨고 맛있는 음식을 먹게 된건 엄청난 혁신이지만 그런 나의 모습이 내가 꿈꾸던 ‘나’는 아니니까. 


오른쪽 손끝부터 팔꿈치까지 현관문 밖으로 내민 게 나의 외출의 전부다. 





브랜드들은 ‘사랑해줘’라고 말할 게 아니라, ‘스스로를 더 사랑하세요’라고 말해야한다는 걸 ‘배달푸어’가  되고 절실히 깨달았다. 매달 월급의 반을 ‘식비 + 배달비’에 쓰는 나는 그런 나의 모습을 사랑하지 않는다. 간단하게라도 직접 요리하고 플라스틱 분리수거도 작작하고 싶다.




자연스레 BTS의 RM이 생각난다. 콘서트장에서 그가 했던 말은 BTS라는 브랜드가 얼마나 대단한지 숨김없이 보여줬었지. “팬분들 덕분에 스스로를 더 사랑하게 되었어요. 그러니까, 여러분도 저희를 이용하세요. 저희를 이용해서 스스로를 더 사랑하세요” RM은 영어로 말했는데 대충 이런 말이었다. 





서로를 더 적극적으로 이용해서 스스로를 사랑하자고 말하다니, 이보다 솔직하고 본질적인 관계 선언이 어디 있을까. 서로 더 사랑해주자가 아니라, ‘스스로를 더 사랑하자’라는 결론은 얼마나 성숙한지. 정말 오래가는 역사적인 브랜드를 만들고 싶은 이는, RM의 말부터 벽에 붙여놓고 시작했으면 한다. 생각해봐라, 앱등이인 당신은 궁극적으로 ‘애플을 들고 있는 스스로’를 사랑하는 걸테니까. 




그래서 굳이 내가 ‘사랑’할만한 브랜드를 꼽자면, ‘당근마켓’이다. 집에 있는 물건을 계속 정리하고 필요 없는 물건은 예쁘게 사진찍어서 누군가에게 나누는것. 그냥 나누는 것도 아니고 소액의 돈을 버는 것. 이 서비스를 사용하는 ‘나의 모습’은 꽤나 사랑스럽다. 그래서, 내가 당근마켓을 사랑하는 이유는 나 스스로를 사랑하게 만드는 브랜드이기 때문이다. 





인생은 결국, 죽을 때까지 스스로를 사랑하는 방법을 탐구하는 여정이라고 이 사람 저 사람 말하지 않던가. 서비스 기획도 브랜딩도 결국 ‘사랑받을 궁리’를 하는 것 보다 사람들이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싶어하는지’를 도와주면 되는 거다. 





성취를 위한 자학은 미덕으로 통하는 게 현실이니, 우리는 빵꾸난 자아에 새살이 돋게 해줄 브랜드에 돈을 쓴다. 그 이유는 ‘내가 더 세련되어 보여서’일수도 있고 ‘좀더 좋은 사람이 되는 것 같아서’일수도 있다. 년초에 품질력이 많이 떨어지는 ‘비비안웨스트우드’의 제품을 구매한 것도 결국 나를 더 사랑하기 위해서였다. 늙어서도 멋을 잃지 않는 ‘비비안웨스트우드’ 할머니의 스피릿을 나도 장착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으니까. 




사랑은 결국 내 자존감이 차오르는 느낌에서 시작된다. 나의 2022년 목표를 미리 말하자면, 배달 음식을 정말 정말 정말 줄이는 것이다. 




2021. 10.














매거진의 이전글 말하는대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