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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희권 Jan 16. 2022

보호 종료 아동  출신 바이올리니스트 A의 경우

보호 종료 아동 출신 바이올리니스트 A의 경우 


- 연주가 끝난 콘서트홀에서 


연주가 끝난 클래식 콘서트홀은 입구는  연주자들의 지인들로 북적거리기 마련이다. 

연주가 끝나고 나면 정장을 입은 연주자들의 가족, 친구, 친지들은 입구에서 기다리다가 공연을 마친 연주자들에게 꽃다발과 선물을 전달하고는 웃으며 축하를 한다.  다른 연주자들이  웃으며 사진을 찍고 담소를 나누다가 하나둘씩 차를  타고 사라지는  동안,  한참이 지났는데도 내가 기다리던 A는 나타나지 않았다. 

나 이외에 그를 기다리는 지인들도 눈에 띄지 않았다.



 - 그를 만나기까지 


부산에는 과거 소년의  집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졌던 복지시설이 있다. 마리아 수녀회에서 운영하는  오래된 보육원이다. 국가대표 골키퍼였던 김병지를 배출한 축구팀과 교내 오케스트라가 유명하다. 그곳에서 음악 봉사를 한 인연으로 몇몇 청년들의 후견인 역할을 해주고 있는 분에게 보호 종료 아동들의 삶에 대한 글을 쓴다는 취지를 밝히고 두 명을 소개받았다. 


 만나기까지의 과정은 쉽지 않았다. 소개를 해준 후견인은 그들을 만나려는 취지에 대해 여러 번 반복해 물어봤고, 인터뷰 대상과 의논 후 연락을 주겠다고 했다.  그들을 보호하고자 하는 의중이 느껴졌다. 이들에 대한 이야기가 가벼운 흥밋거리로 소비되는 일을 피한다는 인상도 받았다. 옳은 일이다.   


2주가 지난후 인터뷰 허락을 받았다. 소년의 집에서 오케스트라 활동을 한 것을 계기로 현직 음악가로 활동하고 있는 A였다. A의 개인 일정으로 인해  그가 살고 있는 한 지방도시를 방문하게 된 것은 허락을 받고 나서 근 두 달이 지난 후였다.


- 인터뷰 


A와 만나기로 한 음악학원은  큰 아파트단지의 외곽에 있었다.  아이들을 데리러 온 엄마들이 차를 댄 체 기다리고 있었고 작은 바이올린을 든 아이들이 재잘거리며 건물에서 나왔다.


그는 중저음의 목소리를 지닌 잘생긴 청년이었다. 상대를 배려하는 부드러운 어투와 발성에는 오랫동안 축적된 교양이 묻어 나왔다.  그가 스스로 밝히기 전에는, 처음 만난 그를 보호 종료 아동 출신으로 볼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사실, 그와 통화를 하면서 좀 놀랐던 부분이기도 했다. 


인터뷰는 그가 학생을 가르치는 교실에서 이뤄졌다. 아이들이 올 때까지는 두 시간의 여유가 있었다. 


'아유 기다리시게 해서 죄송합니다.' 

 그는 부드러운 목소리에 웃음을 담아 이야기했다. 


그날 만난 장소는 원래 피아노 학원인데, 그가 연습실  일부를 임대해서 바이올린을 가르치고 있다고 했다. 우리 말고는 아무도 없는 빈 학원에서 이야기를 했다. 창 밖에서는 아이들의 목소리와 차 지나가는 소리, 대낮 거주구역의 소음들이 들려왔다. 


 A는 세살때 소년에 집에 입소했다. 묘하게도 그는 3살때 자기 손을 잡아준 수녀님을 다 기억한다고, 아직 수녀원에 계셔서 가끔 찾아뵙는다고 했다. 그 이전의 기억은 전혀 없다. 

 소년의 집 오케스트라 활동을 통해 음악을 접했다. 처음에 받은 바이올린에는 줄이 하나밖에 없었다는 이야기를 하며 웃었다.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바이올린을 사랑했다. 아마 몇 안 되는 자신의 것이었으리라. 그리고 그는 어린 나이에 바이올린으로 인생을 살겠다는 결심을 한다. 


나도 어렸을 때 바이올린을 배운 적이 있다. 정해진 횟수만큼 단조로운 음계를 반복해서 연주하는 것은 매우 지겨운 일이었고 가세가 기울어 바이올린을 그만두게 됐을때는 어린 마음에 내심 반갑기까지 했다.  바이올린을 다시 집은 건 서른 살 즈음, 뒤늦게 음악의 즐거움을 깨달은 이후였지만, 직장생활을 하며 음악을 계속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아니면 내 열정이 부족했거나. 


음악가로 사는 일은 어떠냐고 물었을때 그는 말했다. 

"음악을 업으로 하는 일은 확실히 쉬운 일이 아니라서, 교육하는 입장에서 아이들에게 음악의 길을 강권하지는 않아요. 

