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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를 여행하는 일

후쿠오카도, 오사카도, 삿포로도 아닌 이곳

by 최효훈

도쿄는 일본 여행의 '첫번째'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도 비록 프로그램이긴 했지만 첫 방문은 오사카였고, 대부분 사람들은 후쿠오카/오사카를 먼저 방문하게 되는 것 같다. 후쿠오카는 압도적으로 가깝고, 부담이 없다. 오사카는 여행에서 기대하는 일본의 다양한 모습을 모두 경험할 수 있고, 더 편리하다. 특히 교토라는 대체 불가능한 여행지가 붙어있기도 하다. 컨슈머인사이트에서 23년 조사에 따르면 오사카 여행객 비중이 29%로 가장 높고, 그 다음 후쿠오카가 24%, 도쿄가 20%, 삿포로 11%로 나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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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도, 도쿄가 '일본 여행'을 생각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곳은 아니라고 생각해왔다. 주변에서도 보통 처음 일본에 가게 되면 후쿠오카나 오사카를 들렀고, 여행 영상이나 내용 등도 오사카-교토가 좀 더 많았다. 물론 도쿄 역시 충분히 고려할 만한 선택지였지만, '먼저' 고려하는 곳은 주로 오사카나 후쿠오카라는 느낌이었다. 온천을 찾을 때도 후쿠오카를 통해 유후인, 벳푸 등을 먼저 갔지 도쿄를 통해 하코네를 가는 경우는 많지 않았다.


다른 국가 여행을 생각하면 조금 이상한 일일 수도 있겠다. 영국을 가면 런던을, 프랑스를 가면 파리를, 체코를 가면 프라하를 가곤 하니까. 한국은 서울 여행이 대부분을 차지하듯, 수도를 먼저 떠올리게 되니까. 물론 미국을 가도 워싱턴을 가지 않고, 중국을 가도 베이징을 가지 않고, 독일을 가도 베를린을 가지 않고, 스페인을 가도 마드리드를 가지 않는 일도 많지만 그 경우 대부분 수도보다 더 문화적으로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는 도시인 경우였기 때문에 그랬다.


그런데 도쿄는 사실 일본 내에서 엄연히 수도로서의 역할과 기능을 다 하고 있지 않나. 아무리 오사카가 관서 지방을 중심으로 엄청난 규모를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도쿄 광역권이 일본의 중심이라는 건 부정하기 어렵다. 물론 그건 우리나라는 일본의 이웃 국가이고, 다른 나라에 비해 비교적 '비슷한 풍경'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단순한 도시 관광보다는 자연(온천), 음식, 편의성을 위주로 생각하다 보니 도쿄보다 오사카가 먼저 대표되어 왔지 않나 싶기는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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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거나 나도 일본 여행으로 처음 간 곳은 도쿄가 아니었다. 오사카를 필두로 한 관서지방을 일본의 JENESYS 사업을 통해 다녀왔고, 2023년 처음 도쿄를 갔을 때도 2주의 여행 기간 동안 나고야로 입국한 뒤에 나고야-시즈오카-도쿄 순으로 갔기 때문에 도쿄 방문은 다른 도시보다 늦은 편이었다고 할 수 있겠다. 그리고 그 이후로도 도쿄에 몇 번 방문하게 되면서 깨달았다. 도쿄는, 정말 많은 걸 품고 있구나. 그렇기 때문에, 호불호가 갈릴 수밖에 없겠구나라고.


이제 도쿄에 대해 조금 감을 잡게된 것 같은 지금도, 주변에 도쿄를 일본 여행의 첫번째 장소로 추천하기는 어렵다. 한 마디로, 도쿄는 너무 어렵다. 일반적인 도시들이 콘텐츠가 6개 정도 있다고 하면 도쿄는 한 18개 정도가 있다. 오사카를 방문하는 사람들은 우메다와 난바를 중심으로 관광을 하고, 교토와 나라를 다녀오면 된다. 사람에 따라 유니버셜을 다녀올 수 있는 정도겠다. 여기엔 개인의 취향이 어떻든 간에 대부분의 여행 코스가 '겹치게' 된다. 하지만 도쿄는 다르다. 사람에 따라 천차만별로 여행 코스가 바뀔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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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사람들이 긴자에 가고, 신주쿠에 가고, 시부야에 가고, 아키하바라를 간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도쿄의 전부는 그것이 아니기 때문에 '내가 도쿄를 거의 훑었다'라고 여기기는 어렵다. 오다이바, 롯폰기, 이케부쿠로, 우에노, 아사쿠사 같은 대표적인 도심이 더 있기도 하고, 세부적으로 가면 그 외에도 방문할 동네가 많기도 하니까.애초에 긴자, 신주쿠와 시부야 안에서도 무엇을 하느냐에 따라 다른 여행이 될 수도 있기 때문에 그 동네를 단순히 '방문'했다는 것만으로 같은 여행객이라고 하기도 조금 애매해진다.


