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능적 브랜딩] 소비자의 언어가 브랜드의 언어가 될 때
‘노래하려고 하지 말고 말하듯이 노래하세요.’ 어느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JYP가 가수 지망생들에게 했던 말이다. ‘노래 잘하라는 말을 겁나 어렵게 하네’ 라고 잠시 아니꼽게 들었으나, 다시 생각해도 너무나 적확한 표현이다. 타인이 내게 무언가를 전달하려 할 때, 우리는 그것이 인위적인지 진실된 것인지부터 판단한다. 여기서 ‘진실된 것’이란 얼마나 ‘자연스러운지’와 비슷한 지표다.
노래를 하는 사람이 ‘말하듯이’ 노래를 해야 더 감동받는 이유는 사실 단순하다. 노래를 듣고 있는 사람들은 ‘노래’보다 ‘말’이 자연스러운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노래를 하면 감탄하게 되지만, 말을 걸면 귀를 기울이게 된다. 노래가 ‘기술’을 넘어서 자연스러운 ‘이야기’가 되는거다. ‘기술’을 전달하는 관계에는 ‘위계’가 생기지만, ‘이야기’를 전달하는 관계는 꽤 수평적이다.
인류의 모든 커뮤니케이션은 ‘자연스러움’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유튜브와 인스타그램에서 집을 보여주는 대기업 CEO와 예능에 나와서 웃고 떠드는 대선 후보. 소통하고 싶은 대상이 ‘자연스럽다’라고 느끼는 방식을 좇아가는 것은 모든 발신자의 본능적 전략이다.
그래서인지 브랜드의 ‘말하기 방식’에도 변화가 생긴다. 수신자가 ‘자연스럽다’라고 느끼는 언어로 말하기로할 때, 브랜드들에게 그 언어란 ‘소비자의 언어’다. ‘소비자의 언어’라는 관용어는 줄곧 메타포로 쓰여왔다. 어려운 기술을 비유적으로 풀어 설명하거나, 소비자의 입장에서 해석하기만해도 지금까지는 '소비자 언어로 잘 표현했네요’라는 칭찬을 받아왔다.
그런데 최근들어, ‘소비자 언어’가 진짜 문자그대로 ‘소비자가 쓰는 말’이 되어버렸다. 때로는 전략적인 해석보다 직관적이고 뻔뻔한 ‘자연스러움’이 정답으로 보이기도 한다.
카카오T의 ‘블루 불러’, ‘벤티 불러’같은 메시는 사실, 택시가 도무지 안잡힐 때 옆에 서있던 친구가 하는 말이다. 절대 택시를 타는 당사자는 이런 말을 하지 않는다. 돈이 아까우니까. 하지만 옆에 있는 친구가 답답해서 하는 말이 보통, ‘야, 그냥 오늘만 블루 불러’다. 카카오T는 뻔뻔하게도 소비자들이 말하는 그대로를 메시지로 차용했다.
OTT 브랜드들도 소비자들의 언어를 프로모션이나 메인 화면에 참 잘 활용한다. 특히 왓챠가 가장 체계적으로 ‘소비자 말’을 활용하는데 “헐 왓챠에”가 그거다. “헐, 왓챠에 이게 있다고?” / “헐, 왓챠에 이게 없다고?” 등등의 밈을 프로모션으로도 활용하더니, 심지어 “헐 왓챠에 이동진”이라는 콘텐츠도 만들었다. 이미 BTV에서 선점한 이동진의 이미지를 왓챠에서 만난 소비자가 실제로 말할법한 한마디를 그대로 콘텐츠 제목으로 썼다.
재밌게도 두 시장은 비슷한 점이 있는데, 2-3개의 과점시장이 5 개 이상의 경쟁 시장으로 확대되는 중이라는 거다. 모빌리티 산업의 경쟁자들이 각자 ‘프리미엄’, ‘편안한 이동’ 등 비슷한 메시지를 발신하는 상황에서, 카카오T는 직관적인 구어체로 브랜드를 연호하는 길을 택한것이다. OTT 시장도 점점 많아지는 경쟁자들 앞에서, 브랜드는 본능적으로 소비자들의 가장 친숙한 포지션을 탐하게 되고, 브랜드의 언어는 점점 더 쉽고 직관적으로 내려올 수밖에 없다.
광고회사에 다니다가 클라이언트 측으로 이직을 하면서, 생긴 큰 변화는 단어 하나 하나에 민감한 상사들이 생겼다는 점이다. 커뮤니케이션에 사용된 오타나 은어 하나로 브랜드의 이미지가 하루아침에 골로갈 수 있는 시대인지라, ‘자유도’가 충분히 있어야할 텍스트라고 생각한 것도 몇번의 필터를 걸쳐 무난한 텍스트가 되어버리기도 한다.
그래서인지 최근에 카카오 이모티콘 무료 구독을 체험해보고 대단하다고 느낀 게 하나 있다. 이모티콘을 구독하면, 내가 쓴 텍스트에 맞는 이모티콘을 추천받을 수 있다. 예를들어, ‘싫어’라고 쓰면 ‘싫어’라는 글자가 활성화 되면서, 같은 의미의 이모티콘 리스트가 뜨는 것이다. 그런데 이게 ‘싫어’만이 아니라 ‘시러’, ‘시르’, ‘시로’, ‘시름’에도 똑같이 리스트를 추천해준다는 게 아주 똑똑하다. 맞춤법을 어기고 제멋대로 쓰는 카카오 채팅방에 맞게 ‘소비자 말’를 사려깊게 고려한 서비스가 아주 기특하달까.
광고회사에 다닐때도, 그리고 지금 회사에서도 ‘온라인 커뮤니티’를 자주 들락날락 거리라고 선배들이 말하는데 그건 결국 요즘 사람들이 하는 ‘말’을 계속 주어듣기 위해서다. 그들이 말하는대로 말해야 우리의 관계는 평등해질테고, 브랜드 로열티든 팬덤이든 그건 그 다음 순서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