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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희권 Apr 24. 2023

좋은 아빠, 좋은 아버지.

문득 아내가 이전에 살짝 비웃으며 했던 말이 생각난다.

당신은 당신이 좋은 아빠이자 남편이라고 착각하고 있지?


틀린 말도 아니고 딱히 조롱이라거나 도발은 아니었기에 별다른 대꾸는 하지 않았지만, 문득 갑자기 그 생각이 난다. 그리고 그때 하지 못한 말이 생각난다.


나는 한 번도 그렇게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나는 내가 결혼 같은 걸 하리라고 생각을 해본일이 없다.

내가 결혼을 한다는 건 내 주위 사람에게도 나 자신에게도 의외의 사건이었다.

나는 어느 날 갑자기 준비되지 않은 모험을 떠났던 것이다.

행복한 호비트 마을을 두고 정신 나간 여행을 떠났던 빌보 배긴스처럼.


결혼이 그랬는데, 좋은 남편이 뭔지 알았을 리 없다.

좋은 남편이 뭔지를 모르겠는데 그게 될 수 있을지 지금도 의문스럽다.

 


아버지라는 역할은 더욱 난감하다.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직업은 아버지인데, 아버지를 위한 직업교육은 없다.

이 말을 한건 버나드 쇼다. 정곡을 찌르는 말이다.

나는 어른조차 아니었는데 아버지의 역할이라니!

고비고비마다 난감함의 연속이었다.

나는 물어볼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셨기에 더더욱 그랬다.


아버지로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난 아직도 잘 모르겠다.  

좋은 아버지가 뭔지 잘 모르겠는데 좋은 아버지가 될 수 있을까?

내가 기껏 할 수 있는 일은, 내가 잘못했을 때는 애들에게 솔직하게 말하는 것이다. 나는 이런 실수를 했다고. 내 판단이나 능력은 여기까지였다고, 가능하다면 너희는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스스로 이렇게 생각하기 때문에

딱히 존경받는 남편이나 아버지로 대접받고 싶은 생각도 없다.

인간으로서 존중받지 못한다면 그건 또 다른 이야기겠지만.


그러나

내가 노력했다는 것을 언젠가 기억해 주면 무척 고마울 것 같다.

모든 과정이 나에게도 첫걸음이었다는 걸.

그래서 뭘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를 때도 많았다는 걸

그러나 그렇게 떠난 여행에서 가끔 보석 같은 순간들을 만났고

그때마다 한없이 행복했다는 걸 알아줬으면 좋겠다.


아이들이 커서 "그래도 우리 아빠가 노력은 하셨어."

라고 말해줬으면 좋겠다.

그걸로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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