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아빠, 좋은 아버지.

by 정희권

문득 아내가 이전에 살짝 비웃으며 했던 말이 생각난다.

당신은 당신이 좋은 아빠이자 남편이라고 착각하고 있지?


틀린 말도 아니고 딱히 조롱이라거나 도발은 아니었기에 별다른 대꾸는 하지 않았지만, 문득 갑자기 그 생각이 난다. 그리고 그때 하지 못한 말이 생각난다.


나는 한 번도 그렇게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나는 내가 결혼 같은 걸 하리라고 생각을 해본일이 없다.

내가 결혼을 한다는 건 내 주위 사람에게도 나 자신에게도 의외의 사건이었다.

나는 어느 날 갑자기 준비되지 않은 모험을 떠났던 것이다.

행복한 호비트 마을을 두고 정신 나간 여행을 떠났던 빌보 배긴스처럼.


결혼이 그랬는데, 좋은 남편이 뭔지 알았을 리 없다.

좋은 남편이 뭔지를 모르겠는데 그게 될 수 있을지 지금도 의문스럽다.


아버지라는 역할은 더욱 난감하다.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직업은 아버지인데, 아버지를 위한 직업교육은 없다.

이 말을 한건 버나드 쇼다. 정곡을 찌르는 말이다.

나는 어른조차 아니었는데 아버지의 역할이라니!

고비고비마다 난감함의 연속이었다.

나는 물어볼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셨기에 더더욱 그랬다.


아버지로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난 아직도 잘 모르겠다.

좋은 아버지가 뭔지 잘 모르겠는데 좋은 아버지가 될 수 있을까?

내가 기껏 할 수 있는 일은, 내가 잘못했을 때는 애들에게 솔직하게 말하는 것이다. 나는 이런 실수를 했다고. 내 판단이나 능력은 여기까지였다고, 가능하다면 너희는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스스로 이렇게 생각하기 때문에

딱히 존경받는 남편이나 아버지로 대접받고 싶은 생각도 없다.

인간으로서 존중받지 못한다면 그건 또 다른 이야기겠지만.


그러나

내가 노력했다는 것을 언젠가 기억해 주면 무척 고마울 것 같다.

모든 과정이 나에게도 첫걸음이었다는 걸.

그래서 뭘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를 때도 많았다는 걸

그러나 그렇게 떠난 여행에서 가끔 보석 같은 순간들을 만났고

그때마다 한없이 행복했다는 걸 알아줬으면 좋겠다.


아이들이 커서 "그래도 우리 아빠가 노력은 하셨어."

라고 말해줬으면 좋겠다.

그걸로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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