게다가 도쿄는 위에 언급하지 않은 곳들도 충분히 관광객들이 '찍을 만한' 곳들이 있다. 디즈니랜드도 있고, 벚꽃을 보러간다면 나카메구로를 방문할 수도 있다. 패션에 관심이 있다면 시모키타자와를 갈 수도 있고, 쇼핑을 위해 아오야마나 오모테산도, 하라주쿠를 돌 수도 있다. 해산물을 먹기 위해 츠키지-도요스 시장을 갈 수도 있고, 진보초에 가서 킷사텐 체험을 할 수도 있겠다. 도쿄타워를 들릴 수도, 모리 타워의 흔적을 좇기 위해 토라노몬에 갈 수도, 조금 조용한 동네를 위해 카구라자카나 지유가오카, 기치조지를 들릴 수도, 츠타야에 빠져 다이칸야마를 갈 수도 있겠다. 물론, 근교이긴 하지만 슬램덩크 투어를 하러 가마쿠라까지 가는 일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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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쯤 되면, '더 이상 일반적인 관광객 코스라고 하긴 어려운 거 아냐?'라는 말이 튀어나온다. 물론 그렇다. 세계는 넓고 가볼 도시는 많은데, 도쿄의 동네(?) 구석구석까지 언제 들여다보고 있어야 할까? 하지만 애초에 그게 '어려운' 곳과 '가능은 한 곳'의 차이는 뚜렷하다. 예를 들어 한국인이 많이 가는 후쿠오카의 경우도, 박박 긁어 콘텐츠를 더 파내려고 해도 후쿠오카 도심 내에선 한계에 마주하게 된다. 그러니 여행객들은 인근 도시로 떠난다. 4박 5일이면 이 도시의 A-Z를 다 봤다라고 확신하게 되는 것과, 4박 5일을 있었는데도 아직 어딘가를 못 갔네...라는 생각이 드는 도시는 엄연히 다르다.


예를 들어 전망대만 해도 스카이트리, 도쿄 타워, 도쿄 도청, 시부야 스카이, 롯폰기 힐스 등에서 골라야 하는 곳이 도쿄다. 서울을 생각했을 때 전망대라 하면 남산타워와 63빌딩, 롯데 타워 정도가 흔히 떠올릴 수 있는 정도 아닐까? 전망대가 많은 게 무조건 좋냐라고 하면 딱히 그렇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도쿄 여행에서는 무언가를 하려고 할 때마다 수많은 선택지에서 골라야 하는 일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홍콩에도 여러 전망대가 있지만 그래도 대부분 빅토리아 피크를 가게 되는 것과 달리, 도쿄는 본인의 여행 동선이나 선호하는 컨셉 등에 따라 고민을 시작해야 한다. '1극' 체제가 아니라 '다극'이고, 그건 여행 내내 적용되는 이슈다.