제 경우에는

1. 내가 그 일을 하는 것이 행복하고,

2. 내가 그 일을 잘할 수 있고

3. 먹고 살 자신이 있으면 

그 일을 한다라고 원칙을 갖고 있어요. 

이 기준에 따르면 음악은 제가 할 수 있는 일이었고 그래서 했을 뿐입니다. "


또 다음과 같이 덧붙이며 웃었다.


"부자가 아니라서 음악을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아이들이나 부모를 보면 좀 안타깝지요. 저도 그랬지만, 뜻이 있으면 다 길이 있으니까요. 요즘 아이들은 금전적인 문제에 관심이 많습니다. 직업 인터뷰를 하러 온 중학생들이 있었는데, 바로 한 달에 얼마 버냐고 묻더군요." 그는 이 말을 하며 웃었다. 


그는 19살이 되자 다른 보호 종료 아동들처럼 통장에 든 500만 원과 함께  시설을 나왔다.

지금은 보호종료아동들이 대학에 진학하면 학비를 보조해주는 곳이 있지만, 당시에는 그런 제도가 없었다. 그는 수녀님들이 소개해주신 후견인의 도움과 아르바이트로 생활을 이어나갔다.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이지만, 그는 자신이 시설 출신이라는 이야기를 주위에 하지 않는다. 

학부시절 당시 친했던 친구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한 일이 있다. 그런데 어떤 프로그램에 선정되고 나니  'A는 고아 출신이고 그래서 혜택을 받았다.'라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소문의 출처를 쫓아보니  바로 그 친구였다. 

요즘 유행하는 '공정' 은 때로 대단히 불공정한 맥락으로 악용될 때가 있다. 


그는 자신의 동기들 중 대학에 진학하는 것은 5% 정도이며, 90% 이상의 보호 종료 아동들은 대부분  숙식이 제공되는 생산직 공장에 취직을 한다고 한다.  그들은 홀로 이 세상에 던져지지만, 자신 같은 젊은이들이  진정 홀로라는 것은 깨닫게 되는 것은 그들 중 누군가 큰 일을 당했을 때다.    


A의 동기 한 명이 보호 종료 후 2년 만에 공장 프레스기에 끼어 사망했는데 사고가 난 기업은 나 몰라라 했다. 한 청년이 죽었지만,  연고가 없는 청년을 위해 나서 주는 사람은 없었다. 연고가 없기 때문에 기업이 배상을 해야 할 대상도 없다. 그리고 그렇게 떠나간 친구들이 갖고 있던 얼마 안 되는 것들은 나라의 소유가 된다.   A는 이때 세상이 참 부당하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가장 심한 것은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경우다.

그들이 자라난 시설은 천주교 소속이고, 천주교는 자살을 대죄로 여기기 때문에 자살자의 장례식은 시설이 관여하지 않는다. 그들을 키워준 수녀님들도 오지 않는다. 자살을 한 보호 종료 청년의 장례식장에는 그를 기억하는 같은 처지의 친구들이 돈을 모아 치루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A는 아직 젊지만 동기 중의 10% 정도는 이미 소리 없이 이 세상을 떠났고, 그들 중 상당수의 사인은 자살이라고 그는 말했다. 


 그들을 양육한 기관에서 보호종료 이후의 청년들을 위한 자조조직을 만들려는 노력도 있다.  후견인 없이 세상에 홀로 나서야 하는, 그리고 이 세상을 떠날때도 홀로여야 하는 청년들을 위한 최소한의 안정장치를 마련하기 위한 노력이지만 자살자들은 여기에서도 외면받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세상에 크게 바라거나 기대하는 것은 없다는 말을 했다. 

그는 기본적으로 자립심이 굉장히 강한 사람이고,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는 자신의 삶을 스스로 개척하는 자만이 갖는 안정감과 확신이 있었다. 

나이만으로는 큰 형님뻘이 되는 내 입장에서도 존경스러운 부분이었다. 


사랑의 문제 


그러나 그에게도 큰 고민거리가 하나 있으니 그것은 사랑과 결혼의 문제다.


A에게는 작년 말까지 결혼을 생각하던 여자 친구가 있었다고 한다. 친구소개로 만났고, 사귐이 지속됨에 따라 자연스럽게 결혼 이야기가 나왔다.  A를 소개해준 친구는 A가 시설 출신이란 걸 모르고 있었고, 그도 굳이 그걸 말하지 않았기 때문에 여자 친구의 부모님이 상견례를 하자는 이야기를 하셨을 때 그는 갈등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여자 친구를 사랑했고, 여생을 함께 보내고 싶은 마음도 컸다. 그러나 자신의 현실을 온전히 밝혔을 때 어떤 일들이 벌어질지 잘 알고 있었다. 


"충분히 이해하는 게, 누가 좋아하겠습니까? 귀한 자식이 고아와 결혼하겠다고 이야기한다면요"


상견례를 앞두고 결국 A는 고민끝에 여자친구에게 이별을 고했다. 왜 이별을 해야 했는지 여자친구에게 말할 수 없었다. 그에게는 이어나가야 할 삶이 있기 때문이다. 


