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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피박과 운명의 여자애

by 정희권

스피박이라는 떡밥


하루하루가 스펙터클인 한국 사회이다 보니 어느덧 스피박 선생 이야기가 사라져 간다.

이름이 멋있어서 꼬꼬마 시절부터 기억하던 스피박 선생의 제주강연이 얼마 전에 화제였다. 나쁜 의미로.

지금 살아가는 내 모습과는 별 관련이 없지만, 나 같은 사람도 한때는 부지런하게 페미니즘 관련 책을 사볼 때도 있었다.
페미니즘 서적을 부지런히 읽고 그 지식을 옮기고 다닌다고 페미니스트가 되지는 않는다. 누군가가 진짜 페미니스트인지 보려면 그냥 아내나 어머니를 어떻게 대하는지 보면 된다.

인간은 그가 가진 지식도, 심지어 행동도 아니고, 그가 이익과 편익 앞에서 내리는 판단을 봐야 평가가 가능한 법이다.

지식이 인간에 큰 영향을 끼친다는 믿음에 나는 회의적이다. 아이가 부모의 말이 아니라 등을 보며 배우듯, 지식보다는 차라리 진실이 담겨있는 이야기가 더 힘이 있다고 생각한다.

90년대 초, 소위 ’포스트모더니즘’과 ‘포스트 구조주의’가 유행했다. 베스트셀러 차트에 푸코, 들뢰즈, 데리다 같은 이름들이 올라올 때다. 일종의 지적인 스노비즘이 유행하던 시기라고 볼 수도 있는데. 그래도 필립파텍 시계 자랑하는 대학생보다 미팅 자리에서 푸코에 대해 말하며 잘난 체 하는 대학생이 좀 더 귀엽지 않은가? 약간 재수 없게 한심하긴 하지만. 나도 때론 그중 하나였던 것도 같고.

그때 조금씩 언급되기 시작한 사상가중 하나가 스피박이었다.

그의 이름은 당시에 번역된 저서가 없었다. 내가 누구를 읽어서 안다는 사실이 글의 숨어있는 주요 주제인 경우가 많았던 시절이라, 그들에게 스피박 같은 사람은 마치, 사람들이 명품이라 하는데, 한국에 정식 수입이 안 되는 브랜드를 보는 느낌 같은 것이었을까?




운명의 여자애


그런데 내가 스피박을 너무나 잘 기억하는 것은 대학시절의 멍청한 일화 때문이다.

금사빠였던 내가 문리대 앞에서 스물다섯마흔여섯 번째 운명의 여자애를 발견한 것은 이제 막 학기가 시작한 봄날이었다.

그녀의 학년을 알아내고는 자연스럽게 접근하기 위해 국문학과 그 학년 전공필수 수업을 신청 했다. 현대 문학이론. 담당 교수는 한 성깔 하신다고 국문학과 친구들이 경고했다.

내 대학 성적표는 이상한 과목 박물관과 같다. 타과 전공을 교양과목으로 듣는 취미가 있어서 내 성적표에는 수학과의 집합론 강의를 비롯 전공과 관계없는 과목이 가득 차 있다. 모든 교양체육 과목을 다 들어야겠다는 이상한 목표(게임의 업적퀘스트처럼)를 세운 덕에 매 학기 체대수업을 듣느라 체대생 아니냐는 소리를 들었다.

언제나 말이 없던 그 사람

그 여학생은 참 말이 없었다. 사실 나는 그녀의 목소리조차 기억나지 않는다. 들어본 적이 없으니까. 겉으로 표시는 내지 않았지만 나도 다른 남학생들처럼 과별로 예쁜 여학생들을 다 꿰고 있었는데 그녀는 그런 인기인은 아니었다. (참고로 귀척으로 반짝 인기를 얻은 후 바로 직장을 때려치우고 재벌가에 시집간 아나운서도 같은 건물에서 수업을 들었는데 당시에는 전혀 예쁘지 않았다. 역시 쓸데없는 건 잘 기억난다.) 그냥 뭔가가 나를 이끌었고, 언제나 그렇듯이 낚시에 취약한 호구 물고기처럼 거기에 탁 끌렸을 뿐이다.
나는 왜 갑자기 그녀에게 끌렸을까? 지금은 많이 사그라들었지만 호기심은 내 모든 삶의 영역에서 강한 동력 중 하나였고 그게 또 작동했던 것 같다.