그 '다극'이라는 게 여행지로서 좋은 건가?라고 하면 사실 잘 모르겠다. 오사카처럼 교토와 나라를 가고, 난바와 우메다를 필두로 적당히 돌고 하는게 편하니 사람들은 오사카를 많이 가는 것일 수도 있으니까. 삿포로에 가서 뭘 할지 고민하지 않아도, 그저 눈을 보고 오타루 가면 되는 정도면 충분하니까. 누군가와 함께 갔을 때 나는 어디가 낫니 너는 저기가 낫니 머리아프게 시시콜콜 따지고 알아보는 것보단 누가 가더라도 대충 50%는 겹치는 일정을 짤 수밖에 없는 도시가 맘은 편하니까. 특히 거기가 일본이라면, 음식 먹으러 가고 좀 쉬러 가는 건데 뭐 그리 복잡하게 가야하냐 생각이 불쑥불쑥 들테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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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를 여행한다는 건, 결국 수많은 선택지와 마주한다는 일이고, 취향과 여행비와 일정과 편리함을 모두 하나하나 따져야 한다는 일이다. 후쿠오카로 여행을 가면 끽해봐야 하카타 역에서 텐진역 사이에 있는 숙소 중 고르면 그만인데 여기는 후보가 되는 동네만 여럿이고 그 안에서 다시 또 따져봐야 한다. 하다못해 공항에서 도쿄 도심으로 가는 방법부터 수많은 선택지 중에 결정해야 하는 도시다. 그런데 그 안에 사람은 바글바글하고, 길은 좁고 답답하고 볼 수 있는 건 그저 한국과 크게 차이나지 않는 도시인 것 같다. 단순히 조금 다른 동네 풍경을 보러 도쿄에 간다는 건 '그래도 여행하려면 수도부터 가야 하는 거 아냐?'라는 뚝심이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쉽게 결정하기 어려운 일이다.


물론 도쿄는 '단순히 조금 다른 동네 풍경'을 가진 곳은 아니다. 다만 도쿄가 가지고 있는 여행지로서의 매력은 대부분 장엄한 자연, 색다른 도시 풍경과 같은 '하드웨어'가 아니라 소프트웨어에서 오기 때문에, 도쿄에 가야만 하는 이유가 있는 게 아니라면 쉽지 않은 선택지다. 덕질, 건축, 카페, 전국구급 맛집, 음악, 벚꽃, 호텔, 대학... 그 무엇이 됐든 '난 그걸 보러 가야해'가 있어야 한다. 하다못해 오다이바에 가서 '디지몬에 나온 거기 아냐?'라거나 오차노미즈에 가서 '스즈메의 문단속에 나온 거기 아냐?'라도 할 수 있어야 한다. 아니면 해리포터 스튜디오를 가야 한다거나하는 것들.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도쿄에 가고, 또 N회차 방문을 하지만, 그럼에도 도쿄는 여전히 조금 먼 느낌이라는 건 지울 수 없다. 모든 일에 콘텐츠를 따지는 나같은 사람은 몇 번을 가도 새롭고 지도에 찍어둔 곳을 1/3도 못갔다는 생각에 늘 아쉬워서 또 도쿄를 가도 좋지만, 여전히 "다른 나라 여행할 시간에 도쿄 3번 가십시오"라거나 일본여행을 처음 준비한다는 사람들에게 "도쿄가 최고야"라고 권하진 못하니까. 다른 동네는 추천할 때 '거기 가봐'하면 그만이지만, 도쿄를 추천할 땐 '혹시... 도쿄에서 하고 싶은 게 있어? 뭘 좋아해?'라고 물어봐야 제대로 된 답을 해줄 수 있을 것 같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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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역시 도쿄를 가기 전에는, 도쿄가 막연하게 느껴졌다. 도쿄에 뭐가 있지? 긴자? 시부야? 신주쿠? 그냥 도시 아닌가? 시부야 스크램블은 떠오르지만 그걸 보러 도쿄까지 갈 수는 없는 일인데, 도쿄에선 무엇을 보고 무엇을 해야 하지? 오사카는 그저 음식만 먹고와도 좋은 것 같은데, 도쿄는 뭘 먹어야 하지? 그럼에도 '그래도 수도인데'하는 마음으로, 알아보자는 마음으로 도쿄 일정을 짰었더랬다. 물론 여행 준비를 하면서 도쿄의 수많은 콘텐츠를 발견하고는 채워넣느라 신나긴 했지만. 그리고 첫 방문 1주일을 있으면서, 1주일 가지고는 도쿄를 알기엔 턱도 없구나 싶어서 아쉬워했지만.




나는 서울을 사랑한다. 서울은 수많은 콘텐츠가 있는 도시다. 관광객들은 홍대와 명동, 북촌과 인사동, 성수와 잠실, 별마당 도서관과 한강, 한남동과 동대문 정도를 떠올리겠지만 나는 서울에 그보다 더 많은 콘텐츠가 있음을 안다. 망원과 문래, 서순라길, 해방촌과 합정, 연희와 용산, 혜화와 올림픽공원 등도 그렇다. 동네를 떠나 할 일들로 쳐도, 각 하나하나의 장소들 만으로도 방문할 만한 가치가 있는 곳이 많으니까. 그럼에도 도쿄가 서울보다 규모적인 의미에서 더 크다는 생각은 지우기 어렵다.