자신이 자라온 과정과 환경을 공공연하게 드러내는데 따르는 위험이 매우 크다는 사실을 A는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고아라는 사실이 알려지면 레슨을 생업으로 하는 그의 삶에 큰 영향을 끼칠 것이다. 학부모들은 자녀를 가르치는 선생에 대해 얼마든지 냉정해질 수 있다. 

 

이야기를 마치고 레슨을 준비하기 위해 자리를 정리하던 그는 한 달 후에 열리는, 자신이 참가하는 콘서트에 꼭 와달라는 이야기를 했다. 날짜를 따져본 나는 꼭 방문하겠다고 약속했다. 

클래식 공연을 가본 것도 정말 오래간만이었다. 




다시 콘서트장에서 


로비에서 사진을 찍던  대부분의 사람들이 빠져나가고, 선물을 들고 마냥 기다리는 게 어색해질 무렵 A가 나타났다. 나 이외에 그를 기다리는 사람은 없었던 것 같다. 


"와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흔들림 없는 차분한 어조로 그가 말했다.

"제가 감사드려야죠. 오랜만에 귀가 정말 호강했습니다. 다시 바이올린을 켜고 싶어 졌어요"

"그럼 다행이네요" 


그는 미소를 지었다. 식사를 대접하고 싶었지만 그는 일정이 있다고 했다고 했다. 



돌아오면서 


차를 몰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오랜만에 현장에서 접한 음악의 여운이 남아 있었다. 바흐의 현악 3중주를 들어본 것은 정말 오랜만이었고 작은 콘서트장에서 공기를 타고 악기로부터 직접 전달되는 클래식의 연주는, 이제 음악이라고는  기껏해야 차에서 운전할때나 지하철에서 유튜브로 듣던 나의 마음속 밑바닥에 잠겨있던 수많은 감정들을 다시 떠오르게 만들었다.


 기꺼이 하겠다고 나선 인터뷰였지만, A를 만나기 전에 나는 두려웠다.


비교적 좋은 시기에 청춘을 보내고, 적절한 행운을 만나 삶에 대한 큰 고민 없이 적절히 살아가는 중년의 남자가 조심해야 할 것은 함부로 주제넘게 남의 인생을 평가하거나 관여하려고 하는 일이라 생각한다. 일상에서는 이런 각오와 조심성이 어느 정도 유지가 되는데, 내가 미처 경험해 보지 못한 어려움과 고통 앞에서는 때로 그렇지 못할 때도 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적거나 없을때, 타인의 큰 슬픔앞에서 느끼게 되는 절망감은 사람을 더욱 두렵게 만든다. 가능하면 그런 일을 피하고 싶다. 약속을 잡고 A를 만날 시간이 다가오면서 그와의 만남에 대해 점점 더 조심스러워졌던 것은 그 때문이다. 


이런 걱정이 나의 기우만은 아니었다. 인터뷰 중에 A를 통해 알게 된 바로는 그들에 대한 관심으로 시작된 언론의 취재가 그들에게는 커다란 슬픔과 공포가 된 사례도 있었다. 그가 졸업한, 보육원 아동들을 위한 학교에 대해 언론사가 오보를 냈고, 나중에 재판을 통해 시시비비는 가려졌지만 크게 상처받은 마리아 수녀원에서는 차라리 학교를 없애는 쪽을 택했다. 최근의 일이다. 그들은 자신에 대한 사회의 관심이 없었더라면 그들이 다녔던 학교가 아직 남아있었을 거라 생각한다. 


모순과 허점이 많은 이 커다란 세상, 그 안에서 겪는 타인의 슬픔 앞에서 우리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많지 않다. 우리가 그들을 어떻게 도울 수 있는가 구체적인 방법을 생각하고 그 방법들을 내 말에 담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함부로 도움을 입에 담는 것도 쉽지 않다. 게다가 잘못된 방송이 그들에게 준 피해의 사례처럼, 그들에 대한 동정이나 그들을 위한 분노가 오히려 그들에게 고통을 줄 때도 있다. 


그래서 부모가 누군지 모른 체 이 세상에 던져져서, 세상이라는 까마득히 절벽을 작은 손과 발로 올라가는 청년들에게 우리 세대가 보낼 수 있는 것은 지나친 관심보다는 조용한 응원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연대할대상을, 그들을 정서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지지해줄 사람들을 필요로 한다. 

여기 응하는 것은 분명히 미덕이나 여기에는 큰 주의가 필요하다. 


관심은 분명 좋은 일이나, 내가 일찍 쉽게 포기한 길을 혼자서 묵묵히 간, 자신의 삶을 온전히 자신의 힘으로 쌓아 올리고 있는 사람들을 함부로 동정하거나 해서는 안된다. 그건 옳지 않을 뿐더러 주제넘은 일이기도 하다. 적어도 내가 만난 그는  나이는 나보다 어릴망정 내가 보고 배울만한 사람들이고,  오히려 내가 언젠가 세상에서 찾고 싶었던  스승의 얼굴을 닮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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