스피박 발표


타과생을 곱게 보지 않는 교수들이 가끔 있었는데 그 교수님이 그랬다. 유일한 타과생이었던 나를 첫 시간부터 대놓고 갈궜지만, 그때마다 나는 내가 잘하는 일을 했다. 한 귀로 듣고 다른 귀로 흘리는 거.

수업시간에 현대 문학이론가에 대해 돌아가면서 발표할 기회가 있었는데, 뭔가 ‘신박한 걸 해야겠다’라고 머리를 굴린 내가 선택한 주제가 스피박이었다. 스피박에 대해 발표하겠다고 하자 교수님의 표정이 “네가?” 이러는 것 같았다.

그 시절, 스피박의 저서 중 번역이 된 게 없었고, 결국 나는 문예지와 학술지의 논문들을 복사해 읽고 (당시에는 파일로 구할 수가 없었다.) 발표자료를 만들었다.

간단히 말하면 원래 그람시가 처음 말한 서벌턴은 권력과 제도 내에서 발언권이 주어지지 않는 하위 계층들을 의미하고, 스피박은 이 서벌턴 개념을 제3세계 하위계층 여성들의 관점에서 다뤄서 유명해졌다. 서양 지식인 층에 흔치 않은 제3세계 출신이 가진 프리미엄도 한몫했을 것이다. 아이러니인 건 그녀 자신은 인도의 최상류 계급인 브라만이란 것.

나는 발표자료에 제주도 해녀 사진을 넣고 대학가에서 화장실 청소를 하시는 분들과, 식당이모님들 이야기도 했다. 나 스스로 공감하던 주제라 자연스럽게 이야기했고 그 까다로운 교수님도 꽤 만족스러워하는 것 같았다.

돌이켜보면, 그 수업에서 나는 일종의 서벌턴이 아니었나 싶기도 하다. 나 스스로 나를 하위계급으로 여기진 않았지만, 나는 유일한 타과생이었고, 교수와 나이 먹은 국문학과 예비역들의 미묘한 견제속에 있었다. 원래 목적이었던 그 여학생 옆자리조차 쉽게 차지하지 못하던 ‘외부자’.

스피박은 “서벌턴은 말할 수 있는가?”를 물었지만, 나는 다른 학생들에게 별 말도 건네지 못했다.


결론
나는 그 학기가 끝날 때까지 그 여학생에게 말도 붙여보지 못했으며, 현대문학이론 수업에서는 에이뿔을 받았다.
사실 여학생에 대한 관심은 학기말쯤에는 사라져 버렸다.

어떤 의미에서 나는 분명히 바람둥이긴 했는데,

다행스럽게도 딱히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종류의 바람둥이였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후일담

세월이 흘러 게임업계에 입문한 후, 게임 관련 연구를 하는 사람들도 만나고 글도 읽고 교류도 했다. 그때 그 교수님의 글 중 하나가 재닛 머레이의 Hamlet on the holodeck의 주요 내용과 지나치게 유사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리고 다른 불미스러운 일로 물러났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 사실을 알았을때, 그래도 내게 좋은 점수를 준건 고마웠다.



그리고 다시 스피박

이 모든 것은 사실 스피박과는 상관이 없고, 나는 스피박의 이번 갑질이 그냥 그녀가 브라만 출신이라 그렇다는 말이 꽤 설득력 있다고 생각한다.(이번이 처음이 아니셨더니만)
그리고 나는 그 여학생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한다.

물론 그녀는 아예 나의 존재 자체를 모를 것이다. 잘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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