그건 도쿄가 말 그대로 정말 크기 때문이겠다. 도쿄 23구의 인구와 크기는 서울과 비슷하지만 광역 도쿄권의 인구는 4천만 명이 넘고, 그 인구가 도쿄 23구와 연관지어 사는 만큼 4천만 명을 수용할 콘텐츠가 필요해졌을 테니까. 그렇게 도쿄는 복잡한 도시가 되어 쉽사리 추천하기 보단 '괜찮겠어? 거기 엄청 복잡한데'란 말이 튀어나오는 동네가 되었다. 도쿄 대부분의 지역을 한번 정도 다 방문하고 난 지금에야 조금 맘이 편해졌지만, 2번 째 방문했을 때도 '그래도 아직 안 가본 곳이 너무 많은 걸...' 할 정도로, 도쿄역에 처음 도착했을 때 그 거대함과 번잡함에 질려버릴 정도로 도쿄는 너무 많은 걸 품고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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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도쿄는 도쿄다. 수도는 수도다. 싶었더랬다. 오사카와 후쿠오카가 편하고, 삿포로가 좋고 나고야가 힙한 것 같고 어쩌고 해도 도쿄는 워싱턴DC처럼 말만 수도인 곳도 아니고, 과거만을 다루고 있거나 또 현재만을 다루고 있는 어떤 극단적인 도시도 아니고, 말 그래도 일본의 정수를 느낄 수 있는 곳이었다. 지금 일본인들은 어떤 곳에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 일본의 최신 트렌드는 무엇인지, 이 안에 담긴 역사와 의미들은 무엇인지.

다양한 디벨로퍼들이 니혼바시, 롯폰기, 마루노우치를 바꾸어놓는 모습들을 보면 감탄이 나오고, 이 큰 도시가 돌아가는 원동력인 교통체계를 조금 이해하게 되면 '뭐 이렇게 복잡해' 싶으면서도 그 힘 자체에는 놀라게 된다.


도쿄를 여행한다는 건, 내 취향을 찾아가는 일이다. 그저 쉬고 싶을 때나 그저 힐링을 하고 싶을 때 도쿄를 가는 건 추천하지 않는다. 내가 무언가를 확실히 좋아하거나 원할 때, 아니면 그런 것을 찾고 싶을 때. 아니면 무언가를 공부하고 싶을 때. 여러 번 가더라도 괜찮겠다 싶을 때. 도쿄를 여행하는 건 다른 도시로 대체가 어려운 즐거운 일이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파리에 가면 에펠탑과 루브르를 즐겨야 하고, 로마에 가면 피자와 파스타를 먹고 콜로세움을 봐야겠지만, 도쿄는 사람마다 다른 걸 하면 그만인 곳이니까. 도쿄 어딘가엔 내 취향에 맞을 콘텐츠가 있고, 시부야와 긴자 한 번 가지 않고도 여행이 완성될 수 있는 곳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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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나라까지 관광가기엔 그렇고 동남아에서 휴양을 하고 싶은 것도 아닌데 일본 다른 도시와 대만 홍콩 정도를 가봤다면, 새롭게 무언가를 파고 드는게 머리가 아프지만 그래도 괜찮다면 도쿄는 괜찮은 대안이 될 수 있겠다. 나 역시 도쿄를 수없이 파고 들어간 분들에 비하면 한 없이 부족한 견문이지만, 도쿄에 사는 사람도 도쿄 전부를 이해하기는 불가능할테니까 그런 건 중요하지 않다. 도쿄 여행에서 가장 중요한 건 '나만의 재미를 찾는 것'이고, 그걸 찾았다면 여행의 목적은 완수한 것이나 다름없다. 오사카에 온다고? 그럼 도톤보리로 와야지하는 대신 도쿄로 온다고? 여기 어딘가에 너가 좋아할 곳이 있을 테니까 잘 찾아봐하는 도시니까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도 몇 군데 찾아둔 곳이 있다. 니혼바시와 도쿄역 킷테, 아카사카가 그렇다. 그리고 기회가 된다면 또 다른 곳들도 열심히 찾아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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