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 보면 우리에게 약간의 권력이나 부와 같은 힘이 주어지는 순간이 있다.
우리는 우리가 힘이 있을 때 타인이 우리를 대하는 자세가 달라진 다는 것은 알고 있다. 그런데 이때 우리가 쓰는 가면을 그들이 훨씬 더 적극적으로 받아들인다는 사실도 중요하다.
재산이나 힘이 있는 사람이 자신이 원하는 가면을 쓰는 것은 마음만 먹으면 쉬운 일이다. 부자가 타인에게 너그럽고 포용력 있는 사람으로 보이는 것은 간단하다. 군복무를 한 사람들은 자애롭고 인자해 보이는 상관이 실제로는 우리에게 어떤 일을 할 수 있는지 잘 알 것이다. 그래서 겉모습이나 좋은 사례로 그의 본성(정말로 그런 것이 있다면)이 선량하다거나 자애롭다고 판단하는 것은 현명하지 않다. 개인적으로는, 인간의 본성을 정말로 판단할 수 있는 순간은 이해관계 앞에서 취하는 태도를 관찰할 때뿐이라 생각한다. 그 순간 이전에 우리가 평소에 쓰는 가면은 사실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우리가 타인을 속일 때는 우리 자신부터 속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권력자들은 타인들이 자신을 정말로 이해하고 있는지에 대해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 그래야 할 이유가 없다. 단지 이미지와 그것을 통해서 얻어낼 수 있는 인기와 힘에 신경 쓸 뿐이다.
셰익스피어가 리어왕에서 “왕자들에게 믿음을 주지 말지어다.”라고 한 것은 그 때문이다. 그래서 정치적 리더의 후광효과에 마음을 뺏기는 것은 쓸데없는 일일 뿐이 아니라 진실에서 멀어지는 일이기도 하다.
부나 권력에 굴종하거나, 동경하거나, 그곳으로부터 작은 이익이라도 기대하는 사람들은 이미 그가 쓰는 가면에 반응할 준비가 되어 있다. 가시적인, 잠정적인 이익 앞에서 보이는 태도가 정말 그 사람의 품위와 가치를 결정하는 순간이고, 우리는 아주 종종 우리 자신을 염가로 매대에 내놓는다. 후광효과에 지나치게 휘둘리는 것은 우리 자신의 무지뿐 아니라 욕망의 결과이기도 한 것이다.
누구나 타인을 함부로 나쁘게 판단하는 것이 옳지 않다는 사실은 알고 있다. 그러나 타인을 너무 쉽게 좋은 사람이라 판단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타인을 쉽게 판단하는 것은 종종 우리의 생각이 깊지 않거나 우리 스스로가 상대에게 복종할 때 벌어지는 일이다. 후광효과에 휘둘리는 이유 중 하나는 우리가 우리의 욕망에 너무 쉽게 복종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욕망이 우리의 시야를 가린다.
우리가 하는 말, 심지어 우리가 하는 행동 까지도 정말로 우리가 어떤 인간인지를 담보해 주지는 못한다. 세상에는 위선과 위악이 동시에 존재하며 하나의 악행을 했다고 해서 그게 악인이라는 뜻은 아니다. 선행을 하는 사람을 봤을 때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그가 선행을 했다는 사실 하나뿐이다. 선행은 선함의 결과지만 증거는 될 수 없다.
또한 우리가 우리 외면의 모습에 신경 쓸 때 조심해야 할 것은 타인이 보는 내 모습이 정말로 나 자신인지는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큰 고민 없이 그저 가면을 썼을 뿐이고 우리가 어떤 가면을 쓰던 우리에게 맞장구 칠 준비가 된 사람들이 보이는 태도가 우리 가면이 내 진실된 모습을 보여준다는 보증은 되지 못한다.
그래서 우리의 미덕을 누군가가 칭찬할 때는 그 칭찬이 우리가 갖고 있는 힘과는 관계없는 것일 때만이 정말로 가치를 가질 뿐이다. 반면에 타인의 미덕은 그 사람이 갖고 있는 부나 권력이 우리에게 아무런 의미를 가지지 않을 때 그 가치를 갖는다. 종종 비슷한 힘을 가진 상대들끼리 진실된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은 이런 이유다.
우리가 사회적 신분이나 부, 권력과 같이 인간대 인간으로 의미 있는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그가 갖고 있는 힘이나 재산이 우리에게 별 의미가 없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가 쓰고 있는 가면이 큰 의미를 가지지 못하는 상태를 의미하며 우리는 그것을 진실된 관계라 부른다.
그리고 여기서 정말 중요한 것은, 아무런 힘이 힘이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품위를 갖춘 사람을 알아보는 것이다. 부자나 권력자가 품위를 갖추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러나 가진 것이 없어도 품위 있는 사람은 진정한 품위를 가진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타인이 간직하고 있는 덕목을, 그가 재산이나 권력이 없더라도 그가 가진 너그러움과 품위를 알아볼 수 있다면 바로 그 덕목을 우리도 갖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타인의 힘에 초연한 사람만이 타인을 두려워하지도 않고, 그를 올바로 볼 수 있는 것이다. 타인의 힘, 이해관계 앞에서 초연할 수 있는 순간이 바로 우리 자신의 품위가 결정되는 순간이다.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이 갖고 있는 품위를 읽고 존중할 수 있는 사람은 그 사람 스스로가 품위를 지닌 사람이다. 그러기에 자신의 욕망에 휘둘리지 않고 타인의 품위를 알아볼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